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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여성시조문학기행(역사와 전설, 그리고 낭만)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4. 11. 2.

역사와 전설, 그리고 낭만 

                                                                               -한국여성시조문학회  

2014년 7월 12일, 한국여성시조문학 기행을 가는 날은 날씨도 맑았고, 기분도 상쾌했다. 학생들 방학하면 복잡하고 차가 막힐지도 모르는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날짜를 일찍 잡았다. 학교에선 기말고사도 끝나고 성적처리가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큰일이 모두 끝나고 방학이 가까워서 마음이 조금 가볍기도 했다. 약속시간을 잘 지켜 주어서 다행히 8시엔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들른 곳은 영월 청령포였다.

 

청령포는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이 12살 어린 나이에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폐된 곳이다. 17살 관풍헌에서 사약으로 죽임을 당하기까지 그는 이곳에서 몸부림치다 그토록 서럽고 짧은 생을 살았던 곳이다. 단종의 슬픔이 서려 있는 영월의 청령포와 어라연 계곡을 찾아 단종의 유배지에 가는 길가에 왕방연의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라는 시조이다. 섬기던 임금을 강 너머에 두고 가야하는 그의 슬프고 착잡한 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청령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영월의 유지이며 수석가게를 하시는 최병천 수석가님이 안내를 하기 위해 나오셨다. 함께 배를 타고 동강을 건너 청령포로 향했다. 서강의 강물은 청령포를 에워싸고 오늘도 말없이 흐르는데, 나루터에서 강 건너 청령포를 바라보는 마음은 눈물겹다.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어 해설사가 점심을 먹으로 가고 없었고, 아쉬운 대로 최병천님이 설명하는 걸 듣고 있다가 보니 최병천님이 언제 연락을 취하셨는지, 점심도 못 드시고 돌아온 해설사가 우리에게 청령포에 관해 해설을 해 주셨다. 우리는 단종이 살았다는 단종어소에 들려 해설사의 해설을 듣고 사진도 찍었다. 그곳엔 단종이 지었다는 어제시가 있었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땅 황량한 산 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숲은 옛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한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 어제시, 단종

 

 

 

 

 

노산대로에는 영조 2년(1726년)에 세운 금표비가 있는데, ‘동서남북 사방 각각 사백 구십 척 이내 일반 백성 접근 금지’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노산군이 죽은 지 2백 년 후에 세운 것이지만 그 당시 단종에게도 이 같은 금족령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배 없이 건너갈 수 없는 고립된 청령포에서 세상과의 접촉이 차단된 강요된 외로움은 사춘기 소년에게 얼마만한 고통이었을까. 단종이 앉아 깊은 시름을 달랬다는 관음송, 그리고 이곳의 모든 소나무는 단종어소에 읍하듯 굽어있다는 말을 들으며, 또 단종이 하루에도 몇 번씩 서쪽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올라 한양의 하늘을 바라보다 돌들을 주워와 탑을 쌓으며 외로움을 달래고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를 그리워했다는 망향탑을 둘러보며, 사춘기의 한 소년이 겪었을 아픔과 외로움과 한을 생각하니 목이 메인다.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쪽그림자 푸른 산을 헤매누나

밤마다 잠 청하나 잠들 길 바이 없고

해마다 한을 끝내려 애를 써도 끝없는 한이로세

울음소리 새벽 산에 끊어지면 지는 달이 비추이고

봄골짝에 토한 피가 흘러 떨어진 꽃 붉었구나

하늘은 귀먹어서 저 하소연 못 듣는데

어쩌다 서러운 이 몸 귀만 홀로 밝았는고.

-「자규시」 전문, 단종

강 아래로 한없는 그리움과 절망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을 때 가질 수 없는 세속적인 감정과 욕망을 초월하여 그도 하나의 망향탑 돌이 되어 갔을까. 청령포라는 유폐된 공간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하나의 자연이 되어 이곳의 풍경과 일체가 되는 것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종이 죽던 날, 시녀와 종인들이 다투어 고을 동강에 몸을 던져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고, 이날에 뇌우가 크게 일어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고 강렬한 바람이 나무를 뽑고 검은 안개가 공중에 꽉 끼어 밤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고 한다.

권력이란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남의 섬김을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까. 자기의 뜻대로 세상을 움직여 보는 것이 그토록 매력적일까. 역사적 비극이 서린 곳을 바라보며 말없이 우리 한국여성시조회원들은 많은 생각에 잠겼다.

열심히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사진도 찍으며 회원들 각자의 시심으로 청령포라는 역사적인 곳을 읽어내고 있었다. 회원들의 시심에서 좋은 작품이 탄생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회원들과 강물을 내려다보며, 기념사진들을 찍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도 귀중하고 귀중한 추억이 되리라.

우리는 김삿갓 어탕집에 들려 그곳의 특별음식인 ‘어탕을 먹었다. 추어탕 비슷한 느낌의 어탕은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1인분에 7,000원이었지만, 최병천수석가님 덕분에 특별히 6,000원씩 해 주셨다.

단종의 묘소인 장릉에도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우리는 김삿갓기념관만 보기로 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이 15분 정도였다. 기념관 안에는 김삿갓, 즉 김병연에 대한 여러 자료들이 있다한다. 둘러보고 나오기에는 입장료만 아까울 것 같아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주변의 자연경관과 꾸며놓은 모습만 둘러보았다. 기념관 한쪽으로는 김삿갓문학상을 받은 유명시인들의 작품들이 시비로 새겨져 있어서 볼만했다. 시간이 거의 되어 회원들은 기념사진들을 찍고, 모두 버스를 타러 가는 사이. 나는 시비 사진들을 열심히 찍었다. 홈페이지에 올리고 회원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다.

 

 

 

다음으로는 영월역에서 O-트레인 기차를 타고 추전역까지 가는 코스다. 서둘러 영월역에 도착해서 기차표 예약을 확인하고 O-트레인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회원들은 기차를 타고창밖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끼리끼리 모여 정담도 나누면서, 또 기차 천장부근의 시를 읽고 칭찬과 부러움을 담기도 했다. 회원들은 거의 한 시간이상의 거리를 기차여행으로 즐기며 추전역으로 가고, 버스기사는 홀로 버스를 몰고 추전역을 향해 떠났다.

멀리 바라보이는 바람의 언덕에선 풍력발전소의 큰 바람개비가 돌고, 추전역에서는 작은 색색의 작은 바람개비들이 돌고 있어 아름다웠다. 시비를 보기 위해 시비쪽으로 회원들이 몰려가자, 시야에 아름다운 꽃밭속의 시비가 들어왔다. 천인국이 환하게 꽃밭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황지연못 시비가 우뚝 빛나고 있었다. 추천역 역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이 내 시비 주변을 완전히 포토존으로 만들어 사진을 찍고 가는 장소로 만들어 놓으셨다. 말없이 그들에게 감사하며 회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친한 사람들끼리끼리 사진도 찍었다. 추전역이란 표지석 앞에서도 우리는 단체사진을 찍었다.

손님맞이방에도 들리니 나의 시 ‘추전역’과 ‘사람이 그립거든’이란 시조 액자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추전역의 풍광을 마음에 담으며 우리는 황지연못을 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최숙영 선생님이 언제 사셨는지, 맛있는 옥수수를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계셨다.

우리는 황지연못 근처인 한마음신협 옆에다 버스를 세우고 황지연못 구경을 갔다. 낙동강 천 삼백리가 시작되는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의 전설을 설명하며 우리는 상지, 중지, 하지로 되어 있는 황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유성호 교수의 시해설처럼, ‘황지연못’의 전설은 있을수록 베풀며 살아야 된다는 것과 한 번 선택을 하면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들어있다. 나의 인생에서도 그것을 교훈 삼아야할 것 같다. 선택을 하고도 늘 가지 못한 길에 대해 미련을 갖는 못난 성격을 극복해야할 것 같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태백의 닭갈비를 먹기 위해 ‘김서방네 닭갈비’집으로 갔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오려는데 한마음신협 정기영 선생님이 큰 수박을 한 통 들고 들어오셨다. 주인이 너무 바빠 미처 수박을 썰어주지 못하자 정기영선생님 본인이 식당에서 칼을 찾아와 수박을 자르기 시작했고, 회원들이 수박을 쟁반에다 날라 이미 밖에 나간 회원들은 밖에서 드시고, 안에 계신 회원들은 안에서 드셨다. 수박이 많이 남았지만, 다들 배가 불러 더 이상은 먹지 못하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태백의 넉넉한 인심이 돋보이는 저녁이었다. 정기영 선생님 덕분에 후식까지 잘 먹고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귀가하면서 김선희 회원님의 사회로 시도 낭송하고, 김병연(김삿갓)의 시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루의 짧은 여정이라 계획했던 몇 군데를 다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여성시조문학회원들의 우의를 다지고, 여러 가지를 경험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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