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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월간문학 제157회 시조신인상 심사평, 2021. 3월호>

by 시조시인 김민정 2021. 1. 23.

1. 향불 마신 관봉 앞에서

 

김선길

 

돌산길 금강계단 비움길이 틀림없지

사바끈 푸는 발길 계절 없이 이어져도

관봉 쓴 법열의 꽃잎 중생 죄업 푸신다

 

흰 구름 높이 쓰고 좌정든지 한 천 년

눈물 든 염불마다 변주 없는 축원곡에

중생들 비손비는 소리 큰 귀 늘여 들으신다

 

바람도 날개 접고 합장하는 도량에서

마지막 염원 품고 백팔염주 돌려보니

오래된 업연의 꼬리 그 끝부터 사라진다

 

2. 레퀴엠1)

 

이영숙

 

굳어진 숫구멍2)에 통증이 차오른다

마루엽 관통한 음표, 나비뼈들 들쑤신다

지논의 정수리에선

피가 마르지 않는다

 

미수에 그친 사랑, 속살이 휘우둠하다

통증의 틈 사이로 은하수, 달 밤의 혹성

당신의 구겨진 서정이

느리게 걷고 있다

 

아침이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3)

말라버린 수도사의 해면체가 걷는다

울울한 생의 꼭대기

비의 무게 무겁다

 

굽든 등 곧추 세워 논감은 단조의 생

뼈마디를 걷다가 상처가 덧나 버린

절명한 라크리모사4)

국화 품은 봄 소스라친다

 

 

1) Requiem이며,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진혼곡, 추도 미사, 만가

2) 갓난아이의 정수리가 채 굳지 않아서 숨쉴 적마다 발딱발딱 뛰는 곳

3) 백속의 '고독' 시에서 차용

4) Lacrimosa는 라틴어로 울음이란 뜻이 있으며, 모차르트 최후의 작품 레퀴엠에도

쓰인 것으로 '눈물과 한탄의 날'이라는 뜻도 있음.

 

 

 

<월간문학 시조신인상 심사평>

 

겸손한 삶의 자세와 신선한 안목의 시조

 

김민정(한국문협 시조분과 회장)

 

시조와 자유시가 다른 점은 형식면이다. 형식을 지켜야 시조라고 할 수 있으며, 형식에서 어긋나면 시조의 자격에서 탈락한다. 그래서 시조를 쓸 때에는 형식부터 잘 맞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내용이 허술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형식도 갖추고 내용도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조를 쓰면 언어를 압축하고 함축하는 힘이 생긴다. 때문에 짧은 글 속에 긴 의미를 담아내는데 시조가 제격이다.

김선길의 「향불 마신 관봉 앞에서」 작품은 모두가 복을 비는 관봉 앞에서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주제가 신선해서 좋거니와 시조의 형식에도 어긋남이 없다. 생활주변의 소재로 성실하고 겸손한 삶의 자세가 묻어나는 주제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영숙의 「레퀴엠」시조는 조금 우울해 뵈지만 요즘의 세태를 반영하는 듯한 신선함이 있어 좋았다. 다른 작품들도 신선감이 뛰어나서 눈길을 끌었으며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신선한 작품으로 당당하게 신인상을 받는 두 분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 좋은 시조작품으로 문운이 더욱 빛나시길 기대한다.

 

2021. 1. 18.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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