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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천산천지와 위구르족의 겔 - 내가 본 비단길 2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8. 3.

4.  天山(천산) 天地(천지) 

 

                     

                                           중국 우루무치 천산 천지에서의 필자                                 1995년 7월 31일.

  이날은 천산(天山) 천지(天地)를 가기로 하다. 비단길(silk road)의 천산북로, 천산남로로 갈라지던 그 유명한 천산(톈산)이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 이곳에서는 버스를 기차(汽車)라고 쓴다. 또 기차는 화차(火車)라고 쓴다. 우리끼리 가겠다고 말했는데도 굳이 안내하겠다며, 시베족의 사촌 동생이 함께 가 주어, 안심은 되었다.

    우루무치에서 천산까지는 3시간 거리다. 시내를 벗어나 끝없는 지평선만 보이는 ‘고비’사막을 버스가 달린다. 몽고어로 ‘고비’란 ‘풀이 잘 자라지 않는 땅’이란 뜻으로 모래땅이라는 뜻은 없다고 한다. 고운 모래가 있는 곳이 아니라 검은 흙과 암석의 황무지 길이다. 이러한 사막에다 아스팔트를 깔고 도로를 만든 것이다. 도로 옆도 평평하여 구태여 도로 위로 달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가끔 낮은 언덕이 나타나지만 나무가 없고 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지랑이 같이 가물대는 사막의 열기가 피어 오른다. 한참씩 눈을 감고 가다가 눈을 떠봐도 똑같은 풍경이다. 옛날 거상들은 낙타를 타고 이렇게 희망없고, 삭막하고, 더운 길을 타박타박 걸어갔을 것이다. 지금 버스를 타고 달려도 지루하고 눈이 피곤한 길을 말이다. 인내심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사막길을 걸어가게 했다면 어떠했을까? 환상의 오아시스, 즉 신기루가 보일만도 하다. 생떽쥐페리의『인간의 대지』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한낱 떠돌이별인 이 땅위에서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며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인간의 의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천산에 가까와지면서 옥수수를 심은 곳도 보이고, 또 해바라기밭도 보이고, 과수원에 사과가 달린 모습도 보인다. 해바라기를 보니 영화 ‘해바라기’가 생각났다. 

그 끝없는 평원에 노오란 꽃들이 일주일간을 사랑하고, 10년을 기다리던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의 외로움을 타는 듯한 그 큰 눈과 어울려 한없는 그리움을 자아내던.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고 시인 서정윤은 노래하고 있지만, 기다림이란 이렇게 전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의 몫이란 말인가?

   매일 식탁앞에 홀로 앉아 마른 빵과 커피를 마시던 그녀의 고독과 기다림이 너무 애절하게 느껴졌다. 전사하지 않았으리라는 신념 아래 10년을 기다리던 소피아 로렌은 드디어 직장을 그만두고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나선다. 수없이 많은 고생을 하며 묻고 물어 이탈리아에서 소련까지 그 남자가 사는 집을 찾아갔을 때 그녀가 만나는 건 집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두 아이를 둔 여인, 그녀는 남편의 새 부인이었다. '소피아 로렌'의 남편이었던 남주인공은 패전후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것이다. 눈밭에서 동사하기 직전에 자신을 구해준 소녀와 결혼을 하고, 과거를 까마득히 잊은 채 새로운 삶을 살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직장에 간 그를 만나지도 않은 채,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나서야 비로소 어깨를 들썩이며, 뜨겁게 울던 소피아 로렌,  두 뺨을 타고 흐르던 그녀의 눈물……, 그 장면이 너무 슬퍼 나도 따라 울었었다.     결혼하기전 사귀고 있던 지금의 남편과 그 영화를 보았는데, 그때 영화를 보고 난 그의 반응은 ‘별로’였다. 나는 ‘감정이 되게 무딘 남자’라고 핀잔을 주었었는데, 몇년 전 텔레비젼에서 방영되는 그 영화를 다시 보고는 ‘저런 내용이었나, 괜찮은데!’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마 옛날에는 자막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때보다 감정이 조금 성숙(?)했나 보다.          

 

5. 

카자크족의 겔

 

 

 

                                                        중국 우루무치 천산 천지에서의 필자

                                                                

     

천산 가까이 가니 ‘천지(天地)’에서 흐르는 급류가 있었는데 중국에선 보기 힘든 맑은 물이다.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이라 맑을 수 밖에 없다. ‘천지’는 백두산의 ‘천지(天地)’와 같은 한자 이름의 호수다. 계곡 바로 옆으로 버스길을 만들어 계곡은 더욱 좁아지고 물살은 더 거세어진 것 같다. 신강성 주변의 사람들은 이 물을 많이 마신다. 중국 어디를 가나 물(식수)을 팔고 있고, 중국인들은 플라스틱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 한병에 3~4원 정도인데 나도 며칠 중국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물병을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습관이란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인가. (물론 우리나라에서 물병을 팔기 몇 년 전이다.) 

    천산 입구에는 말과 마차를 준비해 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다. 처음 타보는 말이었지만 위험하지도 않고 기분도 괜찮았다. 천지까지 말을 타고 올라갔는데 10분 정도의 거리다. 먼저 ‘천지’가장자리를 돌아 호수밑쪽으로 내려가니 ‘소천지’라는 작은 호수가 있었고, 그 밑으로 흐르는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백두산의 ‘비룡(장백)폭포’가 생각났지만 이번 여행 계획에는 그곳을 둘러볼 계획이 없어 아쉬움을 느꼈다.  

 

    유람선이 떠 있는 ‘천지’는 넓은 호수였고, 에메랄드 빛 맑고 깨끗한 물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호수 주변은 잎푸른 여름이지만 멀리로는 천산의 하얀 만년설이 구름속에 모습을 보였다 숨겼다 한다. 바로 이 호수는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 만들어진 것이다. 맑고 투명한 물을 따라 만년설이 흘러내리는 골짜기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유람선은 호수의 중앙쯤의 기슭에서  다시 돌아온다. 유람선을 타고 햇살이 따가와 양산을 펴 들었더니 괜찮아 보였는지 중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겠다며 빌려달라고 한다. 유람선을 내린 후 우리는 카자크족들이 만들어 놓은 겔(천막집)을 보기 위해 ‘민속촌’이란 곳으로 갔다.

 

천산천지 호수: 멀리 만년설이 보인다

    호수 주변에도 말을 준비해 놓고, 호수 주변과 민속촌을 돌게 하고 거리에 따라 5~10원을 받기도 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중국 전통옷을 빌려 주며 말을 타고 사진을 찍게하고는 3원씩 받기도 한다. 민속촌은 호수 주변의 언덕이었으며 걸어도 될 거리였지만, 햇살도 따갑고 말임자들이 말타기를 하도 권해서 말을 탔다. 호수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말을 타고 달리는 기분은 상쾌했다. 아마 내가 징기스칸의 후예였다거나, 카자크족이었다면 말을 아주 잘 탔으리라. 말을 타고 끝없는 평원을 달려보고 싶기도 했다.  

 

 

중국 우루무치 천산 천지 앞의 말타기

 

    천지의 맑은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옆에는 20~30개의 겔이 있는데, 카자크족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여 겔을 보여 주고, 말젖, 소젖, 소젖 말린 것, 과자 등을 팔면서 또 잠자리도 제공하면서 생활해 가고 있었다. 겔의 내부에 들어가니 카자크 여인이 비스킷 과자와 건조한 소젖과 가공하지 않은 소젖, 말젖을 가져 와서 밥공기 같은 그릇에 따라주며 한잔씩 먹으라고 건네 주었다. 말젖은 시금털털하여 한 잔씩 마시고는 더 마시고 싶지 않았다. 겔은 우리 나라 농촌의 곡식 낟가리를 연상하게 했는데, 겔의 천장 중심부엔 천을 닫았다 열었다 할 수 있어 햇빛이 들어오게 하여 내부의 습기를 방지하고 있다. 생각보다 위생적인 생활이다. 가장자리엔 양탄자(카페트)를 둘러쳐 아늑하게 느껴졌고 바닥엔 역시 양탄자를 깔았다. 이들의 세계에선 양탄자를 많이 깔수록 부자라고 한다.

 

  중국 우루무치 천산 천지 위구르족의 겔

 

   하루에도 수백명의 관광객이 천산의 천지를 다녀가지만 아직 천산의 천지는 그들을 포용하기에 충분하다. 산도, 물도, 공기도 무척 맑고 아름답다. 하룻밤쯤 묵어 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아니 며칠쯤 쉬어가도 좋을 만한 곳이다. 동트는 새벽의 천지 모습도 보고 싶고, 밤의 모습도 보고 싶다. 또 카자크족들과 며칠 함께 생활도 해 보고 싶다. 해발도 높고 공기도 맑아 밤이면 별빛도 아름답게 쏟아지리라. 어렸을 때 내고향 강원도 산골처럼. 그러나 나는 다음날 우루무치를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그곳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인생은 아쉬움이 남아야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슬픔이 있어 인생이 아름답듯이.        

    

   저녁에는 다시 우루무치의 산장호텔로 돌아오는데 사막의 새빨간 석양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길거리 음식점으로 나갔더니, 길가에 있는 음식점들이 낮에는 탁자를 안에다 들여놓고, 저녁에는 넓은 인도에다가 식탁과 의자를 내놓고 음식을 판다. 인도가 넓은 데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먼지나 소음이 많지 않고 사람들이 지나 다녀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곳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시켰더니 얇게 썰어 편육처럼 생긴 고기에다 양념을 하여준다. 맛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양고기도 좋아한다. 신강(우루무치)에는 양고기가 많고 값도 싼 편이지만, 다른 지역에선 그렇지 않은 듯 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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