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
어머니, 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
그 밖의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
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버지, 라는 책
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
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
면지가 찢긴 줄은 여태껏 몰랐구나
목차마저 희미해진 어머니, 라는 책
거덜난 책등을 따라 소금쩍이 일었다
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
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
詩 풀이
![]() |
宇玄 김민정 |
아버지, 어머니를 책에 비유했다. 아버지는 ‘표지가 울퉁불퉁했다’고 한다. 어머니란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조금 거칠고, 어머니는 늘 눈물겨운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지금 화자는 둘째 수에서는 거칠기 때문에 건성으로 대충 읽었던 아버지, 늘 강하고 거친 존재로만 인식했기에 무심했던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성찰하며 그리움을 갖는다. 셋째 수에 오면 늘 젖어있던 어머니기에 면지가 찢기고 목차마저 희미해지고 거덜난 책, 그러한 어머니의 존재와 은혜를 성찰하고, 그 은혜를 모른 채 잊고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인생의 중요한 대목에서는 더 많은 고생과 은혜가 들어 있음을 화자는 ‘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 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로 표현하고 있다. 이제 늙고 지치고 자식들에게 줄 것은 다 준 상태의 아버지, 어머니를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부모를 책에다 비유해 비유의 참신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며,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나 은혜라는 말은 한 마디도 들어가 있지 않으면서도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詩가 있는 병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가 있는 병영 178 - 연(蓮)밥 (김인자, 2011. 08. 08) (0) | 2011.08.07 |
---|---|
시가 있는 병영 177 - 탄광촌의 숨소리 <김민정, 2011. 08. 01> (0) | 2011.07.31 |
시가 있는 병영 175 - 피데기의 노래 <이옥진, 2011. 7. 18> (0) | 2011.07.16 |
詩 가 있는 병영 174 - 우선멈춤<김선화, 2011. 07. 11> (0) | 2011.07.15 |
시가 있는 병영 173 - 을숙도 3 - 일몰 그리고 (변현상, 2011. 07. 04) (0) | 2011.07.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