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서 길을 보는 시
- 김승재시인의 수석시 작품론
김민정 (시조시인, 문학박사)
이번 김승재 시인의 수석시집 『돌에서 길을 보다』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수석시조시인 탄생을
기쁘게 생각한다. 수석시조집은 시조문단에서 처음이라 더욱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라 생각한다. 수석을
직접 수집하는 수석인으로서, 수석을 소재로 시조를 쓰는 일은 시조문단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기에 이 시조
집은 더욱 귀중한 시조집이 될 것이다.
카카오스토리를 시작한 우연한 인연으로 김승재 시인을 만났고, 시를 쓰신다기에 시조를 쓰시도록 권유했고, 수석을 소재로 수석만의 시조집을 출간하는 일이 가치있는 일일 것이라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그 뜻을 수용하셨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작품을 다듬고, 등단을 하고, 시조집을 묶어내는 숨가쁜 일을 실행하셨다. 참신한 많은 시조들이 창작되고, 다듬어지면서 마치 하나의 수석이 오랜 세월을 거쳐 거친 면이 갈리고 닦이며 하나의 윤이 나고 둥근 몽돌이 되듯이 김승재 시인의 수석시조들도 그렇게 갈고 닦으며 탄생되었다.
이번 시조집 『돌에서 길을 보다』를 살펴보면 5부로 나뉘어져 있고, 거기에는 101편의 수석시조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수석은 토중석(土中石)과 江石과 海石이 있다고 한다. 토중석은 흙속에서 수집한 돌이고, 강석은 강에서 수집한 돌이며, 해석은 바다에서 수집한 돌이다. 이 시조집은 수석을 소재로 쓴 작품들이라 수석사진을 보며 거기에서 상상되는 내용을 시조로 쓴 것이다. 그래서 사진과 함께 감상해야만 그 묘미를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수석시조를 살펴보도록 하자.
등잔 불빛 구석진 곳 달빛으로 채워가며
스스륵 부대끼며 힘에 겨운 물레질
명주실 누에고치 방 한 올 한 올 벗긴다
남실 잠긴 도투마리 잠자는 달 깨워놓고
부태줄 허리 감고 처량하게 살아온 길
베틀 북 어머니 인생 가닥가닥 엮인다
한 자 두 자 손끝으로 주섬주섬 걸어가는
주름 깔린 한 세월을 손등 위에 그려놓고
옷 한 벌 가늠하는가 한 뼘 천千 길 저 달빛
-「어머니의 향수」, 전문
시인이 노래 부른 이 수석은 해석이며 문양석으로 보인다. 문양을 살펴보면 어머니가 앉아 물레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며, 시인은 “등잔 불빛 구석진 곳 달빛으로 채워가며” 아름다운 표현으로 그 모습을 노래한다. 누에고치 방을 한 올 한 올 벗기며 실을 자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둘째 수에 오면 ‘남실 잠긴 도투마리 잠자는 달 깨워놓고'라는 표현으로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실을 자아내며 처량하게 베틀 북을 돌리던 힘든 삶을 말하고 있다. 셋째 수의 “주름 깔린 한 세월을 손등 위에 그려놓고” 표현 속에는 물레질하며 고생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인생이 환히 보인다. 거기에 자연의 달빛까지 끌어들여 “옷 한 벌 가늠하는가 한 뼘 천千 길 저 달빛”으로 노래하고 있다. “한 뼘 천千 길 저 달빛”이란 뛰어난 표현으로 달 밝은 밤 힘들게 물레를 돌려 옷감을 짜내고 옷을 만들어내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나는 수석인이다
또한 나는 시인이다
돌에서 글을 보고
돌에다 글을 둔다
자연의 오묘한 속내
풍류와 한몸인 나
-「풍류」, 전문
이 수석도 해석(海石)이며 문양석으로 보인다. 수석의 문양을 보면 영락없는 김삿갓의 뒷모습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길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자신은 수석인이고 시를 쓰는 시인임을 초장에서 밝히고, 중장에서는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돌에서 글을 보고, 돌에다 글을 두기 때문에 자신은 수석인이고 또한 시인이라는 거다. 삼단논법 결론 같은 종장은 그래서 자연의 오묘한 속내, 그 풍류와 내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수석의 아름다움을 찾는 수석인으로, 그 수석을 보며 시를 쓰는 시인으로 그렇게 풍류를 즐기며 사는 삶이기를 바라는 시인의 소망이 나타나는, 자신의 길을 말하고 있는 시이다.
외로워서 부르는가
그리워서 부르는가
골짝마다
숨이 차는
아스라한 메아리
산등성
바람 넘으며
길이 멀어 우는 소리
-「첩첩산중」, 전문
첩첩산중 형태의 해석이며 문양석을 노래하고 있다. 바람이 산능선을 넘으며 우는 소리를 초장에서는 ‘외로워서 부르는가/ 그리워서 부르는가’ 로 상상하며 표현된, 수석과 시조가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단시조 작품이다. 중장의 “골짝마다/ 숨이 차는 / 아스라한 메아리”란 표현도 신선하다. 마치 외롭고, 그리워서 메아리를 불러보는 것처럼 감정이입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산 넘어 또 산이 있는 첩첩산골 모습의 수석도 좋고, 바람이 첩첩산골의 산등성을 넘으며 내는 바람소리가 곧 들려올 것만 같이 묘사된 단시조도 수작이다.
십 리 대밭
우후죽순
봄은 잊지 않았다
긴 마디 하늘 솟아
태화강에 띄운 연정
태화루
피고 솟았다
낭창낭창 십 리 길
-「십 리 대밭」, 전문
이 작품은 죽순이 싹이 트는 모습 같아 보이는 수석이다. 시인은 작품에서 “십 리 대밭 / 우후죽순 / 봄은 잊지 않았다”고 표현하여 봄이 와서 죽순이 올라오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땅속에서 4년이란 세월 동안 기다리다 싹이 난다는 대나무…. 그리고 한 번 싹이 나면 “우후죽순”이란 말이 있듯이 비 한 번 맞고 나면 엄청 빠르게 자란다는 대나무….
봄이 되어 죽순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봄은 잊지 않았다”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봄을 맞아 죽순을 싹틔우고 있는 자연, 태화강변의 모습을 하나의 수석에서 보고 있다.
차바퀴 구른 소리
금골산 우는 소리
졸졸졸 물 흐른 소리
옛 선비 글 읽는 소리
유배지
풍경소리는
맑고도 드높다
- 「금골산 1」, 전문
하나의 수석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 수석도 아름답고 시조 작품도 단아하다. 이 작품에선 시각적인 수석모습을 청각적 시로 표현하고 있다. 이 수석의 문양에서 시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차바퀴가 구른 소리, 금골산 우는 소리, 졸졸졸 물 흐른 소리, 옛 선비 글 읽는 소리”이다. 시각을 여러 가지 음파로 청각화시킨 표현력이 돋보이며, 특히 종장 “유배지/ 풍경 소리는 / 맑고도 드높다”란 표현이 이 작품의 백미이다. 유배지의 외로운, 그러면서도 평화롭고 기품 있는 풍경소리로 마무리한 점이 뛰어난 아름다운 작품이다.
하늘둑 무너져
심한 폭우 밀려올 때
토사 깊게 묻혀있던 울퉁불퉁 돌멩이도
날벼락 그 속에 섞여 정신없이 튕겼네
어두운 땅 속에서
밝은 세상 나왔지만
채이고 처박히고 부서지고 깨어지며
이저리 밀려온 시간 절차탁마 구른 고뇌
강따라 물따라
인연따라 바다까지
다듬고 연마하며 흘러온 삶의 무늬
아울 듯 해맑은 하늘 담아놓을 항아리
-「항아리석」, 전문
해석이며 항아리 형상석이다. 뚜껑을 덮은 항아리(장독) 같은 형상의 돌이다. 이 항아리석을 보고 시인은 그 감상을 노래하고 있다.
첫수에서는 항아리석이 흙모래속 깊은 곳에 묻혀 있다가 심한 폭우로 땅이 파헤쳐져 날벼락을 맞듯 세상에 정신없이 드러남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항아리처럼 예쁘게 다듬어진 수석도 처음에는 “사 깊게 묻혀있던 울퉁불퉁 돌멩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밝은 빛 속에 나와서도 비바람과 물결에 “채이고 처박히고 부서지며 깨어지며” 이저리 밀려오는 시간동안 지금처럼 다듬어져 수석이 된 것이다. 이것을 시인은 “절차탁마 구른 고뇌”라고 표현하여 오랜 세월동안 돌이 굴러다니면서, 물결에 씻기면서 아름다운 수석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셋째 수에 오면 “강따라 물따라 / 인연따라 바다까지 / 다듬고 연마하며 흘러온 삶의 무늬”라며 그 돌이 강을 따라, 인연을 따라 바다까지 흘러왔음을 말하고 있다. 절차탁마하며 굴러온 세월의 무늬, 삶의 무늬는 “아울 듯 해맑은 하늘 담아놓을 항아리”가 되어 앉는 것이다. 이 수석뿐만 아니라 다른 수석들도 그러한 과정들을 거쳐 형상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가치 있는 수석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과정이 수석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그렇다. 그러기에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 시조작품은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 가득
어머니의 전수 가득
된장 간장 가득가득
고추장도 가득가득
자연의
행복이 담긴
사랑 가득한 옹기
-「장독대」, 전문
해석이며 항아리 형상석인데, 참 예쁘고 정감이 가는 수석들이다. 꼭 우리의 옛날 전통 장독대를 보듯 아름다운 모습의 수석이다. 시인은 항아리를 닮은 작은 수석들을 모아놓고 그 속에서 우리의 전통 장독대를 연상하며 시를 쓰고 있다. “할머니의 사랑 가득 / 어머니의 전수 가득 // 된장 간장 가득가득 / 고추장도 가득가득// 자연의 / 행복이 담긴 / 사랑 가득한 옹기//” 라며 할머니의 사랑이 들어있고,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을 장독, 그 속에 정성껏 담은 된장, 간장, 고추장이 가득가득 들어있을 것 같은 장독대, 또한 그것은 자연이 만드는 행복, 사랑이 가득 담긴 장독대로 표현되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바위 둥치 품은 듯이
제 살 한 쪽 비집으며
봉대산 팔부능선 둘둘 말고 누웠다가
소낙비 천둥소리에 토사문을 열었다
흙 속에 갇혀 있던 삶
베일 벗던 그 고통들
피멍도 새겨지고 모래자갈 보듬어 안은
참아 온 세월이 고와 꽃이 되어 피고 있다
-「달마상」, 전문
‘달마상’이라 제목 붙은 이 수석은 ‘달마상’이라기보다는 구름 위에 세 분의 신선이 앉아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듯한 모습의 뛰어난 명석이다. 수석의 문양을 보면 신선들이 앉아 세상을 굽어보며 인간사를 논하고 있는 듯 하고 세상 구경을 하는 것 같기도 한 수석이다. 이시조에서는 수석문양에 대한 노래라기보다는 이 수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봉대산 팔부능선 둘둘 말고 누웠다가”란 표현과 “피멍도 새겨지고 모래자갈 보듬은 안은”이라고 표현하여 명석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한 힘든 과정을 거쳤기에 “참아 온 세월이 고와 꽃이 되어 피고 있다”고 시인은 명석을 앞에 놓고 명석이 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옹골찬 도랑물이 꼬불꼬불 늘어졌다
나뭇잎 배가 되어 물길 따라 가는 곳
바위 틈
푸른 물살은 회오리 바람 인다.
-「계류1」첫째 수
계곡에서 물이 흘러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계류석을 노래한 작품이다. 시인은 이 수석에서 옹골찬 도랑물이 계곡에 꼬불꼬불 늘어져 가고 있으며, 나뭇잎은 그 위에 배가 되어 물길 따라 흐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물이 가다가 바위틈에 가게 되면 빠르게 흐르는 모습을 “푸른 물살은 회오리 바람이 인다”로 표현하여, 어쩌면 폭포석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수석의 흘러가는 물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진흙 한 줌
그보다도
바위 깎아 빚은 명석
유약 바른
기억조차
불가마도 지워버린
자연의
볼록한 몸짓
기벽의 장인정신
-싱싱한 오지 그릇, 첫째 수
시인은 재미있는 오지그릇의 형상을 수석을 통해서 보고 있다. “진흙 한 줌 그보다도 바위 깎아 빚은 명석”이라며 오지그릇처럼 생긴 수석을 찬양하고 있다. “유약 바른 기억초자 불가마도 지워버린”이라며, 유약도 바르지 않고 불가마에 굽지도 않았지만, 잘 빚어 구워낸 오지그릇처럼 예쁘게 만들어진 자연의 수석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시의 종장에서 시인은 “자연의 / 볼록한 몸짓 / 기벽의 장인정신”이라고 자연이 빚은 수석의 모양을 찬양한다.
잠잠한 검은 물결
금수강산 내려앉아
바람소리 물소리도
숨을 죽여 머무르는
수평선
펼친 삼봉은
온 세상 다 품었네
-「평원의 산수」, 전문
한 쪽에 산봉우리가 솟고 언덕이 있으며 그 옆이나 앞으로 넓은 평지가 전개되어 있는 오석으로 마치 넓디넓은 평원을 영상케 하는 평원석을 노래한 작품이다. 시인은 이 수석 안에서 잠잠히 흐르는 물과 금수강산을 보고 있다. 그 안에 “바람소리 물소리도 / 숨을 죽여 머무르고 // 수평선 / 펼친 삼봉은 / 온 세상 다 품었네”라며 이 수석을 보며 고요하고 평화롭게 세상을 품은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 점의 수석 속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보고 있다.
지금까지 김승재 시인의 수석시 몇 편을 살펴보았다. 이 시집에는 출토된 산지의 종류에 따라 분류되는 토중석, 강석, 해석 등의 수석들이 있으며, 또한 다시 세분하여 색채나 문양의 모양에 따라 분류하는 색채석, 문양석, 산수경석, 물형석, 변화석, 추상석, 구상과 비구상 등 다양하게 실려 있다. 물론 수석전문가들은 더욱 세분하여 분류하기도 한다.
김승재 시인은 이 시집에서 그러한 다양한 종류의 수석을 탑재하고 그 하나하나의 수석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을 시조로 표현했다. 수석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다시 시로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작업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인은 수석의 아름다움을 다시 글로 옮겨 시의 아름다움으로까지 승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돌에서 길을 보다』에 실린 수석시 101편은 수석시집으로 시조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리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출간을 축하드린다. 앞으로도 김승재 시인은 수석을 소재로 계속 아름다운 작품을 창작하여 수석인으로, 수석시조시인으로 대성하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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