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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간결한 언어에 깃든 폭넓은 언어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6. 6. 2.

간결한 정신에 깃든 폭넓은 언어

김민정

을미도 해변가에

돌밭을 더듬다가

낙지가 물고 있어

질려 있는 돌을 본다

심장이

뛰고 있는 소리

견뎌온 돌의 시간

-「이력을 헹구며」전문

혼자 외톨이라고 느낄 때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무언지 모를 억울함 때문에 소리치고 싶은 날, 비로소 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찾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을미도 해변을 걷던 지난 해, 돌에 달라붙은 낙지를 발견했다. 돌에서 그 낙지를 떼어내려하자 빨판에 힘을 주며 더욱 돌을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절대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듯이……

내 삶의 허물들도 혹, 저러했을까? 쓸모없는 것, 버려야할 것에 시간을 낭비하며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좀 더 가치 있고 알찬 것을 바라야 할진데 나는 지금 무엇에 끌려 여기까지 왔는가.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아온 비대한 내 영혼에게 송구하다.

진정한 하나를 얻기 위해서 아낌없이 아홉을 버릴 줄 아는 것이 참된 비움이다. 소슬하게, 웃음도 군살은 다 빠진 웃음을 물고 여름쪽으로 창을 낸다.

오관이 짜릿하게

팝콘처럼 뻥, 터지는

바쁜 걸음 멈춰 놓고

가벼이 건너시라

군살은

다 빠진 웃음,

불순물 이제 없는!

―「웃음 다이어트」 전문

문학은 종교가 아니고, 철학도 아니며, 도덕도 아니다. 문학에서 추구하는 것은 진眞이며, 선善이며, 미美다. 문학은 인간다운 진실을 추구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착함을 추구하고, 감동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종교를 초월하고, 철학을 초월하고, 도덕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문학이라면 그것은 어느 것에도 속박되어서는 안 되는 자유인의 표상, 자유정신의 표상이어야 한다. 종교, 철학, 도덕, 권력, 재력,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만이 어느 것에도 구애됨이 없고, 어느 것에도 속박됨이 없는 자유로운 문학정신이 나타날 것이며 문학다운 문학이 창작될 것이다.

내가 쓰는 한 편의 시 속에는 나의 모든 사유와 생활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나타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싶은 자유정신이 녹아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 허난설헌의 작품보다도 황진이의 작품을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면 그것은 황진이의 작품이 더 진솔하고 속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더 쉬운 언어로 쓰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위대한 작품들은 쉬운 언어로 쓰였다. 지금껏 그렇게 작품을 써 왔지만, 앞으로도 나는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쉽고 간결한 언어로 작품을 쓰려고 한다.

시를 쓰기 시작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자유시에 심취했다. 그러나 대학시절부터는 마냥 풀어 헤쳐진 자유시보다 조금은 틀이 정해진 정형시 속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시조 속에서도 사설시조를 쓰고 있는 경우가 있고, 그것을 자유로운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유시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후기의 사설시조를 서구의 자유시가 들어오기 전, 우리 스스로의 자유시 태동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몇 편의 사설시조를 쓴 적이 있지만, 내가 쓰는 시들은 대체로 3장 6구 12음보의 정형에 어긋남이 거의 없는 작품들이다.

형식에서 어긋난다면 그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앞으로도 나는 정형에 맞는 작품을 쓸 것이다. 정형시인 우리의 시조는 12음보만 잘 맞춘다면 한 음보 안에서 한 두 글자가 많거나 적어도 자연스러운 시조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얼마나 적절한 낱말을 그 자리에 앉혀야, 말은 짧고 뜻은 긴 언단의장(言短意長)의 문장이 될까하고 고민해야 하는 문학이다. 시조시인은 정말로 언어의 조련사가 되어야 하고, 군더더기의 말은 과감하게 생략할 줄 아는 결단력도 지녀야 한다.

여러 이론을 알고 있다고 하여 수학공식처럼 일일이 대입해 가면서 작품을 쓰지는 않는다. 작품창작은 느낌과 감동이 우선이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느낌과 감동이 있어야 영감이 떠오른다. 시는 이론보다 먼저, 감성이다.

내가 쓰는 시는 대체로 서정시이다. 그것은 생활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희로애락이다. 시를 위한 생활이 아니라 생활 속의 잡다한 생각, 감정, 번뇌들이 시의 주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결국 나의 시는 내 생활의 반영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고, 만남을 기뻐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나는 노래하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싶고 표현해 보고자 한다.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나 조선시대 황진이보다 더 멋진 사랑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노래’가 탄생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러나 사랑의 시는 자칫 흔하고 가치 없는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써보는 주제가 ‘사랑’이라서, 아주 뛰어난 작품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단점이 있다. 그래서 아주 강렬하거나 애절하거나 진솔하거나 아름답거나 할 때만이 ‘사랑의 시’로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될 수 있다. 나는 사랑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작품,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작품을 탄생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시집『사랑하고 싶던 날』『지상의 꿈』『나, 여기에 눈을 뜨네』등이 거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내 시의 소재가 ‘사랑’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영동선의 긴 봄날’은 연작 서사서정시조집이고, 때로는 사회적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주제든 내 것으로 소화하여 내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다른 시인과의 변별화 작업을 통해 나만의 개성, 즉 나만의 특성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좀 더 열정적으로 인생을 사랑하고 주변을 사랑하며 내가 만나는 인연들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반영으로써 시를 쓸 것이다. 하지만 시의 내용이 내 삶을 100% 반영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이므로, 나의 삶과 나의 상상력이 함께 만들어 내는 가상공간이며, 나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단시조를 많이 쓰면서 단시조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 더욱 시상을 압축하고 함축하여 짧은 글에 깊은 뜻을 싣는 언단의장(言短意長)의 미학, 단시조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주고 싶다.

비 내려도

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는

불씨 되어

언제든 어디서든

그대 향해 활활 타오를

가슴에

불잉걸 하나

간직하며

살고 싶은

-「불꽃이고 싶은」전문

기찻길 아스라이

한 굽이씩 돌 때마다

아카시아 꽃내음이

그날처럼 향기롭다

아버지

뒷모습 같은

휘굽어진 고향 철길

돌이끼 곱게 갈아

손톱끝에 물들이고

새로 깔린 자갈밭을

좋아라, 뛰어가면

지금도

내 이름 부르며

아버지가 서 계실까

-「심포리 기찻길」전문

투사로 인한 매개물

아름다움과 추함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 이것은 그 판단이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주체에 있다는 것이다. 같은 사물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은, 각 개인의 기억이나 경험, 철학적인 것이 바탕이 되어 대상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지 모른다. 자신만의 세상을 스스로 창조하고 그 창조딘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아니라 꽃이 나를 보고 있다는 착각. 유리창이란 매개물이 있음에도 꽃은 내가 되고 나는 그 향기로 젖기도 한다. 투사로 인한 착각을 긍정적으로 하면서 2016년을 열었다. 반쯤 남은 물을 ‘반밖에’가 아니라,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꽃이 본 창밖 풍경

내 안으로 끌어온다

적당한 거리 유지

안전을 확보하듯

유리창

사이에 두고

오고가는, 꽃과 나

- 「투사」 전문

차를 끓이며

시간들이 고여 와서 잘박대며 젖어든다

둥글게 물이 들어 와글대는 저녁 창에

뉘인가 휘파람소리 빈 찻잔을 울린다

-「차를 끓이며」전문

어느 사계절 차가 우리들 가까이 있지 않은 적이 있을까만 겨울에 마시는 한 잔의 차는 더 절실하고 고맙고 친근감마저 느끼게 된다. 눈 내리는 겨울날, 다정한 친구를 만나 옛이야기에 젖으며 마시는 한 잔의 차는 얼마나 훈훈하고 흐뭇하고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지!

더구나 그것이 우리들의 미각을 일시적으로 산뜻하게 해주는 차가 아니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마실 수 있는, 음미할수록 그윽하고 향그러운 차라면 운치는 한층 더 살아날 것이다. 소녀가 자라 여성이 되고, 직장 생활을 하는 숙녀가 되고, 결혼을 하고, 애기엄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눈 내린 어느 겨울날 우리가 찾아갔던 계룡산 남매탑사에서 마신 한 잔의 차맛이다.

우리가 남매탑사를 찾은 날은 겨울방학 중의 어느 휴일이었다. 그곳에는 마침 친구가 아는 스님이 한 분 계시다기에 그분도 뵐 겸 겨울 산행을 했던 것이다. 버스를 갈아타면서 동학사까지 가서 남매탑사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휴일이었지만 날씨가 추웠는지 등산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흐릿한 하늘에선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먼 산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골짜기에도 눈은 꽤 많이 덮여 있었다. 앙상한 겨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윙윙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적한 산길,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좀 가파른 길이라 미끄러웠다. 눈 때문에 운동화는 폭삭 젖었고,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길옆의 나뭇가지를 잡으며 걸었다. 겨우 목적지인 탑사에 도착하였다. 안 계시면 어쩔까 염려했으나 스님은 마침 계셨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곳은 절이라기보다 작은 암자였다. 스님도 두 분밖에 안 계셨다. 우리들의 모습이 퍽 추워 보였는지 따뜻한 아랫목에 자리를 권하고 우물에서 물을 떠다가 주전자에 끓이셨다.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차 대접을 하시겠단다. 조그마한 화롯불에서 주전자의 물이 끓기 시작했고, 스님은 차통에서 차잎을 꺼내어 찻잔에 넣으셨다. 끓인 물을 그대로 찻잔에 붓는가 생각했더니 웬걸 60도 정도로 물을 식혀야 한단다. 그런 다음이라야 차가 잘 우러나고 차맛도 제대로 난다는 것이다. 물을 부은 다음에도 뚜껑을 덮고 차의 맛이 우러나기를 기다리며 찻잎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차는 처음 마셔보는 설록차였다. 처음이라 차의 맛은 잘 몰랐지만 차이름은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눈이 쌓인 겨울날 마시면 정말 어울리는 차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얼마후 방문을 열어 놓고 차를 마시며 먼 산을 바라보았는데, 그 곳에는 하얀 눈이 산 가득 쌓여 있었다. 눈발은 어느새 그치고 뉘엿뉘엿한 석양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산중의 겨울은 다섯 달이 넘어요.”

먼 산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씀하시는 그 모습과 차맛이 어쩌면 그리 어울리는지! 그 눈빛 속에는 세속의 욕망도 욕심도 없어 보였다. 차맛은 그 순간, 스님의 눈빛처럼 그저 덤덤하고 담담한 그러면서도 뒷여운이 남는 것이었다.

산중의 겨울은 다섯 달이 넘는다는 말은 일찍 추위가 오고, 늦게까지 눈이 남는 것으로 알 수 있겠지만, 그 말 속에서 또한 산중생활의 고적함,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외롭고 고적할 때 마시는 한 잔의 차,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친구같은, 연인같은 차일 것이다. 차를 알고, 차를 마시는 사람은 그 차에서 그윽하고 부드럽게 뒷여운이 남는, 한없이 은은한 그 맛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따뜻한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세상에 대한 모든 욕망과 욕심을 씻어 버리고 가금 속을 훈훈하게 하여 끝없는 인간애를 갖게 하고, 또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는 것이리라.

그곳엔 스님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보살상을 그리는 스님이셨다. 제일 그리기 어려운 것이 보살의 얼굴 표정, 온화한 미소란다. 그림이 잘 안 그려질 때는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구상을 하신다고. 그날 나는 설록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보이는 것은 겨울산의 앙상함과 쌓인 눈, 들리는 것이라곤 산골의 바람소리, 그리고 가끔 산새의 고즈넉한 울음소리, 세상의 고요가 그 자리에 모두 모인 듯 했다. 한 잔의 차 속에서조차 고요가 우러나고 있었다. 참으로 고즈넉한 겨울 하루였다. 우리들의 마음도 이심전심, 무념무상의 상태로 그냥 평화로왔다. 대접받은 것은 한 잔의 차였지만 거기엔 따스함과 고요함과 평화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삶은 늘 고독하지만, 무엇인가 누군가 사랑할 수 있어 그 고독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문득문득 앙상한 나무들이 적나라한 제모습을 드러내듯 나는 누구인가 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명상에 잠겨 본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들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츰 내 직장, 내 가정속에 푹 파묻혀 세상 사람들과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이 우울할 때는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싶다. 설록차든, 작설차든, 국화차든, 연향차든... 그러면서 잃어가는 주변에 대한 사랑과 옛친구들에 대한 관심을 그윽한 차향기와 함께 회복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절실한 시조도 내 곁에와 앉으리라.

실선으로 뜨다가

점선으로 잠기다가

밀물이 되었다가

썰물이 되엇다가

저 혼자

잠드는 바다

수평선이 부시가

- 「찻잔 속의 바다」 전문

모래울음을 찾아

이번 선집은 『나, 여기에 눈을 뜨네』『지상의 꿈』『사랑하고 싶던 날』『영동선의 긴 봄날』『백악기 붉은 기침』에서 눈길을 잡는 몇 편씩을 골랐음을 밝힌다. 시조의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만상이 고맙기 그지없다.

함께 떠나자, 모래울음을 찾아!

‘바람이 다져놓은/ 언덕으로 오를수록/ 단단한/ 울음의 뼈가/ 문양으로 드러’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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