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운율구조론
-압운론을 중심으로
宇玄 김민정
1. 머리말
삿갓시인 김병연은 운을 잘 이용하여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시를 많이 지었다. 그가 어느 늦가을 밤 어느 절에 찾아 들어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인정상 거절못하게 되어있던 그 당시의 풍습인데 중이 보니 과객의 행색이 걸인이라, 겨우내 군식구로 늘어 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어쫓고 싶어 운자를 줄테니 시를 지으면 재워주겠다고 하며 <타>자를 주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병연은 <석양과객 시장타>, 그러자 중은 다시 <타>를 운자로 주었다.그러자 이버에는 <이절 인심 고약타>라고 대답했다. 다시 <타>자를 주자 <지옥가기 딱 좋타>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타>를 압운으로 썼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압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폭넓게 시도한 작업이 金昔姸의 「韓國詩歌의 押韻硏究」1)이다. 역대 시가들 속에서 압운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동의어 반복, 어미나 조사, 접미어의 반복들을 압운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안고 있었다. 金善豊의 「高麗歌謠의 形態的 考察-俗謠의 押韻律을 中心으로」2)에서는 고려속요 14수를 분석하여 여러 유형의 압운들을 확인하였으며, 許米子의「現代詩의 押韻에 대하여」3)에서는 영시의 압운 이론을 적용하여 한국 현대시에서의 압운을 고찰하고 있는데 구문상의 문제로 인해 한국시에서는 서구시에서처럼 압운의 발달이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金大幸은「押韻論4)」에서 압운에 대한 개념과 기능을 명확히 밝히고 압운을 음성론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것으로 규정하여 동일어의 반복이 아닌, 상이한 단어에서의 동일음의 반복으로 보았으며, 語戱(pun)적인 것이 아닌 강세 효과를 그 기능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한시나 서구시의 압운 이론을 지나치게 한국시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무리가 없지 않았는가 하고 임홍기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임홍기는 아직 한국시에서의 압운의 이론이 정립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외국의 압운이론을 우리 시가에 그대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언어에 부합된 한국 시가 특유의 압운이론으로 새롭게 정립하고자 한 것이 임홍기의 압운론이다. 그의 이론의 새로운 면을 일단 정리 요약해 보기로 하자.
2. 압운의 개념
율격이 고저, 장단, 강약 등의 소리의 성질이 빚어낸 일정한 틀이 반복되면서 만들어 낸 운율인데 반하여 압운은 동일한 소리의 반복에 의해 형성된 리듬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반복되는 소리의 범주를 어떻게 잡느냐이다. 반복되는 소리를 막연히 압운으로 다룬 확대론자의 경우와, 동일한 단어의 반복이나, 동일한 조사나 어미 곧 형태소의 반복은 압운으로 다룰 수 없다는 한정론자의 견해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한정론자의 대표적인 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행의 ‘압운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압운 이론을 가지고 한국시에서의 압운의 개념 규정을 시도하고 있다.
(가) 최소단위인 音素에서부터 최대단위인 文에 이르기까지 어떤 조건 아래서도 형성될 수 있는 동음반복 가운데 어디까지가 압운론의 영역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앞서 인용한 한시는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즉 압운에 해당하는 것은 음성의 차원이다. 여기서 확대되어 어휘론, 통사론적인 동일요소반복은 압운론을 벗어나 문장 수사학적 반복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5)
(나) 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栢森森〔sen〕
映階碧草自春色 隆葉黃鸝空好音〔yin〕
三顧頻繁天下計 兩朝開濟老臣心〔shin〕
出師未捷身先死 長使英雄淚滿襟〔chin〕
여기에 보인 운은 〔침ch'in〕운으로서 이처럼 압운이란 음절 전체가 완전히 동일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부분적인 음성의 동일을 요한다. 그런 바에는 압운이 음성단위의 논의라야 할 것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6)
(다) 물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 김소월, 「꿈길」
위 시의 ‘길,숲’은 분명 동음반복하긴 하지만 압운론의 성질의 것이 못된다. 이것은 ‘길,숲’들이 이미 음운론의 범위를 벗어나 어휘론적인 동일형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철이의어(homograph)가 아닌한, 그것은 문장 수사학의 범주에 들어야 하며 압운론에서 취급될 성질이 못된다는 것이다.7)
(라) 芙蓉을 꼬잣 白玉을 믓것
東溟을 박 北極을 괴왓
- 정철,「관동별곡」
여기에서는 ‘’의 반복은 이미 음소의 단위가 아닌 형태소의 반복이다. 보다 큰 단위에 의해 형성된 동일성은 그 하위부류의 동일성을 제압해 버리므로 음성의 동일성을 인식하기 전에 의미의 동일성을 가져 오고야 마는 것이라고 하여 압운의 예로서 적당한 것이 못된다고 하였다.8)
(가)의 요지는 압운은 음성의 문제이므로 그 범주를 어휘나 형태소의 반복에까지 확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며 (나) 한시를 예로 들면서 압운은 단음의 반복만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다. (다)에서는 한국시에서의 동어반복은 압운이 아니라 수사학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며, (라)에서는 동일 형태소의 반복 역시 압운으로 볼 수 없다는 김대행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으로서 임홍기는 다음을 주장하고 있다. 첫째, 위의 압운론은 한시의 압운을 전제로 해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국시에서의 압운이 한시나 서구시에서의 압운의 형태와 반드시 동일해야 한다는 주장은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곡미어인 서구와와 교착어인 한국어는 언어구조상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글 (다)에서는 음운론의 범위를 벗어나 어휘론적인 동일 형태이기 때문에 압운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동음이의어가 아닌 한, 단어의 반복은 압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홍기는 압운이란 소리의 반복이 빚어낸 해조 현상이므로 음절이나 어절의 반복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거부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글(라)에서 압운의 범위를 단음으로 하겠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데, 만일 압운의 범주를 보다 크게 설정하면, 작은 단위(단음)의 반복보다는 큰 단위(음절 혹은 어절)의 반복이 보다 강렬하게 작용한다는 김대행의 주장도 긍정적으로 압운론에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어의 어절이나 문장 그리고 시행의 끝은 거의 형태소에 의해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에 형태소를 압운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한국시에서의 압운 시도는 거의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압운의 범주를 단음으로 고집하지 말고 음절 이상으로까지 확대하면 된다는 것이 임홍기의 주장이다.9)
3. 압운의 종류
가. 음량에 의한 분류
(1) 단음운: 가장 작은 음량인 단음이 압운의 단위가 되는 경우이다. 이는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할 수 있고, 자운은 다시 초성운, 종성운으로 구분되며 모운은 중성운이라고 할 수 있다.
예1)목화밭 청무우 시린 다복솔
옥양목 달에 젖은 부신 저고리
시오리 가리맛길 잠든 산마을
시루봉 머리 위에 걸린 달무리 -임보, 「달밤」10)
제1행과 제3행의 끝이 자음 ‘ㄹ’로 압운되어 있다. 또한 제1행과 제2행의 첫음절이 모음 ‘ㅗ’와 자음 ‘ㄱ’이 압운되어 있다. 이 경우 중성과 종성운을 아울러 지닌 형태이다.
(2) 음절운: 자음과 모음의 결함인 음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한국시의 압운은 음절 단 위에서 활발히 일어난다. 위에 시에서 제2행과 4행의 마지막 음절 ‘리’와 제3행과 제4행의 첫음절‘시’가 각각 동일한 초성과 중성으로 이루엊ㄴ 음절운이다. 단음절 운, 다음절운이 있다.
(3) 어절운: 한 어절이 단위가 되어 반복되는 경우이다.
(예: 꽃이 있고 물이 있고 나무가 있고
나무 아래 바위가 있고 바위 끝에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는 내일이 있고 문명이 있고
그 건너에는 집이 있고 거리가 있고 떠들석한 사람들이 있고
- 박의상, 「초혼」11)
위 시에서는 ‘있고’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4) 구절운: 반복되는 단위가 두 어절 이상인 경우이다
(예: 느릅나무 향나무 이깔나무들
계집같이 안 잊히는 때는 어느 때인가.
백일홍 복숭아 꽃숭어리들
가슴결에 피어나는 때는 어느 때인가.
-강우식, 「사행시초․스물아홉」12)
위 시에서 ‘-는 때는 어느 때인가‘에서는 세 어절 이상의 구절운이 실현되고 있다.
(5) 행운: 반복이 행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이다.
(예: 깃털보다
가볍게
나는 법을
연구 중
무쇠보다
무겁게
갈앉는 법
연구 중
인간의
인간을 위한
사랑법을
연구 중
「나는 지금」13)
위 시에서 ‘연구 중’이 반복되는 단행운이라 볼 수 있다. 二行韻, 또는 聯韻도 있다.
나. 음위에 의한 분류: 압운이 실현되는 위치에 따른 분류이다.
(1) 행내운: 하나의 행 안에서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ㄱ)행내단음운
예)말니지 못할 만치 몸부림 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십픈
맘이라고나 하여 볼까
-김소월, 「천리만리」일부14)
ㄴ)행내음절운: 행 내에서 반복되는 음운의 단위가 음절인 경우이다
예)일자리 잃고
집에서 지내네
아내는 안에서
한숨이 한이 없고
나는 난감하여
낯빛이 납빛이네
돈은 돌고 돈다는데
돈에 돌아야 도는 걸까
- 채희문, 「우울한 日誌․15」일부15)
ㄷ)행내어절운: 동일한 어절이 행내에서 반복되면서 만들어 내는 압운이다.
예)말이 운다. 여섯 필 은빛 말이 달을 보고 운다. 달 아래 흘러가는 강을 보고 운다. 산 을 보고, 들을 보고, 저잘 보고 운다. - 박두진, 「달과 말」일부16)
위 시에서 ‘운다’,‘보고’ 등의 어절이 여러번 반복되면서 압운효과를 내고 있다. ‘보고 운다’를 단위로 잡으면 행내구절운이 실현된다.
(2) 행간운: 행과 행들 사이에 빚어진 압운이다. 행말운, 행두운, 행중운으로 구분한다.
ㄱ) 행말운: 그동안 ‘각운’이라 불리던 것이다.
예) 생갈치
이치
서울치
눈치
저치
미국치
그렇지
좋지
-범대순, 치돌림-17)
ㄴ) 행두운: 그동안 ‘두운’이라 불리던 것이다.
예)그만 묻어 두고 싶다.
그 말씀을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듯이
바라는 것이 많아서
바램이 무엇인지도 모르듯이
조용히 일러 주리라
조금만 다가 오라고
-김광림, 「연가」18)
ㄷ)행중운: 각 행의 중간 상응한 위치에 규칙적으로 동일한 소리가 반복되는 압운 현상
예)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 김광규, 「생각과사이」일부19)
다. 배형에 의한 분류: 배형이란 음의 배열 형태를 말한다. 압운되는 형태에 의한 분류이다.
(1) 첩운: 같은 소리가 거듭 이어지는 형태
ㄱ) 행내첩운:
ㄴ) 행간첩운: 행말첩운, 행두첩운, 행중첩운 등이 있다.
(2) 교운: 두 종류의 소리가 서로 교차되면서 압운되는 현상
ㄱ) 행내교운
ㄴ) 행간교운
(3) 전운: 압운의 형태가 바뀌면서 전개되는 현상이다.
ㄱ) 행간전운
ㄴ) 행두연간전운
(4) 혼운: 두 가지 종류 이상의 다양한 압운이 실현되고는 있으나 일정한 규칙이나 질서가 없
이 섞여 있는 상태
4. 압운의 효율
압운은 소리의 반복이 빚어낸 조화로운 율동감이며 청각적인 미감을 창출해 내는 시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능률적인 압운이 되려면 반복되는 소리가 지닌 음감과 시행이 담고 있는 정조가 서로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 슬픈 정조를 담고 있는 시행에 압운된 소리가 명랑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든가, 즐거운 분위기를 드러내는 시행에 무겁고 어둔운 느낌의 압운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임홍기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보여지며, 시가 창작자가 시가 창작을 하는데 있어 압운의 효율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창작자 자신이 음상 하나하나에 대한 미세한 감지 능력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또한 음성상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 질 때 압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5. 맺음말
지금까지 강홍기의 압운론을 요약해 보았다. 그는 한국 시가에 나타나는 압운론은 한시나 서구의 압운론이 아닌 우리에게 맞는 압운론을 적용해야 한다고 하여 새로운 여러 가지 압운론을 제기하고 있다. 김대행의 이론보다 압운의 폭을 넓게 잡고, 분류하고 있다.
(1) 음량에 의한 분류: 단음운, 음절운, 어절운, 구절운, 행운
(2) 음위에 의한 분류: (가) 행내운- 행내단음운, 행내음절운, 행내어절운
(나) 행간운 - 행말운, 행두운, 행중운
(3) 배형에 의한 분류: 첩운, 교운, 전운, 혼운
그 동안 한국시에는 강홍기의 지적처럼 압운이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많이 연구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바로는 한국시에는 두운과 각운이 나타날 뿐 요운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것이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가르쳐 왔는데 이 논문에서 강홍기는 그것을 행두운, 행말운, 행중운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행중운(요운)의 적절한 예도 보여주고 있다. 별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 시가에 대한 좀더 폭넓은 압운의 연구도 재미있으리라 생각을 갖게 해준 논문이었다.
이병기의 「시조란 무엇인고」, 이은상의 「시조단형추의」이광수의「시조의 자연율」 이병기의 「율격과 시조」조윤제의「시조자수고」에서 파악한 시조의 구조는 <3․4․4(3)․4, 3․4․4(3)․4, 3․5․4․3 >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자리를 굳혀 지금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17쪽)
현대시조도 노산 이은상씨 같은 작품은 노래로 많이 불려졌다. 서정적인 면만이 강조되어 현대감각적인면에서는 미흡한지도 모르지만, 시조로서의 율격이라든가,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본인의 작품도 7편정도 서울교사합창단에서 가곡으로 작곡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천 여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여러 번 불려진 적도 있긴 하다. 그런데 요즘에 창작되는 제 시조는 오히려 깊이나 현대감각적인 면에서는 조금 발전했을지 모르지만 서정적인 면에서는 뒤떨어지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병욱의 「고시가운율론서설」에서는 한국 시가의 자수율적 율격 체계를 부인하고 강약률로서의 새로운 율격이론을 내세웠다. 또한 음보(foot)의 개념을 가지고 최초로 율격을 설명하려 했다.
이능우는「자수고대안」이란 논문에서 한국 시가의 율격 체계를 자수율 대신 강약률로 보려는 점은 정병욱과 같으나 정병욱은 강약의 요인을 언어 자체의 성격에서 찾으려 한 데 비하여 이능우는 심리 현상에 바탕을 두고 설명하려고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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