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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현대시 100년

김민정의 한국현대시 100년 제15회 - 그날이 오면 / 심훈 (국방일보, 2014. 04. 14)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4. 4. 13.

 

 

  

 

‘조국 광복의 날’ 간절한 염원 표현

[현대시] 그날이 오면 / 심 훈
2014. 04. 13 16:01 입력

3·1운동 11주년 맞아 독립정신 고취
투철한 현실 인식·애국심 집대성

심훈의 ‘그날이 오면’은 1930년 3월 1일에 쓴 시다. 1932년 고향에서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무산되고, 1949년 가족들에 의해 유고 작품집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시와 수필이 들어 있다. 표제시인 이 시는 경성제일고보에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해 진두지휘하다가 투옥된 심훈의 투철한 현실인식과 애국심을 집대성한 저항시의 하나다.

 창작 동기는 3·1절 11주년을 맞은 감회이고, 창작 의도는 조선 사람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에서 ‘그날’이란 조국 광복의 날, 조국 해방의 날을 의미한다. 화자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라고 하며, 조국 광복이 오는 날을 극한적인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한 극한적·환각적 표현은 화자가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 준다.

 화자는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와 같이 죽음마저 초월하고 있다. 2연도 1연과 동일구조다. 전반부는 ‘그날’이 올 때의 기쁨을 제시하고, 후반부는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와 같이 죽음을 초월한 자의 모습을 제시한다.

 이 시는 격정적인 표현으로 격렬한 정서, 절절한 호소, 강인한 의지, 비장감(悲壯感), 치열한 저항성 등을 드러낸다. 영국의 비평가 바우라(Bowra)는 그의 비평서 ‘시와 정치’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한 본보기로 들며,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했으나, 그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한 바 있다”고 평했다.

 시인·소설가·영화인이었던 심훈(沈熏·1901~1936)의 본명은 대섭(大燮)이며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5년 경성제일고보에 입학, 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되고 퇴학당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가 1923년 귀국 후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했고, 1926년에 ‘동아일보’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했다. 이듬해 일본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했고, 6개월 후에 영화 ‘먼동이 틀 때’를 단성사에서 개봉해 성공했다. 1930년 조선일보에 소설 ‘동방의 애인’과 ‘불사조’를 연재하다 검열에 걸려 중단, 1932년 고향 충남 당진 필경사라는 곳에서 창작생활에 몰두했다. 1935년 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되자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 ‘상록수’를 영화화하려 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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