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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한국문학인 세계 속을 거닐다(2)

by 시조시인 김민정 2023. 12. 3.

http://cms.kore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443

 

한국문학인 세계 속을 거닐다(2)

한국문인협회 제28회 해외 한국문학 심포지엄 및 유럽 문학기행 다녀오다

 

글: 김민정(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

 

10월 23일, 스페인(에스파니아)의 마드리드 Hotel LCB FUENLABRADA에서 조식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마드리드 광장 부분에서 내렸다. 스페인 광장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기념동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유명한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이다. 1605년에 출간된 소설로 세계 문학사를 대표하는 고전 중 하나며 첫 근대 소설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총 2부작으로 전편은 1605년에 『재치 있는 이달고 라 만차의 돈키호테』, 후편은 10년 후인 1615년에 『라 만차의 재치 있는 기사 돈키호테의 다음 부분』으로 발표되었다. 돈키호테가 여행을 떠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헤프닝을 그린 전편은 당시 기준 초대박인 3만부가 팔리며 대박을 치게 되었으나, 정작 세르반테스는 당시 빚에 쪼달리던 터라 이미 출판 저작권 상당수를 넘겨준 상태라서 큰 돈을 벌진 못했다. 후편이 나오기 전에 다른 작가가 후속작을 써낼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온갖 해적판이 퍼져나갔는데, 일부는 신대륙으로까지 진출했고, 1부 출간후 7년 후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10년 후 『돈키호테』 후편이 발매되었고 전작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는 오직 나를 위해 태어났고, 나는 그를 위해 태어났다.”고 할만큼 이 작품에 대해 긍지를 가졌다. 2부 출간 다음해 세르반테스는 세상을 뜬다. 작가는 가도 작품은 남는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작품을 한 편이라도 쓴다면 그는 성공한 문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동상 앞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우리는 마요르광장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은 1619년에 완성된 중세에 시장으로 사용되던 장소로, 펠리페 3세 때인 1619년 중요행사가 열리는 광장으로 건설된 후에는 왕의 취임식, 종교의식, 투우경기, 교수형 등이 치러지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특히 악명 높던 종교재판이 열려 다양한 교수형, 화형식이 거행되던 장소이기도 하다. 3번의 화재로 옛모습은 남아 있지 않고 19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 4층 건물이 반듯한 직사각형을 이루며 광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데, 9개의 아치문이 광장으로 통하고 있다. 광장 가운데 기마상 동상의 주인공은 펠리페 3세다. 스페인과 갈등 관계였던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평화 협정을 맺어 스페인에서는 평화의 왕으로 불렸다. 광장건물의 중앙벽에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고, 1층에는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 가게, 관광 안내소 등이 있다.

마요르 광장 펠리페3세 동상 앞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솔광장(Puerta del Sol)은 태양의 문이라는 뜻이다. 중세 시대에 태양의 모습이 새견진 성문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9개의 길이 시작되는 마드리드의 대표 중심가이다. 솔광장에는 “곰과 마드로뇨 나무” 동상이 있다. 마드로뇨는 산딸기의 일종이며 곰이 이를 먹고 있는 내용이다. 마드리드의 옛지명이 ‘Ursaria’인데 이는 ‘곰의 땅’이라는 뜻이고, 이곳에는 곰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이 동상의 왼쪽 뒷꿈치를 만지면 행운을 만난다는 속설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만진다고 한다. 우리의 곰토템 신앙이 생각나서 반갑기도 했지만, 그들은 곰이 많이 살았다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또한 이곳의 명물인 “0km 지점”은 이곳에서 9개의 길어 뻗어나가는 시작점을 알리고 있다. 속설로 이곳을 밟으면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온다고 하였으며, 우리도 그곳에 발을 얹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광장의 「곰과 마드로뇨 나무」 동상 앞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프라도미술관은 회화, 조각 등 8,000여 점이 넘는 방대한 미술품을 소장한 대형 미술관이다. 이곳은 1785년 카를로스 3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했다. 원래는 자연과학 박물관이 될 예정이었으며 설계를 담당했던 사람은 당시 스페인의 대표적인 건축가 후안 데 비야누베바였다. 그러나 나폴레옹관의 전쟁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전후에는 페르난도 7세에 의해 스페인 왕가의 방대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왕실 전용 갤러리가 국립 미술관이 된 뒤에도 귀중한 미술품의 수집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인 엘 그레코, 고야,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비롯해 16~17세기 활약했던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네덜란드의 플랑드르파 작품과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인 라파엘로와 보티첼리 등 이탈리아 회화 작품도 있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문이 3개 있는데, 각각의 문에는 고야, 벨라스케스, 무리요의 동상이 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고야의 동상이 있는 곳이었으며, 보안 검색 때문에 입장시간이 걸리고, 관내에는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 아쉬웠다.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많은 유명한 그림을 볼 수 있어 행복했으나 가이드가 설명하는 몇 몇 그림 외에 자세히 볼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

프라도 미술관 고야 동상 앞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프라도미술관에서 본 몇 개의 사진들을 간략히 소개해 본다.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 출처: 위키백과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는 이 신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일 것이다’부터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지금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작품 앞에서 정면, 왼쪽, 오른쪽으로 자리를 바꿔가면서 바라보아도, 보는 이의 시선을 계속 따라다니는 눈빛을 만날 수 있으며 엘 크레코가 그린 인물들은 손가락 끝으로 대화한다고 할 만큼 손가락을 섬세하게 그렸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 - 출처: 위키백과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은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어린 마르가리타 왕녀를 담당하는 시녀들, 샤프롱, 호위병, 그리고 두 명의 난장이가 에워싸고 있다. 작품 속 벨라스케스는 작품 내부의 공간을 넘어 이 그림을 감상할 누군가가 자리할 캔버스 밖 저편을 바라보고 있다. 배경에는 거울이 걸려 있으며, 거울 속에는 왕과 왕비의 상반신이 보인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 중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옷을 벗은 마하」 - 출처: 위키백과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옷을 입은 마하」 - 출처: 위키백과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 「카를로스 4세 가족」 「검은 그림들」도 감상했는데, 「옷을 벗은 마하」는 1800년에 완성하고 「옷을 입은 마하」는 1803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당시 카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에서 획기적인 작품이었던 「옷을 벗은 마하」는 지금도 그 그림의 모델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알바 공작부인일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고야는 말년에 「검은 그림들」을 그렸는데 그 그림들은 무섭고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 출처: 위키백과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은 1639년에 제작된 유채화다. 그 내용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자신 앞에서 한껏 미모를 과시하는 세 여신을 심판하는 장면이다. 비너스는는 자신에게 사과를 주면,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비너스에게 사과를 주었고, 그녀가 소개해준 여인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로, 유부녀였다. 파리스가 그녀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감행하자 스파르타가 트로이 전쟁을 선포해 기나긴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톨레도 대성당 앞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우리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고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 거리의 카톨릭·유대교·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로 이동하였다.  「톨레도 대성당」은 1225년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페르난도 3세의 명에 따라 원래 이슬람 사원이었던 자리에 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493년 완성되었다. 그 후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면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쳐 현재의 엄청난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현재는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이다.

본당 보물실에는 16세기초 엔리케 아르페가 만든 「성체 현시대(Custodia)」가 보관되어 있는데, 5,000개의 금·은·보석으로 만들어져 무게가 무려 180kg, 높이가 3m정도 된다. 또한 본당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성가대석에는 그라나다가 함락되는 전쟁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해 놓은 조각이 있으며, 성물실에는 엘 그레코의 종교화와 고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성당 규모와 자료들의 방대함이 놀라왔다. 그 크고 많은 금으로 장식된 것들이, 한 때 무적함대를 자랑하며 세계를 정복하던 스페인이라는 한 나라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아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거대한 성당을 보면서, 이러한 종교의 힘에 저항할 수 없었을 그 시대 한 개인의 존재감도 생각해 보았다.

<성체현시대> 앞 박경희 시인, 김호운소설가, 김미정시조시인, 박미경수필가

 

다음으로는 엘 그레코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산토토메 교회를 들렸다. 그곳에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볼 수 있었다. 장례식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위쪽에는 신들이 그려져 있고 맨 위에는 예수님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도 그려넣었다 한다. 화가의 심리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엘 그레코 그림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 출처: 정현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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