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에 관한 소고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를 중심으로-
1. 머리말
한국의 모더니즘이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에 나타난 하나의 문예사조라고 할 수 있다. 1926년 정지용, 김광균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모더니즘이란 어떤 것이고 그 양상이 어떠했는지 서구의 발생에서부터 한국에서의 모습까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2. 모더니즘의 명칭
모더니즘이란 용어는 사실 막연하고 포괄적인 용어이다. 기존의 체제와 형식을 벗어난 모든 운동을 모더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원적으로 볼 때 Modernism의 어근이 되는 라틴어 modo는 just now, 즉 ‘바로 지금’을 뜻한다. ‘바로 지금’의 성향을 띠는 것, 그 같은 움직임이 모더니즘이다. 모더니티의 일반적인 용법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전함’으로 쓰인다는 사실도 이에 부합된다.
모더니즘이 지향하는 바는 궤변과 매너리즘, 내향성과 자아의 내적회의 등이다 미술에서 반구상주의, 음악에서 무조음(無調音)주의 시에서 자유시, 소설에서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서술,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나 자연주의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인간적 요소를 점진적으로 제거한 ‘예술의 비인간화’가 추구한 미적 세련, 이 모두는 모더니즘의 급진적 양상으로 볼 수 있다.
3. 발생
1890~1930년까지라고 시간적인 제한을 갖는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으며,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모더니즘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구라파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절망, 혼돈은 구질서에 대한 회의와 반발을 야기시켰고 기존의 체제와 양식으로는 그 같은 무질서와 혼돈을 수용할 수가 없어서 새로운 개념과 형식과 질서를 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모더니즘의 현저한 특징은 일단의 예술가나 작가들이 전위 행위를 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정착된 관례와 적격을 깨뜨림으로써 새로운 예술형식과 문체를 창조하고, 무시하고 금지되어 왔던 소재들을 소개하려 했다. 그들의 목표는 그들 자신의 자율성을 가지고 전통적 독자의 감수성에 충격을 주어 부르조아 문화의 규범과 경건성에 도전하는 데 있었다.
그 예로 언어의 표준적 흐름을 단편적 발언으로 바꾼 엘리오트의 「황무지」, 이야기의 연속성을 해체하고 표준인물 묘사 방법에서 이탈한 조이스의 「율리시즈」, 그 외 음악에서 전통적 멜로디, 하모니, 리듬을 깨뜨린 스트라빈스키, 쉔베르크, 미술에서 지금까지의 구상적 틀을 벗어난 입체파, 미래파 등이다.
4. 배경
20세기초 영미 시인들이 합작으로 일으킨 새로운 시운동인 이미지즘을 들 수 있다. 이미지즘의 중심인물은 에즈라 파운드인데 그는 흄의 영향을 받아서 낭만주의의 애매성과 안이한 정서 위주에서 탈피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그 멤버로는 아미 로웰, 리차드 올딩턴, 힐다 둘리틀, 존 플레처, 플린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미지즘의 요강은 1913년 플린트가 발표한 「이미지즘」에 설명되어 있는 바, “사물을 직접적으로 다룰 것, 아미지 표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절대로 쓰지 말 것, 연속되는 음악적 문구로 리듬을 창조할 것” 등이 골자이다.
이미지의 본격적 이론은 1915년 아미 로웰(Amy Lowell)에 의해 간행된 사화집「수 명의 이미지스트 시인들」에서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6가지 원칙이 실려 있다.
1) 일상적인 언어를 쓰되 반드시 정확한 언어를 쓸 것.
2) 새로운 감정의 표현으로써 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3) 제재의 선택에 절대 자유를 허용할 것.
4) 한 이미지를 표현할 것.
5) 시는 견실하고 분명해야 하며, 흐리고 불분명해서는 안 된다.
6) 모든 집중이 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파운드에 의해서 초안된 이 강령은 아미 로웰에 의해 충실히 지켜졌다. 그는 시란 말로 되는 예술이지 글로 되는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미지즘의 신조를 “단순하고 솔직한 말, 섬세하고 아름다운 리듬, 개성적인 자유로운 생각, 명확하고 눈에 보이는 표현, 그리고 집중성”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즘에는 정교하고 짧고 묘사를 위주로 하는 시에는 적합할 지 모르지만 보다 길고 복잡한 시를 창작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5. 기법
모더니즘의 시론 중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엘리오트의 시론이다. 그는 이미지스트들이 강조하는 구체성과 정확성의 기준에다 복잡성과 암시성를 첨가했다. 그리고 딱딱한 표현으로부터 구어적 표현으로의 돌발적 전환, 시의 표층적 의미로부터의 전달이 아닌, 사물이니 사상을 통한 간접적 전달 등도 그가 도입한 기법이다. 그의 시론은 「전통과 개인의 재능」이란 저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인은 표현할 개성을 갖는 것이 아니고 특수한 매체를 갖고 있다. 이것은 매체에 지나지 개성은 아니고 그 속에서 인상과 경험에 특수하고도 뜻하지 않은 방법에서 결합된다. 개인에게 중요한 인상과 경험은 시에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시에 있어서는 중요하게 되는 인상이나 경험도 인간의 개성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닌 역할을 할른지는 모른다.
이것은 시의 정서적 효과나 시인 자신에 대한 비중보다는 대상과 그 대상을 결합하는 이미지의 비중을 중시하는 언급으로 그의 ‘객관적 상관물’이란 기법은 이를 바탕으로 한다.
또 클이언스 브룩스에 의하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많은 것들은 역설을 통해 말해 진다. 직접적인 말은 하고자 하는 말을 약화시키거나 왜곡시킨다. 그러므로 독자는 직접적인 진술보다는 어조의 변화, 아이러니칼한 진술, 암시 따위에 예민해야 한다. 추상보다는 상징을, 분명한 언어보다는 암시를, 직접적인 진술보다는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 시인인 바 독자는 그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6. 한국의 모더니즘
한국의 모더니즘의 수입은 1926년경이라고 할 수 있다. 1926년에 정지용, 김광균의 모더니즘품의 시가 선보이고, 고한용이 일본의 다다이스트인 高橋新吉와의 회견기를 <개벽>에 싣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분위기 형성이 그때부터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26년 한국 모더니즘은 반낭만주의, 반마르크스주의, 주정의 배척, 지성과 의식적 방법의 자각, 시각적 이미지의 중시, 시의 명랑성과 건강성의 회복 등의 경향을 띤다. 이는 민족의 역사적 현실 즉, 전쟁과 문화의 위기, 경제공황과 실업자의 속출, 농촌의 피폐 등과 관련이 있다. 과거로부터의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이 모더니즘 출발의 근간이었다. 당시 모더니즘 작가로 손꼽을 수 있는 이들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박태원, 이효석, 김광균, 오장환, 최명익, 신석정, 장서언, 이시우, 백석, 장만영, 이용악, 함형수, 허준, 정인택 등이다. 그들은 도시적 소재와 근대 문명을 작품을 통해 다루면서 도시적 생존 방식과 도시적 감수성을 작품 속에 쏟아 부었고, 그들은 재래의 문학과는 다른 창작 기술의 혁신이나 언어의 세련성을 추구했다. 그 중 대표적인 작가들은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오장환, 이용악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용 시의 모더니즘적 특성은 사물에의 충실, 감각적 이미지의 중시를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1926년 6월 경도 유학생 기관지 「학조」창간호에 실렸던 <카페 프린스><슬픈 인상화><파충류>등의 작품이다.
김기림은 창작이나 이론 양면에서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론면에서 뛰어나다. 그는 「시인과 시의 개념」(「조선일보」1930. 7. 24~30)을 통해 1920년대의 감상적인 시를 부정하고, 언어의 예술로서의 시를 강조했으며, 특히 문명에 대한 일정한 감수성을 가지고 일정한 가채를 의식하며 시를 창작할 것을 주장하며, 김기림은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모더니즘은 두 개의 부정을 준비했다. 하나는 로맨티시즘과 세기말 문학의 말 류인 센티멘탈 로맨티시즘을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편내용주의의 경향 을 위해서였다. 모더니즘은 시가 우선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과 시는 문명에 일정한 감수를 기초로 한 다음 일정한 가치를 의식하고 쓰여져한 한다는 주장 위에 섰다.
그의 장시 <기상도>는 모더니즘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김광균은 작품상 가장 뚜렷하게 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여준 시인이다. 철저하게 감각적 이미지에 의존한 표현기법이라든가 도시 문명에의 경사는 누구보다도 그를 모더니스트로 내세우게 한다.
백철은 다양한 공감각적 의미의 창조라든가 소시민적 생활감정의 회화화는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오장환은 과거 전승에 대한 거부가 철저했던 시인이다. 그의 시는 실험 정신과 재기발랄한 감각을 보여주는가 하면, 한편으로 퇴폐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전반적인 시어도 어두운 편이다. 온갖 자극을 체험하고 그것을 문명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자세에서도 모더니즘의 자세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용악은 그의 초기시에서 모더니즘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의 모더니즘적 경향은 언어의 기교와 그 세련성이라는 차원에서였다.
7. 맺는 말
1930년대의 한국의 모더니즘은 그 출발에 있어 프로문학운동의 퇴조라는 개관적인 상황과 맞물려 고조되고, 한편 ‘구인회’라는 단체가 결성됨으로 해서 본격적인 양상을 띤다. 모더니즘 문학은 프로문학의 ‘내용의 사회성’을 ‘형태(기술)의 사회성’으로 대체시키면서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우리문학사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기존의 문학을 거부하면서 작가의 개성에 따른 주관적인 문학관을 가지고 이미지즘, 주지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창작기법을 보여주여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확대했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 개개인을 살펴봄으로써 더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박철희: 「문예사조」,이우출판사, 1988.
이명섭: 「세계문학비평 용어사전」, 을유문화사, 1987.
오세영: 「문예사조」, 고려원, 1983.
문덕수: 「한국모더니즘시 연구」,시문학사, 1981.
서준섭: 「한국 모더니즘 문학연구」,일지사, 1988.
한계전: 「모더니즘 시론 연구」,일지사, 1983.
박호영: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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