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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현대시 100년

김민정의 한국현대시 100년 제12회 -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국방일보, 2014. 03. 24)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4. 3. 23.

 

 

 

 

찬란한 슬픔의 봄 기다리며 살아가리라

2014. 03. 23 18:19 입력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절대적 가치로

소망 성취·보람·상실의 허탈감 표현

모란이 피기까지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시는 1934년 ‘문학’에 발표된 30년대 순수문학파 김영랑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김영랑은 1930년 박용철·정지용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창간하며 언어의 아름다움과 감미로운 음악성을 표현해 유미주의적 순수시를 썼다.

 이 시에서의 모란은 자연의 꽃인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의 꽃으로 볼 수 있어 꿈이나 이상으로 볼 수도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이 시는 네 단락으로 나눠볼 수 있다.

 1~2행은 현재로, 시적 화자는 모란이 필 그의 봄을 기다린다. 3~4행은 미래로, 과거의 경험에 비춰 모란이 떨어져 다시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을 예견한다. 5~10행은 과거를 나타내며, 설움에 잠기게 될 미래의 상황이다. 시적 화자는 오직 모란이 피어 있는 순간에만 삶의 보람을 느낀다.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것이 모란으로 대유된 어떤 절대적 가치의 미라고 본다면, 모란이 피어 있을 때는 자신의 소망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해 보람을 느끼다가, 모란이 지고 나면 그 보람을 상실한 허탈감에 빠져 마치 한 해가 다 간 것으로 생각한다. 화자의 한 해는 모란이 피어 있는 날과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날로 이뤄져, 모란이 피어 있는 날을 제외한 나날은 ‘마냥 섭섭해 우는’ 서러움의 날들이다.

 11~12행은 1~2행의 반복으로 모란이 피는 날을 계속 기다리고 있겠다는 의지와 자신이 기다리는 봄이 찬란한 봄보다는 슬픔의 봄임을 말하고 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은 아름다움에의 도취와 그것이 금방 사라지고 마는 덧없음에 대한 슬픔이 함께 나타난다. 모란이 피어 있는 시간이 5일 정도밖에 안 된다면 그 모란이 지고 없는 360일 그는 모란을 잃은 설움의 시간 속에서 모란이 다시 피기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슬픔만이 아닌, 기다림의 봄이기에 ‘찬란한 슬픔’인 것이며 또한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삶의 원동력으로 볼 수 있다.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 전남 강진 출생이며 부유한 지주 집안의 5남매 중 장남이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 졸업, 1917년 휘문의숙 입학, 3학년 재학 중에 3·1운동이 일어나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체포돼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공부하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중단하고 귀국했다. 유학 중 괴테·키츠 등의 외국문학에 깊이 빠졌고, 1925년 고향에서 김귀련(金貴蓮)과 재혼했다.

 김영랑의 유명작품으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 아실이’ ‘오매 단풍 들것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독을 차고’ 등이 있다. 1935년 첫 시집인 ‘영랑시집’을 간행했다.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다. 광복 후 대한청년단 단장과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1950년 9·28수복 때 폭탄에 맞아 사망했다. 광주광역시 공원과 강진읍 그의 생가 입구에 시비가 있다. 2006년부터 모란이 피는 4월 말에 강진읍의 생가 일대에서 영랑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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