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하반기 시조 총평>
독자와 공감하는 시조
김 민 정(한국문협 시조분과 회장)
2020년 하반기 시조평을 하면서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본다. ‘시란 무엇인가? 시조란 무엇인가?’ M. H. 에이브럼즈은 모방론, 효용론, 표현론, 존재론으로 시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내용면에서 시조도 해당된다. 시조는 그 내용에다 정형적인 형식이 곁들여 있다. 모방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명명한 후, ‘시는 사물, 우주, 자연의 실재, 삶의 원리, 이념, 진리를 모방한다’고 하는 시의 정의이다. 효용론은 ‘시는 즐겁다, 유익하다, 즐겁고도 유익하다, 가르치고 즐거움을 준다’ 등으로 표현된다. 표현론은 ‘우주, 자연, 삶의 현실 등을 구현하고 상징한다’고 보았으며, 19세기 낭만파 시인과 비평가들이 해당된다. 객관론은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와 같은 것이며 현대의 시인, 비평가들이 많이 쓴다. 우리가 시조 작품을 쓸 때 인식하든 않든 이 중 어딘가에 속할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속하든 독자와의 공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보랏빛 종소리가/ 이명인 줄 알았는데/ 오늘 내 약봉지 속/ 약재였네 그 도라지/
꽃 지워/ 더 향기로운/ 전설이여 나의 동무 – 전영순, 「기침과 도라지」 둘째 수(5월호)
종모양의 예쁜 도라지꽃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명인 줄 알았는데 기침이 심한 내 기침소리를 듣고 내 약봉지 속에 와서 약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쁜 보라색 꽃이 지고 나서 더 향기로워진 너를 만난다는 것이고, 내 기침을 낫게 해 주는 전설이고 동무라는 것이다. 생활과 밀착된 소재로 공감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맥놀이 높이 울려라, 노여운 눈 짓부릅떠/ 오독을 징치(懲治)하는 노도의 용울음으로/ 한달음 강산을 누벼 막힌 벽을 난타하라! - 송태준, 「돌종*, 다시 듣는」, 넷째 수(5월호)
이 작품은 신라 서라벌 모량리의 효자 손순 설화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효에 대한 감동으로 하늘이 준 선물인 돌종의 울림, 위 작품에는 그 종소리가 ‘오독을 징치하는 노도의 용울음’이 되어 막힌 벽을 두드리기를 화자는 바라고 있다. 그 벽은 남과 북의 현실, 정치인과 서민의 거리,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일 수도 있겠다.
결이 획을 만나고 끝내 칼이 낸 큰 길/ 그 길에 곱던 앞섶 툇마루 잔기침까지/ 문자향 화창한 오늘 사람의 길을 읽다 – 강인순, 「목판에 깃들다」 둘째 수(6월호)
첫째 수는 ‘오롯한 말씀의 뼈’를 새긴 목판을 보며 나무의 무게를 ‘천금으로 가늠한 이’, 즉 글자를 새긴 이를 찬양한다. 둘째 수에서는 나무의 결을 따라 칼이 낸 큰 길인 문자에서 툇마루 잔기침과 문자향을 느끼며, 사람의 길까지 읽어내고 있다. ‘사람의 길’이란 글쓴이의 길, 또 화자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선비정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죽은 강이 살아나서 물고기가 돌아오고/ 미세먼지 사라지고 푸른 하늘 되살리니/ 지구촌 멸망의 시간 가까스로 멈춰섰네 – 고준성, 「코로나19」 넷째 수(6월호)
코로나19 덕분에 ‘죽은 강이 살아나서 물고기가 돌아오’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미세먼지가 줄어들어 푸른 하늘이 살아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신은 지구촌의 멸망을 막기 위해 코로나19를 선택했을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사망자도 많고, 경제손실도 크니 백신이 빨리 개발되길 바란다.
어르신네 발이 되어 꿈틀꿈틀 오르다가/ 부산항 내려다보며 아이처럼 꿈을 꾸는/ 수정동 오래된 골목 마을버스 타 보셨나요. – 손증호, 「수정동 마을버스」 셋째 수(7월호)
이 작품은 대화체로, 어렵지 않으면서 정감이 간다. 또 지명을 씀으로써 친근감을 나타내며, 애향심도 발휘한다. 시의 기법으로 ‘낯설게 하기’기법이 있다. 익숙함을 배제함으로써 시를 돋보이게 하는 수업이다. 이 시조를 보면서 구태여 ‘낯설게 하기’기법이 사용하지 않아도 신선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편안히 읽히면서 친근감과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 좋은 작품이다.
고단한 밤 지새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눈에서 솟아나고 가슴으로 떨어지는/ 푸른 날 영혼의 지문 하늘빛 여는 것을 – 이명희, 「긴 밤」 첫째 수(7월호)
우리가 밤을 지새우는 경우, 하나는 할 일이 많을 때고, 하나는 고민이나 설레임 때문이 많을 때다. 이 작품의 화자는 할 일이 많아 밤을 지새운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완성하거나, 숙제를 다 끝내고 맞는 아침은 얼마나 상쾌한가. 그것을 ‘푸른 날 영혼의 지문 하늘빛 여는 것’으로 표현하여 공감을 자아낸다.
영일만 푸른 물에/ 몸을 던진 김 부장,// 불다 만 호각 하나/ 모래밭에 묻어둔 채// 그 소리 마냥 그리워/ 우향우로 뒤척인다 – 박종구, 「우향우」전문(8월호)
멀쩡한/ 저 꽃들을/ 구기자고 모의한다// 구긴다고/ 구겨질까/ 히히히 웃음 난다// 그래도/ 구기자 구기자/ 모든 이들 다 그런다 - 김종호, 「구기자꽃」전문(8월호)
「우향우」는 포항제철소를 지을 때 박태준회장의 ‘실패하면 현장사무소에서 나가 바로 우향우해서 다 같이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 시조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고, 산업현장의 그러한 각오와 희생과 안타까움이 있어 현재와 같은 포스코가 탄생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구기자꽃」 시조는 꽃 이름을 가지고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일종의 언어유희라고도 볼 수 있다. 언어유희는 잘 쓰면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말장난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평소 단시조를 많이 쓰는 김종호 시인은 사물의 이름이나 특징을 잘 잡아내는 작품을 많이 쓰고 있다.
서울로 시집간다, 몇 날 며칠 선잠 깨고 해우 발 남실대는 바다 닮은 그 딸년이
이제는 물빛만 봐도 그렁그렁 눈물 고인다. - 김범렬, 「노화도 시편 1」 넷째 수(9월호)
「노화도 시편. 1」은 시집가는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잘 나타내었다. 서울로 시집간다고 딸은 설레어 몇 날 며칠 선잠을 깨지만 대조적으로 멀리 육지로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는 딸과 헤어질 생각으로 마음이 아픈 것이다. 가까운 곳으로 시집을 가도 서운할 텐데, 섬에서 먼 서울로 간다니 더욱 그럴 것이다.
닁큼 받아 쓰지만 개평 뜯은 기분이다/ 곰팔수록 깊어지는 강 상앗대를 잡지만/ 뒷감당 어이하려나 정신줄 곤두선다 – 오영빈, 「재난지원금」 셋째 수(10월호)
「재난지원금」은코로나19 때문에 힘든 국민들에게 정부가 인심 쓰듯 지급하여 지친 국민을 위로했지만 다시 국민들에게 세금으로 징수할, 국민의 부채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을 공돈처럼 ‘닁큼 받아 쓰지만 ~ 뒷감당 어이 하려나 정신줄 곤두선다’는 표현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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