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형숙 시조론>
밝고 긍정적인 화해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조
김민정(한국문협 시조분과회장, 문학박사(성균관대))
1. 동일화를 통한 세상과의 따스한 화해의 작품
우형숙의 이번 시조집 『〇〇〇』에는 세상과의 화해 작품이 많아 따스하고 부드러운 작품이 많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이 대체로 밝고 긍정적이다. 때로 날카로운 시각의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 시각의 작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서정시의 가장 큰 장르적 특성은 동일화의 원리를 추구하고 있다다. 동일화에는 ‘투사’와 ‘동화’가 있는데 투사는 자아가 세계 속으로 투영되는 것이고 동화는 자아 밖의 세계가 자아로 들어오는 것이다. 때문에 동일화는 자아와 세계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자아 밖의 세계를 대결과 긴장으로 인식하지 않고 화해를 추구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기에 따뜻한 시선을 지닌 작품이 되는 것이다. 우형숙시인의 이러한 작품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내장을 몽땅 꺼내
땅속 깊이 파묻었다
속을 텅 비워보니
맑은 혼에 기백 생겨
독화살 날아온대도
겁날 것이 없어라
곧게 가자 곧게 가자
굴곡진 맘 걷어 내고
옹이진 마음일랑
과감히 삼켜 버려
가끔은 스산히 울어
그 속뜻도 알리며
-「대나무의 삶」
배배 꼬인 잔털 떼며
수염뿌리 다독인다
흙을 섬겨 새 살 돋고
수더분히 자라거라
풍상도
다 겪고 나면
보란 듯이 꽃잔치다
-「분갈이하며」
인용한 작품들은 동일화의 원리를 잘 수용하고 있다. 「대나무의 삶」과 「분갈이하며」에서는 동일화의 방법 중 ‘투사’의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즉 이 작품에서는 「대나무의 삶」에 나의 삶이 투사되어 있다. ‘내장을 몽땅 꺼내/ 땅속 깊이 파묻었다// 속을 텅 비워보니/ 맑은 혼에 기백 생겨/ 독화살 날아온대도 겁날 것이 없어라’ 대의 속이 텅 비어있듯이 화자의 속도 비운다는 뜻이다. 대를 닮아 욕심, 욕망도 비우고 오장육부를 비움으로써 애욕칠정에서도 벗어나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하여 둘째 수에 오면 ‘곧게 가자 곧게 가자/ 굴곡진 맘 걷어 내고//옹이진 마음일랑/과감히 삼켜 버려// 가끔은 스산히 울어/ 그 속뜻도 알리며’라고 한다. 굴곡진 마음을 버리고 굳게 가자고, 옹이진 마음도 삼켜 버리자며 화자자신에게 속삭이듯, 타이르듯 하고 있다. 그러면서 때로는 대가 바람에 울 듯 스산히 울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속뜻도 알리고 싶어 한다. 대나무의 삶을 동경하여 대나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어하는 동일화의 원리가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분갈이하며」 작품도 그러한 삶의 자세가 스며 있다. 난을 분갈이할 때 보면 꼬리는 배배 꼬인 경우가 많고 잔털도 많고 수염뿌리도 많다. 그러한 것을 제대로 펴주고 잔털도 떼어내고 수염뿌리도 다독이면서 흙을 보충해 주기도 하는 것이 분갈이다. 흙을 섬겨 새 순 돋고 수더분히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풍상을 겪고 나면 새로운 꽃을 피울 기운도 생기고 그렇게 피어난 꽃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한껏 드러낼 수 있으니 그 때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때때로 마음도 ‘분갈이’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복잡한 세상사에 다리 하나 척 걸치며
얼떨떨 지켜보고 엄펑덤펑 재주넘고
어물쩍 어깨동무로 썰물밀물 타보고
깜장 휘장 들춰내고 게슴츠레 눈 비비는
뭇별과 손톱달이 밤마실 나올 때면
느긋이 봇짐 풀고서 별잔치도 구경하고
- 「그냥 그렇게」 전문
「그냥 그렇게」란 작품을 통해 시조시인이며 번역가인 우형숙시인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세상은 더 복잡하고 다단하다. 그렇다고 세상을 등지고 고립하여 백이숙제처럼, 로빈슨처럼 홀로 살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시인은 세상사에도 척 다리를 걸쳐 놓고, 다 이해되지 않는 얼떨떨한 상황에서도 엄펑덤펑 재주도 넘으며 어물쩍 어깨동무도 하며 썰물밀물도 타보는 것이다.
그렇게 분주하던 낮이 가고 조금은 조용해지는 밤이 오고 뭇별과 손톱달이 밤마실 나올 때면 ‘느긋이 봇짐 풀고서 별잔치도 구경하고’라고 형상화한 표현에서 시인은 인생길이 여행길임을 생각한다. 그래서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저녁이 오면 느긋하게 관조적 입장에서 별들이 반짝이며 벌이는 별잔치도 구경하겠다는 마음의 여유도 가져보는 것이다. 세상사람들과 고르게 어울리며 수더분하게 살고 싶은 역시 화자의 마음을 담아본 작품이다.
깊고 큰 아픔들이 차곡차곡 묻혀지고
슬픔도 꾹 참으면
저렇게 하얘지니
저절로 치유되는 날
눈물 가고 미소 오고.
늘 배가 볼록했던 엄마의 장독대엔
겹겹 사랑 소복소복
두텁게 성을 쌓고
나는야 옆구리 콕콕
마음 한 뼘 자라고.
-「함박눈 오는 날」 전문
아픔도 묻혀지고 슬픔도 참으면 하얗게 바래면서 저절로 치유되는 것이 세월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아픔도 슬픔도 치유되고 눈물 가고 미소가 온다며 어머니를 잃은 아픔과 슬픔도 시간이 지나 치유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겨울이 오고 어머니가 아끼던 장독대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여전히 배가 볼록하다. 그 위에 축복하듯 소보소복 함박눈이 내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프고 애달펐던 마음도 한 뼘 자라고 있다. 세월이 오고가고 사람도 오고가는 자연의 하나임을 깨달으며 어머니를 여윈 슬픔을 극복해 가고자하는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새벽이 오는 소리
서재가 서걱댄다
날아가는 시간 훑어
시계톱니 잡고 보니
거꾸로
리듬 탄 생체
여명이 주는 희열이여
어제의 부족한 나
큰 무게로 꾸짖고
내일에게 빌려 온
금쪽같은 시간 가져
공책에
흩뿌린 씨앗들
발아 순간 꿈꾼다
- 「밤샘 작업」 전문
손가락 끝으로
씨앗을 뿌린다
컴퓨터에 새 움 싹터
꽃망울이 터진 순간
아 천국,
온몸의 솜털이
기립 박수 중이다
- 「명작 탄생」 전문
밤샘하며 번역을 하든가, 아니면 작품을 쓰는 일은 우형숙시인의 일과일 것이다. 맡은 일이 있으면 빠르게 처리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려는 습관 때문에 밤샘 작업도 마다 않는다. 그것이 번역이든 시작이든 밤샘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집중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밤샘 작업이 가능하고 그러한 고난의 시간을 거쳐야만 작품이든 번역이든 완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 공들이지 않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작품을 쓰든, 번역을 하든 늘 미흡함이 있을 수 있고, 끊임없이 수정보완해 가는 것이 작가의 모습이고 또한 번역가의 모습이다. 우형숙시인도 그러한 자기반성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시인이다. 밤샘을 하며 작품을 쓰고, 그 작품들이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그러한 밤샘을 한 작품들이 빛을 보기를, 세상에서 발아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명작 탄생」은 그렇게 밤샘을 하며 컴퓨터 앞에서 작품과 씨름하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완성시켰을 때의 기쁨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것이 작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 는 작품이라면 그 완성의 순간은 한 생명의 탄생에서 맛보는 기쁨에 비견될 것이다. 그러기에 ‘안 천국,/ 온몸의 솜털/ 기립 박수 중이다’라며 투사의 방법으로 동일화하고 있다.
옛집들이 사라졌다
구부정한 그 시절도
목울대를 넘지 못해
석회화된 속울음아
괜찮아
땅꼬마집들이
달마중을 가는 거야
- 「동네는 지금 재개발 중」 전문
기다림이 마냥 좋아
이것저것 주문하니
차곡차곡 찾아드는
그 흥겨움
그 달콤함
문 열면
금빛 상자들
볏단처럼 서 있다
- 「택배」 전문
「동네는 지금 재개발 중」이나 「택배」도 우형숙 시인의 긍정적인 시각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재개발 중인 동네를 보면서 ‘옛집들이 사라졌다/ 구부정한 그 시절도’라며 옛날의 모습은 사라져 아쉽지만 그래도 더 좋아지기 위한, 더 편해지기 위한 과정쯤으로 생각하고 ‘괜찮아/ 땅꼬마집들이/ 달마중을 가는 거야’라며 종장에서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는 긍정적인 작품이다. 「택배」에서는 물품을 기다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초중장에 나타나고 종장에선 ‘문 열면/ 금빛 상자들/ 볏단처럼 서 있다’며 택배를 시키고 그것을 편하게 집에서 받고있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택배가 잘 발달되어 있는 우리나라는 코로나시대에도 택배가 더욱 고공행진을 하여 코로나를 어느 나라보다 잘 견딘(?)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그러한 새시대의 풍속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개성 없는 개성이야
속사정 캐지 마라
돋보이는 색깔 섞어
독특한 향내 섞어
양념장 슬슬 달래어
풍진 세상 살아남기야
- 「전주비빔밥」 전문
개성 없는 개성이라니, 이건 역설이다. 그런데 자세한 속사정은 또한 캐지 마라고 한다. 그러니 더 수상쩍다. ‘돋보이는 색깔 섞어/ 독특한 향내 섞어’ 양념장 슬슬 달래어 풍진 세상 살아남기야‘란다. 비빔밥처럼 개성 없어 보이는 것은 결국 풍진 세상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며 방편이다. 이러한 성격의 작품은 우형숙 시조에는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세상에 대한 무감각이나 무딘 감각 때문이 아니고, 누구보다 날카로운 눈과 귀를 가졌지만 그래서 그 속성들을 아주 잘 파헤치지만, 그것으로 인해 상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싶지 않아서 화해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대로의 개성이다. 그렇게 섞인 것으로 전주비빔밥이라는 이름을 얻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도 인간관계에서 그러한 성격을 지니는 것, 즉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서 내가 바라지 않았던 상황이 와도 쉽게 화해할 수 있는 능력도 그 사람만의 특성이다.
이 외에도 「가야금을 뜯으며」 「핸드폰 잠금장치」 등 자아에 대한 긍정적 시각의 작품이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긍정하며 자존감을 높이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변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나타나 밝고 긍정적인 작품이 우형숙 시조집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까맣게 보내고픈
그믐달 걸린 밤도
양 백 마리 다 새도록
옹이진 밤 녹지 않아
머릿속
똬리 튼 뱀 마냥
잡생각에
촉 세운다
-「불면, 그 놈」전문
늘 세상을 긍정하며 산다고 해도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을 초월한 도인이 아닌 다음에야 늘 세상사에 시달리며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기분 좋을 말을 들으면 웃게 되고, 안 좋은 일이나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금방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모습이다. 누구라도 이러한 모습에서 100%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우형숙시인도 늘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긍정하며 살고 싶지만 ‘똬리 튼 뱀 마냥/ 잡생각에/ 촉 세우며’머릿속 생각으로 옹이 진 밤이 풀리지 않는 밤이 있어 이렇게 형상화되고 있다.
2. 사랑을 노래한 작품
네 그물에 갇히고파
네 마음에 집 짓고파
네 얼굴이 너무 맑아
피멍든 나,
숨고 싶어
그물코 지그재그로
서러움만 진을 치네
- 「짝사랑」 전문
우형숙시인에게 사랑은 어떤 것일까. 내 자유를 속박하더라도 네가 쳐 놓은 그물이라도 좋으니 그것에 갇히고 싶다고 한다. 네 마음에 집을 짓고 싶다고 한다. 네 얼굴은 너무 맑은데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나, 피멍든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아 숨고 싶은 마음, ‘그물코 지그재그로/ 서러우만 진을 치네’라며 선뜻 용감하게 사랑고백을 하지 못하는 화자를 만난다. 그물코 사이사이로 사랑은 빠져가고 내 마음엔 서러움만 남아 진을 치고 있다 한다. 내 마음이 닿지 못하는 모습이다.
순도 높은 나의 감정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네 허락도 받지 않고
달아오른 외발 연정
한사코
꽃물 머금고
네 향기만 따라다녀
- 「짝사랑」 전문
짝사랑은 늘 나만이 애가 타는 사랑이다. 쌍방이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나만의 감정이다 보니, 순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너를 향한 나의 감정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오직 너를 좋아하는, 너를 좇는 그 감정만 높기에 순도도 높고, 그 속도 또한 빠르다. 너의 감정엔 아랑곳하지 않고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한쪽 발만 달아오른 사랑의 감정이다. 양발의 균형이 맞아야 제대로 걷는 것처럼 서로가 사랑해야 감정이 오고가고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사랑은 불균형일 수밖에 없는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물 머금은 내 감정은 너만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림자처럼 졸졸 너를 좇는, 너의 환영을 좇는 짝사랑의 안타까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눈치 볼 거 하나 없는
노골적인 직진 사랑
온 사방 소문내는
질펀한 프로포즈
아프다
지나친 연심
외눈박이 그 사랑이
-「천지연 폭포」 전문
제주도 천지연 폭포를 보고 쓴 작품이다. 시원스레 쏟는 물줄기가 마치 눈치 볼 거 하나 없다는 듯 노골적으로 고백하는 직진의 사랑처럼 느껴진다. 온 사방에 물방울을 튀기는 폭포처럼 그렇게 온 사방에 소문내는 질펀한 프로포즈다. 그러나 아무리 노골적으로 그 사랑을 표현해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아플 수밖에 없는 짝사랑이다. ‘아프다/ 지나친 연심/ 외눈박이 그 사랑’이 되는 것이다. 짝사랑은 노골적일수록 소문나면 날수록 그만큼 상처도 깊을 것이다.
저 벚꽃
허락 없이
혼자서 피더니만
질 때는 야단스레
바람 잡고 우는구나
잊어라 구멍 난 연분
돌아앉는 인연이야
-「실연」 전문
짝사랑과 연결된 실연이다. 벚꽃의 피고짐을 실연에 비유하 작품이다. 꽃이 피는 것이 짝사랑의 감정이라면 지는 것은 실연인 셈이다. 종장은 ‘잊어라 구멍 난 연분/ 돌아앉는 인연이야’라며 관찰자의 입장에서 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짝사랑은 본인이 들여다본 자신의 행동과 감정이라면 실연은 꽃의 피고짐을 바라보며 꽃이 저 혼자 피는 것을 짝사랑으로, 바람에 꽃이 지는 것을 바람을 잡고 꽃이 우는 것으로 표현하여 실연을 당하여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이미 ‘구멍한 연분이고 돌아앉는 인연’이니 잊으라고 한다. 짝사랑할 때는 혼자만의 감정에 충실하다가, 그 감정이 냉정해짐으로써 현실 인식을 하며 이성적으로 관조하는 모습이라고도 보여진다.
네 가슴 내어줘야
너 또한 살 길이야
오뉴월 땡볕에
가슴팍 달구어서
가을엔
어우렁더우렁
불꽃 인연 잇는 거야
「담쟁이의 유혹」 전문
이 작품에서는 네 가슴을 내어주는 일이 네가 살 길이라고 한다. 뜨거운 가슴을 내어줘야 상대방도 가슴을 열고 ‘오뉴월 땡볕에/ 가슴팍 달구어서’ ‘가을엔 어우렁더우렁 불꽃 인연 잇는 거야’라며 서로가 가슴을 내어주고 마음을 주어야 나중에 좋은 결과와 결실이 있을 것을 말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담쟁이는 어차피 혼자서 살아가기는 힘들고 누군가, 어딘가에 기대어 타고 오르며 생존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그러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존재라는 인식이 짙은 작품이다.
빈 집에 홀로 남아
참 나를 만난 시간
밤 꼬박 내린 눈에
그리움이 쌓였건만
서리 낀 창문에 쓴다
손톱글씨.
'괜찮아'
-「괜찮아」 전문
그녀의 사랑은 언제나 서글프다. ‘빈 집에 홀로 남아/ 참 나를 만난 시간//밤 꼬박 내린 눈에/ 그리움이 쌓였건만//서리낀 창문에 쓴다/ 손톱 끝에/ ‘괜찮아’’ 모두가 떠나가고 아무도 없는 집안, 참 나를 만나는 시간이지만, 외롭다. 밤 꼬박 눈은 내리고,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다. 그리고 서리낀 창문에다가 ‘괜찮아’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 그것은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이다. 이렇게 형상화한 그 행위 자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외로움의 표상으로 보인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극복해 보려는 화자의 심리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요즘은 혼밥, 혼술이 유행하는 시대다. 핵가족시대인데다가 결혼을 안하거나 늦게 하는 성인들이 많은 상황이다보니 더욱 그렇고,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다. 이렇게 집에 홀로 있을 때, 그 밤이 눈 내리는 밤이라면 그리움은 더욱 쌓일 것이다. 그 대상이 연인이든, 가족이든.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도 더욱 커질 것이다. 여기서 ‘밤 꼬박’이란 말속에는 밤새 잠 못이루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했다는 의미도 되고, 밤새도록 눈이 내렸다는 뜻도 포함되어 중의적 표현이 된다.
우형숙의 사랑노래는 짝사랑이 많이 표현되고 있다. 남몰래 하는 「짝사랑」이거나 「천지연폭포」처럼 노골적이고 직진적이라도 상대방의 사랑을 받지 못해 늘 혼자하는 사랑으로 아픔을 노래하고 있는 애잔한 작품들이다.
3. 풍자 또는 비판의 작품
사랑만 듬뿍 받아
도도한 저 눈빛 봐
꼭 다문 앵두 입술
입꼬리가 젊었구나
생각은 못 자랐는가
민머리가 애달프다
-「마네킹」 전문
사랑만 받다보면 사람은 도도해지는 걸까? 화자는 마네킹에 감정이입을 하며 그녀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활유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만 듬뿍 받아/ 도도한 저 눈빛 봐’라며 그녀를 도도한 눈빛을 지니고, ‘꼭 다문 행두 입술/ 입꼬리가 젊었구나’라며 마네킹을 젊은 여인에 비유하고 있다. 마네킹의 사실적인 표현이다. 그러다가 종장에서 ‘생각은 못 자랐는가/ 민머리가 애달프다’고 한다. 이 마네킹을 의인화하여 비유함으로써 ‘인간의 도도하고 방자한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조는 전경후정이라 하여 초장과 중장에서는 보이는 풍경을 말하고 하고 싶은 말은 종장에서 하는데, 이러한 수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초장과 중장에서는 보이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말하고, 종장에서는 도도하고 예쁜 마네킹의 모습 같은 철없는 요즘 젊은이들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그것 참 교활하다
폭력 아닌 폭력이야
용광로 흉내내며
이글이글 웃더니만
에어콘 호통소리에
문밖에서 서성이네
-「무더위」 전문
지구의 온난화로 지구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 바닷물의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지구의 여기저기서 갑작스런 이상기온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곳도 많다. 느닷없는 폭설, 느닷없는 가뭄, 느닷없는 폭우, 느닷없는 우박 등 이상기온이 판을 치고 있다. 그 뿐인가. 여름이면 폭염으로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고, 가뭄으로 산불이 나는 곳도 많다. 기후가 이렇게 변한 건 인간의 탓이라고 한다. 시인은 ‘폭력 아닌 폭력이야’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바로 자연의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그 더위가 에어컨을 켬으로써 집안까지는 못 들어옴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컨을 켬으로 바깥온도는 더욱 더 올라갈 수밖에 없고, 지구의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인간은 언제까지 자연을 이용하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 그렇게 이용만 하다가 이제는 자연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무더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것은 자연이 휘두르는 폭력임을 인식하고 있다. 아무도 폭력이라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더위를 비롯한 모든 이상기온은 이미 자연이 인간에게 휘두르는 폭력인 셈이다. 인간인 문안으로 피함으로써 그 폭력으로부터 잠시는 몸을 피할 수 있지만, 문밖에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존재하고 있다. 더위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잘못했다 말해볼까
회초리가 버겁구나
비딱하게 머리젖힌
세로 본능
저 성깔
언제쯤 허리 꺾일까
아 자존심 치인다
-「싸락눈 맞으며」 전문
지금 시인은 싸락눈을 맞는 상황이다. 눈은 지금 사선으로 비딱하게 오고 있다. 부드러운 촉감의 함박눈이 아니라 싸락눈을 맞고 있다.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 회초리로 때리듯이 따끔따끔하게 얼굴을 싸락눈으로 때리고 있다. 그리하여 ‘잘못했다 말해볼까/ 회초리가 버겁구나’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현실을 모면해 보고 싶은 만큼 조금은 세차게 싸락눈이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비딱하게 머리젖힌/ 세로 본능/ 저 성깔’의 표현으로 싸락눈은 좀 까칠한 여인, 성깔 있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자존심 강한 시인도, ‘아 자존심 치인다’라고 할 만큼 언제쯤 꺾일지 모르는 그 기세가 당당하기만 하다. 싸락눈 내리는 정경을 진술과 묘사로 잘 표현하고 있다.
마스크로 푹! 가려도
칼끝보다 예리한 혀
선플 운동 쫙 펼쳐도
엄지검지 독기 흘러
심장을
정조준하는
서슬 퍼런 세치 혀
-「말, 말, 말」 전문
말이란 얼마나 고맙고도 위험한 것인가. ‘말 한 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말로 위기를 잘 극복할 수도 있지만 ‘혀 밑에 도끼 들었다’는 말처럼 말 한 마디 때문에 죽음도 맞을 수 있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인간의 감정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감정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내뱉다가는 칼끝보다 예리하여 상대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좋은 말로 상대방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할 수도 있다. 불쑥 내뱉은 말들은 어쩌면 나중에 부메랑처럼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말로써 많은 상처나 아픔을 주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옛시조 중에서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란 시조도 있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삶, 즉 언행일치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생각과 행동, 또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이다.
마스크로 푹 가려도, 선플 운동을 펼쳐도, 심장을 정조준하는 서슬 퍼른 세치 혀가 늘 우리에게는 도사리고 있다. 언제나 말을 조심해야한다는 의미가 이 작품에는 들어 있다. 고발적이며 교훈성이 짙은 작품이다.
자는 잠에 가고 싶다
할머니의 노랫가락
하지만 눈 뜨면
새로 돋는 야심인가
부스락
약봉지 챙겨
생을 휙! 늘리시네
-「이상한 소원」 전문
나이들수록 삶에의 애착이 깊어지는 것일까. 입으로는 ‘죽고 싶다, 자는 잠에 가고 싶다’면서도 약봉지의 약을 열심히 찾아 먹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거짓말도 잘 하시는구나.’하고 생각하는 화자의 마음이 나타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는데, 삶에의 미련이 왜 없겠는가.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엿본 작품이다. 자식들이나 손자손녀,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늘 일찍 죽어야 하는데, 하는데….”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많은 약들이 개발되어 인간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젊은 인구는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만 늘어나는 인구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른지 오래다. 현실의 노인 문제를 시인은 능청스럽고 재미있게 슬쩍 보여주고 있다.
몰캉대는 봄을 딛고
엉거주춤 일어선 날
바이러스 난무하니
거리 두고 살라하네
도인(道人)된 사회적 동물
눈도 입도 다 닫다
- 「코로나 시절엔」 전문
코로나의 여파 흔적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동물이라 얼굴을 보면서 만나고, 말을 하고 수다도 떨면서 사회생활을 영위해 가는 동물이다. 감정을 섞으며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고립을 싫어하는 사회적 동물이고, 그런 인간관계를 통해서 정도 나누고 울분도 토로하며 살아간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모여서 밥 먹기를 좋아하고 밥 한 번 먹자를 입에 달고 사는 인정많은 사람들이라 더욱 힘든 코로나 시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병균으로 하여 우리는 그러한 사회적 동물의 특징들을 숨기면서, 아니 자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모두가 도를 닦은 도인처럼 점잖게 입을 닫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러한 거리두기가 해제된 상황이지만, 이 시조를 쓸 당시만 해도 우리는 여러 명이 모여 식사를 하기도 힘들었고, 나다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주제 발표 세미나도, 또 다른 모임도, 결혼식 참석도 힘들었고, 병문안도 갈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이러한 코로나 시대의 상황을 형상화하여 시조로 나타낸 작품이다.
<페스트>라는 소설작품이 그 시대 페스트가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는지를 알려주듯이…. 이렇게 문학작품이란 문자의 기록으로 우리의 살아온 흔적을 보여주기고 하고, 증명하기도 하니 인류사에 참으로 공이 크다.
4. 가족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
우형숙시조인의 이번 시조집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나타나는 작품을 살펴보자. 가족에 대한 작품은 모든 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긴 하지만 최근까지 오랫동안 직접 모시고 살던 어머니에 대한 정이 곡진하게 나타나는 작품과 그 외 가족에 대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울 엄마 숨소리에 피리가 달렸구나
들숨 따라 날숨 따라 파도 타는 하얀 시트
한참을 노 젓기 했나
잠에 빠진 돛단배
-「병실에서」 전문
어머니가 병실에 계실 때 쓴 작품이라 생각된다. 어머니의 숨에 따라 들썩이는 시트를 보며 ‘울 엄마 숨소리에 피리가 달렸구나’며 어머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한 우울한 상황에서도 환경이나 상황을 뛰어넘는 비유법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를 우울에서 벗어나게 하며 심지어 ‘들숨 따라 날숨 따라 파도 타는 하얀 시트’라는 표현에서는 마치 바다에서 파도타기라도 하듯 독자를 미소 짓게 한다. 어머니가 병과 힘들게 싸우던 모습을 ‘한참을 노젓기 했나’로 잠든 어머니를 ‘잠에 빠진 돛단배’로 비유하고 있다. 병실이란 우울한 상황을 우울하게 만들지 않고 있다는 데서 이 작품은 이미 타작품과 변별된다. 우울한 상황에서조차 마음을 밝게 가지려는 시인의 태도가 이 한 편의 작품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나며 어머니에 대한 곡진한 딸의 모습도 나타난다.
엄마가 잠든 기슭
개울물도 목청 낮춰
붉은 해 스러지고
하얀 달 고개 들면
별똥별
밤하늘 가르며
엄마 마중 나올까
-「삼우제」 전문
이 작품은 어머니의 삼우제 날 느끼는 감정이다. 삼우제란 장례를 치르고 3일째 되는 날 혼백을 편안하게 보내드리기 위한 제사이다. 엄마라는 시어를 씀으로써 동시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며 친근감을 살려주는 작품이다. 엄마가 잠든 기슭의 개울물조차 목청을 낮출 만큼 어머니 산소 앞에서는 자연조차 엄숙하다. 자연에게 화자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부분이다. 낮의 밝고 뜨겁던 해가 노을빛을 발하며 스러지고 하얀 달이 고개 들고 나오면 별똥별 밤하늘 가르며 엄마 마중 나올까며 궁금해 한다. 종장에서는 엄마의 혼백이 편안히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시라고 축원하는 화자의 마음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아가야
널 만지자
엄마 손에 눈이 생겨
아가 몸속 핏줄 따라
엄마 손이 춤을 출까
꼼지락
엄마 손가락
황홀 여행 떠나볼까
-「엄마의 노래」 전문
이 작품은 아가를 들여다보며 사랑스럽게 만지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아가야/ 널 만지자/ 엄마 손에 눈이 생겨’라고 한다. 촉각이 시각화되고 있는 부분이다. 보드랍고 예쁜 아가의 피부를 만지며 보는 엄마의 눈…. 아가 몸속 핏줄이 느껴지고, 엄마 손에까지 그 핏줄이 느껴져 엄마 손도 춤을 출 듯 감성이 전해진다. 종장에서는 ‘꼼지락/ 엄마 손가락/ 황홀 여행 떠나볼까’라며 아가를 바라보며 만지고 있는 엄마의 황홀경을 말하고 있다. 아가에 대한 엄마의 환희에 찬 표정이 금방이라도 독자의 눈에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아가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만큼 마음만큼 따스하고 부드럽고 행복하고 황홀한 표정이 세상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 작품은 그러한 엄마의 마음을 독자들에게 아주 잘 전해주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할부지 그리워서
이마에 새 길 하나
군대 간 손자 걱정
이마에 또 길 하나
울 할매 거미줄 얼굴
길만 자꾸 생겨나네
-「울 할매」 전문
우두득
잔뼈들이
합창하는 아침인데
밤늦도록 추억 들춰
되새김질 바빴으니
햇살이
폴짝 안겨도
돌아눕는 돌부처
-「우리 할부지」전문
우형숙시인의 가족에 대한 작품들은 주로 동시조풍이다. 이 시조들도 그러하다. 하나는 할매에 관한 내용이고 하나는 할부지에 관한 내용이다. 할머니를 할매라고 표현하고, 할아버지를 할부지라 표현한 것은 다정하고 친근감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내용도 동심에서 바라본 것들이다.
「울 할매」에서 할머니의 주름살이 늘어나는 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걱정 때문이라고 하는 발상이 재미있다. 늙으면 몸의 수분이 줄어들기에 물기가 줄어 누구에게나 얼굴에 주름살이 지게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아이의 눈을 통해 그것을 ‘할부지가 그리워서’, 또는 ‘군대에 간 손자 걱정’ 때문에 얼굴에 길이 하나씩 생겨 거미줄 얼굴이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따스한 인간적인 모습을 그렇게 표현하여 다정다감하고 친근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 할부지」에서는 ‘햇살이/ 폴짝 안겨도/ 돌아눕는 돌부처’라며 늦잠을 주무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노인들은 아침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시지만, 여기서는 아침 햇살이 비추는데도 돌아누워 돌부처처럼 꼼짝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 밤에 옛추억을 열심히 되새김질하시며 손자손녀들에게 말씀해 주셨을 모습, 말 없는 그 행간을 독자들에게 상상하게 하고 있다.
어깻죽지 내려앉는
자괴감에 빠질 때면
가슴 한 켠 피멍들어
탄식의 말 연이으면
어디에
닿을 내리고
숨고르기 했겠나
손등을 깨어 물고
쓴 미소로 눈물 닦고
우중충한 마음 달래
가족사진 꺼내 들면
작지만
큼직한 우주
내 가족이 날 품지
-「가족사진」전문
우리는 외부에서 상처받아 가슴이 아플 때 주로 가족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가족만이 나를 복잡한 이해 관계없이 받아주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위안을 받고 에너지를 다시 받으며 나를 충전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나와 살을 맞대고 사는 가족이며 가정이다.
어깨죽지 내려앉는 자괴감에 빠질 때, 가슴에 피멍 들어 탄식할 때, 달리던 항해를 멈추고 닻 내리고 숨고르기 하는 곳이 가족이라고, 가족사진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작지만 큼직한 우주’이다. 세상이 나를 다 거부해도 그 우주는 나를 받아주고, 날 따스하게 품어준다. 힘 내라고, 용기 잃지 말라고, 다시 항해하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형숙시인은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아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작품에서 가족간의 끈끈한 정이 담긴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병실에서」와 「삼우제」를 통해서는 어머니에 대해서 곡진한 효성의 마음이 잘 나타나고, 「엄마의 노래」를 보면 딸에 대한 무한한 정이 나타난다. 「울 할매」와 「우리 할부지」를 통해서는 손녀로서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섬기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우형숙시인에게 있어 가족이란 소중한 존재들이며 늘 가슴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마음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존재들로 인식되고 있다.
우형숙 시인의 시조집 「〇〇〇」의 작품을 몇 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동일화를 통한 세상과의 따스한 화해를 추구하는 작품, 사랑을 노래한 작품, 풍자 또는 비판의 작품, 가족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우형숙 시인의 작품은 밝고 긍정적인 화해의 세계를 추구하는 작품들이 시조의 주를 이루고 있어 작품들이 대체로 밝고 따스하며 긍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우아미가 나타나는 작품들이 많다. 우형숙 시인이 앞으로 더욱 아름다운 시조작품을 많이 창작하여 문운이 빛나길 기대한다.
2022. 6. 5.
서울 《시조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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