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나래시조문학상 심사평>
묵정밭
천숙녀
옹벽擁壁도 금이 갔고 집은 반쯤 기울어져
내부수리에 들어간 녹아 난 가슴이다
아픈 곳 제대로 짚어도 거푸집 차양 치고
어둠의 덫을 열어 몇 점 얼룩만 남겨지길
새 터에 집 짓는 일, 화전민 터 찾아 나선
뒤꿈치 발 시리다고 앙탈부리는 나를 본다
내려놓고 비운 삶 어둠을 걷고 나와
아픈 내부 지켜보다 빈 가지로 올랐지만
목숨은 어디에서나 용수철로 사는 거다
갈퀴 손 훈장으로 햇빛으로 쏟아진 날
묵정밭 일구어서 씨 뿌리고 모종하자
바람도 멈춘 시간 깨워 태엽을 감아준다
- 2021 《나래시조》 봄호
<제30회 나래시조문학상 심사평>
희망의 메시지
제30회 나래시조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천숙녀시인께 축하를 보냅니다. 이번 본심심사는 이광, 김선호, 황정희, 손증호, 이승현, 김민정 여섯 사람이 하게 되었으며 초천에서 들어온 9편의 작품 중에서 이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작품의 주제는 묵정밭이었던 자신의 삶을 새로운 마음으로 가꾸자는 것입니다. 묵정밭이란 농사를 짓지 않고 버려두어 거칠어진 밭을 말합니다. 계속 농사를 지으면 영양가가 다 되어 농사가 잘 안 되므로, 일부러 돌아가며 한 두 해씩 묵혀두는 묵정밭도 있긴 합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의 어느 부분도 한 동안 애정을 가지고 가꾸지 않아 묵정밭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하던 일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시작詩作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일에 온통 신경을 쓰다가 보면 다른 쪽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지라 이 작품에 공감이 갑니다.
첫째 수에서는 이제 다시 삶을 돌아보고 내부수리를 하고자 한다. 그런데 살펴보니 옹벽도 금이 가고 거푸집 차양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용감하게 ‘새 터에 집 짓는 일, 화전민 터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어 ‘뒤꿈치 발 시리다고’ 몸은 앙탈을 합니다. 나이 들어 다시 삶의 묵정밭을 갈아엎으려 하는 일은 능력이 있다고 해도 쉽지만은 않고 힘에 부치는 일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내려놓고 비운 삶 어둠을 걷고 나와/ 아픈 내부 지켜보다 빈 가지로 올랐지만/ 목숨은 어디에서나 용수철로 사는 거다’며 스스로 위로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비우며 사는 삶에서 어둠을 걷고 나오다 보면 내부의 아픈 것들이 보이고 꽃도 잎도 없이 비록 빈 가지로 오르는 삶일지라도 목숨은 용수철처럼 강한 의지로 살아가야 하는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묵혀두었던 묵정밭, 힘들었던 날들 위에 ‘갈퀴손 훈장처럼 햇빛으로 쏟아진 날’ 새로운 희망으로 ‘묵정밭 일구어서 씨 뿌리고 모종하자’고 합니다. 그것이 어떤 멈추었던 일이든, 아니면 그동안 게을렀던 시작詩作이든 ‘바람도 멈춘 시간 깨워 태엽을 감아준다’며 다시 힘찬 동력이 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화자의 의지가 다시 한번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으로 이 시조가 희망적인 메시지가 되게 합니다.
앞으로 더욱 빛나는 시조작품 계속 창작하시기를 바라며 뜻깊은 제30회 나래시조문학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심사평: 김민정<한국문협 시조분과회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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