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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송파문학의 향기> 봄비 <김 민 정>
얼얼하고 알싸하게 귓바퀴를 적실 동안
제 기운 보란 듯이 꽃샘바람 들며난다
촉촉이 머금은 봉오리 질세라 앙다문다
바람과 물의 혀가 너를 핥고 가는 길목
어지러이 엎어지며 꽃물 풀물 토하더니
한 생각 젖을 듯 말듯 보슬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봄을 재촉하는 비다. 이 비가 그치면 풀빛은 푸르러 오고 꽃은 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사계가 뚜렷한 우리나라, 계절의 오고감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그 특징들이 기후변화에 의해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그렇다고 계절이 달라진 건 아니다. 꽃은 제 계절에 피어나고 나무도 제 계절에 잎을 틔운다. 모든 것이 피어나는 시간, 희망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꽃샘추위를 견뎌내고 봄눈 속에서도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저 지순한 꽃봉오리들이 아름답다. 또한 뾰족뾰족 촉을 내밀고 있는 저 새순들이 자라 아름다운 잎을 피우고, 쨍쨍한 햇살 속에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휴식의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새들도 그 속에서 휴식을 취할 동안 스스로 나이테를 키우며 나무는 커 갈 것이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잎을 피울 줄 아는 자연의 질서정연한 모습에 또 한 번 깊은 감동을 느끼는 봄이다. 세상의 초록을 키우려, 더 넓게 번져가며 만물을 자라게 하는 봄비, 한 생각도 적실 듯 말 듯 봄비가 소리 없이 조용히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세상엔 꽃이 더욱 피어날 것이고, 녹음도 푸르러질 것이다. 코로나19로 움추렸던 우리들의 마음,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도, 그리고 내 마음도 펴질 수 있기를, 그리고 한 뼘쯤 더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김민정은 시조시인이며 문학박사이다. 1985년 《시조문학》 지상백일장에서 「예송리 해변으로」로 장원 등단하였으며, 시조집으로는 『누가, 앉아 있다』 『모래울음을 찾아』 『바다열차』 『백악기 붉은 기침』 『영동선의 긴 봄날』 『사랑하고 싶던 날』 외 2권과 수필집 『사람이 그리운 날은 기차를 타라』와 논문집 『현대시조의 고향성』 등이 있다.
송파신문사(songpanews@naver.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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