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의 시와 시론에 나타나는 모더니즘
宇玄 김민정
1. 머리말
편석촌 김기림은 190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하였다. 일본대학 문학예술과를 거쳐 동북제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있으면서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1930. 9. 6)와 「슈르레알리스트」(1930. 9. 30), 「시론」(1931. 1. 6)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한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작활동을 시작하여 1950년 6.25사변 당시 그가 납북되기까지 이어진다. 납북 이후의 시작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1930년대~1950년도까지의 그가 손수 펴낸 네 권의 시집과 그가 쓴 시론을 중심으로 그의 시와 시론에 나타나는 모더니즘을 살펴보기로 한다.
2. 김기림의 시적 변이 과정
김기림은 네 권의 시집과 기타 57편의 시를 썼다. 그렇다면 그의 시적 특색은 무엇인가. 김기림의 시적 변이과정을 살펴보고 작품 분석을 통한 모더니즘을 샆펴보기로 하자. 그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시집마다 약간의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네 권의 시집에 따른 그의 시적 변이 과정에 대해서는 김학동의 견해21)가 타당성이 있는 것 같아 소개하기로 한다.
(1) 김기림의 시작활동은 1930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1930년 9월 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가 이제까지 밝혀진 그의 첫 작품이다. 이 때 그는 G․W의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이 필명은 「편석촌」이전에 쓴 것으로 「슈-르레알리스트」․「가을의 태양은 플라티나의 연미복을 입고」․「시체의 홀음」 등 초기 시작과 기타에 사용하고 있다. 이들 작품에 나타난 몇가지 시적 특색은 그의 초기시, 곧 「태양의 풍속」시편들에 그대로 이어진다.
(2)「태양의 풍속」시편들은 그 서문에서 말한 시작태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낡은 인습과 전통성에 대한 타협보다는 그들과 결별, 「동양적 적멸」과 무절제한 감상에서의 일탈을 시도한 것이다. 그 전대시의 감상이나 낭만, 환몽적인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건강성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김기림은 이때 낡은 전통과 「정태적」인 것을 부정하고 문명사회로 지향하는 ‘새로움’과 「동태적」인 것을 시의 이상으로 삼았다. 그의 초기시에서는 ‘태양’과 ‘아침’의 이미지로 일관되어 있다. 어둠을 밝혀 만물에 생동감을 주는 태양의 동태적인 심상은 애상적이고 어둠으로 이어지는 정태적인 심상을 거부한다. 온통 ‘태양’으로 집중된 그 초기의 시작태도는 생동성의 시학을 세우려는데 그의 근본의도가 있었다. 그가 기다리는 아침해는 생동감과 건강성의 상징으로 표상되어 있다.
(3) 장시 「기상도」는 매우 의도적인 작품으로 김기림을 대표하기도 한다. 서구 산업문명의 도입으로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동양문화 전통의 붕괴를 태풍의 내습에다 비유하고 있다. 태풍 전야의 정적과 태풍이 내습하여 온통 질타하고 지나간 폐허 속에 되찾은 고요함, 멀리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새 삶을 준비하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요컨대 이 시는 현대문명의 위기, 아니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로 표징되는 정치기상도로서 파멸과 재생의 순환구조, 즉 전통에 대한 반역의 비애와 풍자성으로 요약된다. 서구 과학 문명의 도입으로 동양문화의 전통적 「모랄」이나 가치관의 붕괴와 새로운 문명 세계로의 지향을 노래한 것이다.
(4) 「바다와 나비」시편들은 8․15광복 전후의 시편들까지 함께 묶었다. 김기림은 여기에 이르러 「기상도」를 포함한 전기 시작들과는 달리 시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지와 정」의 합일된 전체인간으로서 체득되는 균형을 주장했듯이, 전기시편들이 현대문명에 대한 찬양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즘」과 주지적 태도를 보인 것이라면, 「바다와 나비」시편들에서 다분히 주정적이고 정감적인 시세계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5) 「바다와 나비」시편들의 일부와 「새노래」시편들은 모두 8․15해방 이후에 쓴 작품들로 되찾은 나라의 감격과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역사적으로 위대한 낭만의 시대를 펼쳐 놓았다.우리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세계와 마주서야한다」는 결의를 김기림 자신도 다졌듯이, 대부분의 시편들이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넓은 공간의식과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으로 환희와 새나라 건설을 위한 소원을 노래하고 있다. 매우 참여의식이 강했던 시기에 쓴 작품들로 문학성의 결여는 불가피했었는지 모른다.
3. 김기림의 시에 나타나는 모더니즘
한국 시사에 있어서 1930년대의 모더니즘 운동은 한국시의 현대적 전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1920년대 전반기의 감상주의 시에 대한 반역이며 명징한 지성에 대한 새로운 욕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김기림의 모더니즘은 20년대의 낭만주의의 병적 감상성과 경향파의 정치적 관념성의 부정에서 출발했다. 그리하여 시의 건강성, 명징성, 조소성을 시의 <현대성>으로 내세웠던 것이다.22)
1930년 9월 6일자 「조선일보」에 G.W의 필명으로 발표된 그의 첫작품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로부터 그의 서구문명에 대한 동경과 심취가 느껴진다. 그의 초기시인 「태양의 풍속」을 보면 서구지향적이며 문명지향적이다. 이러한 서구지향성․문명지향성이 김기림이 처음에 생각한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의 풍속」의 시편들은 한결같이 <태양> <아침> <바다>의 이미지를 구심점으로 하고 있다. <태양> <아침> <바다>는 새로운 생활을 이루는 이미지라 볼 수 있고, 그러한 새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둠><밤><벽>은 결별되어야 할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밤은 ‘새벽을 꾸짖는 사형수인 늙은 세계’(十五夜 )이며 어둠은 태양의 ‘풍속을 좇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여야 할 세계라고 절규한 것이다라고 보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아침> <태양> <바다>는 신선․활발․대담․명랑․건강한 이미지지만, 이러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어둠> <밤> <벽>을 노래해야만 하는 역설과 모순이 있었다.
바빌론으로
바빌론으로
작은 여자의 마음이 움직인다.
개나리의 얼굴이
여린 볕을 향할 때…….
바빌론으로 간 「미미」에게서
복숭아꽃 봉투가 날아왔다.
그날부터 아내의 마음은 시들어져
썼다가 찢어버린 편지만 쌓여간다.
아내여, 작은 마음이여
너의 날아가는 自由의 날개를 나는 막지 않는다
호올로 쌓아놓은 좁은 城壁의 문을 닫고 돌아서는
나의 외로움은 돌아봄 없이 너는 가거라.
아내여 나는 안다.
너의 작은 마음이 병들어 있음을…….
동트지도 않은 내일의 창머리에 매달리는 너의 얼굴 우에
새벽을 기다리는 작은 불안을 나는 본다.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가거라.
너는 來日을 가져라.
밝아가는 새벽을 가져라. 23)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에서는 <바빌론>으로 상징되는 문명세계에 대한 동경과 심취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동경하는 세계는 아침이며 밝음이며 깃발의 세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은 밤이며 어둠이며 비탄과 울음의 세계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동양적인 적멸>이나 이곳의 과거는 하루빨리 결별되고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태양의 풍속」에 실린 시편들은 동양의 세계, 어둠의 세계로부터 결별과 강렬한 부정을 의미한다.
그의 장시 「기상도」는 이전의 이미지즘적인 경향의 시「태양의 풍속」와는 달리 그가 전개한 모더니즘 이론에 기대어 현대시가 지녀야 할 주지성과 회화성 그리고 문명비판적 태도 등을 실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철희는 “「기상도」는 그동안 그가 시도한 어떤 시보다 크고 넓은 세계이며, 현대문명의 상황을 비판한 의욕적이고 실험적인 시적 구조물이다. 엘리어트의 「황무지」, 스펜더의 「비엔나」와 같은 장시를 그는 「기상도」에서 실험한 것이다. 시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현대사회의 어지러운 기상을 진단․비판한 자본주의 문명의 기상도이자 현실의 기상도이다.”24)
비늘
돋친
海峽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두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幅처럼 미끄러웁고
오만한 風景은 바로 午前 七時의 絶頂에 가로 누었다.
헐덕이는 들 우에
늙은 향수를 뿌리는
敎堂의 녹슬은 鍾소리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려무나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輪船을 오늘도 바래보냈다.
구경 가까운 정거장
차장의 신호를 재촉하며
발을 구르는 국제열차
차창마다
「잘 있거라」 삼키고 느껴서 우는
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굴들
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25) (이하생략)
김기림에 의한 연구는 그의 시와 시론에 걸쳐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의 시와 시론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한국 모더니즘의 성격을 해명하는 관건이 된다. 그의 문학은 우리 시문학에 ‘언어에 대한 자각’과 ‘감각적 범주’를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에 문명에 대한 피상적인 관찰과 서구 이론의 단선적인 이해, 전통의식의 결여가 지적되곤 한다.
기림이 활동 초기부터 후기까지 일관하여 관심을 가진 것은 인생을 위한 문학론의 바탕 위에 선 현실 중시의 문학이었다.26) 이 때문에 예술을 위한 예술 쪽에 서 있는 센티멘탈, 로맨티시즘을 강력하게 부정하였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관심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문학양식을 통해 형상화된다는 점을 역설하기 때문에 문학을 전투적으로 사용하려한 프로문학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입지점을 마련하였다. 김기림의 문학관은 당대의 문단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20년대 후반 맹위를 떨치던 프로문학이 창작에서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게 되자 기림은 문학적 대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하여 창작기술을 혁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의도아래 그는 서구모더니즘 중 이미지즘과 미래주의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일본 주지주의 문학을 받아들여 의식적 제작이라는 주지적 태도로 언어의 건축을 시도하였다.
기존의 김기림문학에 대한 평가는 첫째 기림이 역사의식과 전통의식이 결여된 채로 무조건적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모방했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순진은 그는 침체 일로에 있던 문단의 타개책으로 총체적 문예운동으로서의 모더니즘이 아닌 이미지즘, 미래주의 일본 주지주의의 일부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기계문명 시대와 자본주의 시대로 파악한 현실의 감각과 비판을 새로운 형식에 담고자 고심하였으며, 이것이 제작한다는 의식을 지닌 주지적 태도로 시의 언어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통해 언어의 형태미를 추구하고 감각적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었다고 보고 있다.27) 시의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한국 현대 시문학이 시 자체의 미학을 추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창작 기술의 놀라운 혁신을 가져왔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 정순진은 둘째는 김기림을 모더니스트로만 규정하는 평가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반론으로 근대성을 자각하고 창작기술을 혁신하고자 한 초기 문학활동이 모더니즘적 지향임에는 틀림없지만 한편으로 그는 문학활동 전시기를 통해 현실에의 적극적 관심을 문학의 이념으로 삼았다. 이것은 소위 모더니즘 시론기에도 그의 문학관이 인생을 위한 예술 쪽에 서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분명하다. 물론 시기에 따라 현실인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의 문학은 변모를 겪게 되지만 어느 시기에도 현실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적은 없었다. 현실에 대한 기림의 태도는 초기에는 근대의 감각적 수용과 비판, 중기에는 근대문명의 비판과 자아의 성찰, 후기에는 공동체의식의 앙양과 민족현실에의 몰입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하면서 모더니스트로만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또한 기림을 민족주의적 성향적인 면도 지적한다. 기림은 문학활동 전시기를 통하여 민족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는데 특히 이 부분은 그동안 기림의 문학을 평가하는 데서 누락되어 왔다는 것이다. 적극적 민족주의라 명명하기까지 한 기림의 민족주의는 보기에는 다소 막연하여 조선적 현실 속에서 문학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으로 어떤 유파에 의해서건 추구될 수 있는 이념이고, 따라서 기림에게 모더니즘과 민족주의는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고 보고 있어 모더니즘과 민족주의를 함께 지녔다고 보고 있다.
그의 시가 서구지향적이고, 문명지향적이었다고 하지만 정순진의 견해처럼 이해를 해도 좋을 것 같다.
4. 김기림의 시론
시론가로서의 김기림은 20년대 낭만주의 계열의 감상적인 시를 배격하고,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통해 언어의 자각과 감성을 시로 창조하는 주지적 입장을 취해 현대시에서의 새로운 길을 세워 놓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28) 그는 1935년「시원」에 <현대시의 기술><현대시의 육체><현대시의 난해성>등과 「조선일보」에 <오전의 시론>(1935. 6. 4~20) 등의 시론을 발표하였다.
그에 의하면 시는 전투의 무기가 아니고 생활의 여기일 뿐이다.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조선일보, 1931. 2. 11~14)에 의하면 시인은 “평범한 눈이 발견할 수 없는 어떠한 새로운 의미를, 또 한편으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숨은 의미를 부단히 발굴하여 보여주는 것”이고 사람들은 시인의 도움으로 현실의 숨은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그의 인생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예술에 있어서의 리얼리티, 모랄의 문제>에서 현대를 기계문명의 사회라고 보고 여기에서 나타나는 속성 중 움직임, 속도를 추구힜다면 그것을 어떻게 구상하느냐가 현대시의 형식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먼저 시가 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시작에 있어서의 주지적 태도>에서 기림은 시작상의 태도를 “시는 위선 ‘지여지는 것’이다 시적 가치를 의욕하고 기도하는 의식적 방법론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주지적 태도란 의식적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즉 세계의 지적 파악이나 내용으로서의 사상을 추구하는 서구의 주지주의와는 의미가 다르다.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인문평론」1939. 10)는 이전의 주지주의 경향의 기교주의론에 대해 자기비판을 시도하고 전체성의 시론을 확고히 다진 것이다. 이것은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의 결산서라 할 수 있는 글이다. 비록 그 논의가 시론적인 성격이 짙긴 하지만, 모더니즘의 발생 배경과 모더니즘에 대한 공과를 다루고 있어 모더니즘 운동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이 글에서 그는 경향시와 모더니즘의 장단점을 지적하고, 이 둘의 종합이 앞으로 나아갈 우리 시단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5. 맺음말
그는 모더니즘의 시창작과 모더니즘에 관한 이론에서도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30년대의 한국 모더니즘시단의 한 핵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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