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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김광균 시에 나타나는 부재 및 상실의 의미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8. 22.

김광균의 시에 나타나는 부재 및 상실의 의미

 

宇玄 김민정

 


1. 머리말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1930년대’는 다종다양한 양상으로 출몰한 문학사조 및 창작 방법들, 그리고 전대의 수준에 비해 볼 때 실질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한 매체, 작가군 등의 현상적 변화만 보더라도 이 시기의 역동성은 다른 시기보다 훨씬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이 시기에 하나의 뚜렷한 문학적 운동으로 모더니즘 시운동이 나타난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에 이르러 우리는 현대의 복잡한 내면의식은 물론 감정의 무절제한 방출을 통어하는 언어적 절제력을 새롭게 인식하였다12)고 할 수 있다. 이러한 30년대에 경향시의 편내용주의와 낭만주의시의 감상적 퇴폐성을 방법적으로 극복한 모더니즘 운동의 실천적 시인이었으며, 김기림, 정지용과 함께 고평받고 있는 김광균(1914-1993)의 시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2. 김광균에 대한 기존의 평가


  “그의 눈에 비친 모든 현대적 사물들은 그의 슬픈 마음에 부딪쳐, 그의 주저와 회한을 묘사하는 도구가 되고 있을 뿐, 그의 감정상의 갈등이나 세계 인식의 고뇌의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다. ……현대 문명의 속도를 잃어버린 현대적인 사물들만을 비유의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는 시에 활력을 주지 못한 새로운 회화적 시의 가능성만을 보여 주고, 시작을 청산한다.”13)는 극단적 부정적 평가와 “그는 30년대의 우수한 모더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서정적 에스프리의 낭만적 시인으로서, 또한 인간적 고통과 진실을 깊이 간직한 휴머니즘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 시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14)이라는 상찬이 있다.

  시인론은 한 시인의 작품 세계가 갖는 전모를 보이고 그의 주조가 될 만한 요소들- 주제, 세계관, 기법 등-을 핵심적으로 추출하여 가치 평가를 한 후 당대의 여타 시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시사를 기술케 하는 단위자의 역할로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1930년대에 발표된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세계 인식이 어떠한 창작 방법과 긴밀히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모더니즘이라는 당대의 자장과의 관계속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3. 김광균의 시에 나타나는 부재와 상실의식


  김광균의 시를 읽어 보면, 그의 정신적 기저는 뿌리내릴 곳을 박탈당한 ‘근원적인 상실감’이라고 어렵지 않게 규정할 수 있다. 시인에게 있어 무엇을 잃어버린 듯한 한없는 부동감은 비단 김광균에게만 전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처한 시대가 식민지였던 만큼 당대의 시인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정신적 기조였다는 표현이 더 적실할 것이다. 특히 1930년대에는 주체의 응전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던 객관적 정세 악화와 프로문학의 위축, 그리고 시적 주체들의 내면화 등으로 이러한 상실감은 당시 시창작에 있어 근본적 토대 구실을 하였다. 김종철은 “30년대 한국시의 두드러진 문학적 징후의 하나는 대부분의 시인들이 극심한 고향 상실감에 젖어 있다는 것”15)이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30년대 한국사의 군국주의와 파시즘 체제에서 비롯된 시적 주체들의 시적 인식의 출발점으로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김광균의 시를 살펴보기로 하자.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高層 창백한 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夜景 무성한 雜草인양 헝클어진 채

  思念 벙어리되어 입을 다물다


  皮膚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空虛한 群衆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悲哀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와사등」전문16)

  그의 잘 알려진 작품 「와사등」이다.

  이 작품의 시적 화자에게 보이는 1930년대의 경성은 찬란을 극한 문명의 도시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낯설고, 자기 동일성을 가차없이 파괴하는 이질적 공간이다. 시적 화자에게 그 어지러운 변화는 충격적 경험으로 인식된다. 그러한 도시화는 그 외양 변모의 현란한 숨가쁨이라는 측면과 또 다른 식민지적 모순의 착근이라는 측면의 이중적 속성을 띠었고, 그 이중적 속성에서 자연스럽게 유로되는 시적 화자의 정서는 화려함 속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허감, 뿌리없음, 현실부적응 등이었다.17)

  앞에 제시된 작품은 감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진 시다. 찬란한 밤 풍경에 둘러싸인 도회 가운데 뿌리를 잃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까닭모를 슬픔이 감각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차단-한 등불’은 지금까지의 등불의 속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보통 등불의 의미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하는 밝음으로 희망 등을 상징하는 데 비해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없다. 더구나 앞에 ‘차단-한’이란 관형어가 붙어 등불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슬픈 신호’로 나타나고 있다.

  ‘차단-한’이란 관형어는 ‘차가운’이라는 촉각적 심상과 ‘차단된’이라는 폐쇄성을 동시에 암시하는 기능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슬픈 실존을 역설적으로 나타내는데 기여하고 있다. 더구나 그것은 단순히 이미지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비인’‘슬픈’‘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등과 결합되어 나타나 식민지 도시의 암담하고 비애 어린 상황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방황하는 도시인, 1930년대 식민지 현실 속의 지식인의 정직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1연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과 5연의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이라는 표현속에서는 시적 화자의 정신적 지향이 아무런 방향 감각이 없는 채로 부동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시적 화자가 도회를 커다란 무덤으로 인식하여 ‘고층/묘석,야경/잡초의 대비 속에 도회가 갖고 있는 메마르고 황량한, 생명성 없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유성호는 “늘어선 고층의 밤 풍경이 묘석 주위의 잡초 같다는 인식에는 현대 문명이 갖는 찬란한 외양보다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죽음의 이미지 곧 종말론적 의미를 추출해 내고 감각하는 시적 주체의 인식이 비판적으로 암유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념 벙어리‘라는 표현은 그 도시로부터 끼쳐지는 중압감에서 오는 자기 상실, 자기 결핍감의 표현이다. 이 관념적 표현은 사실상 이 작품의 주제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18)

  ‘와사등’은 희망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소멸되어 가는 향수 또는 따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의 이미지라고 볼 수 있고, 이 시에 나타나는 비애의식은 역사적인 맥락의 슬픔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등불 없는 空地에 밤이 나린다

  수없이 퍼붓는 거미줄같이

  자욱-한 어둠에 숨이 잦으다   


  내 무슨 오지 않는 幸福을 기다리기에

  스산한 밤바람에 입술을 적시고

  어는 곳 지향없는 地角을 향하여

  한 옛날 情熱의 창랑한 자최를 그리는 거냐


  끝없는 어둠 저으기 마음 서글퍼

  긴-하품을 씹는다.


  아-내 하나의 信賴할 現實도 없이

  무수한 年齡을 落葉같이 띄워보내며

  茂盛한 追悔에 그림자마저 갈갈이 찢겨


  이 밤 한 줄기 조락한 패잔병되어

  주린 이리인양 비인 공지에 홀러 서서

  어느 먼 -도시의 상현에 창망히 서면

  腐汚한 달빛에 눈물 지운다.

                             - 「공지」 전문19)


  1920년대 시인들이 보였던 감상과 영탄이 현실부정과 환멸의 소산이었듯이 김광균의 비애나 눈물 역시 식민지 현실, 그것도 낯설기 짝이 없는 식민지의 타율적 도시화의 양상에 절망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정서에서 유래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도 시적 화자의 심적 고통을 유래케하는 사회적 역학은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일방적인 소외의식 및 소통 가능한 타자의 부재 그리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밀폐감과 내면적 황폐감 등이 감각적 은유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20)

  이 작품의 배경도 역시 밤이다. 그의 시의 시간적 배경은 거의 ‘오후, 황혼, 밤’등이다. 그것은 앞서 김기림의 시에서 보여주던 ‘태양, 아침, 출발’ 등의 이미지가 ‘밝음, 희망, 새로운 세계의 갈망’이었다면, 김광균에게 있어서는 ‘생성’의 시간이 아닌 ‘소멸, 침잠’ 등의 시간을 택함으로써 김광균의 서정적 모티브가 생성지향적 비판의식보다는 소멸 지향적 상실의식의 이미지이다. 이 작품에서 ‘어느 곳 지향없는 지작’을 ‘추회’에 싸여 걷고 있는 ‘패잔병’의 의식세계가 도시의 ‘부오’에 오버랩되면서 슬픈 소시민의 초상이 드러나고 있다.

  1930년대 경성이라는 도시 공간이 던져 준 공허감과 소외의식 또는 타자 부재와 상실의식 등이 그의 감각적 은유를 통한 시적 상관물들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유성호의 지적처럼 명징한 이미지만을 추구했던 정지용의 초기 이미지즘 시보다 김광균의 시가 훨씬 내면적 정직성과 서정적 비극성을 잘 형상화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4. 맺음말


  이제까지 1930년대 김광균의 작품에 나타나는 모더니즘에 대해 간략히 살펴 보았다. 좀더 많은 작품을 분석하고 거기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시인의 의식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지만, 위의 두 작품은 성격이 아주 비슷한 작품이다. 두 작품을 통해 김광균의 비극적 세계 인식이, 식민지 시대의 타율적 도시화에 따른 일방적 소외와 상실의식을 방법적 이미지즘에 의해 형상화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균은 앞으로 좀더 시간을 두고 연구해 보고 싶은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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