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그리운 날엔 기차를 타라 2
1. 심포리 기찻길 (2) - 스위치백(switch back) 철로
김민정(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부이사장)
가끔은 묻고 싶은 / 지그재그 인생길
이곳에 와서 보면 / 그 이치를 알게 된다
영동선 / 기찻길에도 / 지그재그 있다는 걸
가끔은 묻고 싶은 / 가도 가도 숨찬 인생
이곳에 와서 보면 / 그 이치를 알게 된다
때로는 / 바람도 숨찬 / 언덕길이 있다는 걸
-「지그재그(스위치백) 철로-영동선의 긴 봄날 46」 전문
스위치백(switch back) 철로(흥전역에서 심포리역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한국철도공사
시조집『영동선의 긴 봄날』 46~50 부분의 내용은 지그재그 철로인 도계역, 나한정역, 흥전역, 심포역 사이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삼척시 심포리와 태백시 통리 구간은 해발 700m에 이르는 험준한 지형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switch back) 철로인 을(乙)자형 지그재그 철로 시설이 있다. 심포역과 나한정역 사이에는 흥전역이 있고, 이곳이 국내유일의 스위치백(switch back) 철로인 것이다. 스위치백 철로란 경사가 가파른 구간에서 열차를 전진·후진을 반복하게 하여 목적지에 오를 수 있도록 설계한 철도선로이다.
기울기 30‰란 1000m진행에 30m가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기울기가 30‰ 이상이면 운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열차운전의 한계구배인 30/1000으로 철길을 운행하기 위해 기차는 도계역에서 나한정역까지 3.2㎞, 나한정역에서 흥전역까지 1.5㎞, 흥전역에서 심포리역까지 4.06㎞를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하면서 올라가는 것이다. 이 구간 중 나한정역~흥전역 1.5㎞ 구간을 뒤로 달리는 ‘스위치백’ 시스템으로 열차가 통과한다. 즉 앞머리가 꽁무니가 되고, 꽁무니가 앞이 되어 경사면을 오르는 것이다. 안내 방송이 없던 옛날에 처음 이 기차를 탄 사람들은 이 구간에서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기관차가 물을 먹는 / 이~삼십 분 정차 동안
저탄장의 가루석탄 / 화물차에 실렸었고
차량반 / 검수원들은 / 바퀴 점검 바빴고
옥수수, 감자, 김밥 / 산골다운 먹거리와
동해바다 갓 건져온 / 생선, 미역 흥정으로
영문도 / 모르는 여객 / 지루함을 달랬다
-「도계역-영동선의 긴 봄날 50」 전문
도계역은 여객차가 30~40분씩 머무는 큰 역이었다.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오래 머무는지 이유를 몰랐었다. 손님이 많은 곳이라 더 태우려고 기다리는 줄 알았다. 아니면 석탄을 싣기 위해서 오래 정차하는 줄 알았다.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나 가장 큰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도계역에는 급수탑(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66)이 있다. 급수탑에서 증기기관차에 물을 보충하고, 열을 받은 기관차의 엔진을 식히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사용되지 않는 이 급수탑은 국내에서 몇 개 안 되기에 2003년 1월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46호로 지정되었다. 급수탑은 도계역에 정차하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보충해 주었다. 기관차의 물 보충 시간 외에도 계속 흘러넘쳐 마을 사람들은 이 탑의 물을 식수로 삼기도 했다. 60~70년대만 해도 이 마을은 식수 부족으로 산 중턱까지 가서 물을 길어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도계역 급수탑 (근대문화재 46호) 사진: 이희탁
1940년 철근콘크리트구조로 건립된 이 시설물은 당시 급수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급수탑은 크게 2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물탱크를 받치고 있는 하부는 급배수를 위한 기계실로 바닥은 원형이고, 상부는 지붕이 돔(dome)형식으로 4개의 반원형 도머창문(dormer window)을 4방향으로 설치하여 환기구로 이용하였다. 높이 8m, 용량 26t, 바닥면적 16㎡, 하부둘레 14.2m로 이 급수탑의 특성은 높이가 다른 급수탑에 비하여 상당히 낮다. 이는 철로면의 높이보다 급수탑 바닥면을 다른 곳보다 높은 곳에 설치하여 적정 수압을 얻어내고 있는 것으로 지형을 고려하여 급수탑의 높이를 조절한 독특한 예다.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국내 급수탑이 현재 8곳에 보존되고 있으며 도계급수탑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차에 안내 방송도 없던 시절, 기차가 오래 정차하는 이유도 모르는 채 궁금하고 답답했던 사람들은 이곳 장사꾼들의 국수, 옥수수, 감자, 김밥, 떡 등 간식거리를 사 먹으며 또 도계역전에서 파는 묵호, 삼척, 북평에서 올라온 싱싱한 생선, 미역, 파래 등의 반찬거리를 사기도 하며 지루한 정차 시간을 보냈다.
돈 벌어 뜨겠다던 / 탄광촌의 뜨내기들
소박한 꿈 다시 묻혀 / 뿌리 내린 삶이 되고
한여름 / 루핑 지붕만 / 사막처럼 후끈이던
심포리역, 흥전역, / 나한정역, 도계역 사이
지그재그 철로에서 / 뒷걸음을 치던 기차
새로운 / 전설 속으로 / 아스라히 사라져갈
-「나한정역-영동선의 긴 봄날 47」 전문
나한정역 사진 이희탁
나한정역은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거의 없는 한가한 간이역이었다. 1939년 3월 1일 역사 준공, 1940년 신호장역을 거쳐 1953년 4월 1일 여객과 화물을 취급할 수 있는 보통역으로 승격했지만, 여객도 화물도 많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도계시장을 가게 될 때 나한정역에서 약 3.2㎞로 한 정거장밖에 안 되었기에 기차시간이 맞으면 기차를 타고 가고, 걸어가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되면 걸어가곤 하였다. 심포리역 북쪽에 있는 마을 나한정은 심포리역 뒷편, 돈각사라는 절의 뜰 앞에서 건너다 보이는 산세가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나한”(아라한─소승불교에서 최고 경지에 이른 수행자)과 흡사하다 해서 유래된 지명이다.
을(乙)자형 철도에서 / 뒤로 가기 위한 기차
정차하는 잠깐 순간 / 신호기만 흔들리는
아무도 / 내리지 않는 / 그런 역이 있었고
역 아래 마을에는 / 흥전사택 있었지만
까만 아이 까아만 물 / 세월 속을 흘러가고
쓸쓸한 / 바람소리만 / 선바위골 흔들었다
-「흥전역-영동선의 긴 봄날 48」 전문
흥전역 근처 (왼쪽이 스위치백 구간인 나한정역을 향하고, 오른쪽은 심포리역으로 향한다) 사진: 이승현
스위치백의 구간인 흥전역은 사람들이 타거나 내리지 않는 신호장역으로 예전에는 역장이 나와 붉은색과 녹색 깃발을 들어 신호를 하면 깃발색에 따라 기차를 움직여 지그재그 철로를 운행했다. 나한정역을 지나 흥전역을 향하면서 앞장서던 앞머리 기관차가 꽁무니가 되고, 꽁무니가 앞이 되어 경사면을 올라가서 심포역을 향한다. 나한정역~흥전역 구간을 처음 타보는 승객들은 당황하기도 하는데, 기차가 갑자기 뒷걸음치기 때문이다. 기차는 기차굴 입구, 흥전역 근처, 나한정역의 후진에서 주로 서행을 한다. 때문에 가끔 동네 젊은이들은 차표도 끊지 않고, 그곳에서 기차를 슬몃슬몃 타고 내리는 무임승차를 하기도 했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 뽀얗게 먼지 피고
화물차가 지나가면 / 꺼멓게 탄재 날려도
오십천 / 낭만이 흐르고 / 미인폭포 흐르고
가루탄을 반죽하여 / 주먹탄을 만들고
기계로 찍어내던 / 십구공탄 추억 속을
달려라, / 달려라 심포역까지 / 칙칙폭폭 꽤애─액
-「달려라, 심포역까지-영동선의 긴 봄날 40」 전문
심포리 건널목과 신작로(70년대)
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후반까지가 심포리 탄광촌은 전성기였다. 탄을 많이 캐어내는 탄광주인에게 얘기해서 곧바로 캐내어 가공되지 않은 주먹탄이나 가루탄을 얻어다가 다시 가루탄으로 잘게 부수고 묽게 반죽하여 19공탄을 찍어 말렸다가 그것으로 난방을 하며 겨울을 나기도 하였다. 연탄에 왜 구멍을 낼까하고 어렸을 때는 무척 궁금했는데, 그것은 공기와 잘 통하여 연탄불이 꺼지지 않고 끝까지 잘 타게하여 100% 연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물로 적당히 이겨 반죽한 가루탄, 또 가끔은 나무를 쓸 때 나온 톱밥을 가루탄에 섞기도 하여 구공찬 기계에 넣고 큰 망치로 여러 번 내려치며 단단하게 19공탄을 만들어 내던 추억이, 힘들었다는 생각보다 즐거웠다고 기억되는 것은 그것이 지나간 과거인 까닭도 있겠지만, 어른들이 주로 하고 어린 나는 구경을 하든가, 아니면 나도 해 보겠다고 설치며 어른들께 졸라서 해 본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초에 서울로 전학을 왔으므로 힘든 삶의 경험은 별로 없었고, 그것은 심심산골 탄광촌의 삶을 살아낸 어른들의 몫이었다.
심포리역 사진: 이승현
앞 시조의 마지막 부분은 ‘달려라, 달려라 삼척역까지, 도계년들 밥만 먹고 똥만 싼다. 칙칙폭폭 꽤애─액’이라는 ‘삼척철도 노래’에서 인용해 온 것이다. 도계 탄광촌의 여자들이 일은 안 하고 탄광의 남편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쌀밥만 먹고 편하게 지낸다는 데에 질투를 느낀 사람들이 만든 노래 가사인 것 같다. 늘 질투하는 쪽은 좋은 쪽만 보고 그것을 부러워할 뿐, 이면의 고달픔·애환·노력은 애써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 면이 있다. 탄광의 광부들은 언제 갱이 무너지는 사고가 날지, 또는 광산에 화약을 터트릴 때, 동발이란 나무를 굴에 괼 때 어떤 사고가 날지 몰라 늘 불안해 하기 때문에 출근길에 여자, 고양이, 쥐 등이 앞을 가로질러 가거나 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여 출근을 안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일도 있었다. 그만큼 위험이 늘 도사리는 막장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런 남편들과 함께 사는 여자들의 삶도 늘 불안했을 것이다.
기차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사진: 이승현
어린 날 철로에다 귀를 바싹 붙여 듣던
가늘게 윙윙대던 그 떨림을 기억하지
그럴 땐 철로 밖으로
폴짝, 건너 기다리지
잠시 후 달려오는 기차에 손 흔들며
서울을 꿈꾸듯이 내 꿈이 자라났지
아직도 그날의 기다림
그림자로 남아 있어
스쳐가는 이름에도 아스라한 고향길에
오래도록 따라붙는 그리운 그 얼굴들
어디쯤 오고 있을까
기적소리 데불고
- 졸시조, 「기차가 어디쯤 오고 있을까」전문
강릉역까지 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지그재그 철로구간인 나한정역, 흥전역, 심포리역, 통리역을 없애고 동백산에서 도계까지 루프식 솔안터널(16.2㎞)을 뚫었다. 그 터널이 완성되어 나한정역, 흥전역, 심포리역, 통리역은 ‘영동선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지금 이곳은 관광열차와 레일바이크가 운영되고 있다.
기차로 통리역을 지나면서 멀리 백봉산 쪽으로 바라다보이던 미인폭포의 하얀 물줄기와 때로는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산들이 여미며 여미며 틔워놓은 것 같이 아스라이 보이던 아름다운 도계읍과 심포리 전경은 레일바이크를 타고서야 볼 수 있고, 관광열차를 타야만 스위치백 철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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