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나라 뺏긴 민족의 설움, 극복 의지 표현
-조국을 향한 사랑·상실감 드러내
식민치하 현실 감각 반영한 작품
1926년 ‘개벽’ 70호에 실린 이상화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다. 그는 이 작품에서 민족의 암담한 현실적 비애와 그러한 현실에서 오는 슬픔과 무기력을 자연친화적·민족적 정서의 표현을 통해 극복하려는 저항의식을 나타냈다.
이 작품은 식민치하에서 현실감각의 날카로움과 뜨거운 정열이 결합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이 말하듯, ‘빼앗긴 들’에 과연 참다운 삶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 있다. 제1연에서 물음을 던지고, 마지막 11연에서 답을 하고 있다. 이 시의 처음과 끝은 각각 질문과 대답 형식이다. 그 사이에 있는 아홉 연은 이러한 대답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시를 통해 화자는 일제치하에서 조국의 국토에 대한 강한 애정과 이에 대한 상실감을 보여주고 있다.
4~6연은 그의 눈앞에 아름다운 봄의 들판이 전개된다. 싱싱하고 활기찬 봄의 모습이다. 제7∼8연에서는 화자의 절실한 욕구가 나타난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사랑하며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제9~10연에서는 그동안의 모든 환상을 깨뜨리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어김없이 자연의 봄은 돌아왔지만,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박탈당한 식민지 상황의 절망을 깨닫는다. 마지막 연,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는 괴로운 확인이었던 것이다.
이상화(李相和 1901~1943)의 호는 상화(尙火), 대구에서 출생했다. 1915년 한문 수학 후 상경해 중앙학교에 입학, 1918년 3월 25일에 수료했다. 1922년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白潮)’ 창간호에 시 ‘말세의 희탄’ 등을 발표했다. 이후 도일해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 1923년 3월 수료했다. 그러나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에 분노해 귀국했다.
‘백조’ 3호에 ‘나의 침실로’ 등 초기에는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1926년 ‘개벽’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해 ‘개벽’지는 판매 금치 처분을 당했다. 이 시기를 고비로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해 그는 암흑기의 민족시인, 저항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독립운동과 관련해 여러 차례 감금 생활을 했다. 1943년 대구에서 숙환으로 운명했다.
1948년, 광복 후 최초의 시비가 대구 달성공원에 건립됐다.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중략>
내 손에 호미를 쥐여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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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26년 ‘개벽’ 70호에 실린 이상화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민족의 암담한 현실적 비애와 그러한 현실에서 오는 슬픔과 무기력을 자연친화적, 민족적 정서의 표현을 통해 극복하려는 저항의식을 나타냈다. 이 작품은 식민지하에서 현실감각의 날카로움과 뜨거운 정열이 결합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이 말하듯, `빼앗긴 들'에 과연 참다운 삶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 있다. 제1연에서 물음을 던지고, 마지막 11연에서 답을 하고 있다. 이 시의 처음과 끝은 각각 질문과 대답 형식이다. 그 사이에 있는 아홉 연은 이러한 대답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시를 통해 화자는 일제치하에서 조국의 국토에 대한 강한 애정과 이에 대한 상실감을 보여주고 있다. 4~6연은 그의 눈앞에 아름다운 봄의 들판이 전개된다. 싱싱하고 활기찬 봄의 모습이다. 제7∼8연에서는 화자의 절실한 욕구가 나타난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사랑하며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제9~10연에서는 그 동안의 모든 환상을 깨뜨리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어김없이 자연의 봄은 돌아왔지만,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박탈당한 식민지 상황의 절망을 깨닫는다. 마지막 연,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는 괴로운 확인이었던 것이다. 이상화(李相和 1901~1943)의 호는 상화(尙火), 대구에서 출생했다. 1915년 한문 수학 후 상경하여 중앙학교에 입학, 1918년 3월 25일에 수료했다. 1922년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白潮)」창간호에 시「말세의 희탄」등을 발표했다. 이후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 1923년 3월 아테네 프랑세를 수료하였으나,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에 분노하여 귀국했다. 1925년엔 카프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백조’ 3호에「나의 침실로」등 초기에는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1926년 ‘개벽’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여 ‘개벽’지는 판매 금치 처분을 당했다. 이 시기를 고비로 식민치하의 민족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하여 그는 암흑기의 민족시인, 저항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독립 운동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감금생활을 하였으며, 1943년 대구에서 숙환으로 운명했다. 1948년, 해방 후 최초의 시비가 대구 달성공원에 건립되었다.(2014. 02.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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