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쁨 뒤 슬픔만이 밀려와…
- 2014. 04. 06 14:43 입력
' 마음’에 맞는 다양한 은유적 표현 아
름다운 서정시… 가곡으로도 애창
마음은 / 김동명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1937년 조광 3권 6호에 수록된 김동명의 작품이다. 1연은 꿈, 2연은 정열, 3연은 방황, 4연은 불안감이 매체로 돼 있는 이 시는 참신한 이미지들이 많다. ‘내 마음’을 원관념으로 내놓은 다음 그것에 상응하는 보조관념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을 제시하는 함축적 표현으로 이 작품은 은유법을 설명할 때 예로 많이 쓰인다.
김동진이 작곡한 가곡으로도 널리 애창되고 있는 이 시는 쉬운 내용이면서도 아름다운 서정시다. 작품 끝의 ‘오오’ ‘주오’ ‘하오’와 ‘지리다’ ‘오리다’ 등의 부드러운 어미는 각운으로 내재율을 살리기 위한 의도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전반부인 1·2연에서는 ‘~부서지리라, ~남김없이 타오리다’ 등의 표현으로 사랑을 즐겁고 타오르는 것으로 사랑의 정열을 나타내지만, 후반부(3·4연)에 오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등의 표현으로 외롭고 슬픈 것으로 구상화해 사랑의 애상감을 드러낸다. 시각적 심상을 많이 드러내며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의 기쁨과 그 이면에 깔린 애상감이다.
이 시는 사랑은 처음에는 즐겁고 불타오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외롭고 슬프게 끝나고 만다는 사랑의 무상함을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동명(金東鳴·1900~1968)의 호는 초허(超虛)다. 민족적 저항시인, 전원파 서정시인, 낭만적 은유시인, 종교시인 등으로 평가되는데 문학과 사업, 교직과 정치를 넘나들며 생활했다.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허균의 출생지기도 하다)에서 아버지 김제옥과 어머니 신석우 사이에서 빈궁한 소작농의 외아들로 출생했으며, 어머니의 뜻으로 9살 때 이주해 함경남도 원산과 함흥에서 성장했다.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 아오야마 전문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1922년 ‘개벽’지에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이라는 보들레르에게 바치는 시편으로 등단, 1930년 ‘나의 거문고’, 1936년 ‘파초’를 간행했다. 1942년 ‘술노래’를 끝으로 붓을 꺾고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1947년 월남,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거의 시풍과 서정성에서 벗어나 현실과 정치·사회적인 풍자와 관념에 관한 글을 집필했다. 1947년 시집 ‘하늘’ 발간, 1955년 시집 ‘진주만’으로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5년 ‘적과 동지’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며 정치평론을 했다. 1960년 초대 참의원에 당선돼 5·16 전까지 정치생활을 하다 1968년 고혈압으로 사망, 망우동 묘소에 안장됐다가 2010년 사천면 선영으로 유해가 이장·봉안됐다. 그의 유명 시로는 ‘내 마음은’ ‘수선화’ ‘파초’ ‘우리말’ 등이 있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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