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불놀이 2014. 01. 19 14:42 입력
[현대시]불놀이
식민지 시대 젊은이의 불안한 정서 노래
시대적 아픔·현실·비애 등 개인적 서정성 담아 표현
1919년 2월 ‘창조(創造)’ 창간호에 발표됐던 한국 자유시의 효시 작품으로 알려진 주요한(朱耀翰)의 시다. 작자는 ‘불놀이’의 창작 동기를 “서양의 현대시 중 P. 베를렌·C.P. 보들레르 등 상징주의 작품이 마음에 들고 충격적이어서 한글로 그런 종류의 시를 써 보고 싶어 처음으로 시험한 것 중의 하나다”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4월 초파일, 곧 석가탄신일을 맞아 평양 대동강에서 벌어지는 불놀이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대동강 불놀이의 서경과 화자의 주관을 통해 시대적 아픔과 압박받는 현실에 대한 민족적 비애를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5연 35행으로 이뤄진 시로, 산문의 형태를 취한 듯하지만 3·4음절을 율격 단위로 한 3음보의 자유시다.
형태 면에서 보여 준 자유로운 형식과 표현에 있어서의 상징적 수법과 대담성, 내용면에서 교훈성이나 계몽성을 벗어나 개인적인 서정을 노래했다는 점 때문에 현대시의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시는 식민지 상황에 놓인 한 젊은이의 정서적 불안과 분열을 노출하고 있다. 현실이 ‘나’에게 어둠으로 느껴지는 것은 임이 죽었기 때문이다.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라고 해 시적 자아는 죽음과 삶, 즉 임을 잃고 죽음에 대한 유혹과 사월 초파일 날, 흥겨운 불꽃놀이의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다. 그러다가 매화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놓는 시뻘건 불덩이를 보며 그는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와 같이 어둠과 밝음, 물과 불, 죽음과 삶이 대립하며 갈등하는 가운데 이 시는 전개된다. 이 시의 내용은 식민지하에 고뇌하는 젊은 주요한과 무관하지 않다. 이후 서구 문학의 유입과 함께 3·1운동의 좌절로 인한 절망감은 더욱 증폭된다.
주요한(1900~1979)의 호는 송아(頌兒)이며 시인·언론인으로 1900년 평양에서 출생해 일본 동경 제1고등학교에서 수학했고, 중국 상하이 호강 대학을 졸업했다. 시집 ‘아름다운 새벽’(1925), 시조집 ‘봉사꽃’(1930) 등이 있다.
불놀이 /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4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위에 내어 던지나, 무정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중략)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
불놀이 /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4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위에 내어 던지나, 무정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 이나 있을까 …….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
(중략)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발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1919년 2월 『창조(創造)』 창간호에 발표되었던 한국 자유시의 효시 작품으로 알려진 주요한(朱耀翰)의 시다. 작자는 「불놀이」의 창작동기를 “서양의 현대시 중 P. 베를렌·C.P. 보들레르 등 상징주의 작품이 마음에 들고 충격적이어서 한글로 그런 종류의 시를 써보고 싶어 처음으로 시험한 것 중의 하나이다.” 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4월 초파일, 곧 석가탄신일을 맞아 평양 대동강에서 벌어지는 불놀이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대동강의 불놀이의 서경과 화자의 주관을 통하여 시대적 아픔과 압박받는 현실에 대한 민족적 비애를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5연 35행으로 이루어진 시로, 산문의 형태를 취한 듯하지만 3·4음절을 율격 단위로 한 3음보의 자유시로 보고 있다.
형태면에서 보여 준 자유로운 형식과 표현에 있어서의 상징적 수법과 대담성, 내용면에서 교훈성이나 계몽성을 벗어나 개인적인 서정을 노랬다는 점 때문에 현대시의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는 식민지 상황에 놓인 한 젊은이의 정서적 불안과 분열을 노출하고 있다. 현실이 '나'에게 어둠으로 느껴지는 것은 임이 죽었기 때문이다.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라고 하여 시적 자아는 죽음과 삶, 즉 임을 잃고 죽음에 대한 유혹과 사월 초파일 날, 흥겨운 불꽃놀이의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이다. 그러다가 매화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놓는 시뻘건 불덩이를 보며 그는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와 같이 어둠과 밝음, 물과 불, 죽음과 삶이 대립하며 갈등하는 가운데 이 시는 전개된다. 이 시의 내용은 식민지하에 고뇌하는 젊은 주요한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서구 문학의 유입과 함께 3․1운동의 좌절로 인한 절망감과 결부되어 감상적(感傷的), 영탄적, 퇴폐적, 애상적 분위기는 더욱 증폭된다.
주요한(1900~1979)은 호는 송아(頌兒)이며 시인, 언론인으로 1900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일본 동경 제1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중국 상해 호강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시집 『아름다운 새벽(1925)』, 시조집『봉사꽃』(193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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