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세계속을 거닐다 10
한국문인협회 제28회 해외 한국문학 심포지엄 및 유럽 문학기행 다녀오다
김민정(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겸 상임이사)
람블라스 거리를 거닐며(김남희동화작가, 이원희시조시인, 강정화시인, 김민정시조시인, 김호운소설가, 박경희시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걸작품 성가족성당, 구엘 공원을 보았다. 곡선미를 사랑했던 가우디 건축의 미적 감각을 구엘 공원에서 확실하게 보았다. 물론 성가족성당에서도 부분적으로 보였지만, 곡선미가 더 잘 나타나는 건 구엘 공원이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길거리에서 카사 밀라의 외관과 카사 바트요의 외관도 보았다. 카사 밀라란 공동주택 계획으로 디자인한 건축물이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팬이었던 페드로 밀라 이캄프스가 카사 바트요를 보고 의뢰한 연립 주택으로, ‘카사 밀라(밀라의 집)’라는 이름보다 ‘라 페드 레라(채석장)’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거대한 돌덩이처럼 생긴 건물의 외관에서 가우디가 추구하는 곡선과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이 보인다. 바다의 물결을 연상하게 하는 곡선의 외관과 미역 줄기를 닮은 철제 발코니는 주변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르셀로나 시민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다. 옥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로마 병사와 타일로 만든 십자가 등 독특한 디자인의 굴뚝이 인상적이다. 아래층에는 가우디의 작품들과 가우디에 관한 영상들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고 그 아래층에는 당시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고 한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카사 바트요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건축물로 바다를 연상시키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사업가 바트요가 의뢰해 설계한 것으로 1905년부터 약 3년간 지어졌다. 해골 모양의 테라스와 뼈를 형상화한 기둥 등이 인상적이며 그래서 ‘인체의 집’이라는 의미로 카사 델스 오소스라고도 한다. 가우디의 특징인 곡선 구조는 실내에서도 드러나며 물속처럼 보이는 효과를 표현한 엘리베이트도 볼거리 중 하나라고 한다. 현재 글로벌 캔디 브랜드 추파춥스 회사 소유며, 가우디 탄생 150주년 기념으로 2002년부터 바르셀로나 시와 함께 일반인에게 오픈했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콜럼버스 동상이 보이는 람블라스 거리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우리는 람블라스 거리, 보께리아 시장, 레이알 광장 등을 구경했다. 람블라스 거리에는 콜럼버스 동상이 우뚝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콜럼버스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스페인 어느 곳에서나 스페인을 부강하게 만든 그를 높이 떠받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영웅이 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만큼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고 자아를 지킨 용기있는 사람들이 얻을 수 영광일 것이다. 살아있을 한 때, 그도 탐욕과 영광과 치욕을 맛보았고 신대륙의 인디오들에게 잔인한 행동도 많이 했다. 새삼 세비야 성당에서 보았던 네 명의 왕이 떠받들고 있던 콜럼버스 관이 생각나기도 했고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콜럼버스와 이사벨 여왕의 면담 이야기도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의 관은 모두 세비야 대성당의 지하에 묻혀 있는데 유독 콜럼버스의 관만 1층에 있고, 네 명의 왕이 관을 떠받들고 있던 이유는 콜럼버스 생전에 이사벨 여왕이 죽고 대신들에게 미움받아 쫓겨난 그는 신대륙에 살았으며 그는 죽을 때 자손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죽어서도 나는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말 때문이라 한다. 나중에 콜럼버스 무덤이 있던 쿠바가 스페인령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을 때 콜럼버스의 유해를 스페인으로 모셔오고자 했다. 이 때 그의 자손들이 유언 이야기를 하자, 머리 좋은 대신 중의 한 명이 그러면 그의 유해를 땅에 내려놓지 않고 그의 관을 네 명의 군주(왕)들이 떠받들고 있게 하겠다고 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한다.
세비야 대성당
-콜럼버스
김민정
유럽의 역사 앞에 획을 그은 뱃길 있다
대구잡이 길을 따라 오고가던 콜럼버스
빛나는 이름을 남기고 그가 여기 잠들다
뒤안길로 사라져간 인디오 문화 위에
스펜인을 강국으로 키워놓은 그의 업적
군주가 메고 있는 관, 성인이 따로 없다
람블라스 거리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람블라스 거리, 레이알 광장에서 가우디가 학생 때 디자인했다는 가로등도 볼 수 있었다. 또 거리 중간쯤에는 호안 미로가 디자인한 모자이크 타일도 깔려 있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등
람블라스 거리를 걸으며 (김남희, 이원희, 강정화, 김민정, 김호운, 박경희)
람블라스 거리에서(강정화, 김민정, 김호운, 박경희, 이원희, 김남희)
이번 여행을 통해 유럽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된 점에 감사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의 역사 뿐 아니라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미술품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보람이라 생각된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인간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행동한다. 그래서 여행을 통하여 좀 더 세상을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가족들에 묶여서, 또는 방학이면 시집을 묶어내느라 국내여행도 세계여행도 마음대로 못 가고 늘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것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 옆에 1992년 올림픽 마라톤 영웅 황영조를 기념하기 위해 몬주익언덕에 황영조 조각상을 돌에 새겨놓은 것을 보았다. 황영조가 달리는 모습을 돌에 새긴 것이었다. 또 그 옆에는 “역사와 예술의 나라, 스페인 찬란한 고도 바르셀로나 이곳에/ 동방의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경기도 그 힘찬 빛이 같이 어리어 있나니/ 아, 이 뜨거운 우정 만방에 영원하리라”란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한 사람씩 황영조 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나는 황영조와 한글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대한민국이란 동방의 작은 나라,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인식되어 있을까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황영조가 새겨진 돌 앞에서 김민정 부이사장
돌에 새겨진 글귀
뷔페식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지중해 바닷가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점심 식사 후 지중해 바닷가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2023년 11월 1일 우리는 밤 8시 35분발 비행기로 바르셀로나를 출발하여 한국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면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멋진 일출 구경도 하고 이번 한국문인협회 회원들과 함께한 여행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도 생각해 보면서 오후 4시쯤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큰 탈없이 무사히 여행해준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년의 더 멋진 여행을 기획해 본다.
아, 세르반테스
김민정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 한 나라 심장부에
단테 이후 최고라는 소설가, 그가 서서
단번에 내 무력함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가 글을 쓰는 대로 행동했던 돈키호테*
조금은 모자란 듯 그러다 넘쳐나던
천재가 여기 있었다 그들은 하나였다
정의는 진리라는 그 말에 이끌리어
자꾸만 올려보는 정수리가 뜨끈하다
수 세기 그의 자리는 아직도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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