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진달래꽃
- 국민 애창곡<4> 우리나라 가수가 최초로 부른 대중가요 ‘사의 찬미’
- 2014. 02. 02 16:32 입력
떠나는 임 향한 변함없는 사랑 표현-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작품슬픔과 한의 정서 미적으로 승화
‘진달래꽃’은 김소월 시의 정수(精髓)이며,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민족적인 한의 정서와 민요조의 전통적 운율이 정교하게 결합돼 있고 형태적·소재적 측면에서도 전통적 요소를 현대시로 계승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으로 극복, 전통적인 정한(情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리듬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별의 정한, 즉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임에 대한 슬픈 정서를 소박하고 진솔한 정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떠나가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가는 임이지만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겠다’는 사랑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리고 임의 ‘가시는 걸음걸음’ 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게 하겠다’는 이별의 슬픔을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와 그 아픔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인고(忍苦)의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녹아 있다.
소재 또한 우리 민족에 익숙한 진달래꽃을 사용했다. 이 소재는 애(哀)와 한(恨)을 미적 정서로 승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달래꽃을 통해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 상황을 제시하고, 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붉은빛을 띠는 진달래꽃은 임에 대한 화자의 강렬한 사랑이고, 떠나가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순종의 상징이다.
이 시에는 임과 이별하는 상황에서 그 슬픔을 인내하는 마음이 절실하게 형상화돼 있는데, 이러한 정서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가시리’ ‘서경별곡(西京別曲)’ ‘아리랑’ 등으로 계승돼 온 우리 전통 시가의 한 맥과 상통한다. 이 작품은 수미상관의 4연 12행으로 이뤄졌고, 7·5조의 음수율과 3음보 민요조의 전통적 가락과 구화체(口話體)를 사용하고 있어 더욱 친근하다.
‘진달래꽃’은 1922년 잡지 ‘개벽’ 25호에 실렸고, 1925년에 간행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에도 수록됐다.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에는 토속적 언어로 그리움의 정한을 표현한 그의 작품 127편을 반국판 234면에 싣고 있다. 김소월 생존 시에 간행된 유일한 시집이자 2011년 근대출판물로서는 유일하게 초판본이 문화재로 등록됐다.
김소월(金素月·1902~1934)의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북 구성군에서 출생하고, 평북 곽산군에서 성장했다. 1915년 평북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문학스승 김억을 만나 그의 격려로 1920년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 시를 발표했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으며, 1916년에는 홍명희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3·1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경성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학했다. 1923년에는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관동대지진 발생 후 중퇴하고 귀국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조부의 광산 일과 동아일보 지국 일을 하다 모두 실패하자 술로 세월을 보냈다. 1934년 33살의 나이로 음독자살했다. 1981년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추서됐으며 서울 남산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진달래꽃?은 김소월 시의 정수(精髓)이며,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민족적인 한의 정서와 민요조의 전통적 운율이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고, 형태적·소재적 측면에서도 전통적 요소를 현대시로 계승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으로 극복하여, 전통적인 정한(情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며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리듬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별의 정한, 즉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임에 대한 슬픈 정서를 소박하고 진솔한 정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떠나가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가는 임이지만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겠다는 사랑, 그리고 임의 '가시는 걸음걸음'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게 하겠다는 이별의 슬픔을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또한 그 아픔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인고(忍苦) 등의 표현에 잘 나타낸다.
소재 또한 우리 민족에게 익숙한 진달래꽃을 사용하였다. 이 소재는 애(哀)와 한(恨)을 미적 정서로 승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달래꽃을 통하여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의 상황을 제시하고, 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붉은 빛을 띄는 진달래꽃은 임에 대한 화자의 강렬한 사랑이고, 떠나가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순종의 상징이다. 떠나가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는 불교의 산화공덕을 연상하며, 시적 자아의 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상징한다. 이 시에는 임과 이별하는 상황에서 그 슬픔을 인내하는 마음이 절실하게 형상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정서는《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시리》《서경별곡(西京別曲)》《아리랑》등으로 계승되어온 우리 전통 시가의 한 맥과 상통한다. 이 작품은 수미상관의 4연 12행으로 이루어졌고 7·5조의 음수율과 3음보 민요조의 전통적 가락과 구화체(口話體)를 사용하고 있어 우리민족에게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진달래꽃’은 1922년 잡지 ‘개벽’ 25호에 실렸었고, 1925년에 간행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되었다. 시집 『진달래꽃』은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되었으며, 토속적 언어로 그리움의 정한을 표현한 그의 작품 127편을 반국판 234면에 싣고 있는 김소월 생존 시에 간행된 유일한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진달래꽃’, ‘먼후일’, ‘산유화’, ‘초혼’,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등의 유명 작품이 실려 있으며, 이 시집은 2011년 근대출판물로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등록됐다.
김소월(金素月)(1902~1934)의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북 구성군에서 출생하고, 평북 곽산군에서 성장했다. 광산을 경영하는 조부 손에서 평북 곽산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평북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문학스승 김억을 만나, 그의 격려로 1920년 동인지 『창조』5호에 처음 시를 발표했고,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으며, 1916년에는 홍명희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3.1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경성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학했고, 1923년에는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 발생 후 중퇴하고 귀국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조부의 광산일을 도왔으나 실패하고, 개설한 동아일보 지국마저 실패하자 술로 세월을 보내다 1934년 평북 곽산에서 33살의 나이로 음독 자살했다. 1981년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추서되었으며, 서울 남산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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