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세계속을 거닐다(7)
한국문인협회 제28회 해외 한국문학 심포지엄 및 유럽 문학기행 다녀오다
2023년 10월 29일 우리는 미하스라는 마을에 갔다. 미하스는 하얀 마을로 유명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미하스는 스페인 마라가주 남부 해안에 위치하며 평균 고도가 400m에 이르는 고산도시인데 태양의 해안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 기와 지붕과 하얀 벽이 아름다우며 별장 지역의 하얀 담벼락에는 화분으로 장식된 곳이 많아 아름답다.
미하스에서의 점심 식사
미하스라는 마을은 당나귀가 유명하며 예전에 당나귀를 많이 타고 다녔다고 한다. 당나귀동상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당나귀를 타고 마을 골목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당나귀들은 눈들을 가려 한 번에 여러 곳을 못 보게 해 놓았다. 앞 밑만 보고 가야하고 여러 마리를 끈으로 묶어 당나귀마차를 만들어 제일 앞에 마부 한 사람이 타고 나머지 당나귀들은 한 대에 두 사람씩 타는 마차를 끌게 되어 있다. 네 다섯 마리 정도가 한팀이 되기도 한다. 당나귀마다 똥주머니도 달고 있었지만, 별소용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탄 당나귀가 갑자기 똥을 누며 가는 바람에 똥주머니가 아닌 길에 질펀하게 쏟아놓았기 때문이다. 순간 옷에 튈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미하스에서 차를 마시며
당나귀마차를 탈 사람은 타고, 말마차를 타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타기도 하고 차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각자 자유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나서 내려오며 차도 마시고, 가방도 사고, 모자도 사고, 목도리도 사고, 피카소 등 화가의 그림이 새겨진 옷도 샀다. 높고 푸른 하늘과 알맞은 햇살 등 전형적인 가을날씨를 느끼며 아름다운 태양의 해안을 만끽하기도 했다. 밤에는 그라나라로 향해 그곳 호텔에 묵었다.
2023년 10월 30일 드디어 알람브라궁을 보러 갔다. 그 동안 무척 보고 싶었던 궁전이었는데 드디어 보게 되었다. 그라나다라는 곳에 있으며 그라나다의 뜻은 석류를 뜻한다고 한다. 알람브라궁의 핵심은 나사르 궁전과 헤네랄리페 정원이다. 알람브라Alhambra는 붉은 성이라는 뜻인데 벽면에 철분이 많이 포함돼 있어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띄기 때문이다. 나사르 궁전의 입장시간은 엄격히 제한되어 정해진 시간 외는 입장 불가하다. 동계의 입장 시간은 08:30~18:00라고 한다. 관람시간은 한 시간이며 정해진 시간 외는 관람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아침에 출발하여 올리브 가계에 잠깐 들려 각자 필요한 선물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나사르궁전에 1시에 입장 관람하기로 되어 있어 그 전에 헤네랄리페(Generalife) 정원부터 구경했다. 정원은 꽃들과 작은 분수로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그곳 정원을 흐르는 분수와 물은 네바다 설산에서 끌어온다고 한다. 사이프러스 나무들도 잘 가꾸어져 있다. 나무들을 깎아 아치형으로 만든 모습도 특이하고 예뻤다. 날아다니는 새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작은 분수들, 연잎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이용한 작은 분수에서 내어뿜는 물도 참 예쁘고 시원해 뵌다.
알람브라궁전 내의 헤네랄리페(Generalife) 정원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헤네랄리페 정원에서 김호운 이사장
헤네랄리페(Generalife)는 이슬람 통치자들의 여름 궁전이었던 ‘건축가의 정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헤네랄리페 정원은 ‘천국의 정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왕의 휴식공간이다. 이곳엔 두 개의 정원이 있다. 분수와 꽃들의 아름다운 정원인 ‘아세키아의 안뜰’이란 곳은 페르시아 정원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원래 알람브라 궁전과 좁은 골짜기 형태의 긴 통로로 연결되었다고 하며 현재의 정원은 20세기 들어 재정비되었다 한다. 주거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방들이 그리 많지 않으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의 용도(우리 나라 정자와 비슷)를 가진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 하나의 정원인 ‘술타나의 정원’이란 곳이다. 이곳은 왕과 왕의 여자만이 출입할 수 있었는데, 왕의 신하 중 한 사람이 어렸을 적 친구였던 왕의 여자를 몰래 와서 보다가 그 남자 집안의 남자 36명이 모두 사형당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 정원에는 왕의 별궁을 지키던 근위대와 왕의 후궁이 몰래 만나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서 사랑을 나누다 이를 알게 된 왕이 근위대의 목을 쳐서 그 나무에 매달았고 사랑의 장소로 이용됐던 나무에게도 벌을 내려 뿌리를 잘라 죽였고, 다른 사람들 본보기로 그 나무를 죽은 채로 그대로 그 자리에 두었다 한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 배경으로 유명한 곳은 알람브라의 파스탈 정원이라 한다.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그의 제자였던 콘차 부인과 함께 알람브라 궁전을 찾아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실의에 빠진 타레가가 달빛 아래 드리워진 아름다운 궁전 모습과 분수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슬픈 사랑을 기타 연주로 나타낸 것이 바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란 기타연주곡이다. 이곳에 오면서 계속 가슴속을 따라다니던 아름답고 애잔한 기타선율의 의미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끝까지 잔잔하고 아름답던 선율이 반복되고 반복되던 의미를 끊임없이 솟아나는 이곳 정원 분수의 모습과 아라베스크 문양의 반복성과 타레가의 가슴에서 솟아났을 연연한 그리움과 실연의 아픔까지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다.
르네상스 건물인 카롤로스 5세 궁전 앞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우리는 알람브라 궁전에 입궁하기 카를로스 5세(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 궁전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이곳은 큰 벽돌과 대리석으로 지은 정사각형 건물인데, 내부 중전은 원형을 이루고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의 마지막 아랍 왕조인 나사르 왕국이 남기고 간 궁전이다.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졌다 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아랍어 ‘al-Ḥamrāʼ는 ‘붉은 것’이라는 뜻의 여성명사구라 ‘붉은 성’이란 뜻이다. 아랍어가 스페인어로 굳어져 쓰이고 있는 Alhambra라는 이름은 스페인어에서 h가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 읽는 것이 정확하다.
궁전은 해발 740m의 고원에 위치하는데 너비는 205m에 달한다. 서북서, 동남동의 방향으로 건물이 뻗어 있으며 전체 면적은 142,000m²이다. 견고하게 쌓아진 성벽이 있으며 주위에는 13개의 타워가 있다.
그라나다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알람브라 궁전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알람브라 궁전 내부의 원형극장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이 궁전 으뜸가는 중정은 도금양중정과 사자중정이다. 정교한 아치의 문들과 돔의 모습이 아름다웠고, 기둥에 새겨진 무어인의 뛰어난 손재주로 만들어진 아라베스크의 무늬와 종유석 모양의 화려한 장식들이 눈길을 끌었다. 손으로 만들었을 텐데 기계로 찍어내듯 반복되는 정교함과 세밀함과 방대한 장식을 가진 아치와 기둥과 돔과 각종 수로와 담담한 벽의 대비 등 모두가 놀라왔다. 술탄의 알현실인 ‘대사의 홀’에서는 화려한 치장 벽토와 세라믹, 그리고 거대한 돔형 목조 천장이 아름다웠다. 8천여 개의 나무 조각으로 구성되어 빈틈없이 연결된 조각들이 이슬람의 밤하늘을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사자궁 앞의 황금빛 종유석 문양과 아치형 장식들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드러내어 아라베스크 양식의 극도로 세련의 모습을 보여 준다. 궁전이 완성되자 이것을 본 왕은 몹시 감탄했다. 그리고 궁전을 지은 장인들을 불러 세상에 다시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궁전을 짓지 말라며 그들을 장님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손목을 잘랐다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흠잡을 곳 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한 편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오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람브라 궁전 내의 사자궁 앞에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사자중정에는 사자 열 두 마리가 받치고 있는 작은 분수대가 있다. 원래 이슬람 문화에서는 사자상을 세울 수 없으나 외국 사신들이 선물로 가져왔기에 왕과 왕의 여자들이 살던 이곳에 설치했다 한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스페인의 이사벨여왕에게 빼앗기고 북아프리카로 가야했던 나사르 왕조 마지막 에미르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항복문서 조항에 ‘알람브라 궁전을 지금의 형태로 보존해 줄 것’을 요구했다.보압딜은 떠나면서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는 게 더 슬프구나’라며 눈물을 흘렸다 한다. 또한 떠나면서 적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왕의 여자들과 자식들을 이곳에서 베어 이 분수의 물길은 피로 흥건했었다고 한다.
1492년 기독교 세력이 재정복하면서 정복자들이 궁전을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흰 빛깔의 도료로 바뀐 것도 이때 이뤄진 일로서 도금과 회화 작업도 이 시기에 추가되었고 기존의 가구는 개보수되거나 혹은 없어졌다. 카를로스 5세 궁을 지은 카를로스 1세(1516-1556)는 당대 르네상스 양식으로 궁전의 건축 양식을 수정하는 한편 겨울 궁전을 허물어버렸다. 펠리페 5세(1700–1746)는 주위 전각과 내부 방을 이탈리아식으로 바꾸는 한편 무어인의 양식에 완성도를 가미하였다 한다.
수세기 동안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이슬람의 영향은 상당 부분 손상되고 피해를 입었음에도 알람브라 궁전은 무어 예술의 극치를 가장 잘 표현한 곳으로 남아 있다. 무어인 출신의 시인들은 이 궁전을 "에메랄드 속의 진주"라고 표현하였다. 건물의 반짝이는 광채와 고급스러운 배경 때문이다. 작은 전각도 중앙을 향해 드러나도록 하며 외부는 언덕의 굴곡을 없애어 평평하게 하고 내부는 웅장함을 가미하기 위해 고도 차이를 이용한 대리석 기둥과 아치형의 건물이 나타나며 투명하게 드러나는 천정도 아름답다. 햇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통하는 전체 공간은 밝고 우아하다. 파란, 빨강, 금빛 노란색이 잘 어우러져 있어 시간과 빛의 노출 정도에 따라 광경이 달라지기도 한다. 방치되어 폐허가 되었다가 1832년 워싱턴 어빙의 '알람브라 이야기'가 히트 치면서 복원이 되어 유럽 최고의 아랍 건축물로 알려졌다.
아라베스크 문양
알람브라 궁전의 석류
알람브라 궁전 사자중정 앞에서의 필자, 김민정 부이사장
알람브라 궁전
김 민 정
혹여 내 전생에 와 본 곳 분명하다
왜 이리 눈시울이 아리며 젖어들까
아치형 문을 밀고서 한동안 눈을 감는다
빠개서 속을 보인 석류나무 아래 서니
누구를 그리다가 못 닫은 가슴처럼
알알이 붉은 눈물이 온몸에 맺혀 온다
붉은 벽돌 에돌아서 잔잔히 스며드는
기타 음률 좇다 보니 그대, 거기 우뚝 서네
훗승에 다시 온다면 천년을 살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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