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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제2회 모상철문학상 당선작 및 심사평(20201. 사과나무 엿보기/배종도)

by 시조시인 김민정 2021. 1. 24.

사과나무 엿보기

 

배종도

 

1. , 감탄사

물음표로 내민 고개 연분홍 송이마다

명지바람 쓰다듬어 이마 살짝 적셔놓는

이슬 밴 감탄사들이 자란자란 피어난다.

 

2. 여름, 사과 가장이

열매 많아 찢긴 가지 그 아픔 알고부터

성글게 맺은 씨알 장맛비 맞서나 보고

태풍이 날을 세워도 몸짓 저리 의연하다.

 

3. 가을, 소슬바람

황금 햇빛 으깨 빚은 탐스러운 붉은 결실

먼 길 온 소슬바람 품에 안고 감싼 자리

그곳에 허공이 잠시 등 기대고 앉아있다.

 

4. 겨울, 소실점

곤 때 절어 떠나는 잎 소실점 향해 가고

팔매질 눈송이들 어깨를 두드릴 때

, 보라!

옷 벗은 몸통

울근불근 저 근육을.

 

 

<제2회 모상철문학상 심사평>

 

신선함과 깊이를 아우른 작품

 

                                                                                                  김민정 (한국문협 시조분과회장, 문학박사)

 

   제2회 모상철문학상에는 총 28명 105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그렇게 많이 응모한 편은 아니지만, 신선한 작품들이 있어 좋았다. 최종까지 올라온 작품은 배종도시인의 「사과나무 엿보기」, 「이 빠진 벼룻돌」, 최영근시인의 「북엇국」, 이태순시인의 「야맹증」등이었다.

   배종도시인의 「이 빠진 벼룻돌」은 흥선대원군에 대한 역사적 소재로 깊이가 있었고, 최영근시인의 「북엇국」은 좋은 짜임을 갖고 있었다. 이태순시인의 「야맹증」은 어머니의 사랑을 주제로 한 점이 좋았다. 배종도시인의 「사과나무 엿보기」는 제목부터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사과나무의 사계를 관찰하는 내용의 표현법도 좋았고, 계절마다 제목을 붙인 점도 신선하여 심사위원(김흥열시인, 유준호시인, 김민정시인) 만장일치로 당선작에 뽑혔다.

 

   이 작품은 제목을 「사과나무」로 했다면 평범했을 것이다. 제목을 「사과나무 엿보기」로 함으로써 제목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제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호기심을 주어 글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시인 개인의 힘이다. 시는 언어예술이다. 시인이 언어를 가지고 예술을 만들어 내는 힘은 바로 언어, 즉 시어를 어떻게 구사하느냐이다.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의 멋진 완성품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곧 시인의 능력이다. 어휘력이 풍부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시를 쓰는데 당연히 유리하다. 그러나 어휘력이 풍부하다고 다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어휘력이 풍부한 언어학자가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 어휘력이 풍부하다면 그 많은 언어들 중에 어떤 언어를 써야 자기가 나타내고자 하는 뜻에 가장 적확한가를 알고 그 단어를 골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사과나무 엿보기」 작품의 뛰어난 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에 하나씩 소제목을 붙인 것이다.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수로 되어 있는 연시조이면서 한 수 한 수가 완결된 단시조이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어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노래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40수 연시조가 생각나기도 했다.

   첫째 수의 제목은 「봄, 감탄사」로 꽃 자체를 ‘이슬 밴 감탄사’로 은유하고 있어 표현법이 뛰어나며 사과꽃이 핀 아름다움이다. 둘째 수는 「여름, 사과 가장이」는 열매가 많아 가지가 찢어진 아픔을 겪으며 깨달아 성글게 열매 맺는 의연한 모습으로의 성장이다. 셋째 수는 「가을, 소슬바람」으로 소슬바람을 품에 안고 감싸는 포용심과 함께 ‘그곳에 허공이 잠시 등 기대고 앉아있다’며 열매 맺은 결실을 노래한다. 넷째 수에서는 과일과 나뭇잎이 떠난 소실점 앞에서도 ‘자, 보라!/ 옷 벗은 몸통/ 울근불근 저 근육을.’이라며 겨울 사과나무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기-승-전-결의 구도>로도 이 작품은 훌륭하다. 내용과 형식이 알차게 배치되어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기쁨을 준다.

 

   시조는 정형시이므로 형식적인 율격이 잘 맞아 부자연스러운 곳이 없어야 한다. 3/4/3/4, 3/4/3/4, 3/5/4/3의 시조율격에 맞아야 한다. 특히 조심해야할 곳은 종장이다. 3/5/4/3 중에 첫 음절 3글자는 꼭 지켜야 되고, 둘째 음절은 5~7글자라야 한다. 이곳을 초보자들은 4글자로 쓰는 경우가 가끔 있다. 4글자로 쓰면 시조의 묘미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이곳도 5~7글자로 꼭 지켜야 하는 부분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율격이 맞지 않거나 어색하면 시조로서는 실격이다.

   내용에는 작가의 세계관, 인생관, 자아관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야 한다. 사랑을 노래하든, 아름다움을 노래하든, 생의 고달픔을 노래하든 하나의 사물을 보는 시인의 철학적 안목이 깊이 내재해 있어야 한다.

 

  배종도시인의 「사과나무 엿보기」는 형식도 좋고, 내용의 표현법도 뛰어나며, 신선함과 깊이를 아우른 작품이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 더욱 아름다운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문운도 더욱 창창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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