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산문>
독도여, 너는
宇玄 김민정
사진: 한민족독도사관, 독도 전경
독도여! 네 기상에 한반도는 늘 푸르다
너로 하여 번져오는 싱그러운 동해물살
청댓잎 그보다 푸른 우리들의 자존이다
태평양 바다 멀리 수평선을 그어 놓고
동트는 아침이면 눈부신 해 솟게 하는
네 푸른 직립의 정신 한반도의 빛이다
물결 위에 반짝이는 네 영혼 깊이깊이
사랑을 심을 때다 그리움을 심을 때다
온몸의 갈기 날리며 네게 달려 갈 때다
한반도의 빛깔 속에 한반도의 역사 속에
겸허하고 단단하게 네 뿌리를 깊게 묻고
이 땅의 빛이 되어라 눈부심이 되어라
「독도여, 너는」전문
사진: 한민족독도사관, 독도의 일출
독도에 가 볼 기회가 생겼다. 평소에 가 보고 싶었는데, 독도사관 관장인 천숙녀 시인이 문화
예술인을 초청해서 제1회 세계문화독도예술제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울릉도를 한 번도 안
가 보았는데, 이번 여름방학에 울릉도와 독도를 구경하는 거다. 그동안 독도사랑을 말로만 외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발로 직접 밟아봐야 내 나라, 내 국토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가자!
두 딸까지 데리고 독도행을 실행했다. 다행히 날씨가 도와주어 제 날짜에 맞추어 계획대로 2박 3
일 동안에 다녀올 수 있었으며 독도에 내려 독도의 땅을 직접 밟아볼 수 있는 행운도 가졌다. 나
를 반겨주듯 파도도 잔잔하고 날씨도 아주 쾌청이었다. 2%도 안 되는 행운에 속한단다.
새벽 4시 반에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버스출발이었다. 묵호항에서 10시에 울릉도행 배를 탄
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4시쯤 출발 예정으로 밤 2시 30분이 넘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 잠을 청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우고 봉화산역에 도착하니 천숙녀 시인이 반갑게 맞아주
었고, 예정대로 버스는 곧 출발하였다.
동해시에 사는 김은수라는 고향친구가 얼굴이라도 보겠다며 굳이 묵호항에 나오겠다고 하여 그
러라고 하였다. 묵호항에서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니 친구가 왔고, 긴 얘기를 할 시간이 없어 자판
기 커피 한 잔씩을 마시며 그 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초등학교 전학 후, 39년만의 해후였던가. 얼
굴이라도 보자며 나와 준 순박한 친구가 고마웠다. 이 친구는 돌아오는 날도 유영자라는 친구와
함께 묵호항에 나와 주었다.
사진: 한민족독도사관, 독도의 서도
10시행 배였으나, 버스가 일찍 도착한 관계로 9시에 출발을 하게 되었다. 망망대해 동해를 바라보
며 참으로 오랜만에 바닷배를 탄다는 생각을 했다. 20대 초에 홍도행 배를 두 번 타고 나서 이렇
게 오랜 뱃길은 처음이다. 3시간 예정이지만 조금 더 걸려서 3시간 10분 정도의 뱃길이었다. 푸른
동해의 바닷물은 무척 맑다.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서 이렇게 넓은 바다도 우리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새삼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이 고맙다.
우리는 배정된 여관과 식당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울릉도 육로관광을 하였다. 버스
를 타고 울릉도를 한 바퀴 도는 것인데 4시간이 걸렸다. 울릉도는 아름다운 섬이었고, 바다는 청
정해역이라 아주 맑은 초록빛 바닷물이었고, 맑은 바람이었다. 일반 바닷가의 찝찔한 내음이 없는
상큼한 바다였다. 이렇게 동해 바다 가운데 섬이 있고 우리가 관광할 수 있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
지! 초록빛 바다에 두 손을 담그면 금방 초록색 물이 들 것 같다.
저녁에는 울릉군청에서 나와 울릉도와 독도에 관해 강연을 하였지만, 피곤해서인지 머릿속에 들어
오지 않았다. 저녁식사 후엔 쉬고 싶었지만, 모처럼 엄마를 따라 여행 온 두 대학생 딸을 위해 해
안을 산책하고 어패류 모듬회를 시켜주었다. 울릉도는 생선회는 별로 없고, 비싸다고 한다. 밤바
다에서 오징어를 잡고 있는 환한 불빛의 집어등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한민족독도사관, 한반도를 닮은 지형
이튿날인 2009년 8월 18일, 우리는 울릉도에서 7시 출발의 배를 타고 9시 조금 넘어서 독도에 도착했다.
180명만의 임대선박이라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독도를 직접 보고, 독도의 땅을 밟아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었으므로 주최측의 행사는 자
세히 알지 못한 상태였다. 와서 보니 한민족 독도사관과 헤이리 영토문화관에서 공동 주최하는 것이었
다. 행사내용으로는 천숙녀 시인이 '독도사랑' 낭송했고 이어 가수 하이의 '독도를 위하여'의 노래, 송동
옥 화백의 '한인 강제징용자 위령비 건립'등의 붓글씨였다. 시간이 제한되어 급하게 추진되는 행사는 양
측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바람에 조금 어수선했다. 또 독도를 찍는다고 울릉도 사진조차 많이 안 찍고 아
껴둔 카메라를 아침에 분명히 들고 나왔는데 어디서 분실했는지 배를 타고 보니 없어, 독도 사진도 못
찍고 계속 그 쪽에 신경이 쓰여 행사에도 어정쩡하게 참여했다.
사진에서만 보던 독도는 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두 개의 큰 섬 동도와 서도가 있고 두 섬
의 주번에는 여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체를 보아야만 그 아름다움을, 그 땅을 바르게
알 수 있다. 독도에 처음 온 나 같은 사람들은 독도라는 섬에 관해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아무도 독도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책자도 주었고, 그 전날 울릉군수가 나와 설명도 했지만, 직접 땅
을 밟았을 때 들으면 효과 100%일 텐데 아쉬웠다. 우리는 플랜카드 펼치고 행사진행하고 카메라에 찍고
찍히기에 바빴다. 조금 여유가 있어 섬에 대한 설명도 해 주고,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나의 ‘퍼포먼스’는 사람들의 순간적인 관심을 끌기에는 좋지만, 그것이 독도사랑의 폭발점이 될 수 있
을까? 설령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온 국민이 독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 한민족독도사관, 독도
독도의 지리적 위치는 북위 37°14′26.8″, 동경 131°52′10.4″이다. 울릉도에서 87.4Km 떨어
져 있으며 육안으로도 보인다. 일본의 오키섬과는 157.5Km라서 울릉도가 위치상 70.1Km 더 가까
운 거리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 섬의 크기는 총면적
187,554㎡(동도 73,297㎡, 서도 88,740㎡, 부속도서 25,517㎡)이다.
섬의 구성은 동도, 서도 2개의 큰 섬과 89개의 부속도서로 되어 있다. 동도와 서도는 151m의 간격
을 두고 서 있으며 평균수심은 10m정도이다. 동도는 해발 98.6m, 정상에는 독도 경비초소, 헬기
장, 등대 등의 시설이 있다. 면적은 73,297㎡이며 둘레는 2.8Km이다. 서도는 해발 168.5m로 뾰족
한 원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면적은 88,740㎡, 둘레는 2.6Km이다. 정상으로의 접근이 어려워 괭
이갈매기와 함께 사람의 흔적이 묻지 않은 태고의 모습을 보인다. 서도의 북서쪽 해안의 물골 바
위틈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지표수는 하루에 1,000ℓ정도의 귀중한 식수원으로 쓰인다. 이곳 서도
에 주민숙소가 있다.
독도에는 괭이갈매기, 슴새, 바다제비 등이 번식하고 철새이동 시기에는 멧도요, 물수리 ,노랑지
빠귀, 노랑발도요 등이 머물다 가며 괭이갈매기는 독도의 텃새이다. 자생 꽃으로는 박주가리, 왕
해국, 초종용, 술패랭이, 참나리, 땅채송화 등이 있다.
독도는 460만년전 해저 용암분출로 생성 되었으며 512년 신라지증왕 13년에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로 신라에 병합되었고, 1696년에 안용복이 일본으로부터 울릉도.독도는 조선 영토라는 서계를 받
았다. 또한 1900년에 울릉도의 관할구역을 독도로 규정하는 칙령 제41호 반포, 1914년 울릉도 및
독도의 관할권을 경상북도에 편제, 1952년 독도를 포함한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
언」(한국 국무원고시 제14회), 1953년 울릉도 주민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색대 창설 및 독도경비
업무 수행(홍순칠 외 32명), 1956년 국립경찰의 경비업무 인수 및 독도의용수비대 철수했다. 최종
덕이 1981년 독도에 최초로 주민등록 전입 했고, 1982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천연기념물 제336
호」(독도해조류 번식지)하였다가 1999년 12월 10일 “독도천연보호구역”(문화재청 고시 제1999-
25호)으로 명칭 변경, 2000년 행정구역상 독도리 신설(울릉군 조례 제1395호), 독도 등 도서지역
생태계 보전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독도를 “특정도서”로 지정(환경부), 2003년 독도우편번호 부
여(799-805), 2005년 독도(동도)개방, 독도 입도 허가제→신고제로 전환하였다.
이곳에 사는 인구는 1953년 4월 20일 독도 의용수비대 창설 및 독도경비업무 수행, 1965년 3월
최종덕 독도 거주 어로 활동 시작, 1981년 10월 14일 주민등록 최초 전입(최종덕), 1991년 11월
17일 김성도, 김신렬 부부가 전입하였고, 이들 주민등록 주소는 독도리 20-2번지이다. (울릉군 독
도관리사무소 ‘독도’에서 발췌)
독도야, 사랑해!
예술인 명단에 있는 20~30명 정도의 사람들은 독도의 정상까지 간다고 하기에 기대를 했는데, 배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경비원들이 못 올라가게 했다. 행사에 참여하고 행사를 지켜보느라 처음 와 본 독도 섬
조차 제대로 감상을 못하고, 독도 사진도 못 찍고, 정상에 올라가는 꿈조차 무산되어 언젠가 다시 한 번
와야 될 것 같은 아쉬움을 남기고 독도를 떠나왔다.
나는 진정으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하고 있는가. 진실한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랑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언제나 조용하듯이 진정한 나라사랑도 조용하면서 깊어야 한다. 밤에 사람들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들이 많이 성숙되어 있다.
사진: 임춘규, 사랑하는 두 딸들과
저녁엔 울릉군민회관에서 나홍주 교수님 강연과 나의 '독도여, 너는'이라는 시조낭송이 있었다. 나홍주
교수님 강연은 내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고, 독도사랑을 북돋워주었다. ‘근간 독도 문제동향과 그 대응 고
찰’이라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내용인즉 당연히 내 땅을 가지고 ‘지나치게 내 땅이라 우기고 있는 넌센
스’를 지적했다. 아래 내용은 나홍주 교수님의 발표문에서 요약한 것이다.
사진: 한민족 민족사관, 나홍주 교수님
역사적인 여러 가지 서류 즉 연합국최고사령관(SCAP)의 SCAPIN No.677(1946. 1. 29)에 독도가 한국땅
임이 분명하게 명시가 되어 있고 일본총리부령 제24호(1951. 6. 6)에도 “독도 등이 일본도서가 아니
다”고 규정되어 있는데도 일본이 계속 ‘탐욕’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캅(SCAP) 행정구역지도(1946.
2)의 일본 및 남한지도에도 분명히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나라 경계 안에 들어 있다. 나홍주 교수의 자료
에 의해 일본이 독도에 대해 제시하는 주장 중 잘못된 것을 요약해 본다.
사진: 한민족독도사관, 독도의 서도
사진: 한믹족독도사관, 독도
1.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문제: 우리 고유영토인 “독도”를 가지고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 독도 공동관리 방안: 일본의 일부학계(와다교수)가 일종의 독도 공동관리 방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독도’를 한국땅으로 인정하고 한국은 독도주변 ‘바다’를 일본 어선들에게 개방한다.”는 방안을 국제학
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으나 이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왜냐하면 독도주변 바다도 대한민국의 영
해주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안은 대한민국의 독도에 대한 온전한 주권에서 벗어난 일종의
‘독도 공동관리’의 한 형식으로 한국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
문이다.
3. 다자교섭협정: 독도문제를 양 당사국만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을 찾아서 관련국을 포함한 다변교섭,
협정을 통한 해결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안은 독도영토주권을 협상의 대상으로 전제한다는 점에
서 절대로 한국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를 철저히 경계하여
야 한다. 동 제안자인 “기미에 하라” 교수는 “일본이 정신대 문제를 포함하는 과거사 정리의 한 부분으로
독도/다케시마를 제공하는 것으로써 한국에 양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 것을 가지고 그들
이 왜 생색을 내야 하는가.
4. 근간 일본 측의 소위 “독도 해결(안)”과 관련한 국내 일부 반응의 문제점:
2008년 11월 18일 서울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독도: 역사적 인식과 국제법적 정의(동북아역사재단 및
인하대학교 공동주체) 제하의 국제학술회의에서의 와다교수가 제시한 것에 대한 부당함 지적이다.
첫째: 독도는 역사적, 국제법적 및 실효적 지배 상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일본이 “한국의 독도
소유”를 인정할 권한이 있을 수 없다.
둘째, 한국의 “독도영토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독도영토주권” 수호는 한․일 관계보
다 상위개념이다.
셋째, 와다교수는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 중,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불법부당하게, 은밀하게 한국의 영
토인 “독도”를 탈취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우선 인정하고, 소위 “독도문제해결방안”을 따로 생각하는 것
이 마땅하다.
넷째,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표시”는 대조선국과 일본국 간 1976년 2월 27일 체결된 병
자수호조규에 의거, 일본 스스로 동 조양 제1조의 “조선국은 자주지방이며 일본과는 평등지권을 보유한
다…. 추호도 임월․시혐하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위반하여, 독도와 조선국을 1905년 1910년에 군사
력을 배경으로 일본에 강제통합하고, 식민지화 한 것은 소위 “독도문제”와는 별도로 진정으로 한국국민
들에게 사죄할 사안이므로 이 문제 와 연계하려는 것은 부당하다.
다섯째, 독도가 역사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는 포츠담선언(8), 연
합국최고사령관 훈령(SCAPIN) 제677호(1946. 1. 29), 연합국과 일본 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 19
(d) 및 한․일 기본관계조약(1965. 6. 22)등을 들 수 있다.
여섯째, 일본총리부령 제24호(1951. 6. 6) 제2조에 명문으로 “독도” 등이 일본 부속도서가 아니라고 규
정되어 있다. 일본은 국제법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법령상에서도 일본 땅이 아닌 대한민국의 고
유영토 “독도”에 대한 “탐욕(greed)"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주권독립국가 간 상대방 국가의 영토를 존
중하는 것이 국제관계 성립의 하나의 필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국제법상 주권은 배타적 관할권이란 특성에서 볼 때, 와다교수의 동 제안은 일종의 공동관리 형
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진: 한민족독도사관, 위령비 건립 제의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년) 6월 이사부가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로 구성되었던 우산국을 신라
에 복속시킨 이래, 고려조, 조선조를 거쳐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이다.
일본정부가 소위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여 결정하자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우리정부에
제시하여 왔을 때, 우리정부가 일언지하에 동 일본제의를 거절하였다. 외무부장관 변영태가 독도관계
특별성명(1954. 10. 28)을 발표한 내용은 지금도 우리 국민 모두가 독도에 대해 가져야 할 마음 자세라
고 볼 수 있다.
“독도는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 품에 안겼다. 독도
는 한국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을 대는 자는 모든 한민족의 완고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예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가 있겠는
가. 일본이 독도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진: 임춘규, 독도, 그 너머
이제는 독도를 조금 높은 차원에서, 조용하고도 깊게 사랑할 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깊이 애국심
이 자라나도록 조용한 파문이 번져가야 한다. 자기 것을 아끼는 마음가짐으로 독도를 아껴야 한다.
우리 민족 모두가 한 번쯤은 와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정상에도 올라가 볼 수 있도록 독도를 개방해야 한
다. 특히 자라나는 우리의 2세들에게 독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
생들이 독도탐방에 관심을 갖도록 국가적 교육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주거하고 생업도
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 또 주변의 해변을 이용하여 관광지로도 개발하여, 국내인 뿐 아
니라 외국인들도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토를 가지고 왜 우리가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하는가.
울릉도의 해안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동해의 섬, 아름다운 울릉도와 독도를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추진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출처: 한민족독도사관, 울릉도 전망대을 오르며
출처: 서울교육소식, 권두시<200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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