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혹은 사막과 하늘과 바람과 별, 그리고 시 그 너머
정우택(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저는 몽골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 몽골은 아껴두었다가 철들거든 가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이번에 몽골을 다녀와서 쓴 여러분의 ‘몽골시편’을 통해서 몽골을 느껴보았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많이 설렜습니다. 저도 몽골에 가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시에서 몽골에 대한 어떤 공통심상․공통감각이 발견되었습니다. 몽골을 풍경화 하는 어떤 공통의 코드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초원, 평원, 또는 사막 그리고 지평선이 몽골을 표상하는 대표적 풍경이었던 것입니다. 풍경은 타인에게 발견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의 지리 풍속과 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들을 둘러싼 경치가 유별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확 트인 지평선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한국인이 지평선을 가진 대평원에 선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떨림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시에 그런 순간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지평선을 보았던 것은 사신으로 중국 대륙에 들어서면서였습니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은 지평선을 보고는 ‘통곡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했습니다. 미당 서정주는 <만주에서>라는 시에서 “참 이것은 너무 많은 하늘입니다. / 내가 달린들 어데를 가겠습니까. / 紅布와 같이 미치기는 쉬웁습니다.”라고 토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평선을 가진 대평원은 하늘과 대칭입니다. 온통 하늘만 있습니다. 거기에 구름이 흐르고, 순도 높은 태양이 빛나고 햇빛이 내리쪼입니다. 구름이 흐르고, 대평원의 밤하늘에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집니다. 그래서 몽골시편에는 하늘만큼이나 밤과 별이 많습니다.
저는 하얼빈에서 장춘으로 가는 기찻간에서 방풍림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많기 때문이었겠지요. 대평원과 하늘 사이엔 거칠 것이 없는 바람이 삽니다. 윤동주가 시집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정한 까닭을 알았습니다. 윤동주가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라고 하며, ‘하늘과 바람과 별’이 곧 ‘시’라고 했던 사정을 저는 만주에 가서 알았습니다. 그의 시가 거처하는 곳은 바로 평원과 하늘과 바람과 별이 있는 북간도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몽골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심상화하고 시로 표현했듯이 말입니다.
몽골의 시에는 “꽃피고 지는 일에 눈물 훔치던 人情”도 증발시킬 것 같은, 영원성이 있습니다. 몽골의 초원과 하늘과 바람과 밤과 별, 그 사이에는 영원으로 시간과 공간을 빨아들이는 어떤 신성성이 흐릅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우주의 숨소리”를 듣고, “전사들의 옛이야기”, “전설”을 듣고, “부활하는 꿈”을 꿉니다. 천상에서 온 독수리가 “유목의 하얀 뼈”를 발기는 환상에 젖고, 그 막막한 허무에 몸서리칩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현재의 자아와 “천 년 전 / 모래 바람 속 / 자줏빛 이별”을 감행합니다. 독주는 불이 되고, 자아는 불꽃처럼 타오릅니다. 보드카를 마시며 “허공에 걸린 시간” 속으로 증발하기를 시도합니다. 몽골의 시편에는 인간이 거처할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몽골은 인간의 대지라기보다는 신의 땅인 것 같습니다.
몽골은 신화의 나라입니다. 신화는 영웅이 주재합니다. 세계를 경영했던 징키스칸과 기마의 전사들입니다. 여러분의 몽골시편에서는 우렁찬 말 발굽소리가 파도처럼, 천둥처럼 달려옵니다. 태풍처럼 일어나는 평원의 흙먼지 속에서, 형체는 보이지 않고, 말발굽소리만 우주를 가득 메우며 달려옵니다. 지평선 너머, 바람이 시작되는 곳, 그 바람이 전하는 것은, 바로 이 신화입니다. 유목의 하얀 뼈에서 전사의 꿈을 발견합니다. 별이 와 박힌 밤하늘은 우주로 통하고, 거기서 징기스칸과 그 전사들의 말발굽소리가 세월을 건너 지금 여기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게르를 빠져나온 그렁한 아이들 눈빛”에서 징키스칸과 그 전사의 후예임을 확인합니다.
시인들은 너나없이 징기스칸의 전사 혹은 말이 되거나, 또는 그 신화의 영원성 속으로 ‘실종’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몸을 떨었던 것 같습니다. 시인들은 귀국한 뒤, 몽골의 초원 속에 두고 ‘나’를 그리워하며,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시인들은 몽골에서 그동안 잊었던 서정의 원형을 감동적으로 체험합니다. 몽골에서 서정을 듬뿍 담고, 시쓰기의 행복을 만끽했다는 고백입니다. 어느 시인이 “초원 복판에서 서울의 밤을 떠올리며, / 잊고 산 서정의 바다에 / 멱을 감고 있었다”고 술회했습니다. 서울에서 서정을 ‘잊고 살았던’ 것인가요? 영혼, 시혼, 혹은 뮤즈가 깃들어 살았던 자연-하늘과 바람과 별과 비와 생명 들-이 몽골에는 여전하나, 서울엔 그것이 있나요? 어느 평론가가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바람은 황사고, 우리에게 내리는 비는 산성비 혹는 핵비입니다. 서울의 하늘엔 은하수가 뜨지 않습니다. 도깨비가 사는 깜깜한 밤은 더 이상 없고, 전설과 신화는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몽골과 서울의 비대칭. 우리는 몽골시편에서 영혼과 신화를 생성하는 초원과 하늘과 바람과 별의 세계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형식으로서 시조의 특징을 확인합니다. 이 몽골시편의 서정과 영혼과 자연과 생명이 ‘오늘 여기’에서 잃거나 잊어버린 것, 결핍과 반생명을 비추는 말발굽소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몽골시인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 시적 상상력이 낯익으면서도 웅혼하고 아름답습니다. 특히 톨바트의 <아들>이란 시를 통해 몽골의 ‘시론’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몽골의 생활방식과 사유방식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유목생활은 가족단위의 생활일 테고, 옮겨다니는 생활방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온통 자연과의 인연 속에서 살아갑니다. 만년설산은 할아버지고, 응석을 받아주는 강물은 할머니이며, “산토끼 숨어 있는 기슭의 자장가꽃”은 동생이고, 독수리는 형이며, 안개는 외가이고, 구름의 냄새는 친가이고, 별은 손자손녀이며, 밤하늘은 증손이며, 세상은 사돈이고 축복은 친족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봄비와 촉촉한 눈망울과 무지개, 바람, 푸른 신기루, 멋진 말들과 재능과 질투와 울음과 노래와 죽음과 이런 것들이 바로 시를 생성합니다.
자연과의 인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상상력은 신화적인 듯하면서 그것은 절실한 삶의 리얼리티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모든 개인은 천지자연의 조화와 신의 섭리와 계시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아름답고 존귀합니다. 문흐체첵의 <변덕부리지 마라 내 아들아>는 인간 탄생의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생명의 신성성을 전하고, 세상살이의 변덕과 혼란과 번민을 위무하고 평정합니다. <어머니에게 말하지 마세요>에는 연애에 설레고 혼란스러워하고, 실연에 상심하며 성장해가는 아들의 시간을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모성의 시선이 있습니다. “사나이는 뜨거운 눈물을 남몰래 흘리는 것이다. // …(중략)… // 배부르도록 젖을 먹인 나의 냄새를 맡고 변덕부리지 마라 내 아들아”(<변덕부리지 마라 내 아들아>)라는 대목에선 모성이 신성성을 획득하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문흐체첵과 톨바트의 시편들은 모두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대화, 혹은 주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신과 지상의 관계를 시적으로 구조화하는 상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는 언어와 운율의 예술입니다. 시는 번역되면서 언어와 운율의 심미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 그 뜻과 리듬과 아름다움이 훼손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읽은 문흐체첵과 톨바트의 시는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초원과 밤하늘과 별과 바람, 독수리와 산토끼, 만년설산과 강물, 무지개와 안개, 그리고 푸른 신기루 그 너머를 응시하는 유목의 시선이 만들어낸 언어와 리듬을 온전히 이해하며 시를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감동적일까 상상해보았습니다.
오늘 몽골을 주제로 한 시조와 몽골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새로운 체험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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