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한 비움
宇玄 김민정
2015년 4월 어느 날, 새벽 3시경 집을 나서서 서해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서해대교를 지나 안면도를 지나 을미도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까지 5시 30분 전에 도착하려고 열심히 달려간다. 아침 샛별이 내가 달리는 길을 계속 지켜봐 주고 있다. 수호신이라도 되는 듯이. 한밤 중 차도, 인적도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외로움도 느껴지고, 달님도 만나고 샛별도 만나 그들을 바라보다가 졸리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 졸음을 깨워가며 조금은 쌀쌀한 기온 속에 약속한 시간 전에 선착장에 닿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려간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일행을 만나 부탁한 배가 도착하면 그 배를 타고 30분간 고요한 바다를 감상하며 달려가다 보면 어느 새 을미도에 닿는다. 미리 기상예보를 보고 파도 없는 날을 택하기 때문에 다행히 수없이 많이 을미도와 삼섬을 탐석 다녀왔지만 날씨 때문에 고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30분간 배를 타고 을미도에 내리면 일출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아침노을을 바라보며 일출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는다. 언제 보아도 일출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쾌청한 날씨일수록 일출은 아름답다. 을미도에 도착하면 으레 돌밭에 앉아서 준비한 간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탐석을 시작한다. 물이 빠지는 때라 물가로 내려가며 돌의 모양을 살피고, 문양도 살피고, 하나하나 뒤집어 보기도 하며 문양석도 고르고 형상석도 고른다.
어느 작은 돌을 하나 뒤집어 보는데 낙지가 달라붙어 있다. “앗, 낙지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아주 작지도 않았다. 돌에서 그 낙지를 떼어내려 하자 빨판에 힘을 주며 더욱 돌을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절대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을미도 해변가에
돌밭을 더듬다가
낙지가 물고 있어
질려 있는 돌을 본다
심장이
뛰고 있는 소리
견뎌온 돌의 시간
- 「이력을 헹구며」 전문
내 삶의 허물들도 혹, 저러했을까? 쓸모없는 것, 버려야 할 것에 시간을 낭비하며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좀 더 가치 있고 알찬 것을 바라야 할진데 나는 지금 무엇에 끌려 여기까지 왔는가.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아온 비대한 내 영혼에게 송구하다. 진정한 하나를 얻기 위해서 아낌없이 아홉을 버릴 줄 아는 것이 참된 비움이다. 소슬하게, 웃음도 군살은 다 빠진 웃음을 물고 내일로, 다시 창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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