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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홍어 최순향
봉천동 뒷골목에 허름한 삼합집 얼룩진 벽지와 고개 숙인 선풍기와 첫사랑 남도 사투리가 빗소리에 젖고 있다
그 한 때 싱싱했던 우리들 젊은 날이 구호와 최루탄과 상처 난 사랑들이 곰삭은 홍어가 되어 탁자 위에 앉아 있다
두 손도 가슴까지 모두 비운 뒷자리에 그리운 이름 하나 입안에서 뱅뱅 돈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홍어가 되어간다
최순향시인은 1997년 《시조생활》로 등단했으며, 세계전통시인협회 부회장, 《시조생활》주간 겸 발행인 대행.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이사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조집 『옷이 자랐다』 등이 있으며, 시천시조문학상, 난대공로시조상, 한국문협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봉천동 뒷골목 허름한 삼합집에서 젊은 날을 회상하는 화자를 만난다. 첫사랑의 남도 사투리를 떠올리며 빗소리에 젖고 있는 모습이다. ‘그 한 때 싱싱했던 우리들 젊은 날이/ 구호와 최루탄과 상처 난 사랑들이/ 곰삭은 홍어가 되어 탁자 위에 앉아 있다’며 추억에 젖는 화자의 모습이다. 누구나 싱싱했던 젊음이 있었고, 대학시절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맞았던 최루탄 가스와 그리고 젊었던 날의 상처난 사랑, 그 그리운 이름이 입안에서 뱅뱅 돈다고 한다. ‘두 손도 가슴까지 모두 비운 뒷자리에’말이다. 코끝까지 탁 쏘는 홍어를 먹으며 추억에 쏘이고 있다. 이 시조를 읽으며 홍어는 탁주와 곁들어 먹는다고 하여 ‘홍탁’이라 한다는 말도 생각났는데, 몇 해 전 목포에 갔더니 가로등이 홍어처럼 생겨 인상적이었다. 비오는 날, 삼합집에서 홍어를 먹으며 남도사투리를 쓰던 첫사랑의 추억에 잠기는 이 시조의 화자 모습이 퍽 낭만적이다. 서정성 짙은 이 작품을 읽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첫사랑의 모습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게 될 것 같다. 송파신문사(songpanew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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