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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나래시조 2012 봄호 열린시가 - 김영철의 『붉은 감기』서평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2. 2. 12.

        

       고요아침 / 138면 / 8,000원

 

긍정과 비판을 통한 휴머니즘의 추구

김영철 시인의 『붉은 감기』

 

                                           宇玄 김민정(시조시인, 문학박사)

 

김영철 시인이 이번에 첫 시조집 『붉은 감기』를 출간한다. 김영철의 시조집『붉은 감기』를 읽으면, ‘김영철 시인은 현실에 대한 긍정과 비판을 통해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시인이구나.’하고 느끼게 된다. 인간이 지녀야 하는 따뜻한 인간적인 미를 추구하는 시인이다. 시마다 시인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리얼리즘이 주를 이루면서 메타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휴머니즘이 나타나는 특징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보자.

첫째 현실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통해 휴머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만학을 하고 있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적절한 직설과 은유로 표현하며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최선을 다하는 시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개똥벌레」, 부모에 대한 연민과 곡진한 정이 담긴 작품 「가을역, 배웅하다」 「백봉령 안개밭」 「감또개, 그리고 홍시」「기일」등이 있다.

 

가을 산

다녀와서

홍시처럼 앓는 여인

 

가슬가슬한

이마 위에

 

낙엽 타는 냄새가 난다

 

단풍만 담으라 했는데

 

불을 안고

- 「붉은 감기」전문 -

 

김영철 시조집 제목이기도 한 이 시조는 몇 편 안 되는 단시조 중의 하나이다. 단풍 구경을 다녀온 아내가 감기에 걸린 것일까.‘단풍만 담으라 했는데/ 불을 안고/ 왔/ 는/ 지’에서처럼 단풍구경을 다녀온 후 아내가 펄펄 열을 내며 감기를 앓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짧은 단시조에서 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홍시’,‘낙엽 타는 냄새’, ‘불’등의 어휘를 통해 열이 높음을 말하고 있고, 때문에 제목도 ‘붉은 감기’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중화中和」 「아내라는 집」등에서는 아내에 대한 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궁극적 관심은 인간임을 알 수 있고,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 휴머니즘이 작품 곳곳에 잘 드러난다.

둘째 현실비판과 연민을 통한 휴머니즘의 표현이 보인다. 김영철 시인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지만, 꽤 많은 작품에서 현실비판적이고 현실고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벙어리 루루」는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비단옷과 가죽신에 기꺼이 목을 바쳐

냄새 없는 똥을 누며 엉너리 노리개로

 

오로지

임금을 위해 거세당한 어린 내시. -「벙어리 루루」둘째 수 -

 

이 작품은 아파트에서 짖지 못하게 성대를 수술하고 비단옷을 만들어 입히고 가죽신을 신게 하며 자신들의 노리개로 삼는 오만한 인간에 대한 비판, 현실고발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바우의 눈물」에서는 폭우와 한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그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팔아 쌀을 사고/ 산을 팔아 집을 짓고/ 영화라도 한 편 보려면 산소마저 팔아야 할까’라고 풍자 섞인 자조가 나타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정계곡을 사라지게 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청정계곡을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비판과 고발정신이 나타나 있다.「영월의 하늘은 여전히 핏빛이다」에서는 지금도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쟁탈전이 바쁜 정계를 질타하기도 한다. 「신 심청전」에서는 우리나라에 요즘 유행하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내용으로 가난 때문에 팔려온 신부 베트남 여인을 아름답게 환생하는 심청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심청이로 보고 있다. 다문화가정, 이국 여인에 대한 연민을 극복하여 사랑스런 모습으로 승화시키는 인간적 따스함, 휴머니즘이 느껴진다.

셋째 애향심과 애국심을 통한 휴머니즘을 볼 수 있다. 바다열차를 소재로 한「추암으로 가는 바다 열차」, 동해의 아름다운 곳 10곳을 노래한 「동해 10경」, 삼척 두타산의 무릉계곡을 노래한 「무릉반석」, 추암의 촛대바위를 소재로 한「촛대바위」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보편적 인간이 갖는 애향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독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 「레일바이크의 눈」「독도 다방, 조준기」, 앞으로 10년 후 우리나라의 통일된 모습을 상상해 보는 작품 「맛있는 상상 4」은 통일을 바라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정서에다가 제목을 신선하게 달고 있다.「하늘을 향해 쏘아라」에서는 통일된 한반도를 꿈꾸고 있으며, 「봄을 위한 변주곡」에서는 ‘ 통일에 대한 희망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조국 통일을 바라는 것도, 독도에 대한 사랑도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조국애를 표현한 작품들에서도 인간애, 휴머니즘이 잘 나타난다.

넷째 그의 시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휴머니즘이 나타난다. 「섹시한 45도 7625」에서는 새로 구입한 예쁜 승용차를 앞에 놓고 예쁜 처녀를 보듯 ‘나이테를 잠시 잊고 헐떡이는 붉은 상상’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여 무생물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고 인간적 애정을 부여하는 휴머니즘을 보여 주기도 한다.

 

불 꺼진 주유소 앞

고요한 횡단보도

 

존 롤스와 마이클 샌델이

격론을 벌이는 시각

 

신호는 저 홀로 붉고 두 가슴이 다툰다. 

 

환경과

인류를 위한 에너지 절약인가

 

정의와

양심을 위해 법을 지킬 것인가

 

51의 민주주의 꽃과

49의 폐허 사이.

-「4시51분49초」전문 -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적당한 자격을 가진 자에게 맞는 것을 주는 것", 제레미 벤담은 "정의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실현하는 것", 애덤 스미스는 "정의는 자율성 안에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 존 롤스는 "정의는 평등"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의는 모두를 위한 정의(Justice For All)가 될 수 있는가?

정의는 모두에게 이로운 것일 수는 없고 누군가 피해자가 발생한다. 때문에 우리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 즉 최대다수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51의 행복을 위해 49의 상대적 소수파를 배척해도 되는 것인가하는 것도 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타이틀 속에 사는 우리에게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 자기 양심이나 도덕적 자유에 맡겨 행동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무도 지나지 않는 횡단보도 앞에서 ‘갈까, 말까’ 망설이는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했을 일상의 사소한 갈등 문제를 인류의 큰 주제로 결부시키고 있는 점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소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제표출 능력이 탁월하며 인류애적 휴머니즘이 잘 나타난다.

김영철의 시집 『붉은 감기』전편에 흐르는 휴머니즘의 정신은 작은 사물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사물을 바라보는 신선한 감각이 우리로 하여금 김영철 시인을 주목하게 하며 앞으로의 시조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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