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시조에 나타나는 傳統精神과 傳統美의 회복
김민정(성균관대 문학박사, 한국문협 시조분과 회장)
올해는 김상옥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艸丁 金相沃은 시와 시조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시인으로, 또는 시조시인으로 불리며, 서예가이기도 하다. 시조집으로는 ?草笛?(47), ?三行詩?(73), ?향기 남은 가을?(89), ?느티나무의 말?(98), ?눈길 한번 닿으면?(01) 등을 간행하였다. 시집으로는?고원의 곡?(48), ?이단의 시?(49), ?衣裳?(53), ?木石의 노래?(56), ?墨을 갈다가?(80) 등을 간행하였고, 동시집으로?석류꽃?(52), ?꽃 속에 묻힌 집?(58) 등이 있으며, 산문집 ?詩와 陶磁?(75)가 있다.
김상옥은 1920년 음력 3월 15일 경남 통영(충무)시 항남동 64번지에서 출생했다. 갓일을 하시던 아버지 箕湖 金德洪과 어머니 驪陽 陳씨 사이에서 6녀1남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7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된다. 그는 고집이 세고 영특하고 남달리 꿈과 인정이 많았던 소년시절을 보냈는데, 학교 교육은 별로 수학하지 않고 독학으로 공부했다.
김상옥은 한때 <南苑書店>이란 책방을 경영하였는데, 독립운동의 아픔과 애절함을 노래한 浪山의 한시를 써붙였다가, 또 우리말의 사용이 금지된 식민치하에서 독학으로 한글 詩作을 계속하느라 네 번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37년에는 김용호, 한윤수 등과 함께 시동인지?맥(貊)?을 창간하고, 임화, 윤곤강, 서정주, 박남수 등이 후일 합류하기도 하였다. 1939년 ?文章?지에 「鳳仙花」를 발표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동아일보 신춘시에 「낙엽」이 당선되었다.
해방이 되어 「봉선화」를 국어교과서에 싣게 된다. 그 해 가을에 전국 효시로 부산공설운동장에서 ‘해방기념제전’이라는 이름으로 글짓기 대회가 열렸는데, 이주홍, 김정한, 김수돈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내려갔던 그는 심사위원을 사퇴하고 직접 출전해서 매일 다른 시제가 걸리는 3일 동안 계속 장원을 하였다.
삼천포중학교의 교사를 시작으로 통영중학교, 통영여고, 마산고, 경남여고 등에서 20년 가까이 교편을 잡았으며, 삼천포중학교에서 박재삼, 마산고에서 이제하, 경남여고에서 허윤정 등을 길러내기도 했다.
교사, 인쇄소 직공, 서점 경영, 도장포 경영 등의 직업을 거친 김상옥은 62년 상경하여 인사동에서 표구사를 겸한 골동품가게 ‘亞字房’을 내어 72년까지 경영하면서 동아일보․중앙일보 등의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편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그림에도 독학 정진하여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마산, 진주 등지에서 그림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72년에는 쿄토의 융채당화랑에까지 초청을 받아 일주일 동안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1945년 아동 문학지인 ?참새?를 간행하면서, 통영 문인협회를 조직하여 그 회장을 역임했고, 제1회 노산 문학상(76), 제1회 중앙 시조 대상(83)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상옥 시인이 자란 시기는 일제 시대였고, 그가 문단에 등단한 시기는 일제 말인 1939년이었다. 그가 시조시인으로 더 잘 알려진 이유는 1930년대 우리말의 공백기나 다름없는 시대에, 즉 일제의 우리말글의 말살정책 상황에서 ‘시조’로 등단하였으며, 많은 시조 시인들이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김상옥은 그것에서 탈피를 시도하여 변혁을 꾀하고 있으며, 현대시조 발전의 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초기 작품으로는 「봉선화」와 「사향」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여기서는 그의 시조에 나타나는 傳統精神과 傳統美의 회복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졸고 『현대시조의 고향성 연구』에 대한 논문에서 다룬 내용의 일부로 《제3의 문학》 2019년 겨울호에 게재했던 내용이다. 다시 한 번 발췌하여 싣는 이유는 올해가 김상옥 탄생 100주년이고 그에 대해 시조시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이다.
1. 신라정신新羅精神의 지향
김상옥만큼 전통에 대한 향수를 지닌 시조시인도 드문 것 같다. 그는 주로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유물·유적을 통해 신라정신에 맥을 대고 있으며, 고려시대·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에 담긴 우리 민족의 숨결을 더듬고 그것에 배어 있는 민족정신과 정서에 대한 향수도 드러내고 있다. 향수가 단순히 향토라는 공간에 대한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것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을 때, 김상옥은 그러한 우리 민족의 전통과 민족정신에 대한 향수를 가졌던 것이다. 그는 전통문화에 대한 향수와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 시인이다. 그의 첫시조집 『초적草笛? 3부에 실려 있는 작품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며 다른 시조집에서도 그러한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초적草笛?에 실린 작품의 정확한 창작 년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해방 2년 후인 47년에 나온 시집이고, 39년 등단 후 첫 시조집이었으므로 10년에 걸쳐 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초적草笛?에 실린 작품들이 일제시대에 씌어 진 작품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으면 작가가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맥을 신라정신에서 찾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라의 유물이나 유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서 전통적인 가치창출을 하고 있다. 신라는 불교미술이 발전했었고 <석굴암石窟庵>, <다보탑多寶塔>,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대불大佛> 등의 작품에서는 불교사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예술품들에서 우리민족이 가졌던 종교와 내세에 대한 믿음과 미에 대한 의식을 찾을 수 있는데, 김상옥은 시조작품을 통하여 더 생생한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73년에 간행된?삼행시 육십오편三行詩 六十五篇?에서도 신라시대, 신라정신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 많다. 우리 조상의 숨결이 배어 있고, 그들의 미의식과 가치의식이 담겨있는 것을 발굴하고 예찬하는 것은 우리들의 과거에 대한, 또 우리자신에 대한 긍지이며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손길이 닿았던 우리의 유물 또는 유적을 보며 작품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예술에 대한 심미안적 안목과 함께 전통에 대한 애정과 향수라고 할 수 있다.
지긋이 눈을 감고 입술을 추기시며
뚫인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즉일 때
그 소리 銀河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끝없이 맑은 소리 千年을 머금은 채
따수히 서린 입김 상기도 남았거니
차라리 외로울 망정 뜻을 달리하리오
-「玉笛」 전문
위 작품 「옥저玉笛」를 보면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도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신라 삼보 중 하나인 「옥저」를 보며 그 소리가 은하처럼 서라벌에 퍼지는 것을 상기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천 년 전 「옥저」를 불던 사람과 맑은 옥피리 소리를 상상하고 있다. 첫째 수에서는 「옥저」를 불던 신라 시대의 사람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현재 시제를 씀으로서 지금도 그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듯이 묘사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그 맑은 소리가 천 년의 시간을 머금은 채 그 「옥저」를 불던 사람의 따뜻한 입김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며, 차라리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하겠느냐는 것이다.
「옥저玉笛」는 신라 시대 때 만들어진 길이 약 53.5cm이고 지름은 약 3.3cm인 피리다. 누런 바탕에 검은 점이 찍혀 있고,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 이 「옥저」는 신라 신문왕 때 만들어 월성 천존고天尊庫에 감추어둔 것이라고 하는데, 1692년(숙종 18)에 경주 동경관에서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삼국유사?에 전해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바로 이 「옥저」가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만파식적은 신문왕 때 대나무로 만든 피리라 하며 나라의 근심·걱정이 있을 때 그것을 불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는 신비한 피리다. 같은 신문왕 때 만들었던 피리이고 귀하게 다루어졌던 피리라서 「옥저」가 ‘만파식적’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이다. 이 시조에서는 「옥저」를 만파식적의 의미로 해석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나라의 우환이 있을 때 피리를 불어 그 우환을 없앴다는 신비한 피리, 일제의 압제로 불편했던 우리 민족에게 그 피리가 다시 한 번 효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시의 화자가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하겠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新羅 一千年 서라벌은 한 王朝 아니라, 한 王朝의 서울 아니라, 진실로 人間의 서울, 오직 人間나라의 서울이니라.
한 가닥 젓대의 울림으로 萬이랑 사나운 물결도 잠재운 나라, 모란빛 진한 피비림도 새하얀 젖줄로 용솟음치운 나라, 첫새벽 홀어미의 邪戀도 여울물에 헹궈서 건네준 나라, 그 나라에 또 소 몰던 白髮도, 行次에 나선 젊으나 젊은 남의 아내도, 서로 罪없는 눈짓 마주쳤느니
꽃벼랑 드높은 언덕을 단숨에 뛰어올라, 기어올라, 天地는 보오얀 봄안개로 덮이던 生佛나라, 生佛들의 首都이니라. - 「人間나라 生佛나라의 首都」 전문
가장 인간다운 나라, 살아있는 부처님들이 사는 나라 그것이 신라의 서라벌이었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인간나라이며, 생불나라의 수도라고 제목 붙여진 이 시조는 초, 중, 종장 모두가 길어진 한 편의 사설시조다.
서라벌은 신라 한 왕조의 서울이 아니라, 진실로 인간다운 인간들이 사는 수도, 산부처님들이 사는 수도라고 한다. 남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덮어줄 줄 아는 여유와 아량을 지닌 사람들이 중장에 등장한다. 피리 소리 하나로도 만이랑 사나운 물결도 잠재운 나라, 이차돈의 순교에서 하얀 피가 솟았다는 이야기를 지닌 나라, 첫새벽 홀어미의 사연邪戀도 여울물에 헹궈서 깨끗하게 건네준 나라, 헌화가의 백발노인의 수작도, 행차에 나섰다가 꽃을 꺾어주기를 원했던 수로부인의 태도도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너그러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러한 아량과 여유를 지니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전통의 하나라고 화자는 생각한다.
시인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서를 신라의 정신에서 찾고자 했다. 화랑도와 같은 기상도 지닐 줄 알았고, 수로부인과 같은 낭만도, 처용설화와 같은 아량도, 향가와 같은 문학적 향기도, 이차돈과 같은 깊은 불심도 지닐 줄 알았던 신라 사람들, 그러한 신라인의 마음이 지금 우리 민족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시인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가까이 보이려면 우러러 눈물겹고
나서서 뵈올사록 後光이 떠오르고
사르르 눈을 뜨시면 빛이 窟에 차도다
어깨 드오시사 연꽃 하늘 높아지고
羅漢도 물러서다 가슴을 펴오시니
임이여! 큰한 그 뜻은 다시 이뤄지이다
-「大佛 - 石窟庵」 전문
이 석굴암에 대한 가치는 20세기 유엔에서도 인정한 세계의 문화재다. 남천우 박사는 석굴의 구조란 깊이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무서우리만큼 숫자상의 조화로 충만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석굴은 경이적인 정확도로서 기하학적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 엄청난 무게의 돌을 자르고 깎아 세우면서도 10m를 재었을 때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즉 1만분의 1의 실수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 정확한 기술에는 이 시대에도 상상할 수 없는 과학이 뒷받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제 때의 건축가 야나기라는 자의 글에 「석불사의 조각에 관하여」라는 글을 보면
실로 석굴암은 분명히 하나의 마음에 의해 통일된 계획의 표현이다. 인도 아잔타나 중국 용문석굴처럼…누대의 제작이 모인 집합체가 아니다. 하나의 마음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연한 구성이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적 제작이다. 외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놀랄 만큼 주도면밀히 계획된 완전한 통일체다.
‘우러러 눈물겨운’ 부처의 모습. 그 자비스런 모습만 보고도 감동한다. ‘큰 한 그 뜻’이란 ‘부처님의 치세’를 상징하고 있다. 온 세상에 자비를 베풀어 모두가 평화롭고 고요해 지는 세상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조에서는 「대불」의 모습을 「십일면관음」처럼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불」을 거룩한 숭배의 대상으로만 나타내었다.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말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학과 예술과 종교를 사랑할 줄 알았던 마음가짐과 심미안적 감각을 지녔던 신라인들의 정신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으며, 그러한 신라정신을 본받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드러난다.
불꽃이 이리 티고 돌ㅅ조각이 저리 티고
밤을 낮을 삼아 정소리가 요란터니
佛國寺 白雲橋우에 塔이 솟아 오르다
꽃쟁반 팔모 欄干 층층이 고운 모양!
임의 손 간데마다 돌옷은 새로 피고
머리엔 푸른 하늘을 받처 이고 있도다
-「多寶塔」 전문
「다보탑多寶塔」이 완성되기까지의 모습과 완성된 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 옛날 정과 망치 밖에 없던 시대에 하나의 돌을 다듬어 탑이 되기까지, 돌을 다듬어 부처님을 만들기까지 인내와 노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불꽃이 이리 티고 돌ㅅ조각이 저리 티고’라는 표현 속에서 이 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석공의 모습이 보인다. 완성된 미의 아름다움보다 완성과정에서의 피맺힌 아픔이 첫째 수를 이루고 있다. 그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불국사 백운교 위에는 탑이 완성되어 솟는다. 「다보탑」의 모습은 팔모로 된 꽃쟁반 모양, 한 층 한 층 고운 자태이다. 그것을 다듬은 석공의 손길, 그의 손길이 간 곳마다 천여 년이 지난 지금 돌옷이 새로 피고 그것과 조화를 이룬 하늘, 그 푸른 하늘을 탑이 이고 있다.
탑을 보면서 외형적 아름다움에만 머물지 않고 그것을 만든 석공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다. 그 석공의 미적 감각과 정교함, 섬세함, 탑을 완성하기까지의 인내심, 그러한 정신을 그는 찬양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우리의 전통, 그것은 섬세함과 정교함과 균형을 잡을 줄 아는 뛰어난 미적 감각과 그것을 감상할 줄 아는 높은 안목이 조화를 이룬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신라인의 미적 감각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정신을 김상옥 시인은 찾아낼 줄 알았고, 이러한 전통에 대한 향수를 이 작품에서는 엿볼 수 있다.
지금도 지금도 그리움 있으면 影池가로 오너라
그날 지느러미처럼 휘날린 내 치맛자락에
산산이 부서지던 구름발 山그림자 그대로 있네.
아무리 굽어봐도 이는야 못물이 아닌 것을
그날 그리움으로 하여, 그대 그리움으로 하여
내 여기 살도 뼈도 혼령도 녹아내려 질펀히 괴었네.
보곺아라, 돌을 깨워 눈띄운 신기한 증험!
十里 밖 아니라, 千里 밖 萬里 밖이라도
꽃쟁반 팔모 欄干 층층이 솟아, 이제런듯 완연네.
千年 지난 오늘, 아니 더 오랜 훗날에도
내 이대론 잴수 없는 水深의 그리움이기에
塔보다 드높은 마음, 옮겨다 비추는 거울이 되네.
지금도 지금도 늦지 않네, 影池가로 나오너라
시시로 웃음살 주름잡는 山그림자 속에
내 아직 한결같이 그날 그 해질무렵 받고 있네.
-「雅歌 其一 - 阿斯女의 노래」 전문
이 작품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인 석가탑釋迦塔, 일명 무영탑無影塔을 만들 때의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전설이 소재가 되고 있다. 그 탑을 만들기 위해 백제의 유명한 석공인 아사달이 불려오고 그를 사랑하는 아내 아사녀는 탑을 무사히 만들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아사달이 탑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칠 거라고 약속했던 기한이 지났는데도 탑의 그림자가 떠오르지 않자 실망한 그녀는 탑그림자가 비칠 것이라고 약속했던 연못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실제 탑이 완성되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무영탑無影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사달은 황룡사 구층탑을 완성한 아비지의 후손이며, 이 이야기로 미루어 백제의 건축 수준이 아주 뛰어났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남편을 그리다가 죽은 아사녀의 그리움은 죽어서도 눈감지 못하여 ‘지금도 지금도 그리움 있으면 영지影池가로 오너라’고 사랑을 부른다. ‘그날 지느러미처럼 휘날린 내 치맛자락’은 바로 ‘아사녀가 죽던 날 아사녀의 그리움’을 상징하며, 영지影池는 못물이 아니라 ‘살도 뼈도 혼령도 녹아내려 질펀히 괸’ 그녀의 그리움이요 사랑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사랑은 ‘천 년 지난 오늘, 아니 더 오랜 훗날에도 내 이대론 잴 수 없는 수심水深의 그리움’이 된다. 그녀의 사랑은 탑보다 더 높고, 그녀의 그리움은 잴 수 없는 수심처럼 깊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도 보지 못해 상사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지극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이 작품에서 우리 민족전통의 하나인 여인의 사랑을 볼 수 있다. 여인들의 애절하고도 슬픈 사랑의 일편단심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요 미덕이었던 것이며, 이러한 전통에의 향수가 이 작품을 탄생하게 했다.
위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정신과 전통미를 찾기 위하여, 삼국을 통일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통일국가가 된 통일신라의 정신을 추구하고자 한 김상옥의 정신적 고향의식을 볼 수 있다. 신라인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정신이고 정서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들이라고 시인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족성과 정체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 가야할 민족정신, 전통적 정서를 신라시대에 꽃 핀 불교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들의 정신 속에서 찾음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고향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잘 나타난다.
2. 전통미傳統美의 재발견
그는 신라 정신 외에도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우리의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찬양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청자부靑磁賦」, 「백자부白磁賦」, 「연적硯滴」, 「홍매유곡도紅梅幽谷圖」, 「비취인영가翡翠印靈歌」, 「포도인영가葡萄印靈歌」등의 문화재와 「무가巫歌」, 「추천鞦韆」등 전통풍습 등에 관해서도 작품을 써서 우리 민족의 전통정신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白鶴 한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끝에 風磬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달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아래 비진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不老草 돋아나고
彩雲 비껴 날고 시내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속에 구어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ㅅ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純朴하도다
-「白磁賦」 전문
김상옥은 『詩와 陶磁』라는 산문집에서 도자기에 대한 애착과 안목을 보여준다. 이러한 도자기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많은 시조작품에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그는 도자기인 백자에 영혼을 불어넣은 후 자유로운 상징의 기법을 통해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인다. 즉 그는 단순한 소재의 선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에 영혼을 불어넣어 생명을 지니게 하고 있다. 유성규는 「백자부」는 단순한 백자의 외양을 읊은 것이 아니라 백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의 정서·낭만·예술·문화·철학 등 한국의 상징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란 표현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떠오르게 하는 구절이면서, 백자의 깨끗함, 담백함, 고고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몹사리 기달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아래 비진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라는 표현은 아주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그 백자를 쓰겠다는 의미로 ‘백자의 소중함’을 의미하고 있다.
백자의 외양묘사로 보면 바위틈에 갸우숙이 불노초가 돋아나 있고, 아름다운 구름과 흐르는 시냇물, 그 맑은 곳에 뛰어 노는 사슴 한 마리의 평화가 있다. 고요한 산의 적막과 평화가 이 백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자의 본래 모습인 흰 살결, 티 하나가 내려와도 흠이 질 수밖에 없는 깨끗한 모습이 백자의 진가임을 말하고 있다. 얼음같이 차고 맑은 모습 속에 이조의 흙이 그대로 살아있고 이 백자를 만들던 때의 도공의 순박한 마음과 조상들의 생활이 깃들어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도자기 하나에도 흐르던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읽어 내고 그것에 대한 예찬을 하고 있으며 민족정신에 대한, 전통에 대한 향수를 이 시조에 담고 있다.
네 몸은 뼈만 앙상, 타다 남은 쇠가치
휘틀린 등걸마다 선지피 붉은 망울
터질 듯 맺힌 상채기 향내마저 저리어라.
여기는 푸른 달빛, 희부옇던 눈보라도
감히 오지 못할 아득히 외진 골짝
저 안에 울부짖는 소리 朔風만은 아니다.
文明의 살찐 과일, 이미 익어 떨어지고
꾀벗은 푸성귀들 빈손으로 부비는 날
참혹한 難을 겪어낸 못자욱을 남기리니.
차웁고 매운 말씀, 몸소 입고 나와
죽었다 살아나는 너 異蹟의 동굴 앞에
더불어 질긴 그 목숨 새겨두고 보잔다.
-「紅梅幽谷圖」 전문
제목에서 홍매의 그림을 보고 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뼈만 앙상한 쇠가치 같은 줄기에서 선지피인 듯 붉게 망울 앉은 꽃, 터질 듯 맺힌 꽃망울이 ‘상채기’같아 향내마저 저리다. ‘상채기’라는 표현은 그 꽃망울을 맺기까지의 아픔을 상징한다. 푸른 달빛도, 눈보라도 오지 못할 외진 골짝에 울부짖는 소리는 삭풍만은 아닌, 영혼의 깊은 아픔을 울부짖는 소리이다. 참혹한 겨울을 견뎌내며 죽었다 살아나는 질긴 그 목숨, 그것은 못자국 있는 아픔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혹한의 겨울을 참고 견뎠기에 지금 이적異蹟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선지피 터지듯 맺혀있는 아름다운 매화의 꽃망울이다.
매화의 기품에서 느낄 수 있는 차웁고 매운 말씀, 그리고 질긴 목숨, 이러한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우리 민족의 안목과 정서는 우리의 전통미로서 영원히 지켜가야 할 것들이다. 이렇게 옛그림을 아름답게 보고, 우리의 조상이 남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일, 전통미에 가치를 부여하며 그것을 사랑하는 일은 곧 민족애이고 조국애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픔을, 손때 절인 이 寂寞한 너희 아픔을,
잠자다 소스라치다 꿈에서도 뒹굴었다만
외마디 끊어진 신음, 다시 묻어오는 바람을.
풀고 풀어볼수록 가슴 누르는 찍찍한 繃帶밑
선지피 얼룩진 한송이 꾀벗은 葡萄알!
오늘이 오늘만 아닌 저 끝없는 기슭을 보랴.
-「葡萄印靈歌」 전문
붕대 밑으로 배어 나오는 혈흔 같은 아픔을 간직한 ‘철사포도문鐵砂葡萄紋’ 항아리. ‘잠자다 소스라치다 꿈에서도 뒹굴었다'라는 표현 속에는 무생물을 의인화하여 영혼을 불어넣고 있으며, 이들 물형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있는 화자를 만난다. ‘선지피 얼룩진 한송이 꾀벗은 포도알!’이란 표현에서 선지피처럼 배어나는 포도문葡萄紋의 도자기 모습을 알 수 있다. 조상의 손을 거치고 거치면서 손때도 많이 묻었을 것이며, 안으로 인내한 아픔도 컸을 것이다. ‘오늘이 오늘만 아닌 저 끝없는 기슭을 보랴’라고 표현함으로써 지금까지 이어져 왔듯 포도가 그려진 이 도자기의 가치와 삶은 계속될 것임을 화자는 말하고 있다.
본디 끝없다가 또 다른 모양을 금긋던 部分
이렇게 한 結晶으로 돌아온 내 슬픈 비눌이여
깊은 밤 미친 풀무질 속에 녹아나온 혼령이여.
하늘 푸르른 거미줄에 걸려든 辰砂 꽃잎!
다시 어느 無限으로 잘려간 저 구름의 꼬리
무너진 너의 潛跡을 찾아 構造안에 머무느냐.
-「翡翠印靈歌」 전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하여 모든 형체는 공空이라는 불고佛敎의 진리는 사물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게 한다. 본디 모양을 갖추고 있지 않다가 하나의 결정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흙이 하나의 형상으로 굳어진 것, 즉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을 상징한다. 풀무질 속에서 녹아나는 영혼, 뜨거운 불 속에 녹아 하나의 결정으로 탄생한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푸르른 비취 색상의 도자이다. 푸른 하늘이 거미줄인 양 걸려든 진사 꽃잎, 무한의 공간 속으로 잘려나간 구름의 꼬리, 이러한 모든 것을 하나의 형태 안에 갖춘 도자기는 곧 하나의 작은 우주이다. 김상옥은 무생물에 하나의 영혼을 부여하고 그 영혼의 슬픔까지 파고든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그의 노력은 하나의 무생물을 의인화하여 하나의 뜨거운 영혼을 지닌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사물 안에 감춰진 아름다움, 슬픔, 인고의 세월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내게로 와 하나의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처럼 무심하게 보아 넘기지 않고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보았을 때에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의 가치와 생명이 비로소 살아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김상옥 시인은 무생물도 의인화하여 살아있듯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도자기라든가, 돌이라든가, 흙이라든가하는 무생물에 영혼을 불어넣고 아름다움의 깊이와 슬픔의 깊이까지 파고든다. 그리고 그러한 것의 가치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안다. 눈길 한 번 닿으면, 손길 한 번 닿으면 그 사물이 비로소 생명을 얻고 아름다움을 얻는다. 우리의 전통미의 아름다움, 전통문화유산의 아름다움, 그것은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볼수록 가치를 더해 가는 것이다. 우아한 아름다움을 노래한「부賦」도 영혼의 아픔까지, 사물의 본질의 깊이까지를 노래한 「영가靈歌」도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다. 「백자白磁」의 아름다움, 「철사포도문鐵砂葡萄紋」항아리의 아름다움과 아픔, 그리고 「홍매유곡도紅梅幽谷圖」의 인내와 아픔과 아름다움도 결국 우리 민족이 만들어 낸 하나의 아름다움이다. 그러한 것에 담긴 민족의 정서를 읽어 내고 그것에 대한 예찬을 하고 있으며 민족정신에 대한, 전통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 우리 민족의 안목과 정서는 우리의 전통미로서 영원히 지켜가야 할 것들이다. 전통작품에 대한 예찬을 통해 우리의 조상이 남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일, 전통미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이요 나아가 조국애이고, 민족애라고 볼 수 있다.
3. 민족정신民族情緖의 추구
김상옥은 그의 초기 시조작품에서 문화유산과 역사적 유물을 소재로 택함으로써 전통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우리의 민족 정서를 신라시대의 정신이 반영된 유물, 유적, 인물 등에서 찾기도 한다. 그리하여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 「석굴암」, 「십일면관음」, 「무열왕릉」, 「재매정」 등에 대한 찬양과 회고를 드러내기도 하고, 또 신라정신을 고려시대로 이어오면서 고려청자, 정몽주의 충절 등을 찬양하고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있으며, 이조의 백자, 연적, 또 여러 문양의 도자기를 찬양하고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논개 사당이 있는 촉석루 등을 노래함으로써 민족의 얼을 찬양하고 민족의 얼을 찾고자 했다. 그는 그러한 민족정신을 추구하고 영원히 지켜가고자 했는데, 그러한 정신이 후기의 작품집에 오면서 단순화된 단시조를 통하여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압축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雨氣를
머금은 달무리
市井은 까마득하다
맵시든
어떤 品位든
아예 가까이 오지 말라
이 寂寞
범할 수 없어
꽃도 차마 못 꽂는다.
-「白磁」 전문
「백자白磁」에 오면 앞의 「백자부白磁賦」에서 보다 감정이 많이 절제되고 단순화되어 나타난다. 김상옥은 후기의 작품집에 올수록 단시조를 쓰는 경향이 나타나며, 이 「백자」는 단시조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는 단순화된 작품이다. 김상옥은 『詩와 陶磁』에서
단조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단조로운 것이지만, 단순하다는 것은 모든 군더더기를, 아니 모든 설명적인 요소를 다 제거한 다음에 얻어낼 수 있는 ‘생략의 미’라고 할 것입니다.…꾸밈을 거세하고, … 단순에의 향수, 단순에의 귀의 … 백색의 그 단순성과 그 신비성을 더욱 효과 있게, 더욱 철저하게 받은 조형이 곧 우리의 이조 백자입니다. …백자의 백색으로 하여 그것이 더욱 질박하고, 더욱 경건하고, 더욱 아취있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라고 하여 단순미에 대한 정의와 함께 우리 백자의 단순미를 찬양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영원한 민족의 정서는 무엇일까. 위 시조를 통해서 보면 그것은 우리 민족이 흙으로도 눈부시게 뽀오얀 백자를 만들 줄 알던 미적 감각과 능력이며, 그 높은 품위와 자존심이다. 백자가 지니고 있는 우아함과 고품격은 시정과는 멀며 ‘맵시든/ 어떤 品位든/ 아예 가까이 오지 말라//’란 백자의 독백 같고, 명령 같은 표현을 통해 어떠한 맵시나 품위로도 따라올 수 없으니 아예 가까이 오지 말라는 높은 자존심을 보인다. 그 높은 자존심과 소중함 때문에 ‘꽃도 차마 꽂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이 아름다움의 극치로 보는 꽃, 그 꽃조차 꼽을 수 없다는 것은, ‘꽃보다 높은 아름다움을 백자가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백자白磁’처럼 순결하고 맑고 높은 자존심이 우리민족의 정서이다. 화자는 ‘백자白磁’를 보면서 그러한 우리의 전통 정서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우리의 전통미 속에 살아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존심을 찾아 영원히 이어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굽 높은
祭器.
神前에
제물을 받들어
올리는-
굽 높은
祭器.
詩도 받들면
文字에
매이지 않는다.
굽 높은
祭器!
-「祭器」 전문
우리의 전통미를 살리고자 전통미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그러한 정신을 살리고자 노력했던 시인인데도 형식적 시험을 시도했던 때문인지 그의 시조에는 파격의 작품들, 시조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위의 작품도 형식면에서 많은 파격을 보이는 시조이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초장이라 보아야 하고, 어디서 어디까지를 중장이라고 보며, 어디서 어디까지를 종장이라 보아야 할 것인가고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다.
?三行詩 六十五篇?나 ?향기남은 가을?에서 ‘장형長形’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사설시조로 보기에도 애매한 작품을 써왔던 그인 만큼, 이 작품을 시조라고 보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시조에의 새로운 형식의 모색과 함께 시험한 이 작품은 그의?墨을 갈다가?라는 시집에 처음으로 게재된 작품이다. 이우재는 이것을 시조집이라 보고 있지만, 여기에는 시조정형에 맞는 작품은 몇 작품밖에 없다. 때문에 이 책은 시조집이라 보기가 어렵다. 김상옥 시조의 형식적인 면은 따로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이 작품은 시조집 ?향기남은 가을?에 게재되었으며, 시조집?느티나무의 말?에는 서시로 게재되어 이 작품을 시조작품으로 보고자 한다. 내용은 시도 받들면 문자에 매이지 않는 ‘굽 높은 제기’라는 것이니, 시의 내용으로 본다면 시조냐·아니냐를 따지고 있는 형식론조차 무의미하다. 시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 있기에 꼭 글자로 표기해야만 시가 되는 건 아니다. 시의 정신은 어디서든 빛날 수 있다. 시조냐·아니냐의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어디서나 빛날 수 있는 정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시정신임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너는 이미 생각하는 노릇을 버리고 말았고나. 밤보다 깊은 어둠을 안으로 닫아걸고, 그 속에 아직 이름 없는 形象들이 잠자고 있다.
이끼 푸른 門 앞에 와서 누가 너를 부르겠느냐. 連坐에 걸터앉은 菩薩을 부르겠느냐. 얼마를 앉아 머뭇거리던 정 소리가 이미 살을 뜯고 네 속에 스며들었다.
빛도 소리도 배일 수 없는 너의 가슴속, 거기 흩어지지 않은 서라벌, 깨어지지 않은 아테네는 어디 있느냐? 처음이자 마지막인 審判의 날, 저 무서운 발자욱은 가까워 온다.
열어라, 門을 열어라. 여기 언제부터인가 오직 한 번 있기만 있고, 목숨도 죽음도 없는 단단하고 차디찬 너 돌이여!
-「돌 2」 전문
?향기남은 가을?에는 ‘長形’의 형식으로 「돌1」,「돌2」가 실려 있고, ?느티나무의 말?에는 제목이 「돌」인 단시조 작품이 4편이나 실려 있다. 모두 돌의 원형을 추구하고, 돌에 대해 찬양한 작품이다. 하나의 돌은 아름다운 조각품의 재료가 된다. 석굴암 「대불大佛」을 만든 것도 돌이요, 그 주변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을 만든 것도 돌이요, 「다보탑多寶塔」을 만든 것도 돌이다. 화자는 조각이 만들어진 후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의 재료인 하나의 돌에서도 상상력을 동원하여 무한한 예술품을 보고 있다. 때문에 화자는 그 돌의 귀중함을 인식한다. 알맞은 재료와 석공의 뛰어난 안목과 탁월한 솜씨가 있어야만 작품은 만들어진다.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석수의 장인정신이며, 하나의 돌에 이렇게 생명과 의미를 불어넣고 있는 시인자신도 석수장이에 못지않은 장인정신을 가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 안에 수많은 형상形象을 간직하고 있는 돌, 석수장이의 정에 의하여 다듬어져 하나의 완성품이 되기 위하여 수없이 흩어지고 깨어져야 하는 돌을 노래한 작품이다. 아직 이름 없는 형상들이 잠자고 있는 ‘목숨도 죽음도 없는 단단하고 차디찬 너 돌이여!’라고 하여 무생물인 돌의 영원성을 말하고 있다. 그 단단하고 차기만한 무생물인 돌에 피를 돌게 하여 생명을 지니고, 영혼을 갖게 하는 것은 그 돌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애정이다. 이미 우리의 선조들은 하나의 돌을 조각하여 생명을 불어넣어 눈부신 문화재를 만들었고, 그러한 무생물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질 줄 알았다.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 민족의 전통미에 대한 향수이다. ‘열어라, 문을 열어라’라는 표현 속에는 돌의 잠재성, 돌의 변신의 조화가 무궁무진할 수 있음을 화자는 말하고 있다.
한자리 내쳐앉아 생각는가 조으는가
億劫도 一瞬으로 향기처럼 썩지 않는 말씀
돌조각 무릎을 덮은 그 無名 石手의 손에.
얼마를 머뭇거리다 얼룩 푸른 이끼를 걷고
속살 부딛는 光彩로 눈웃음 새겨낼 때
이별도 再會도 없는, 끝내 하나의 몸이여!
-「現身」 전문
위 작품도 돌로 만든 조각이 소재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무명석수無名石手의 손에 의해 하나의 몸으로 생겨난 목숨은 바로 돌부처이다. ‘억겁도 일순으로 향기처럼 썩지 않는 말씀’이라 하여 억겁의 시간도 일순으로 느끼며 돌이 주는 무언의 말씀을 듣고 있다. 돌을 깎아 부처를 만들고 그 부처에게서 영원히 썩지 않는 향기 같은 진리를 듣고 있다. 돌조각의 영원성을 말하고 있다. 푸른 이끼를 걷고 속살 부딛는 광채로 태어나는 몸, 그것은 돌이 간직했던 본질과 함께 마침내 이별도, 재회도 없는 하나의 몸이 된다. 돌은 석수의 손에 의해 생명을 얻고 시인의 눈에 의해 피가 돈다. 이 작품 역시 돌이 하나의 조각으로 태어났음을, 그리고 그 본질인 돌의 영원한 생명성을 말하고 있다.
빛보라, 서늘은 빛보라, 이것은 무엇인가? 희다 못해 오히려 으슴푸른 별빛…. 塔은 白雲橋 층계를 내려서서 짐짓 걸어본다. 선연히 못물속에 들어선다. 머리엔 屋蓋를 받쳐들고, 찰삭이는 물살에 발목을 적신다.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저건 또 무엇인가? 빛을 받아, 별빛을 받아, 빛무리 별무리 희맑은 둘레…. 물이 불은 影池는 쉴새없이 잔잔한 波長으로 번져난다. 어느새 그 깊은 둘레속에 南山도 잠기고, 구름같이 즐비한 서라벌 長安! 그 너매 또 山과 들로 농울쳐 간다.
阿斯達, 阿斯達, 이제야 나는 안다. 밤마다 흘러 넘는 빛보라 있어, 千萬斤 무게의 우람한 돌도, 미릿내에 밀리는 돛단배처럼 가벼이 다녀가는 그대 그림자! 그러기 출렁이는 이 가슴 자맥질하여, 내 언제나 가지록 짙푸름을 숨쉬고 산다.
-「雅歌 其二 - 阿斯女의 노래」 전문
「아가雅歌 기일其一」이 아사녀가 부르는 그리움의 노래라면, 「아가雅歌 기이其二」는 아사녀의 아사달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충만을 노래했다고 볼 수 있다. 초장에서는 석가탑, 즉 무영탑이 발목을 적시며 영지로 걸어내려온다고 하여 으슴푸른 별빛 속에 탑의 그림자가 못에 비치는 모습을 의인화하여 상징하고 있다. 중장에서는 별빛을 받은 영지는 쉴 새 없이 물결의 파장으로 반짝인다. 석가탑이 잠기고, 어느새 남산도 잠기고, 서라벌 장안으로 그 너머로 농울 쳐 영지의 심상은 점점 확대되어 나타난다. 종장에서 비로소 아사녀는 밤마다 흘러 넘는 ‘빛보라’속에 그대 그림자가 있다는 걸, 아사달의 사랑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빛보라’의 상징은 ‘사랑의 충만감’이다. 그러한 사랑의 충만감을 ‘내 언제나 가지록 짙푸름을 숨쉬고 산다’고 하여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의 영원성을 말하고 있다. ‘가지록’이란 ‘가득차도록’, ‘충만하도록’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김상옥 작품에서 전통정서․민족정서를 추구하는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우리 민족이 간직한 전통정서․민족정서를 추구하는 일은 상실한 정신적 고향을 찾고, 정신적 이상향을 지향하는 일이다. 예부터 백색을 사랑하던 우리 민족은 그 단순하면서도 품격 높은 「백자白磁」에서 우리의 민족성과 전통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깨끗하고 단순하고 고고한 우리의 백자를 사랑할 줄 알았던 우리의 민족정서를 추구하고 지켜가고자 하는 것이다. 「굽 높은 제기祭器」에서 보여주는 문자에 얽매이지 않는 경지의 시를 쓸 수 있는 높은 정신은 우리 민족이 지녀야할, 영원히 추구해야 할 민족정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돌」과 「현신現身」에서는 영원한 돌의 삶을 말하고 있다. 하나의 무생물인 돌에 영혼을 불어넣어 조각으로 작품화할 줄 알았던 선조들의 삶은 무생물도 애정을 가지고 대하면 영혼을 지닌 따스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의 무생물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마음도 우리가 계속 지켜 가야할 민족정서이다. 또한 「아가雅歌 기이其二」에서는 아사녀의 아사달에 대한 원망을 넘은 이해와 사랑의 깊음을 말하고 있다. 아름답고 지고한 사랑의 감정도 우리 민족이 지속시켜 가야할 전통적 민족정서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정신을 찾아 그 맥을 이어가는 일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정신적 고향을 찾는 일이라고 김상옥은 시조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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