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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문학강연<리태극 시조에 나타난 인간성에 대한 향수>

by 시조시인 김민정 2012. 1. 10.

 

 

 

 

 

 

 

 

 

 

 

【 2006 江原文藝 祝典

 

 

 

 

 

文學講演 : 文學博士 宇玄 金珉廷

 

 

李泰極 時調에 나타난 人間性에 대한 鄕愁

 

 

 

 

 

 

 

 

 

 

 

 

 

 

 

 

◈ 日時 : 2006年 6月 10日 午後 4時

◈ 場所 : 春川市 自由會館

 

 

 

 

 

 

 

 

 

主催 : 韓國文人協會江原道支會

後援: 江原道, 江原道敎育廳, 江原道藝總, 江原文化財團

 

 

♣ 우현(宇玄) 김민정(金珉廷) ♣

 

 

 

 

♣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심포리 출생

♣ 1985년『시조문학』창간25주년기념 지상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등단

♣ 1999년 한국공간시인상 본상, 성균문학상 우수상 수상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문학박사

♣ 서울 장평중학교 연구부장 교사, 상지대학교 대학원 출강

♣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은평문인협회, 강동문인협회, 씨얼문학회,

나래시조문학회, 한국시조학회 회원

♣ 여류시조문학회 이사, 서울교원문학회 이사, 시조문학진흥회 부이사장

♣『좋은문학』,『나래시조』 편집위원

♣『국방일보』<시의 향기>란에 작품 및 해설 연재 중(2004. 1 - 현재)

♣『나, 여기에 눈을 뜨네』(시조시집, 1998)

『지상의 꿈』(시조시집, 2005),

『시의 향기』(국방일보 연재시 해설집, 2006)

『사설시조 만횡청류의 변모와 수용 양상』(성균관대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 1995)

『만횡청류 의태, 의성어의 변모와 수용 양상』(성균관대 성균어문학회, 2001)

『현대시조의 고향성 연구』(성균관대 일반대학원 박사논문, 2003)

『김상옥 시조의 고향성 연구』(성균관대 성균어문학회, 2003)

『정완영 시조의 고향성 연구』(시조학논총 21집, 한국시조학회, 2004)

『실향민의 고향의식』(시조학논총 24집, 한국시조학회, 2006)

 

주소 : 서울시 강동구 둔촌2동 신성노바빌아파트 203동 1204호

전화 : 477-0036, 011-9586-0081

 

 

 

 

 

 

Ⅰ. 서론

Ⅱ. 人間性에 대한 향수

1. 人間性 상실에 대한 위기감

2. 淳朴한 인정에 대한 향수

3. 分斷된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

Ⅲ. 결론

 

 

 

 

 

 

 

 

Ⅰ. 서론

 

이태극은 1913년 7월 16일에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현포 268에서 출생했다. 그는 시조시인이며 국문학자요, 문학박사이다. 호는 월하(月河), 동망(東望)이다. 춘천고보를 졸업(33)한 후 일본 와세다 대학 문과를 중퇴하고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50)했다. 춘천학교, 홍천화산학교 등지에서 초등교원(1934~45), 춘천고등여학교, 서울동덕여중에서 교사로 역임(45~53)하기도 했다. 동덕여대 및 서울대․이화여대에 출강(50~53)하였고, 이화여대 교수(53~78)를 역임하였다. 1967년 한국문인협회에 <시조분과>를 독립시키고 1972년까지 시조분과 회장으로 있었으며 정년퇴직(78) 후에는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5년 여름 해금강에서 지은 ‘하루살이’(22세)를 처녀작으로, 1953년 한국일보에 「산딸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조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시조창작 및 시조연구를 계속하면서 시조 저변확대를 위하여 시조전문지인 <시조문학>을 하한주․조종현․김광수 등과 더불어 창간(60)하여 시조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는 50년대 중엽, 정병욱․김동욱․조윤제 등이 시조부흥에 부정적인 견해를 펴자 이에 맞서 시조가 현대시의 대열에 참여하여 단형시로 살 수 있음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한편 ?시조개론?등으로 일반인들의 시조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키는 등 시조중흥운동을 위하여 노력했다.

이론적 뒷받침이 없던 시조단에 노산․가람의 뒤를 이은 그의 학문적인 연구와 시조의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은 시조가 현대시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고, 여러 편의 논문을 써서 가람․노산 등의 시조이론에 체계화를 더하였다.

시조집으로는 ?꽃과 여인?(70), ?노고지리?(76), ?소리․소리․소리?(82), ?날빛은 저기에?(1990), ?자하산사 이후?(1995) 등이 있고, 자서전?먼 영마루를 바라 살아온 길손?(1996)이 있다. 저술로는 ?시조문학과 국민사상?(국민사상연구원, 1954), ?시조개론?(새글사, 1959), ?시조연구논총?(을유문화사, 1956). ?현대시조작법?(정음사, 1981), ?시조 큰 사전?(을지문화사, 1985) 등이 있다. 그는 노산문학상, 육당문학상,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하였고, 대한민국 예술문화상(’90), 대한민국 문화훈장(’94)을 받기도 하였다.

 

이태극은 50년대에 등단한 시인이다. 6․25로 인한 조국의 분단과 황폐해진 조국의 모습, 그러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생활터전이었던 고향을 떠났고, 타향살이를 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생활 속에 나타났다. 또 6․25로 인한 조국의 분단으로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행한 실향민이 되었고, 민족적인 비극인 이산가족도 생겼다. 60․70년대 산업사회가 되면서 우리의 생활터전이었던 농어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공간적․정신적 고향상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鄕愁․思鄕 등의 작품이 문학에 많이 나타난다.

하이덱거에 의하면 고향이란 전면적인 주변면식(Umgebungsbekanntheit)과 예외없는 방향 설정에의 무욕(Orientierungsunbedürftigkeit)의 총괄개념이다. 인간의 현존은 고향상실(Heimatlosigkeit)의 현존, 존재 망각(Seinsvergessenheit)의 현존이며 고향은 고요하고 위험이 없는 세계지정에 대한 표현이다. 그는 피투성(被投性, Gewofenheit)과 세계내 존재성(In-der-Welt-Sein) 가운데 있는 인간 현존은 그 본래성이 비본래성에 의해 은폐되어 그 본래성을 잃은 상태에 있다고 보고 이런 상태를 고향상실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고향인 본래성의 회복이야말로 철학자의 과제이고, 또 인간의 근본적인 지향 목표라고 보고 있다.

이태극의 작품에서의 고향은 바로 고요하고 위험이 없는 세계이며, 고향상실의 현존은 본래성이 비본래성에 의해 은폐되어 그 본래성을 잃은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수성, 본래성에 대한 향수는 현재의 기계화, 문명화된 생활 속에서 물질문명의 물신숭배로 인해 소외되는 인간성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성 회복의 극복의지다. 그가 그리는 고향은 문명의 이기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인정과 때묻지 않은 자연이다. 강원도 화천의 깊은 산과 맑은 물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그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삭막한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한 자연 속의 고향은 자유와 평화의 피안공간이며, 순수지향의 공간이다. 한편 그의 고향의식 속에는 분단된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나고, 이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곧 조국통일에의 염원과 통일지향 의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본고에서 살펴 볼 작품들은 그의 고향상실 의식과 향수가 나타나는 작품으로 人間性에 대한 향수 작품을 주로 다루려고 한다. 인간성 상실에 대한 위기감, 순박한 인정에 대한 그리움, 분단된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나는 작품들이다.

 

 

 

 

 

 

Ⅱ. 人間性에 대한 향수

 

1. 人間性 상실에 대한 위기감

 

복잡하고, 편리한 현대 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얻는 것도 많은 동시에 잃는 것도 많다. 그 잃어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성이다. 시간과 돈에 쫓기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순수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워야 할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잃으면서 살아간다.

우리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이라 하여 이웃을 널리 이롭게 하면서 사는 것을 주장하였고, 또한 미덕으로 생각해 왔다. 현대의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로 오면서 자기만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생기고, 이웃에게 신경 쓰지 못하여 이웃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무관심의 세상이 되었다.

이태극의 고향의식이 나타나는 작품에는 산업사회에서의 각박한 도시의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극복의지가 나타난다. 서울이라는 도시생활 속에서 고향의 아름다운 산수와 어질고 순후한 인심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고향의식을 나타낸 작품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향수와 인간성 회복의 극복의지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깊은 산에 안겨/ 어짊을 잃지 않고//

맑은 물 바라보며/ 슬기를 안 무리들이//

풍요의 먼 발치에서도/ 예 이제를 살아왔네//

- 「山水의 고향」 첫째 수

 

철따른 금강 소식/ 한강으로 띄워주고//

골골을 누벼 우는/ 산새들의 가락 맞춰//

뿌리고 거두어 사는/ 이 고장의 어버이들//

- 둘째 수

이 작품은 고향인 강원도 화천 파로호 부근에 사는 순박한 고향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시조다. 山紫水明의 아름다운 곳에서 거기에 걸맞게 어진 사람들, 그들은 욕심 없이 농사를 지어 씨 뿌리고 곡식 거두며 지금껏 순박하게 살아왔다. 安貧樂道로서 자족할 줄 알며 평화롭게 사는 自然親和思想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떠한 갈등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화자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각박한 생활에서 순박한 인정을 잃어가는 안타까움, 복잡하고 바쁜 도시의 생활에서 인간성 상실의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고향이 주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정서를 그리워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깊은 우주적 의미를 체험하고 그 의미를 통해 자연과 인생의 깊이를 체험함으로써 속세와 정치를 초월한 소여의 심적 상태에 이르고 진정한 자연의 맛에 젖어드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그리워하는 이태극의 정서는 김인후(조선 중종)의 작품인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라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에 나타나는 자연친화적 질서의식의 작품과 맥락을 같이 한다. 자연의 질서 속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그로 하여 어린 시절의 고향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이다.

 

높푸른 하늘 아래

허둥이는 발뿌리들

 

무언가 두고 가는 듯

바라 오는 듯

 

세기의 아침을 안고

쓰혀지는 여정기(旅珵記)

 

멀리 고향이 어리우는

포푸라 여린 손길

 

터지듯 기적은 울어

여울짓는 가슴가슴

 

미움도 이약도 안개로

엇갈리는 레일길-.

-「서울역」 전문

 

「서울역」이란 작품은 도시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뿌리 없이 흔들리는 도시의 생활이란 언제나 바쁘고 허둥대는 삶이다. ‘높푸른 하늘’이라 하여 자연은 ‘아름답고 희망적’임을 상징하고, ‘허둥이는 발뿌리들’이라 하여 아름다운 하늘아래의 ‘인간의 생활은 바쁘고 정신없음’을 상징한다.

늘 부족함을 느끼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삶은 ‘무언가 두고 가는 듯 바라 오는 듯’ 허둥대기만 한다. 종장에 오면 ‘아침’이라고 하여 ‘희망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모두가 바쁜 걸음 속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 고향에서 돌아오는 사람, 저마다의 여정기로 분주한 삶이다. ‘미움도 이약도 안개로 엇갈리는 레일길’이란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이 서로 엇갈리며 달리고 있는 ‘인생길’을 상징하고 있다. 바쁜 생활 속에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위기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내 어린 시절이

저렇게 흘러간다.

 

해와 달 비와 눈들

모두 모아 담은 채로

 

한 줄기 모래를 씻어

멈춘 듯이 말없이

-「한강」 전문

 

화자는 ‘한강’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흘러감을 아쉬워한다. 흐름의 미학이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음이다. 흘러가는 시간과 강물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냉혹함의 인식이 초장에서 드러난다. 금강산에서 비롯되는 북한강의 물줄기는 화천을 지나 남한강과 만나는 양수리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가고, 그 한강을 보며 어린 시절의 고향을 생각하는 화자이다. 그 조용히 말없이 흐르는 강물 속에는 해와 달, 비와 눈, 화자의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과 꿈과 낭만이 함께 흘러가고 있다. 삶의 기쁨과 슬픔도 모두 흘러간다.

‘흘러간다’는 것은 ‘모든 것이 사라짐’을 상징한다. 存在가 無로 化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와 달, 비와 눈들’을 모두 담은 채로 흘러가고 있다. 여기서 ‘해와 달’은 ‘삶의 광명스런 것’을 상징한다면 ‘비와 눈들’은 ‘삶의 슬프고 궂은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것을 모두 담고 흘러가는 ‘강물’의 원형상징은 ‘시간의 영원한 흐름, 죽음과 재생, 생의 순환의 변화상’ 등을 나타내며 이 작품에서는 ‘시간의 영원한 흐름’을 의미한다. 한편 이 작품에서는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그 흐름의 바닥(모래)까지도 깨끗하게 씻어주며 멈춘 듯 조용히,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흐르는 화자의 관용적인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흘러간다’는 것은 ‘모든 것이 사라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사라짐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나타낸다. 즉 어렸을 때의 순수를 잃어가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철길가 흐드러진/ 함박 웃음 밀물로 와//

연분홍 맺힌 사연/ 찾아오는 이 오후는//

스치는 꽃샘 바람도/ 가슴 깊이 안긴다.//

 

해마다 이 기슭에/ 고요히 피어나는 너//

외롬을 감싸주고/ 설레임도 다둑이고//

그 생애 다함 없는 정을/ 궁창 가득 채우나.//

 

네 품에 안기고파/ 공간을 달려간다.//

옛 고향 비알따라/ 피던 그 모습들//

이제사 다시 찾았구나/ 이 마을 이 언덕에서.//

 

바람도 자취 없고/ 벌 나비도 숨었는가//

너와 나 고요속에/ 나눌 말도 잊었노라.//

어둠아 네 증언으로/ 한밤 내내 세우리라.//

-「진달래 연가」 전문

 

‘연분홍 맺힌 사연 찾아드는 이 오후’란 표현 속에는 진달래가 꽃망울 맺힌 풍경이라 볼 수도 있고, ‘오후’란 말은 하루중의 오후일 수도 있지만, 인생의 후반기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진달래는 너무나 친숙한, 고향산천하면 떠오르는 꽃이다. 우리 삶의 가장 중심적인 땅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꽃이기에 어디에서 보아도 정겹다. 말없이 보고만 있어도 이심전심이 되는, 고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향수에 잠길 수 있는 꽃이다. 화자는 그러한 정서를 알고 있기에 바람도 벌 나비도 오지 않는 고요 속에 한 마디 나눌 말도 잊고 한 밤 내내 반가운 진달래와 함께 지내고 싶다고 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이별의 정한으로 서럽게 다가오는 여인의 이미지라면 이태극의 「진달래 연가」는 고향 산천에서 많이 보던 진달래꽃을 이 마을 이 언덕에서 다시 찾아 기뻐하는 그야말로 진달래꽃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낸 작품이다.

진달래를 보면서 기뻐하는 화자에게서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현실인식과 함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반가움을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꽃과의 대화, 그것은 곧 진달래 붉게 피는 고향 산천에 대한 그리움이며, 고향산천과의 대화이며, 현실의 삶에서 여유를 잃고 살아가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그늘진 갈대숲에

밀어닥친 회오리로

 

꿈도 산산조각

멍청히 눈만 뜨고

 

빈 하늘 구름길 따라

깃을 치는 철샌가.

 

그 하늘 넓은 공간

두루 두루 나래 걷고

 

꽃구름 피워 올려

옛이야기 나누면서

 

겨레의 오올찬 노래로

다둑 다둑 살렸는데.

-「회오리」 전문

 

이 작품에서 화자는 고향을 떠나 회오리바람 때문에 꿈도 산산 조각난 떠도는 철새로 자신을 비유하고 있다. 주로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삶을 ‘철새’로 비유한다. ‘텃새’가 되지 못하는 悔恨 속에 철따라 이동하는 ‘철새’처럼 살아가는 삶, 방랑자 같은 고독함과 쓸쓸함이 잘 나타나고 있다. 화자가 바랐던 삶은 ‘꽃구름 피워 올려/ 옛이야기 나누면서// 겨레의 오올찬 노래로/ 다둑다둑 정답게//’ 사는 것이다. 꽃구름처럼 정답고 포근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답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었지만, 삶에는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 평화롭게 살려는 꿈은 霧散되고 빈 하늘 외로운 한 마리 철새가 되어있는 현실에서 話者는 悲哀를 느낀다. ‘빈 하늘 구름길 따라 깃을 치는 철샌가?’라고 표현하여 고향을 떠나 꿈도 잃고 철새처럼 살아가는 삶의 悔恨 속에 人間性 喪失의 悲哀를 느끼고 있다.

 

서울살이에서 가장 오래 머문 자리

짐 꾸려 옮긴 빈터 정적을 깨고

크레인 드높은 소리로 허물어져 가기만

 

정어린 선물이기 정드려 가꾼 오동

십칠년의 흔적 그냥 나뒹굴어 떨고 있고

싱그레 너울대던 파초도 소리없이 쓰러졌다

 

방싯 반겨주던 산목련도 흔적없고

겨우 살려피우던 매화도 살지 말지

추위가 닥치는 언덕에 세워지는 골조기둥

 

용문산정에서 옮긴 원추리꽃 맺힌 정도

파로호에서 맞아온 상사화의 그리움도

뿌리서 돋아 자라던 감그루도 먼 기억뿐

 

볼 밝혀 안겨오던 대추알도 아물아물

주저리 달려 웃던 청포도도 눈에 어리고

그 그저 허수아비로 허공만을 바라본다

 

사십여편 자하산사의 花木讚도 시로만 남고

아침저녁 매만지던 손길도 자취로만 남아

주름진 얼굴만 들고 석양길을 밟는다.

-「깃은 헐리고」 전문

 

위 시조는 제2의 고향같은 집, 서울에서 정들었던 자하산사를 떠나면서 쓴 작품이다. 타향인 서울에서 정들었던 땅과 집, 새로운 건설을 위해 포크레인으로 살던 집을 파헤치고 집을 옮겨야 하는 것이 화자의 처지이다. 첫 수의 ‘크레인 소리’는 ‘삭막함과 소란함을 나타내는 산업사회’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크레인 드높은 소리의 도시 산업사회 속에서는 오동, 파초, 산목련, 매화, 원추리꽃, 상사화, 감나무, 대추나무, 청포도 등을 가꾸며 서울에서 전원생활을 꿈꾸며 살아오던 생활이 무너지고 있다. 문명의 이기는 자연친화적 그의 시심까지 앗아가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삶에 그대로 반영되어 이곳에서 꽃도 심고 나무도 길렀는데, 이 자연친화적 환경을 떠나면서 또 하나의 고향을 떠나는, 고향상실의 아쉬움이 나타난다. 산업화 시대의 非情은 서울생활에서 확보한 작은 安住의 공간마저 잃게 하고 있다. 삭막함을 싫어하고, 인정과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모습이 이 시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게 삭막함 속에 사는 인간은 자연친화사상에서 보여주는 삶에의 여유라든가 포용심이라든가 타인에 대한 이해심까지도 망각하게 되고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그루, 풀꽃 한 포기를 심고, 사랑할 수 있는 것도 그것들을 심을 수 있는 공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삭막한 도심에서 나무와 꽃을 기르고 정을 주며 자연에의 향수를 달래던 시인에게 이런 공간과 여유마저 잃어야 하는 悲哀가 위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人間性 喪失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나기 때문에 고향의식의 작품으로 분류해 보았다.

 

소위 문화주택이란 새 빌라로 옮기다

쌓아두었던 책을 싣고 온 옛 자리

사라진 화목(花木)의 망령만이 소리없이 맞는다.

 

살기엔 편하지만 갇혀진 새장 속에

철문은 굳게 닫히여 지척도 천리인 듯

조여진 마음을 다둑이며 창문만을 바라서다

 

길들면 그저 그냥 살아갈 순 있겠지만

꽃 가꾸고 새 기르고프고 흙도 새록 그리워라

모든 것 다 떨쳐버리고 돌아갈까 전원으로.

-「다시 자하산사에서」 전문

 

자하산사를 떠나 새로 이사한 집에서 그 감회를 쓴 작품이다. 고향을 떠나와 향수에 쌓이듯이 자하산사에서 살던 삶을 그리워한다. 이사한 곳은 소위 문화주택이라는 새 빌라지만, 인간적인 모든 정취를 앗아간 삭막한 자리이다. 꽃 가꾸고, 새도 기르고픈 인간적인 욕망과 정취를 앗아간 자리에서 인간성 상실의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고향에 관한 시조는 아니더라도 전원을 그리워하고 자연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마음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이태극의 고향의식의 작품에서 인간성 상실에 대한 위기감과 안타까움이 나타나는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산업사회 속 도심에서의 삭막한 삶은 동양인들이 추구하던 자연친화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고향의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순박하게 사는 고향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야말로 바쁘고 삭막한 도시에 사는 그가 마음속으로 동경하는 삶의 모습이다. 즉, 어렸을 때 고향에서 누리던 삶의 모습과 같은 合自然의 삶이며 꽃 가꾸고 새를 기르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이다. 화자는 자연을 통한 서정세계에 안주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갈등이 생기고 비애가 생긴다. 이렇게 이태극의 고향의식의 작품은 저마다 바쁘고 삭막한 현대인의 도심 속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그 삭막한 현대생활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2. 淳朴한 인정에 대한 향수

이태극은 고향에 대한 향수로서 순박한 인정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가 살던 강원도 산골사람들의 순박한 인심, 그것은 바쁘고 편리하면서도 공해 많고, 삭막한 서울생활에선 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모습이다. 현실이 각박하고 힘들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이며 사람들의 순박한 인정이다. 바쁘게 살면서도 가슴속이 언제나 허전한 것은 삭막한 인간관계 속에 순박한 인정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허공 담장 허리에 뿌리한 산나리꽃

활짝 피어나 한 여름을 열고 있다

그 어느 보람도 겨웁게 넓은 하늘 받혀 안고

 

어린적 산 기슭에 반겨찾던 그 모습을

창열고 바라면서 가슴 설레이며

소음도 멀어진 한낮 절오의 뜻 새기다

 

한알의 씨앗도 저렇게 길찬 것을

외오 따르지 못하는 회오(悔悟)같은 어설픔에

앙가슴 소용돌이치는 물소리를 듣는다.

-「산나리꽃」 전문

 

이 작품은 어렸을 때 고향의 산기슭에서 많이 보던 꽃인 산나리꽃이 소재가 되고 있다. 지금은 어느 집 담장 허리에 뿌리 내려 활짝 피고 있는 꽃이다. 장소를 옮겨왔건만 산나꽃은 뿌리 잘 내리고 저렇듯 길차게 살고 있는데 반해 인생은 그것에 따르지 못하고 悔悟같은 어설픔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길차다’란 뜻은 ‘아주 훤칠하게 길다’란 뜻으로 보아야 하고, ‘외오’란 뜻은 ‘멀리, 외따로’의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외따로’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 작품에 대해 오승희는 “‘활짝 피어나 한 여름을 열고’나 ‘그 어느 보람도 겨웁게 넓은 하늘 받혀 안고’는 빛의 세계를 지향하는 상승이미지의 동원이다. 여기에 창열고 바라면서 가슴 설레이는 지향의지를 추가하면 시조 「산나리꽃」은 빛을 향한 밝음의 세계를 지향하는, 빛으로 밝히고자 하는 삶의 묵시적 이미지화”란 견해를 보여 밝음의 이미지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산나리꽃과 화자의 삶의 대비를 보인 작품으로서, 산나리꽃 자체는 ‘한알의 씨앗도 저렇게 길찬 것을’이라고 하여 밝음의 이미지가 나타나지만 그것과 대비되는 인간의 삶은 ‘외오 따르지 못하는’, ‘앙가슴 소용돌이치는 물소리를 듣는다’라고 표현하여 상승이나 밝음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어두움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결국 「산나리꽃」은 자기가 살던 산 속 고향을 떠나와도 잘 살고 있는데, 사람은 자기가 처음에 태어나고 뿌리내렸던 안식의 고향을 떠나와 어설프게 회오만 삼키며 세사에 시달려 앙가슴 속에 소용돌이치는 물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는 인생의 서글픔과 아픔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우리의 삶은 살아가면서 인간과 인간 관계, 인간과 삶의 관계는 언제나 회의와 후회가 따르게 마련이고, 그것이 정신적 안식처인 고향을 떠나있을 때 더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삭막한 도심에서 인간다운 삶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아픔으로 話者는 회의에 잠기며,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의 순박한 인심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눈 감으면 거울되는/ 내 놀던 푸른 언덕//

북한강 따라 올라/ 四明山의 북녘 기슭//

지금은 破盧湖 깊숙한/魚鱉들의 보금자리.//

 

피어난 진달래가/ 석장을 수 놓으면//

산꿩들의 울음따라/ 잠차지던 소꿉놀이//

냉잇국 쑥버무림에/ 초생달도 밝았지?//

 

물이 불면 고기 뜨고/ 날이 들면 뱃놀이들//

벌거숭이 洞童들의/ 꿈은 마냥 부풀기만//

밤나무 그늘 밑에서/ 귀글 소리 우렁찼지?//

 

서시래 벼랑 끝에/ 단풍이 불타나고//

영 너머 조 이삭이/ 석양에 물들며는//

온 마을 타작 마당은/ 풍년가로 들렜지?//

 

눈이 찬 바람이/ 강마을을 휘몰아치면//

잉어 잡이 토끼 몰이/ 따라나선 꼬마 용사//

짚신 속 발가락이 얼어도/ 지칠 줄을 몰랐지?//

 

이렇듯 꿈 꿈으로만/ 새김하는 옛 내 고향//

耳順 문턱에 서/ 티끌만 호흡한다.//

색동옷 그 마당에 앉은 채/ 소쩍소리 들으며-.//

-「失鄕曲」전문

題名이 보여주듯이 ‘失鄕’이라 하여 고향상실감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태극의 추억 속 고향공간은 수몰지구가 되어 영원히 사라지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할 때는 일반적으로 회귀불가능한 시간적 고향이다. 공간적 고향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고향의 시간과 공간 모두를 상실한 자로서의 그리움이 나타난다. 즉 이 작품의 화자는 시․공간 고향 모두 회귀불가능한 것이다. ‘꿈으로만 새김하는’ 고향이기에 그의 고향에 대한 향수는 배가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분단에 의해 일시적(50년이 넘는 시간이긴 하지만)으로 가지 못하는 공간적 고향을 북한에 두고 있는 경우와는 또 다른 정서이다.

이 시조의 구성은 평시조 여섯 수로 되어 있다. 즉 서수와 본수 4수(고향의 봄, 여름, 가을, 겨울)와 결수이다. 고향의 추억을 말하기 위해 첫째 수를 서수로, 현실을 인식하는 마지막 수를 결수로 하여 여섯 수로 구성된 평시조이며 연시조이다.

고향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과 추억을 말하며, 마지막 수에서는 이런 사계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꿈으로만 존재하는 이순 문턱에 있으면서, 아직도 마음은 색동옷 입고 앉아 소쩍소리를 듣는다. 그는 이 작품에서 산골의 정서인 ‘진달래, 석장, 산꿩, 냉잇국, 쑥버무림, 물, 뱃놀이, 밤나무, 벌거숭이, 단풍, 영, 이삭, 석양, 타작’이란 어휘들을 사용하여 산골고향의 순박한 정서와 어린 날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단풍잎 가지마다에/ 마지막 정열은 타고//

산국화 오목소복히/ 이슬이 차가웁다//

먼 줄기 서리운 강물엔/ 고향만이 다가서고-.//

 

코스모스 웃는 모습/ 그대 주고 간 마음//

갈대꽃 하얀 손길/ 무덤가에 떨고 섰다//

꿈으로 도파온 가락/ 산새만이 배워 사나?//

 

갈 곳 차마 모르던/ 떠도는 한 마리 철새//

흐려진 碑銘에/ 비와 바람 다구쳐도//

제 날개 제가 따르며/ 울어 쫓는 삶의 길!//

-「思悼의 章」 전문

 

첫 수는 가을철이 되어 고향이 그리워지는 마음을 단풍잎, 산국화, 강물에 담았다. 이 작품에서도 상징성을 찾을 수 있다. ‘단풍잎 가지마다에 마지막 정열은 타고’라고 하여 계절의 가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사랑(이성)에 대한 마지막 정열이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산국화 오목소복히 이슬이 차가웁다’라는 표현은 정열이 사라진 곳에 차가움만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강물’의 원형상징은 ‘시간의 영원한 흐름, 죽음과 재생, 생의 순환의 변화상’ 등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강물은 ‘시간의 흐름’ 상징하고 흘러감을 역류해 가면 기억속의 고향이 존재한다. 고향에서의 순수했던 사랑의 추억이다.

한 때 사랑했던 청초한 웃음을 남기고 간 마음의 여인을 코스모스와 갈대꽃, 산새 등으로 비유하여 묘사했다. ‘갈대꽃 하얀 손길’이라 하여 ‘사랑하던 여인의 손길’이 비유된 갈대꽃이 핀 무덤 앞에 서 있는 화자는 갈피잡지 못해 방황하던 과거의 삶과 현실의 삶을 사는 자신을 ‘한 마리 철새’로 비유하고 있다. 생의 무상감을 느끼며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던 젊은 날, 그러나 흐려진 비명 앞에 비와 바람은 다구쳐도 어차피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찾아 울면서라도 가는 화자의 의지적 삶이 있다. 여기서 碑銘이란 사랑하던 이의 무덤 앞에 세워진 碑石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화자는 자신을 한 마리 철새로 비유하고 있다. 고향을 소재나 주제로 다룬 작품 중에는 철새와 텃새를 노래하는 작품이 많은데, 주로 고향을 지키는 새를 텃새로, 고향을 떠난 새를 철새로 비유한다. 고향을 노래하는 많은 시들에 새가 등장하는 것은 바로 새가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동안의 시간의 흐름을 인식케 하는 계기적 충동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가 되면 가고 때가 되면 오는 철새의 주기를 가진 반복성이 인간에게 귀소본능의 욕구를 일깨워 준다.

시간은 인간 의식의 흐름을 수치적으로 계산해 놓은 것이다. 이 의식의 흐름을 인식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인간을 포함한 주위 환경의 변화이며, 그 변화가 주기성을 가진 반복적일 때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일출과 일몰의 반복, 사계절의 반복,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반복 등이다. 철새의 반복성은 인간에게 시간이 흐름 -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시간- 을 인식하는데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고향을 떠나온 후 다시 고향으로 날아서 돌아가야 함에도 현실적이라는 인위적 환경의 조롱에 갇혀 비상을 잊어버린 퇴화해버린 날개, 텃새적 생태를 갖는 인간은 오히려 유랑의 철새가 되고, 유랑의 이미지를 지닌 철새는 귀소본능의 텃새적 생태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 작품은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자신을 한 마리 철새로 비유하고 있으며, 고향에서의 순수한 옛사랑을 떠올리며 젊은 날의 사랑과 순박한 인정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풀섶 나무 잎이 노을로 불 붙으면

드높은 창공은 투명 속의 청자 거울

빠알간 능금알들이 가슴 가슴 안기네

 

이렇게 가을이 오면 마음은 돛을 달고

그 옛날 뒷들의 능금 밭에 닫는다

못 잊을 하나의 영상을 되찾아나 보련 듯

-「가을이 오면」전문

 

화자는 가을의 아름다움 속에 회귀불가능한 고향의 시공간을 그리워한다. ‘불, 창공, 청자 거울, 빠알간 능금알, 가슴’등의 이미지들은 밝고 긍정적인 시어들이며 밝음을 나타내는 상징어들이라서 이 작품에 대한 밝고 긍정적인 심상을 보여준다. 첫 수 초장의 ‘불’과 종장의 ‘빠알간 능금알’들은 같은 맥락의 시어들로 ‘정열, 충만, 사랑’에 대한 원형상징이다. 그러한 시어들로 고향은 정열, 충만, 사랑이 가득찼던 젊은 날의 그리운 추억의 공간임을 말하고 있다. ‘드높은 창공은 투명 속의 청자 거울’이라 하여 그 모든 고향의 자연 현상을 비추는 아름다운 거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화자의 거울같은 마음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현재의 가을에서 과거의 가을(추억)까지 모든 것을 비추고 있는 화자의 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화자는 영혼에 각인된 못 잊는 영상을 찾아 마음은 돛을 달고 옛날 능금밭으로 달려간다. 젊은 날의 사랑과 추억이 있는 곳, 그 회귀불가능한 고향의 공간과 시간은 화자로 하여금 그리움을 자아내게 한다.

외로울 때면 고향을 생각하고 삶의 질곡에 부딪혔을 때에도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할 때, 사색의 계절 가을이 오면 더욱 짙게 생각나는 곳이 고향이다. 모든 꿈이 서려 있고 걱정 근심을 모르던 시절의 푸른 동산, 모든 괴롭고 어려웠던 일은 시간이라는 여과기로 걸러지고 아름다운 추억만이 간직되는 곳이다. 이 작품 역시 고향에서의 잃어진 시간과 순수한 인정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이태극의 작품 중에서 순박한 인정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나는 시조를 살펴보았다. 위의 작품들을 통하여 고향은 순박한 인정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평화공간으로 인식되며 그 순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던 사람들의 인정을 그리워하는 작품들이다. 물론 이러한 작품의 밑바탕에는 현재의 삭막하고 각박한,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도시인들의 삶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들어있다. 또 맑고 순수한 심성을 간직하고 싶은 시인의 의지도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分斷된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

이태극의 고향의식의 작품에는 분단된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나는 작품이 있다.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나서 육이오 이전까지 강원도 화천 부분은 삼팔선 이북에 속했던 땅이다. 육이오 때는 그 곳을 사수하기 위하여 국군과 북한군이 팽팽히 맞섰던 곳이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망했던 곳이다. 화천은 6․25이후 남한땅이 되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곳이 되었지만, 화천에서 가까운 곳에는 지금도 남북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이 있다. 삼팔선과 휴전선은 이름만 다를 뿐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에는 변함이 없고, 또한 오고 가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민족의 커다란 비극이 아직 존재하며 그것을 안타까와 하는 의식이 곧 그의 고향의식 작품 속에 표현된다.

 

일월도 서먹한 채 그늘진 정은 흘러

핏자욱 길목마다 귀촉도 우는구나

건널목 숲으로 가름한 저 언덕과 이 강물!

-「내 산하에 서다」 첫째 수

 

진달래 피어 들고 단풍잎 불타 나고

부르며 바라보는 어배들의 보금자리

배리는 화사의 습성 굳어만 가는 마음벌!

- 둘째 수

 

이 작품은 고향의식 속에 남과 북으로 갈린 민족의 아픔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귀촉도는 우리 고전시가에서 비탄, 애탄, 기다림의 상징으로 많이 채용되고 있는 전통적 심상이다. 숲을 건널목으로 하여 갈라서 있는 ‘저 언덕과 이 강물’이란 남과 북을 상징하고 있어 분단에 대한 화자의 안타까움이 나타나는 구절이다.

‘화사’의 상징은 ‘에덴 동산에서 이브와 아담을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한 악’이다. 그리하여 인간으로 하여 낙원을 상실하게 하여, 부끄러움을 알게 하고 질시와 반목을 알게 했던 악의 상징인 것이다. 낙원의 세계로부터 멀어진 후 질시와 반목의 역사가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기독교적 해석처럼,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과 북은 반세기의 세월동안 서로 반목하며 미워하며 적대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얼룩진 ‘수의(비단옷)’는 ‘아름다운 우리나라(금수강산)’를 상징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가 6․25의 傷痕으로 얼룩이 졌다. 화자는 이 작품을 통해 같은 민족끼리 원수인양 서로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굳어만 가는 마음벌!’이란 표현으로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그의 고향을 그리는 내면의식 속에는 분단된 조국 현실을 아파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깊은 산에 안겨

어짊을 잃지 않고

맑은 물 바라보며

슬기를 안 무리들이

풍요의 먼 발치에서도

예 이제를 살아왔네

 

철따른 금강 소식

한강으로 띄워주고

골골을 누벼 우는

산새들의 가락맞춰

뿌리고 거두어 사는

이 고장의 어버이들

 

한 때는 철의 장막

파로호는 피의 바다

되찾은 자율 안고

지켜 새는 휴전선

보람찬 내일을 바라

맑아오는 화천이여!

-「山水의 고향」 전문

 

화자의 고향땅은 자유를 찾기 위해 피 흘렸던 곳인데, 지금은 휴전선이 지켜 서 있다.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민족 분단의 나라, 조국 분단에 대한 안타까움이 순박한 고향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첫째, 둘째 수에서는 고향의 공간은 순박한 인정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고요하고 정적이며 평화스런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셋째 수에서는 조국분단의 현실인식이 나타난다. 그것은 곧 화자의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이며, 더 나아가 조국에 대한 사랑이며 안타까움이다. 그래도 그는 ‘내일을 바라’는 낙관적 미래관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통일에 대한 희망성을 보여준다.

 

하이얀 갈대들이

날개 젓는 언덕으로

 

바래진 나날들이

갈기갈기 찢기운다

어허남 요령도 아련히

푸른 하늘 높푸른데……

 

칡넝쿨 얼기설기

휘돌아 산다는 길

 

가마귀 석양을 넘듯

넘어나 가 봤으면

 

그 훗날 저 꽃 증언 삼아

다시 여기 서나 보게.

-「갈대」전문

 

이 시조도 갈대를 보면서 조국 분단의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다. 갈대 속에 감정이입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바래진 나날들이 갈기갈기 찢기운다’고 하여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지나간 추억들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고향은 화해의 공간이나 평화의 공간이 아닌 분단상황을 인식하고 아픔을 느끼는 공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초장의 ‘칡넝쿨 얼기설기 휘돌아 산다는 길’은 바로 휴전선 때문에 ‘갈 수 없는 북한 땅’을 상징하고 있다.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기를 바라는 이 시인의 마음은 ‘가마귀 석양을 넘듯 넘어나 가 봤으면’하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 훗날’이란 ‘남북이 통일되었을 때’를 상징한다. 고향의식을 담고 있는 이 작품 속에 그의 남북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나고 있다.

 

밀리고 밀어 찾은

철의 삼각지대

 

저 허리 이 물굽이

겨레끼리 피 흘렀어도

 

저렇게 뵈는 남북이

총칼 들고 또 버텨야.

-「철의 삼각지대」 첫째 수

철원․양구․화천 주변을 우리는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렀다. 위의 작품도 육이오때 전쟁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공간적 고향을 생각하며 쓴 작품이다. 화자는 ‘저렇게 뵈는 남북이 총칼들고 또 버텨야’라고 표현함으로써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민족인 남북이 아직도 총부리를 겨누고 對峙하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와하며 아파한다.

지금까지 이태극의 고향의식 작품 중에서 남북 분단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나는 작품을 살펴보았다. 그의 지정학적인 고향인 화천은 삼팔선 이북이었고, 6․25전쟁 때문에 자유를 찾긴 했지만 휴전선이라는 철조망이 또다른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다. 위 작품들을 통하여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픈 역사인식공간으로 고향을 인식하는 화자를 볼 수 있다.

 

 

 

 

 

 

 

 

 

 

 

 

 

 

 

 

 

Ⅲ. 결론

 

본고에서 다룬 것은 그의 고향상실 의식과 향수가 나타나는 것으로 주로 人間性에 대한 향수의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을 살펴보면,

첫째, 인간성 상실에 대한 위기감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으로는 「山水의 고향」, 「서울역」, 「한강」, 「진달래 연가」, 「회오리」, 「깃은 헐리고」, 「다시 자하산사」 등이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李泰極이 동경하는 삶은 어렸을 때 고향에서 누리던 삶의 모습과 같은 合自然의 삶이며 자연 속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이며, 현재의 삭막하고 각박한,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도시인들의 삶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들어있다.

둘째, 순박한 인정에 대한 향수를 나타내고 있다. 작품으로는 「산나리꽃」,「失鄕曲」, 「思悼의 章」, 「가을이 오면」 등이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순수한 자연과 순박한 인심을 지향하고 그리워하며,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본주의사상과 무위자연을 이상으로 삼는 자연친화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李泰極에게 있어 고향은 시인의 회상공간이며 현실의 삭막함과 대비되는 순수한 자연과 순후한 인간이 그려지는 평화공간이기도 하다.

셋째, 조국 분단 이전의 평화로운 고향에의 향수이다. 때문에 조국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타난다. 작품으로는 「내 산하에 서다」, 「山水의 고향」, 「갈대」, 「철의 삼각지대」 등이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그의 지정학적인 고향인 화천 부근이 삼팔선 이북이었다가, 6․25 전쟁 후 휴전선이라는 새로운 철조망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실을 안타까와한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고향은 바로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의 순박한 사람들이 살던 평화로운 고향모습을 회복한 화천의 모습, 즉 그가 염원하는 고향의 모습은 통일된 조국산천이다. 李泰極은 시인의 고향과 연계해서 더 큰 우리 민족의 고향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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