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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죽서루 편지
연둣빛 발을 담근 오십천은 더 푸르고
바위도 앉은 채로 놓여 있는 누각에는
한 천 년 받쳐 든 시간 망울망울 부푼다
양지귀 물들이는 산수유 눈을 뜨고
첫마음 못다 한 말 홍매화 옅은 기침
파릇한 햇살 속에서 숨바꼭질 한창이다
돌을 찧어 구멍 내며 소원을 빌었다던
옛사람 그 손길이 뜰에 아직 남았는데
절반은 눈물꽃 맺혀 그렁그렁 피어 있다
하늘 향해 돛을 단 관동별곡 가사 터엔
송강의 푸른 노래 봄볕 속에 새순 돋고
오십천 아침을 연다 햇살무늬 반짝인다
죽서루 |
우리나라 현대시의 효시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년)라는 작품이다. 당시 열여덟 살 청년 최남선이 잡지
‘소년’의 권두에 발표한 이 시는 기존 정형시의 틀을 무너뜨린 최초의 현대시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현대시의 처음 모습은 창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창가는 원래 노래 부를 때의 가사(신식 노래)를 가리키는 말이었
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경부 철도 노래’와 같은 창가는 훗날 대중가요로 발전하는 시발점이 됐다.
오늘날 흔히 자유시로 불리는 현대시가 탄생한 지도 어느덧 100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한국 현대시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 디지털 시대라 할 수 있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도 한국시는 공전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수천 개의 문예
지와 수만 명을 헤아리는 시인이 등장해 매일 수많은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시가 외형적으론 풍요로워 보
이지만 정작 시를 읽는 독자들은 별로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가 재미없고 따분한 글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시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이라면 사람들은 읽지 말라고 해도 밤을 새워 가며 읽을 것이다. 시는 사회적 산물이다. 시인은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
문이다. 따라서 독자의 가슴에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울림이 있는 시는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 매주 국방일보 지면을 통해 근현대시사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유명 작품 한 편씩을 소개하며 작가의
창작 동기나 배경을 살펴보고, 또 작품이 창작되던 시대 상황 및 작품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국군 장
병들의 시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높이고, 감상의 폭을 넓히려는 이 코너에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앞의 ‘죽서루 편지’는 필자의 최근 시조 작품이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가면서 썼던 유명한 가사인 ‘관동팔
경’의 발생지이기도 한 죽서루에 내가 처음으로 가 본 것은 2012년 봄이었다. 죽서루는 강원도 삼척시에 위치한 보물
213호인 조선시대 누각이다. 죽서루를 구경하고 나서 죽서루에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강원도 삼척 사람이고, 시를 쓰는
사람이면서 너무나 늦게 죽서루를 찾아봤기 때문이다.
오십천 절벽 위 바위에 세워진 죽서루는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처음 창건했다. 그 후 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
부사 김효손이 중창(重創)했다. 죽서루는 특이하게도 17개 기둥의 길이가 제각각이다. 13개는 바위 위에 그냥 세워져 있
고 나머지는 초석 위에 올려져 있다. 울퉁불퉁한 암반 터를 고르지 않고 기둥 길이를 달리해 높이를 맞춘 조상들의 여유
와 융통성이 돋보인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멋스러움이 그리움처럼 아련하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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