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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논문.평설

한국모더니즘시연구의 성과 및 문제점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8. 22.

한국모더니즘시연구의 성과 및 문제점

 

宇玄 김민정

 


1.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김용직역의 로버트 마틴 애담스의 ‘모더니즘은 무엇이었는가’에서 광의의 모더니즘은 1910년을 그 발생시기로 잡는 것 같다.

  현대시의 겨우 이견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조지 프레이저(1914-1980)는 영시의 경우,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모더니즘 또 현대시의 역사가 시작하였다고 보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보들레르(1821-1867)까지 소급한다고 보고 있다. 모더니즘의 특성, 곧 모더니티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연대보다 그 고유의 특성이 문제가 된다고 한 프레이저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조선시대의 시조에서도 모더니즘은 발견될 수 있고, 현대의 시에서도 모더니즘이 없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애담스의 논문에서 현대성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과거에 대한 의도적 추구,

  2) 반복적, 주기적인 시간의식

  3) 비인간적인 추상성의 중시

  4) 성의 추구

  5) 독재정권에 대한 허약

  6) 재료 및 언어의 영역확대 등


  이러한 이론은 정지용과 김광균에게는 비인간적 사물성, 독재정권에 대한 허약만 관계되어 거의 적용이 되지 않으므로 정지용과 김기림을 이미지즘이라 보고 있다. 정지용과 김광균은 다 같이 주지적, 객관적 태도, 시각적 이미지, 사물시 등을 중시하나 그들에게서는 파운드의 관념형상방법, 엘리어트의 전통과 역사의식, 형이상학파시의 방법 등을 발견할 수 없어 이들을 이미지즘으로 본다는 것이다.

   우선 이 논문을 읽으면서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의 모더니즘의 차이점을 알게되었고, 자세한 시분석을 통하여 모르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정지용, 김광균을 이미지즘으로, 김기림을 모더니즘 또는 주지주의로 구별하고 있다.

  1930년 전후의 한국 모더니즘의 이론적 기반은 김기림과 최재서의 양쪽에 걸쳐서 있다고 보고 있다. 

  김기림은 정지용, 김광균이 가진 이미지즘의 요소에서 한 걸음 더 전진하고 있다고 본다. 미숙하고 피상적이긴 하나, 전통의식과 엘리어트의 수법을 가지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시집 「태양의 풍속」(1939),「바다와 나비」(1946)은 이미지시집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장시 「기상도」(1936)는 이미지즘과 미숙한 모더니즘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더니즘을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포함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주지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의 정신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체의 전통을 부정하는 절망적인 반역의 고뇌에서, 마침내 감각과 관능의 세계로 도피하고, 내일이 없는 향락, 탐미주의로 전락해 가는, 주의-주정주의를 내질로 하는 아방가르드 예술의 불모성을 극복하려고 하여 지성의 절대적 우위를 승인하고, 유럽 문명의 전통을 재생하며, 미와 정신의 질서와 권위의 회복을 제일의로 하는 문학적 태도를 주지주의라고 말하며, 프랑스 특히 영국에서 현저한 문학적 경향이었다.’1) 그리하여 주지주의는 첫째로, 전통을 반대하는 주의․주정주의적인 노만주의, 상징주의 및 그러한 경향이 모더니즘까지 반대하고, 둘째로 전통적 질서를 회복하여 현대 문명의 혼돈과 위기를 구제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것이며 김기림과 최재서가 한국에 있어서 열렬히 주지주의를 내세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2. 정지용론과 그 문제점 

 

 (1) 연구사 


  정지용론에 있어서는 찬양하는 쪽과 그 반대로 부정하는 쪽의 찬반 양론을 살  보고 있다.

  비판을 했던 쪽은 임화는 기교파로 몰아 공격하고, 이병옥은 객관적 실재의 표면만을 묘사했다고 비판했다. 이해문, 윤곤강, 조연현도 비판을 하고 있으며, 윤곤강은 ‘감각과 주지’에서 정지용이 ‘무철학’임을 지적하고 있고, 조연현은 ‘수공예술의 말로’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문덕수는 ‘심장의 노래’를 거부하고 비정적인 사물세계를 추구하려는 정지용의 의도를 반증하는 셈이 된다.고 보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김기림은 ‘1933년 시단의 회고’(1933. 12. 8. 조선일보)에서 “실로 우리시 속에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초의 시인”이라고 말하고,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에서도 “가령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은 거진 천재적 민감으로 말의 음의 가치와 이메지, 청신하고 원시적인 시각적 이메지를 발견하였고, 문명의 새 아들의 명랑한 감성을 처음으로 우리 시에 이끌어 드렸다.”고 말하는가 하면, 양주동은 “정지용은 현시단의 한 경이적 존재다.…… 아마 현시단의  작품으로서 불어나 영어로 번역하여 저들의 초현실적 예술경향, 그 귀족적 수준에 병가하랴면 이 시인을 제외하고는 달리 없을 듯하다.”

  그러나 문덕수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듯이 흑백논리의 찬부는 경계하여야 한다. 한 시인의 전면성, 다양성을 거부하고, 부분적이며 편협적인 고찰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바른 평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덕수는 정지용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작품분석을 위한 다양한 연구방법이 도입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실증적, 역사주의적, 형식주의, 영미나 일본의 머더니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비교연구방법, 원형․상징비평 등 다양한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역사주의 방법을 이용하였다.

  둘째, 작품분석의 토대위에 정지용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영미모더니즘과의 비교고찰과, 또 일인 모더니즘과도 관련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미모더니즘과 T. E. 흄(1883~1917), T.S.엘리어트(1888~1965), A.L.로웰(1874~1925)등과의 영향관계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진다. 또 오탁번은 그의 말기의 시는 동양고전과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2) 작품의 분석과 문제점


  문덕수는 정지용의 작품 분석을 통해,

  첫째, 어떤 대상을 주시하면 그 대상을 하나의 공간, 하나의 형태로서 고정시킨다고 보고 있다. 다른 사물이나 장소로 이동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의 공간의식 또는 상상구조의 한계요, 그 협소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의견에는 동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치밀하게 사물에 접근하고 그 사물에 대한 메타포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둘째, 어떤 대상을 고정시키면 그 대상의 감각적 묘사를 통해서 구체적 이미지를 제시할 뿐, 그러한 묘사적 심상 속에 다른 관념이 침투할 여지가 없다. 은유, 직유 등 모든 수사적 구조도 사물의 감각적 이미지의 제시에 이바지할 뿐이라 사회의식, 문명의식이 반영될 수 없어 사물시이며, 비인간적 세계라는 것이다. 그것은 식민지하의 상황하에서의 문학으로 살아남기 위한 입장이었음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째, 그의 시는 시간의식보다는 공간의식의 산물이다. 인간적 감상의 개입이 억제되어 있으나, 이미지의 예술적 미감, 어떤 조화와 쾌적을 느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문덕수는 그의 시를 ‘바다’에 관련된 작품, ‘들’‘향토’에 관련된 작품, ‘신앙’에 관련된 작품, ‘산’에 관련된 작품 분석으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에서 작품들을 들어 분석하고 있는데 종교에 관련한 시는 별로 성공적이라 보지 않고 있다. 사물시에서 후퇴한 관념시를 쓰고 있다고 보고 있다. 논자의 지적처럼 종교시로서 성공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시들은 지성의 절제와 극기가 없어서는 불가능한 만큼 자기소멸, 자아멸각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논자에게는 모더니즘시로서의 사회구원이나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면에서 모더니즘이 약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지용이 택한 것은 아무런 주장도 설득도 없고, 논리적 의미와 의식자체조차 문제되지 않는, 사물의 투명한 영상만 남겨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또 그의 문학적 틀질로서 공간성의 구조를 들면서 문덕수는 초기시에서는 1월적 구조를 보이고, 종교시에서는 2원적 구조를, 그리고 백록담에서는 3원적 구조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물을 연속의 원리에 의하여 보려고하는 태도보다는 고정된 현재를 중시하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정지용의 대부분의 시가 묘사적 심상인 이유는 이미지를 사물에 고착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며, 언어를 사물화하려고 하려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정지용은 주지주의 시인이 아니라 이미지즘 시인임이 분명하다고 했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시인의 태도에 있어, “남을 슬프기 그지없는 정황으로 유도함에는 자기의 감격을 먼저 진중히 이동시킬 것이다”라고 그의 ‘시의 위의’에서 말함으로서 그는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을 문덕수는 비인간적 세계의 추구로 보고 있다. 특히 백록담에서 그러한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정지용 문학의 영향관계를 살피면서 정지용은 동양고전의 영향과 또한 서구시 및 이미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또 일본의 신산문시 운동과도 유관하다고 문덕수는 보고 있다. 또 뒤에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나온 청록파 시인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의 작품을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정지용은 사물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분명하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며, 일반적이고 막연한 추상어를 쓰는 일이 없다. 이것은 정확한 언어의 사용, 일반적이고 막연한 언어 사용의 금지라는 이미지즘 원칙 6항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정지용은 그의 ‘시와 발표’라는 글에서 “시는 수자의 정확성 이상에 다시 엄격한 미덕의 충일함이다”라고 말한 바도 있다. T.E.흄은 “항상 견고하고 한정적이고, 개인적인 말을 찾아라”라고 말한다. “집중이 시의 바로 본질”이라는 말도 이미지스트들은 하고 있다. 집중성, 명확성에 있어 정지용의 시는 이미지즘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열은 상찬할 것이 아니며 정리되어야 할 대상이며, 그것을 정리하는 것은 지성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데에서는 명백한 주지적 경향이 나타난다고도 할 수 있다. 또 시가 언어예술이라는 자각에 있어, 김기림의 말처럼 “시의 유일한 매개인 언어에 대하여 주의한 최초의 시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지용의 시 창작 태도에 있어,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든가, 집중, 또 언어미에 대한 자각 등은 후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배우고 싶은 부분임에 틀림없다.        

  이상으로 모더니즘과 정지용시인을 살펴 보았다. 김기림과 김광균까지 다 요약해 보고 나서 이 논문에서 발견되는 좀더 큰 문제점을 지적하고 결론을 내리려 하였다. 책을 다 읽긴 했지만, 김기림과 김광균까지 정리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어 이만 생략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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