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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80

낙양의 용문석굴과 백낙천 - 내가 본 비단길 7 12. 낙양의 용문석굴과 백낙천 宇玄 김민정 중국의 3대 석굴중의 하나인 용강의 용문석굴 2005년 8월 8일. 아침 청진사라는 회교 사원을 구경하다. 무척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사원이었다. 주로 위그르족들이 다니는 곳이다. 이날은 낙양에 갈 예정으로 기차표를 구입하려 했으나 기차표 구입에 실패하고 버스로 낙양까지 가기로 하다. 오후 3시가 되어 서안역을 벗어나기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 3시쯤 낙양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며 자주 눈을 감고 있었는데, 옆의 남편은 자꾸 깨운다. 다시 보기 힘든 풍경인데 왜 잠만 자냐고…. 다시 못 본다고 해도 그렇게 아쉬울 풍경 같지는 않았다. 군배대루라는 여관에서 묵다. 2005년 8월 9일. 아침식사 후 호텔에 짐을 맡기고 기차표를 구입하러 낙양역에 가다.. 2009. 8. 3.
북경의 천안문, 자금성, 천단공원 - 내가 본 비단길 8 13. 북경의 천안문, 자금성, 천단공원 중국 자금성 천안문 광장 1995년 8월 10일. 북경에 도착하다. 사해통 여관이라는 곳에서 묵었고, 오주에도 갔었으나 너무 피곤하여 잠을 자다. 1995년 8월 11일. 천안문, 자금성, 천단공원, 이화원을 구경하다. 저녁에는 북경의 한국식당에서 불고기를 먹었다. 천안문은 중국 북경에 있는 자금성의 정문이다. 천안문 광장의 북쪽에 있다. 천안문의 장소에 지어진 최초의 성문은, 1417년에 건설된 승천문(承天門)이다. 이 문은 1457년 낙뢰로 소실되고 1465년에 재건되지만, 1644년의 이자성의 북경공격으로 명조가 멸망했을 때 같이 소실되었다. 현재의 문은 청나라 순치제 1651년에 재건된 것으로, 이 때 〈천안문〉으로 개명되었다. 이 명칭은 ‘천상의 평화로운.. 2009. 8. 3.
이화원과 서태후 - 내가 본 비단길 9 14. 이화원과 서태후 다음으로 우리는 이화원을 구경하러 갔다. 이화원은 서태후의 여름별장이었다. 인공호수를 파고 그 흙으로 산을 만들어 만수산으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서태후의 칠순잔치를 그 호수위에서 했다고 한다. 많은 중국인들이 기아로 허덕일 때도 서태후는 청의원을 화려하게 재단장한 이화원에서 호위호식하며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해군의 군비를 떼내어 이화원을 확장하였으며, 수많은 국고를 사치로 낭비하였다. 이러한 국고낭비는 청일전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청일전쟁시 청나라의 해군은 일본에게 대패할 수 밖에 없었다. 해군 증강에 쓸 막대한 자금을 서태후가 이화원 개축에 대부분에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별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청나라의 멸망이 30년 앞당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후세들이 .. 2009. 8. 3.
명13능과 만리장성 - 내가 본 비단길 10 15. 지하궁전인 명13능 1995년 8월 12일, 지하궁전인 명13능과 만리장성을 보러 가다. AD 15세기초 쿠테타를 일으켜 황권을 빼앗은 중국의 한 황제가 그 때의 도읍이었던 남경(南京, Nanjing)에서 북상해 베이징(北京, Beijing)을 새로운 도읍지로 정하고 북경의 북쪽에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자신의 묘지도 함께 만들었다. 그 뒤로 200년 동안 그의 후손들도 이곳에 자신의 묘지를 만들어 오늘날 이 곳에는 13개의 제왕능이 생겨났는데 이 거대한 능을 후세의 사람들은 명13능(明十三陵)이라고 부른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에 등재된 명 13능 중 장능(長陵)과 정능(定陵)이 대표적이다. 연산(燕山) 산맥에 자리잡은 명 13능에는 13명의 황제와 23명의 황후, 1명의 황귀비, 순장된 수.. 2009.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