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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브랜드 문학】을 꿈꾸며 - 『계절문학 2012 겨울호』시조평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2. 12. 21.

 

 

 

 

【브랜드 문학】을 꿈꾸며

 

 김  민  정

sijokmj@hanmail.net

 

 

   시조는 먼저 내용적으로 시가 되어야 하고, 형식적으로 시조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보다 그 창작이 더 어렵지 않은가 생각된다. 더구나 현대에 창작되는 작품들은 주제나 소재면에서 현대적인 감각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서 운율적으로도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부드럽고 품격 있는 현대시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문학 20호에는 정소파 선생님의 「일생, 그 삶의 노래」를 비롯한 열 세 분의 시조 작품 13편이 실려 있었다. 몇 편만 살펴보기로 한다.

 

   산을 파먹어도/ 배가 고픈 사람들 떠난/ 비탈진 등성이 곳곳 뒤엉킨 잡초 사이/ 바람에 휩쓸려 우는/ 가을날이 떠 있다/ 등성이 가로지른/ 길 끝 터널을 향해/ 과속에 떠밀려 가는 시간의 마디마디/ 피어난 나뭇잎들이/ 파지로 날아오른다/ 절벽 끝에 매달린/ 붉은 꽃 한 송이/ 아득한 추억의 밤 등불로 반짝이며/ 아직도 뿌리 못내린/ 도시의 향수/ 달랜다.

- 조영일, 「화전민에 관한 추억」전문

 

   조영일의 「화전민에 관한 추억」은 세 수를 이어서 쓴 한 편의 연시조이다. 산비탈을 일구어 소박하게 살아가던 사람들, 늘 배고픔에 허덕이며 힘들게 삶을 살던 사람들, 그러나 지금은 그들조차 다 떠난 비탈진 산등이 곳곳에 잡초는 뒤엉켜 있고 쓸쓸히 바람만 부는 가을날만 홀로 깊어간다. 첫째 수에서는 예전 화전민에 관한 회상과 연민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조금 더 빨리 가고파 돌아가는 인내를 갖지 못하고, 이쪽과 저쪽 길을 빠르게 연결하기 위하여, 지름길인 터널을 판다. 이러한 과속의 안타까움을 화자는 ‘과속에 떠밀려 가는 시간의 마디마디’라고 표현하고 있다. 초고속의 시대에 자연의 순리로, 자연의 시간으로 가다가는‘피어난 나뭇잎들이/ 파지로 날아오른다’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오랜 숙성의 시간도 없이 곧 사라지는 한 장의 파지가 되는 것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절벽 끝에 매달린/ 붉은 꽃 한 송이’처럼 절박한 것이다. 산비탈에서 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절박한 삶, 돌아보면 그것은 ‘아득한 추억의 밤 등불로 반짝인다’고 한다. 어쩌면 과속의 시간을 살아가는 도시에서 살면서 그 옛날 화전을 일구며 느림의 미학으로 살아가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친정집 묵정밭가 별무늬로 도드라진/ 하얀 토끼풀꽃 내게 가만 눈을 준다/ 꽃반지 감기던 풋내 반짝이는 은가락지// 잊었다 잊었다며 섶 깊이 묻어 봐도/ 건듯 바람 몰래 들어 가슴 속을 보삭대며/ 열일곱 까까머리가 새순처럼 돋아난다.

- 이남순, 「은가락지」 전문

 

   이남순의 「은가락지」는 소박하면서도 은은하게 별무리 없이 끌어간 정겨운 작품이다. 아마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에 다니러 갔을 때에 묵정밭가의 토끼풀꽃을 보면서 젊은날의 풋풋했던 사랑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하얀 토끼풀꽃’이란 소재에서 소박함과 정겨움과 청순함이 느껴진다. ‘하얀 토끼풀꽃’이란 소재도 소란하지 않고 조용하거니와 그 하얀 토끼풀꽃이 ‘내게 가만 눈을 준다’라는 표현 속에 은은함이 묻어난다. ‘꽃반지 감기던 풋내 반짝이는 은가락지’라는 표현 속에서 어렸을 때 풀꽃반지를 끼워주는 풋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수의 ‘잊었다 잊었다며 섶 깊이 묻어 봐도’

란  표현은 시를 읽는 독자에게 공감을 준다. 일반 독자들도 그러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듯 바람 몰래 들어 가슴 속을 보삭대며/ 열일곱 까까머리가 새순처럼 돋아난다.’는 표현 속에는 고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 까까머리의 모습이 보이고, 독자들도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이다.

 

  어화얼사 상사뒤야 이 논 저 논 함께 갈아/ 서로 일궈 농사 지어 거두어 한 데 모아//오순도순/ 형제 함께/ 의도 좋이/ 나눠 살세.

- 정소파, 「일생, 그 삶의 노래」셋째 수

 

  정소파의 「일생, 그 삶의 노래」는 세 수로 된 시조로 화합을 노래하고 있는데, 셋째 수에서는 ‘모내기 노래’를 닮아 있다. 화합을 바라는 노래이며, ‘모내기 노래’내용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벽이 자라납니다/ 높이를 잴 수 없이/ 좌우로 편을 가른/ 치열한 공방 속에

세상은/ 기가 질려서/ 눈을 감고 맙니다

- 박필상,「안개」 첫째 수

 

   박필상 시인의 「안개」라는 작품은 비판의식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좌우로 편을 가른 치열한 공방들이 점점 두터운 벽을 쌓아 화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을 비판하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화합과 공존보다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편 가르기를 하고, 벽을 높이 쌓아만 가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살아갈 적 그 사람 온몸이었을 사랑이리/ 다스울까 숨 몰아도 감돌아 먹먹한 게/ 때마다 구슬펐을 저 한쪽 구절구절 곱던 이

- 김주석, 「부재증명」 첫째 수

 

   김주석의 「부재증명」이란 작품은 누구를 그리면서 썼을까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분명 지금은 없는, ‘살아갈 적 그 사람 온몸이었을 사랑이리’라고 한다. ‘때마다 구슬펐을 저 한쪽 구절구절 곱던 이’라는 말 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닐까 상상을 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랑이란 글자를 알기 이전에, 사랑이란 말을 알기 이전에 이미 온몸으로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온몸에 적었을 사랑 살고 갔기’ 때문에 ‘현현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뒤척이면/ 영롱한 빛이 된다// 몇 번의 섬광으로/ 다비식은 끝이 났다// 소멸이/ 아름다운 건/ 가볍다는 뜻일 게다.

- 이무식, 「어느 다비식」 둘째 수)

 

   이무식의 「어느 다비식」에서는 방안이 건조해서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면서 다비식을 연상하는 내용이다. 종장 ‘소멸이 아름다운 건 가볍다는 뜻일 게다.’가 돋보인다.

 

   김무원의 「새벽 3시」는 자신의 모습을 초라한 밝기의 ‘십오 촉’전구로 비유하고 있다. 태양빛에 비한다면 15와트는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십오 촉 밝기로도 이미 어둠을 몰아내는 별이라는 시인의 의식 속에는 비록 미미한 존재일망정 자신에 대한 긍정이 들어 있다. 밤을 밝히는 별이 되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는 것이다.

 

   진용빈의 「손가락 낙관」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추모시라고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역에서의 장거를 추모하고 있다. 민족의 치욕을, 울분을 한 사람의 대한 국민으로서 일본에 대적했던 것을 추모하고, 또한 제 것만을 누리지 않고 욕심을 내는 무지한 사무라이를 단번에 눌러 잡고파 손가락 낙관을 찍었다는 내용을 추모시로 쓴 작품이다.

 

   소재나 주제에서 좀더 다양하고, 질적인 면에서 우수한 많은 시조작품들이 창작되어 한국을 대표하는‘브랜드 문학’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짧은 촌평을 마친다. < 계절문학 2012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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