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84 돈황의 명사산, 월아천, 막고굴 - 내가 본 비단 길 3 6. 돈황 가는 길 돈황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사막풍경 1995년 8월 1일. 우루무치를 떠나는 날이었다. 무엇인가 식구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고 싶어 상설시장인 ‘자유시장’에 들려 보았지만 값싸고 실용적이거나, 기념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아직 후진국이라 품질면에서 떨어지고, 또 비싼 것들을 사다 줄 형편도 아니었다. 집아이들에게 줄 중국 모자(위구르인 전통 모자)를 사고 그 다음에는 과일중 청건포도, 호도를 각각 1kg씩 샀다. 짐이 많지 않다면 더 사고 싶었지만, 우린 옷가지만으로도 짐이 너무 많았다. 기차표를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여 시베족인 중국인에게 미리 부탁해 놓았다. 그런데 그 중국인들은 자기들도 같이 가겠다는 것이다. 남편이 시베어를 배우던 사람은 스물 여덟 살, 막내동생은 열여덟.. 2009. 8. 3. 서안을 향하여 - 내가 본 비단길 4 9. 서안 서안을 가기 위해 기차역 유원을 향해 오는데 멀리 파도가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사막에 웬 바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가까이 오니 그것은 사막 속의 오아시스 ‘유원’의 나무들이 그렇게 보였음을 알았다. 지평선 멀리로 보이던 그 푸른 바다가 바로 초록색 나무들이었던 것이다.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신기루를 본 느낌이었다. 오아시스를 그리워하며 뜨거운 사막을 왕래하던 옛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비로소 사막 속의 오아시스가 대상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가 실감하게 되었다. 본 만큼, 경험한 만큼 세상은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고 하던가. 중국의 기차는 4인 침대차, 6인 침대차, 일반석이 있는데, 침대차표 사기가 무척 힘들다. 4인 침대차는.. 2009. 8. 3. 진시황의 병마용 - 내가 본 비단길 5 10. 진시황릉의 병마용 宇玄 김민정 진시황릉의 병마용 1995년 8월 7일, 서안의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은 아침도 굶은 채 관광을 시작했다. 역전에 나가 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달려드는 관광버스(투어) 소개인들 때문에 아침 먹을 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진시황릉의 병마용, 진시황의 아방궁터, 양귀비의 화청지 등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진시황릉을 보기 위해 서안으로 가는데 길 옆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석류가 많이 있었다. 석류는 이곳 서안을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하다. 석류를 몇 개 사려다가 비싼 것 같아 사지 않았다. 지금의 서안은 당대의 장안으로 100만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장안은 페르시아 상인의 활동무대이기도 했으며 실크로드의 종착역이기도 했다. 당대에는 페르시아.. 2009. 8. 3. 양귀비의 화청지 - 내가 본 비단길 6 ***4대 미녀와 별명에 얽힌 사연 ** ◆ 서시(西施) - "침어(沈魚)" 『 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 춘추 전국 시대의 "서시"는 춘추 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비추었다.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가 보복을 위해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 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한다. ◆ 왕소군(王昭君) - "낙안(落雁)" 『 왕소군의 미모에 .. 2009. 8. 3.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