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민정 현대시 100년

김민정의 한국현대시 100년 제13회 - 오감도 / 이상 (국방일보, 2014. 03. 31)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4. 3. 30.

 

 

 

 

 

고정관념 허무는 파격적 詩 꽃 피워

[현대시]오감도(烏瞰圖) - 시 제1호 / 이상
2014. 03. 30 17:12 입력

여러 해석으로 구체적 의미파악 불가 난해시 비판으로 신문 연재 중단 아픔


 이 작품은 이상의 ‘오감도’ 중 ‘시 제1호’다. 오감도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연재됐는데, 난해시(難解詩)라는 독자들의 항의로 30회 예정이던 것을 15회에서 중단했다. 오감도는 그만큼 파격적인 시로, 그때까지 시의 고정관념을 크게 타파했던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13인의 아해’는 최후의 만찬에 나온 예수의 13제자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고, 무수(無數)를 나타내어 ‘13’으로 했다는 설도 있다. 평자에 따라서 무한한 견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그 구체적 의미 파악이 불가능하다. 이 작품에서 독자들이 막연하게 느끼는 것은 불안감·공포감·혼란감 등이다.

 ‘오감도’라는 제목은 한때 조감도를 식자공이 잘못 인쇄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이상이 의도적으로 ‘오감도’를 쓴 것이며, 새 조(鳥)자에서 한 획을 빼어 까마귀 오(烏)자로 썼던 것이다.

 이상(1910∼1937)의 본명은 김해경(海卿)이다. 1912년 백부 김연필(金演弼) 집에 입양돼 보성고보, 경성고공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를 마쳤다. 그림에 재질이 있었으며 일본어도 유창했다. 건축과 재학 중 학생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돼 근무하던 중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됐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인해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배천온천에서 폐병을 이기기 위해 요양하며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34년에 시 ‘오감도(烏瞰圖)’ 연재, 1936년 ‘조광(朝光)’지에 소설 ‘날개’를 발표하고 그 해에 결혼, 도쿄로 가 ‘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했다.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체포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폐병 악화로 사망했고, 유해는 화장돼 경성으로 돌아왔다. 1957년 80여 편의 ‘이상전집(李箱全集)’ 3권이 간행됐다.

오감도(烏瞰圖) - 시 제1호 / 이상

 13人의 아해兒孩가 도로道路로 질주疾走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길이 적당適當하오.)

 제第1의 아해兒孩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2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3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4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5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6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7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8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9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10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11의 아해兒孩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12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第13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13인의 아해兒孩는 무서운 아해兒孩와 무서워하는 아해兒孩와 그렇게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事情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中에 1인人의 아해兒孩가 무서운 아해兒孩라도 좋소.그중中에 2인人의 아해兒孩가 무서운 아해兒孩라도 좋소. 그중中에 2인人의 아해兒孩가 무서워하는 아해兒孩라도 좋소. 그중中에 1인人의 아해兒孩가 무서워하는 아해兒孩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適當하오.) 13人의 아해兒孩가 도로道路로 질주疾走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