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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지난 삶에 대한 회오와 반성-천숙녀론

by 시조시인 김민정 2021. 11. 11.

지난 삶에 대한 회오와 반성

 

김민정(시조시인, 문학박사)

 

 

이번 천숙녀 시인의 비움시조집에서는 편편마다 지난 날의 삶에 대한 회오와 반성이 들어 있다. 그래서 후회의 눈물과 반성으로 시집 전체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느낌이다.

 

관절 타고 흐르는 휘청거리는 걸음

뜨거운 길의 흔적 장대비가 지웁니다

세상이 철커덕 닫혀 아무 일도 모릅니다

 

갈라 터진 마음 밭엔 가랑잎 쌓이지만

피멍 든 발바닥은 디딜 곳조차 없습니다.

숨찬 날 허물 덮으려 마중물이라도 부어보지만

 

내 속에 지친 상처 펌프 물로 씻길까요

아픈 기억 물려놓고 왈칵 안아 주시지요

닻줄을 놓았던 몹쓸 짓 다시는 안 할게요

- 마음밭전문

 

위의 시조는 지난날을 반성하며 상처와 아픈 기억을 씻어내고자 한다. 첫 수에서는 뜨거운 길의 흔적 장대비가 지웁니다며 과거의 잘못이 지워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셋째 수에 오면 내 속에 지친 상처 펌프 물로 씻길까요/ 아픈 기억 물려놓고 왈칵 안아 주시지요/ 닻줄을 놓았던 몹쓸 짓 다시는 안 할게요라며 닻줄을 놓아 주변을 괴롭혔던 일들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이고 있다.

 

날마다 시달리는 악몽에

생의 뺨을 재어본다

괴로워 헤집는 일 시들며 앓고 있다

밤 깊어

잠드는 날엔

아침 오지 않기를

 

우편함에 꽂혀있는

한 통의 풀꽃 편지

하얀 파꽃 따라와 맵싸한 울음 토하고

손등에

떨어진 눈물

자벌레로 기고 있다

-손등에 떨어진 눈물전문

 

첫째 수에서는 지난 어떤 일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늦게 든 잠은 아침이 오지 않기를, 또 반복될 새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그대로 잠들고 싶어하기도 한다. 괴로움이 깊음을 나타낸다.

둘째 수에서는 우편함에 꽂혀있는 한 통의 풀꽃 편지가 악몽에 시달리고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보며 맵싸한 울음을 토하고 눈물을 흘리는 화자의 모습에서 괴로워하는 자신에의 연민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녀의 지나온 삶의 편린을 필자는 다 알지 못한다. 필자가 아는 것은 그녀 삶의 어느 한 부분이다. 그녀는 30년 이상을 독도시인으로 살면서 독도 사랑을 몸소 실천한 시인이다. 그리하여 독도에 관한 시를 노래로 만들어 대한민국 독도 음악회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고, 독도에 대한 탐방으로 여러 시인들에게 독도를 구경시키기도 했다. 또한 많은 시인들에게 독도시를 쓰게 권유하고, 독도시집을 만들어 도서관과 학교 등에 보내기도 했다. 또 독도사관을 만들어 30년이나 유지시켜 오고 있다. 독도사관은 지하에 세를 얻어 어렵게 운영하고 있다. 다음 시에서도 그 운영의 어려움이 잘 나타난다.

 

초겨울 매운 바람이/ 등짝을 밀어냈다

이마를 짚는 손길/ 웅크리고 앉았다가

깊숙이/ 파고든 햇살/ 푸른 목숨으로 살고 있다

 

스무 계단 지하 벙커에/ 독도사관 머물고

이십 구 년 달려와 돌아갈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길

목울대/ 붉어진 걸음/ 초승달로라도 뜰까 말까

- 한민족 독도사관 연구소전문

 

또한 필자가 아는 천숙녀시인은 풀꽃시인이다. 시인들이 시집을 출간하면 본인이 직접 뜯어말린 풀꽃으로 시화를 곱게, 정성스레 만들어 그것을 시인들에게 선물하여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대해 긍지를 갖도록 해 준다. 한 두 편의 시화가 아니라 시집 한 권을 통째 풀꽃시화로 만들어 주다니! 어떤 것은 7개월, 어떤 것은 1년이 걸려 풀꽃 시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풀꽃을 뜯고 말리고, 압화하여 시를 쓰며 만드는 동안은 내색 한 번 안 하더니 다 만들어 그 시인의 수상식 날이거나 다른 행사가 있을 때 선물로 그 시인에게 주어 받는 시인들로 하여금 감탄과 감동을 금치 못하게 한다.

모든 시인에게 다 해 줄 수는 없기에, 그런 시화를 받을 수 있는 시인은 몇몇 시인에 해당 되겠지만, 그들은 대단히 행운아인 셈이다. 시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과 집념이 필요할 것이다. 금방 싫증을 내는 사람은 끝까지 하지도 못할 일이다. 자신의 시집도 아닌 다른 시인의 시집을 이렇게 정성껏 시화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천숙녀 시인이 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천숙녀 시인이 바라는 앞으로의 삶은 어떤 것일까.

 

산 둘러 병풍치고 논밭 두렁 거닐면서

 

고향집 앞마당에 남은 가을 풀고 싶다

 

속엣것 다 비워 놓고

 

달빛 당겨 앉히고 싶어

 

 

설핏 지는 해 걸음 고향집에 등불 걸고

 

밭고랑을 매면서 새벽별도 만나고 싶다

 

콩나물 북어국 끓여

 

시린 속도 달래가며

등불전문

 

그녀는 고향집에 등불 걸고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을 드러난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한다. 그만큼 늙으면 고향이 더 그리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산 둘러 병풍치고 논밭 두렁 거닐면서/ 고향집 앞마당에 남은 가을 풀고 싶다/ 속엣것 다 비워 놓고/ 달빛 당겨 앉히고 싶어시조의 내용이 참 평화롭다. 산을 병풍처럼 둘러치다니 얼마나 아늑한 보금자리인가. 자연과 동화되는 동양인의 자연관이 드러난다. 또 거기에다 남은 가을을 풀고 싶다니. 여생을 고향에서 한가롭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둘째 수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해가질 녘 고향집에 등불 걸고, 새벽이면 밭고랑을 매며 새벽별도 보고 싶다는 것이며, 소박한 콩나물 북어국 끓여서 시린 속도 달래겠다고 한다. 조선시대 강호가도江湖歌道를 꿈꾸는 선비들의 작품을 느끼게도 한다. 고향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실제로 그렇게 살기보다는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 이 시조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그것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논둑 지나 앞들까지 콩 꼬투리 터지는 소리

 

보자기를 펼쳐놓고 세월 속의 나를 싼다

 

뒤란의 마른 흙담이 상처 씻어 내리던 날

 

 

옹이도 풀어내면 나이테로 펼쳐질까

 

모난 생 둥글게 깎아 시접을 정리했다

 

시린 속 햇살을 받아 새파랗게 돋아나게

-둥글게 깎아전문

 

그녀가 바라는 삶 중에는 나를 깎아 둥글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들어 있다. 마음의 상처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 가을날 익을 대로 익은 콩이 마침내 콩 꼬투리가 터지며 내는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튕겨 달아날 콩을 막기 위해 보자기를 펼쳐놓는다고 한다. 튀는 콩은 세월 속의 나의 모습이기에 상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음의 보자기를 펼친다는 뜻일 것이다. 그 날은 바로 뒤란의 마른 흙담이 상처 씻어 내리던 날이 된다.

옹이란 나무줄기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나무의 몸에 박힌 나뭇가지의 그루터기나 그것이 자란 자리를 말한다고 한다. 나무들이 편하게 잘 자라지 못하고 힘들게 자랄 때 생기는 것이다. 목재의 상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고, 나무를 태울 때 편히 자라 넓게 펴진 나이테 부분은 금방 타지만 옹이 부분은 오래 탄다. 옹이처럼 박힌 마음의 상처를 풀어내고 싶은 마음, 그리하여 모난 생을 둥글게 깎아 시접하고 싶어한다. 시접이란 접혀서 속으로 들어간 옷솔기의 한 부분을 말한다. 안 좋았던 상처들을 씻어내고 안 보이게 처리하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옹이진 지난 날의 상처를 정리하고 나서 시린 속 햇살을 받아 새파랗게 돋아나게하고픈 삶인 것이다. 더 이상 모나지 않는 삶, 더 이상 상처로 하여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묵직한 삶의 봇짐 꺼내놓은 툇마루

내 안의 흐린 안개 풀어놓은 고향마당

심중에

묻어둔 말들

밤새도록 비단을 짠다

 

곤곤한 살얼음판 조심조심 걷고 있다

밑바닥 더욱 깊어 햇살 비껴 날아가고

때 묻고

남루했던 날

곁불 쬐는 먹먹함

 

바삭 마른 찬 겨울에 검불 되어 흩날려도

내가 나를 오르기 위해 지하 계단 딛고 선다

땅 위에

지문을 찍고

넉 잠잔 누에 되어 고치를 짓는다

-삶의 봇짐전문

 

 

가위처럼 짓눌린 것 삶이 너무 버거워서일까. 그가 지고온 힘든 봇짐을 고향집 툇마루에 꺼내 놓고 있다. 마음 속의 흐린 안개도 고향집 마당에 풀어놓는다. 지난 날 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마음을 짓누르던 것들을 꺼내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 속에 있던 말들로 새롭게 비단을 짠다는 것이다. 심중에 묻어둔 말들이란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일 것이다. 지난 날을 용서받고 싶은 고백의 말들일까? 아니면 숨겨둔 진실의 말들일까?

둘째 수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말하고 있다. ‘곤곤한 살얼음판 조심조심 걷고 있다/ 밑바닥 더욱 깊어 햇살 비껴 날아가고/ 때 묻고/ 남루했던 날/

곁불 쬐는 먹먹함이었다고. 누구나 양지쪽 햇볕 잘 쬐는 쪽을 원하지만, 생은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니다. 양지에만 살 수는 없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질 때까지 양지가 음지가 될 때도 있고, 음지가 양지가 될 때도 있다. 이 부분은 힘든 날들에 대한 고백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셋째 수에 오면, 화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내가 나를 오르기 위해 지하 계단 딛고 선다고 한다. ‘땅 위에/ 지문을 찍고/ 넉 잠잔 누에 되어 고치를 짓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지고운 삶의 봇짐, 남루한 삶의 흔적을 넘어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꿈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천숙녀 시인의 비움시조집에는 지난 날에 대한 아픔과 반성이 들어 있다. 그러한 반성과 함께 잘못을 용서받고 지난 날의 상처를 씻어내고,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열망이 들어 있기도 하다. 시인의 마음처럼 앞으로의 삶은 새로운 마음으로 맑고 밝게 생을 바라보며 주변을 이롭고 풍부하게 하는 삶이 되고 또한 아름다운 시조작품이 직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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