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의 시와 시조 세계
김민정 (성균관대 문학박사, 한국문협 시조분과회장)
1. 김상옥의 생애와 업적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은 시조시인, 시인, 서예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20년 5월 3일 경남 통영시 항남동 64번지에서 태어나 2004년 10월 31일 향년 85세로 별세하셨고, 올해 탄생 100주년이다. 갓일을 하시던 아버지 箕湖 金德洪과 어머니 驪陽 陳씨 사이에서 6녀1남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7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1927년 통영보통공립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교지 《艅艎의 綠》에 동시 「꿈」을 실었다. 1934년 금융조합연합회 신문 공모전에 동시 「제비」가 당선되었으며, 1930∼35년 사이에 최초 시조동인지 『참새』 동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문학청년의 시절을 보냈다. 1936년 조연현과 함께 활동한 동인지 『芽』에 「무궁화」를 발표하여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고 두만강 근처 함북 웅기로 유랑을 떠났다. 1938년 함북 청진서점에서 일하면서 김용호, 함윤수 등과 『맥(貊)』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뒤에 임화, 서정주, 박남수, 윤곤강 등이 합류했다. 1939년 20세 때 『文章』(10월)지에 이병기의 추천으로 시조「鳳仙花」가 실렸고, 같은 해 11월 15일 《동아일보》제2회 시조공모에 「낙엽」이 당선되었다. 1940년 통영으로 귀향하여 <남원서점>을 경영하였는데, 독립운동의 아픔과 애절함을 노래한 浪山의 한시를 써 붙였다가 통영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우리말의 사용이 금지된 식민치하에서 한글 詩作을 계속하느라 네 번의 옥고를 치렀다. 1945년 2월 일경의 검거를 피해 윤이상과 함께 상경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이호연, 오세창 등을 만나기도 했다. 해방되던 해에는 김춘수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여 예술운동을 했으며, 11월 삼천포문화동지회를 창립하여 한글운동, 교가 보급운동을 이끌었다.
해방이 되어 가람 이병기가 군정청의 교과서 편수관이 되자 「봉선화」를 국어교과서에 싣게 된다. 그 해 가을에 부산공설운동장에서 ‘해방기념제전’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글짓기대회가 열렸는데, 심사위원으로 내려갔던 젊은 그는 심사위원을 사퇴하고 직접 선수로 시부에 출전해서 매일 다른 시제가 걸리는 3일 동안 계속 장원을 하였다. 1946년부터 삼천포중, 통영중, 통영여고, 마산고, 경남여고 등에서 20년 가까이 교편을 잡았으며, 삼천포중 박재삼, 마산고 이제하, 경남여고 허윤정 등을 길러냈다. 교사, 인쇄소 직공, 서점 경영, 도장포 경영 등의 직업을 거친 김상옥은 1962년 서울로 이주하여 표구사를 겸한 골동품가게 <亞字房>을 경영하였다. 그림도 독학하여 1972년에는 쿄토의 융채당화랑에 초청을 받아 전시하기도 했다.
1947년 첫 시조집 『草笛』(수향서헌)을 출간하면서 편집, 장정, 인쇄, 제본 등 전과정을 혼자서 했다. 1949년 『故園의 曲』(성문사), 『異端의 詩』(성문사), 1952년 동시집 『석류꽃』(현대사), 1953년 시집 『衣裳』(현대사), 1956년 시집 『木石의 노래』(청우출판사), 1958년 동시집 『꽃 속에 묻힌 집』(청우출판사)을 출간했다. 1973년 『三行詩 六十五篇』(아자방), 1975년 산문집 『시와 도자』(아자방), 1980년 회갑기념시집 『묵을 갈다가』(창작과비평사)를 출간했다. 1983년 이호우와 함께 『한국현대문학대계』22를 저술했으며 1995년 동인지 『맥』재창간, 1998년 시집 『느티나무의 말』(상서각), 2001년 ?눈길 한 번 닿으면?(01)을 출간했다. 2005년 10월 이어령 외 35인이 쓴 『그 뜨겁고 아픈 경치』(고요아침), 민영이 엮은 『김상옥 시전집』(창비)이 출간되었다.
2. 김상옥 작품에 대한 평가
김상옥의 시와 시조에 대한 평을 간단히 살펴보자. 첫째는 시적 감수성을 중심으로 한 논의이다. 조연현은 동심에 가깝도록 소박하고 섬세한 감성이라고 평가하고, 임선묵 역시 김상옥 시의 개성을 시적 감수성에서 찾고 있다. 또 유성규는 「艸丁 金相沃의 詩世界」란 논문에서 “그의 문학사적 위상을 노산의 관념적 특성과 가람의 사실적인 청신한 감각을 취합하여 새로운 현대시조의 지표를 마련했다.”고 했으며, 이근배는 “초정 김상옥은 시조사에 한 획을 그어 놓은 시인이며 그는 가람․노산․조운의 시조에서 한 걸음 뛰어 내딛고 있다.”고 평가했다.
둘째는 김상옥 시조의 언어미학 및 감수성, 전통성에 대한 평가이다. 김동리는 김상옥의 시조집 ?草笛?을 평하여, “형식은 비록 시조에서 빌렸으되 시조의 낡은 틀에 구애됨이 없고, 이름은 비록 「풀피리」라 붙였으되 풀피리처럼 가냘프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순박하고 청아하고 신묘한 운율로 빚어진 율격미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유성규는 ‘김상옥의 「백자부」는 단순한 백자의 외양을 읊은 것이 아니라 백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의 정서〮 낭만〮 예술〮 문화〮 철학 등 한국의 상징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형준은 「김상옥 시조의 조형물 형상화 방법」에서 「백자부」를 백자의 의연함과 변치않는 아름다움을 ‘진밀(縝密, close-woven and dense 또는 avoid rigicidity)’의 수법으로 노래했다고 보았다. 김민정은 『현대시조의 고향성』에서 김상옥의 고향의식은 토속적 정서공간으로의 고향뿐 아니라 민족정신의 뿌리공간으로 존재함을 인식하고 정신적 뿌리, 즉 민족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또한 그것은 신라정신의 지향과 전통미의 재발견을 통한 민족정신의 추구로 보고 있다.
셋째는 그의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의 변모과정과 시조사적 의의이다. 정혜원은 김상옥의 시조가 초기의 ?草笛?에서 ?三行詩 六十五篇?에 이르는 동안 변모의 과정을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白磁賦」나 「靑磁賦」같은 이른 시기의 작품들에선 대상을 하나의 정물로서 바라보며 외적인 형상미를 추구하는데 골몰했다면, 그 후의 작품들에선 외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은 사라지고 그들 물형들이 간직해 온 인고의 깊이, 혹은 그 영혼의 위대함에 몰입해 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 고시조나 현대시조가 ‘한 눈에 읽히는 시’, ‘쉬운 시’였던데 반해 시조의 한계성을 한 단계 뛰어넘어 ‘머리로 읽는 시’, ‘사유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시조’를 써 나감으로써 현대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하고 있다. 오승희는 그의 ?現代時調의 空間硏究?에서 김상옥의 작품에 나타나는 공간을 분석하여 인사적 현실공간, 관조적 자연공간, 역사와 종교의 상징공간으로 분류한 바 있다. 최현주는 「인고와 도로 이룬 육탈의 미학 - 김상옥론」에서 고통에 대한 끊임없는 인내와 자기 다짐의 연속 속에서 끝내는 참음과 버림, 육탈의 미덕을 발견하는 그의 삶의 궤적, 즉 ‘인고와 도야로 이룬 육탈의 미학’으로 규정하며 자유시를 중심으로 논의한 바 있다. 이상옥은 「유토피아를 궁구한 초정 김상옥의 시 세계」란 논문에서 『김상옥의 시전집』을 중심으로 김상옥의 시조와 시를 구분 없이 연구하며 초정은 일평생 유토피아를 궁구한 시 세계를 펼쳤다고 했다.
3. 자유시의 작품 세계
한아름 굵은 줄기는
蒼天 높이 들내어 북녘의 소식을 듣고
땅을 굳게 把握한 뿌리는
뜨거운 地心을 호흡하는 오랜 古木 있으니
머언 세월 하도 서글퍼
모진 風雨에 껍질은 터지고
오히려 韻을 더한 가지는 骨格처럼 굽었도다.
잠자코 떨고 견디어
그 무엇에 抗拒하는 逆意처럼 위로 위로만 뻗치는
오오 아프고도 슬픈 너의 心襟!
이 말없이 늙어온 나무는
그 어느날 눈도 못 뜨도록
온갖 塵埃에 사는 憎惡로운 것들을 휩쓸어갈
마지막 一陣의 태풍을 亭亭히 기다리고 있다.
-「古木」전문
언제나
장엄한 自惚은
죽음 앞에 있다.
이 낭떠러지
이 수면은
무서운 고요-
죽음만이 바로본다.
살아서 보는 죽음,
죽어서도
볼 수가 없다.
이 낭떠러지
이 수면 위
한송이 水仙꽃
죽음처럼 피어 있다.
장엄한 고독은
-저렇듯
죽음과 짝지어 산다.
-「살아서 보는 죽음-畵家 달리에게」
「古木」을 주목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투영하고 있다. 부조리한 존재 의식 속에서 외부 세계의 변화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살아서 보는 죽음」에서는 존재의 실존을 인식하고 유토피아는 이 지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김상옥의 시 세계는 이상옥의 주장처럼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4. 시조의 작품 세계
최남선은 26년 「조선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를 ?조선문단?에 발표함으로서 우리의 전통 시가인 시조문학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노력했다. 이어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과 같은 이들이 시조의 맥을 지키고 있을 때, 김상옥은 민족의 정서와 민족혼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조작품에다 기울였다. 정신적인 맥과 전통을 찾아 민족정서를 지키는 것이 곧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임을 인식했던 것이다.
金相沃은 1940년대의 시인이다. 이 시기의 문학 속에 나타나는 고향의식은 민족사의 현실과도 관련이 깊었다. 그 이유로는 우리 민족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고향에서 살기 힘들어 고향을 등지는 流浪民이 많이 생겨 공간적 故鄕喪失感을 느꼈기 때문이며, 한편 近代社會의 疏外意識과 관련된 고향상실감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민족으로서의 時代意識과 虛無意識에서 오는 상실감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하에서 민족의 전통정신, 전통미, 전통정서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金相沃의 창작태도는 해방 후, 남북분단, 6․25전쟁, 혁명, 가난, 독재, 민주화 등의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을 거치고, 산업사회, 도시사회, 정보화 사회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전통정신과 전통미, 전통정서가 나타나는 작품들을 계속 창작함으로써 전통정신과 전통미를 계속 추구하였다. 급속도의 서구문명 유입과 서구문명화 되어가는 우리 사회현실 속에서, 가치관이 흔들리고,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속에서도, 신토불이의 사상 속에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그의 시조창작 정신은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金相沃 시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故鄕意識의 發現樣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지정학적인 고향인 통영의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정서를 나타내는 것들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고향으로서의 이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에 바탕을 둔 고향이다.
먼저 지정학적인 고향인 통영의 鄕土的이고 土俗的인 정서를 나타낸 고향의식의 작품들이다. 그가 태어난 지정학적인 고향인 통영을 중심으로 회귀불가능한 시간과 공간인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토속적인 정서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다. 「思鄕」,「邊氏村」,「鳳仙花」,「물소리」,「강 있는 마을」등의 작품에 그러한 정서가 나타난다. 「思鄕」에서는 ‘풀밭길, 개울물, 길섶, 초집, 송아지, 진달래, 저녁노을, 산, 어마씨, 꽃지짐, 멧남새, 집집, 마을’ 등 우리들의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속적 풍경이 소재가 되고 있으며, 우리민족의 향토적, 토속적인 정서 및 생활습관 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고향에 대한 의식, 또는 향수가 거의 土俗的인 情緖를 지니고 있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잘 符合되어 독자의 共感을 자아내게 된다.
이러한 고향의식에는 回歸不可能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리움은 있지만, 갈등적 요소는 없다. 늘 정겹고, 평온하고 꽃지짐 지지는 냄새가 나는 고향이다. 고향의 풍경도 직선적이지만 않고 곡선적이다. ‘눈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길이’보이고, ‘한 구비 맑은 강은 들을 둘러 흘러가는’ 풍경이다. 완만한 곡선의 이미지가 고향에는 있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자를 비롯한 인물들도 마찬가지다.「변씨촌」에서는 풍속과 문화적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고향의 역사와 향토문화를 내세우는 애향심이 드러나고, 「봉선화」에서는 봉선화 꽃을 매개로 하여 시적 화자와 누님이 고향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精神的인 故鄕으로서 이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에 바탕을 둔 고향의식이다. ‘고향이 반드시 유형임을 요하지는 않는다’고 했을 때, 우리는 無形의 精神的 安息處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제의 韓民族 抹殺政策의 시대에 우리 민족은 希望도 잃고 민족의 正體性도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고, 자존심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써 이 민족의 뿌리와 민족혼을 찾으려는 노력을 金相沃은 시조작품에 기울였다. 처소적 고향인 조국 강산을 일제에게 빼앗긴 상태에서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고향을 찾는 일은 바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전통의식, 전통미를 찾는 일이었고, 그러한 정신적인 맥을 찾아 민족정서를 지켜 가는 것이 곧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민족에게 정신적 지주를 찾아주는 일은 고향상실감, 국토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였고, 또 일제하에서 할 수 있는 조국사랑과 민족사랑의 실천이었다.
精神的 故鄕인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찾는 일은 곧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민족이 삼국통일을 하여 현재의 영토를 확보했던 신라시대부터 찾아보는 일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문화적 유물과 역사적 유적을 찾아보고 그들에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고 사랑하는 일이었고, 또 이 민족의 애국지사들을 찬양하는 일이었다. 민족의 정체성과 자신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유산인 「石窟庵」, 「多寶塔」, 「十一面觀音」, 「靑磁賦」, 「白磁賦」등의 역사적 유적들과 문화적 유물에 대한 향수를 통해서 전통정신과 전통미를 찾고 이들 속에 깃든 민족의 숨결을 더듬고 그것에 배어 있는 민족정신과 정서를 찾으려 했다. 「善竹橋」, 「財買井」, 「矗石樓」등을 통해서는 애국지사들을 찬양하고 이들의 애국정신을 본받고자 했다.
고향상실과 향수의 작품을 살펴보면, 주로 전통정신과 전통미에 대한 향수이다. 「善竹橋」, 「財買井」, 「矗石樓」, 「내가 네 방안에 있는 줄 아는가」, 「鮑石亭」등의 작품에서 정신적 고향상실감, 민족의 自己正體性을 잃어가는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정신적 지주를 잃고 정신적 고향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민족 상황을 나타내고 있으며, 잃어가는 조국애와 민족애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조국애와 민족애를 살리고 싶어하는 화자의 의지가 들어가 있다. 「李朝의 흙」, 「金을 넝마로 하는 術師에게」, 「圖章」, 「古山子 金正浩先生頌」 「巫歌」, 「鞦韆」, 「硯滴」, 「十一面觀音」등의 작품을 통해 정신적 고향상실감에 대한 안타까움, 곧 정신적 뿌리에 대한 향수와 민족정서 및 민족정신에의 향수가 나타나며,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찾고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귀향의식과 유토피아의 작품을 살펴보면, 시인이 추구하는 이상향은 민족의 정신적 고향인 전통정신과 전통미를 회복하는 것이다. 「玉笛」, 「人間나라 生佛나라의 首都」, 「大佛」, 「多寶塔」, 「雅歌 其一 - 阿斯女의 노래」등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가 추구해 가야할 민족의 정서, 전통적 정신을 신라시대의 꽃 핀 불교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자존심 속에서 찾고자 하는 신라정신을 지향하고 있으며, 「白磁賦」, 「紅梅幽谷圖」, 「葡萄印靈歌」, 「翡翠印靈歌」등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안목과 정서를 통한 아름다운 전통미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白磁」, 「祭器」, 「돌2」, 「現身」, 「雅歌 其二 - 阿斯女의 노래」등에서 시인은 영원한 민족정서의 추구를 통해 정신적 유토피아를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 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듯 힘ㅅ줄만이 서노나
-「鳳仙花」 전문
눈을 가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白楊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山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로운 꽃찌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요
- 「思鄕」 전문
불꽃이 이리 티고 돌ㅅ조각이 저리 티고
밤을 낮을 삼아 정소리가 요란터니
佛國寺 白雲橋우에 塔이 솟아 오르다
꽃장반 팔모 欄干 층층이 고운 모양!
임의 손 간데마다 돌옷은 새로 피고
머리엔 푸른 하늘을 받처 이고 있도다
- 「多寶塔」 전문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白鶴 한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끝에 風磬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달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아래 비진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不老草 돋아나고
彩雲 비껴 날고 시내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속에 구어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ㅅ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純朴하도다
-「白磁賦」 전문
雨氣를
머금은 달무리
市井은 까마득하다
맵시든
어떤 品位든
아예 가까이 오지 말라
이 寂寞
범할 수 없어
꽃도 차마 못 꽂는다.
-「白磁」 전문
굽 높은
祭器.
神前에
제물을 받들어
올리는-
굽 높은
祭器.
詩도 받들면
文字에
매이지 않는다.
굽 높은
祭器!
-「祭器」 전문
김상옥은 후기의 작품집에 올수록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단순화한 단시조를 쓰고 있다. 「白磁」는 단시조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다. 그는 「詩와 陶磁」에서 “단조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단조로운 것이지만, 단순하다는 것은 모든 군더더기를, 아니 모든 설명적인 요소를 다 제거한 다음에 얻어낼 수 있는 ‘생략의 미’”라며 단순미를 찬양하고 있다.
김상옥은 형식적 시험을 시도했던 때문인지 그의 시조에는 파격의 작품들, 시조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작품들이 있다. ?三行詩 六十五篇?이나 ?香氣남은 가을?에서 ‘長形’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들이다.
「祭器」라는 작품은 많은 파격을 보인 시조이다. 이 작품은 ?墨을 갈다가?에 게재되었고, ?香氣남은 가을?에도 게재되었으며 ?느티나무의 말?에는 서시로 게재되어 있다. 내용은 시도 받들면 문자에 매이지 않는 ‘굽 높은 제기’라는 것이니, 시의 내용으로 본다면 시조냐 아니냐를 따지고 있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어디서나 빛날 수 있는 정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시정신이라고 김상옥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상으로 김상옥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시조시인, 시인, 서예가 등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상옥은 처음에 시조집 『초적』으로 등단을 했고, 중간에 시집을 여러 권 출간했으나 나중에 시조로 돌아와서 일까. 그는 자유시인보다 시조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어 시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음을 밝힌다. 그의 시와 시조들은 영원한 민족정서의 추구를 통해 정신적 유토피아를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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