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김민정 시인
2021-03-10 기사 편집 2021-03-10 17:21:35 |
박상원 기자 swjepark@daejonilbo.com |
꽃섶에서
김민정
움츠린 세상일들 이제야 불이 붙는,
견고한 물소리도 봄볕에 꺾여진다
하늘은 시치미 떼고 나 몰라라 앉은 날
산등성 머리맡을 가지런히 헤집으며
내밀한 향기 속을 계절이 오고 있다
느꺼이 꺼내서 닦는, 다 못 그린 풍경화
고요한 길목으로 아득히 길을 내며
봉오리 꿈이 한 채, 그 안에 내가 들면
소슬히 구름꽃 피우고 깨금발로 가는 봄날
전교생이 다 등교는 하지 않았지만, 두 개 학년이 나오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니 학교가 조금 살아있는 느낌이다. 남쪽에서 매화꽃이 핀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한참되었다. 2월 중순에는 양산 통도사 자장매의 활짝 핀 절정을 보고 와서 오랫동안 매화 향기가 내 삶 속에 파고드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교정에는 3월이 되니 매화와 산수유가 피기 시작하고 백목련과 자목련도 봉오리가 앉았다. 하루하루 따스해지는 봄볕을 받으며 그들의 꿈도 부풀어가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커가는 모습을 보듯, 하루하루 커가는 꽃봉오리와 새싹을 보는 기쁨은 이맘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따스함을 좋아하는 건 사람만이 아닌 것 같다. 새들도 봄에 지저귀는 소리가 더 활발하고 기쁜 듯하다. 식물도, 동물도 움츠렸던 몸을 풀며 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느낌이 드는 3월이다. 학교는 가장 바쁜 달이 3월이다. 새로운 학생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학급을 만나고, 새로운 선생을 만나 서로가 적응하느라 바쁘다. 다들 긴장을 하고 있어서인지 활기차다.
우리나라 자연도 3월이 가장 바쁜 것 같다. 뿌리는 뿌리대로 자양분을 저장하려 물을 힘껏 빨아올리느라 바쁘고, 잎은 잎대로 새싹을 만들고 키워내느라 바쁘고, 꽃은 아름답게 꽃을 피우느라 바쁘다. 계절마다 꽃은 피지만, 봄에 피는 꽃은 더 신선감을 준다. 어둡고 칙칙한 겨울의 색상에서 밝고 화사한 봄꽃의 색상으로 넘어오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했던 코로나 시대를 보내고 이제는 산뜻한 새봄을 맞고 싶다.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봄이다. 독자 여러분! 올해는 "꽃길만 걸으세요!"
김민정 시인
1985년 《시조문학》지상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함께 가는 길』외 9권의 시조집 발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국제펜한국본부 언어보존위원, 한국여성시조문학회 회장, 나래시조문학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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