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송파문학의 향기>
지하철에서 <김영재>
철들 일 없는데 철들었는지 몸 무겁네 빽빽한 지하철에서 두리번 빈자리 찾네 가물에 콩잎이 돋듯 자리 나면 덥석 앉네 민망스레 실눈 감고 지난날 새겨보네 걷고 서고 뛰고 걷고 급행열차도 타보았네 가는 곳 그 끝자락에 별다른 것 없었네
우리와 많이 친근한 지하철을 소재로 한 시조다 . 언제부터인가 나도 지하철을 타면 자리부터 찾는다. 나이 탓일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은 마음 탓인가. 이 시조를 읽으며 좋다고 느끼는 건 진솔함이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시나 시조를 미사어구로 치장한다고 좋은 시나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것은 화자의 진솔함이다. 요즘은 환갑이 지나도 많은 나이가 아니고 늙은 나이도 아니다. 그만큼 노인인구가 많아지고, 또 육십을 넘어도 사람들이 늙어 뵈지도 않는다. 머리는 염색을 하고 다니고 화장을 잘 하고 다니니 나이를 제대로 알기도 어렵다.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난날을 새겨보는 화자, “걷고 서고 뛰고 걷고 급행열차도 타보았네/ 가는 곳 그 끝자락에 별다른 것 없었네”라며 인생은 그렇게 서둘러, 힘들여 와 보았자 별 것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고 독자들에게 그런 깨달음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가 생각난다. “청춘이란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라는 시. 몸은 늙어가더라도 좀 더 푸른 마음으로, 청춘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100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육십이 넘어도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영재 시인은 전남 순천 출생으로 197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조집으로 『녹피 경전』『히말라야 짐꾼』『화답』『홍어』『오지에서 온 손님』『겨울 별사』『화엄동백』등이 있다. 시조선집으로는 『참 맑은 어둠』『소금 창고』등이 있으며 순천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중앙시조대상, 한국작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송파신문사(songpanew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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