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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안을 향하여 - 내가 본 비단길 4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8. 3.

9. 서안

 

 

 

  

서안을 가기 위해 기차역 유원을 향해 오는데 멀리 파도가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사막에 웬 바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가까이 오니 그것은 사막 속의 오아시스 ‘유원’의 나무들이 그렇게 보였음을 알았다. 지평선 멀리로 보이던 그 푸른 바다가 바로 초록색 나무들이었던 것이다.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신기루를 본 느낌이었다. 오아시스를 그리워하며 뜨거운 사막을 왕래하던 옛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비로소 사막 속의 오아시스가 대상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가 실감하게 되었다. 본 만큼, 경험한 만큼 세상은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고 하던가.  

    중국의 기차는 4인 침대차, 6인 침대차, 일반석이 있는데, 침대차표 사기가 무척 힘들다. 4인 침대차는 각 실에 문까지 있지만, 6인 침대차는 3층까지 있어 상중하(上中下) 양쪽 6개의 침대가 있고 하(下)층이 가장 비싸다. 그리고 한쪽에는 통로가 있고, 접의자가 있어 펴서 앉고, 서면 저절로 접힌다. 상층이나 중층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하층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하고, 앉기도 하여 시끄럽지만 창가에 붙박이 탁자가 있어 식사를 한다든가 차를 마실 때는 좋다. 상층은 너무 덥고 잠자기엔 중층이 제일 좋다. 우린 다행히 중층이었다.  

    지금은 돈황에서 서안으로 가는 기차안이다. 끝없는 사막, 황량한 지평선 사이로 기차가 달린다. 서안까지는 4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중국시간으로 오후 8시 30분, 한국시간으로 9시 30분이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고 있다. 지평선에 걸린 해를 뒤로 하고 중국 대륙을 기차가 달린다. 보이는 건, 황량한 황무지이다. 전봇대가 20~30 미터 간격으로 서 있을 뿐 나무와 풀은 보이지 않는다. 이육사의 ‘절정’이란 시,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가 생각나는 곳이다.

    가끔씩 나무가 보이고 물이 보이는 곳이 나타나면 곧 정거장이다. 그곳에선 인간이 터를 이루고 모여 살아 도시를 이루는 것이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달리다 보면 그런 곳이 나오고, 그곳이 바로 사막속의 오아시스이다. 가끔 관계 수로를 만들고 나무를 심으려는 노력을 보인 곳도 있으나 워낙 더운 곳이고 물이 귀한 곳이라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있다. 나무를 심으려고 만든 관계수로를 보면서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소설이 생각났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1953년 처음 발표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40년 동안 여러 나라의 말로 옮겨져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에는 온갖 이기주의를 벗어나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그리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불굴의 정신과 실천이 이 땅에 기적같은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인공의 이러한 자연 사랑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 즉 실천으로 나아가 기적같은 결과를 실제로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즉 자신의 ‘성공’을 보여줌으로써, 농부인 자기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도 고결하고 거룩한 생각을 가지고 굽힘없이 목표를 추구해 나가면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는 데 있다. 즉 우리들 마음속에 ‘희망의 나무’를 심어준 셈이며 우리의 메마른 영혼 속에 푸른 잎을 피워낼 내일의 ‘도토리’를 심어준 셈이다. 주인공은 그 자신의 체험을 통해 보잘 것 없이 작은 우리를 거인의 크기로 키워주며 자신없어 움츠리고 있는 우리를 영웅적인 인간의 크기로 드높여 준다.

   주인공은 우리에게 힘 있게 말해 준다. “참으로 이 세계를 선하고 아름답게 바꾸어 놓는 것은 권력도 부도 아니다. 위대한 정치가도 재벌도 천재도 아니다. 이름나지 않은 보통사람들, ‘그러나’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 사심 없이 침묵과 고독 속에서 서두르지 않고, 속도를 숭배하지 않고, 굽힘없이 선하게 살며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또한,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지오노의 고향 마노스끄의 입구에는 이렇게 쓴 팻말이 걸려 있다고 한다. “이곳은 프로방스의 위대한 작가 지오노가 태어나고 살고 잠든 곳이니 조용히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이런 황무지를 보았다면 틀림없이 나무를 심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생각, 그 주인공이라면 이러한 황무지를 옥토로 가꿀 수 있을 것만 같다는 환상을 하는 사이에도 기차는 계속 서안을 향해 달리고 있다.

 

 

  

   기차를 타보면 중국인의 생활을 그대로 알 수 있다. 중국인에게 있어 기차 여행은 곧 생활이다. 우루무치에서 북경까지는 3박4일이 걸리니까 생활 필수품을 준비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수시로 장사가 기차를 지나 다니지도 않으므로 필요한 맥주며, 차며, 빵, 컵라면, 과자, 수박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직접 가지고 기차를 탄다. 그래서 짐이 많아질 수 밖에 없고, 또한 쓰레기도 많다. 물론 정거장 플랫홈에서는 맥주, 과일, 과자, 컵라면 등을 팔기도 하지만, 두 세시간만에 한 번 정거장이 나타나니 불편하다. 중국 사람들은 잘 먹는다. 여행중에 수박 1통 정도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타고 맥주도 준비한다. 컵라면도 끓여 먹고, 싸온 도시락도 먹는다. 식당칸은 있으나 음식 종류는 많지 않다. 또한 침대차에는 뜨거운 물을 담아 두는 보온병이 6인 침대마다 하나 정도가 있고, 물을 보급하는 곳이 있어 떨어지면 사람들이 가서 다시 담아 오곤 한다. 그리고 일반 수도는 따로 있다. 화장실도 있지만 깨끗하지 않은 편, 물론 다른 곳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여행중에도 휴지를 휴대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휴지를 파는 곳도 별로 없어 사기가 힘들었고 질도 좋지 않다. 종이컵도 없다. 맥주는 병째 마시며, 물컵은 각자 가지고 다닌다.

 

   철로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고 철도청에서 TV에 광고하지만, 아이러니컬한건 수박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놓았더니 여차장이 와서 안 버렸다고 화를 내며 차창밖으로 마구 버렸다. 맥주병이며 컵라면 껍질이며 수박 껍질 등 닥치는 대로 버린다. 넓은 황무지라 애착이 없나 보다. 더러는 병을 모았다가 정거장에서 병을 모으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주기도 한다. 또 기차칸마다 차장이 있다. 차에 오를 때 차표 검사를 하고, 가끔청소를 하고, 가방 등이 조금만 삐져나와도 안전하게 다시 얹도록 지시한다. 또 차표를 침대표와 교환해 주었다가 역에 내릴때는 다시 바꿔주기도 한다. 차가 정거장에 정차하면 내려서 차렷자세로 출발할 때까지 차문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 이때 한 쪽의 출입문은 잠가 놓고 한 쪽, 즉 차장이 있는 곳만 개방한다. 차표 없이는 절대로 차를 탈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은 길고 지루한 여행이라 플랫홈에 내려서 바람도 쐬고 필요한 요기거리를 사기도 한다. 그리고 차가 출발하면 그 플랫홈의 많은 역무원들은 차렷자세로 차가 다 지날때까지 거수 경례를 하거나 최소한 차렷자세로 서서 차를 지켜본다. 인상적인 장면중의 하나이다.

 

   8시 50분쯤 드디어 해가 진다. 사막엔 밤이 되면 서늘해진다. 해가 지는 황혼 무렵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참 좋은 시간이다. 낮에는 창문을 열고 열차가 달리면 더운 바람이 훅훅 끼치지만, 초저녁엔 기온도 알맞고 참 멋있다. 하늘이 가까워 뵌다. 차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밤하늘을 쳐다보면 그 맑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빛에 매료되어 별들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난주’부근부터 황하가 시작되고 있다. 이름처럼 누런 물이 흐르고 있다. 밤하늘은 역시 별이 빛나지만, 우루무치와 돈황에서처럼 빛나진 않았다. 그리고 밤바람이 차서 창문을 닫고 잔다. 11시가 넘으면 차장이 다니면서 불을 꺼준다. 사람들은 잡담도 하고 잠도 잔다.

 

10. 서안(옛 장안)

 

 

 중국 서안(옛 장안) 대안탑

 

 

  1995년 8월 6일 일요일. 

대륙의 아침이 밝았다. 하늘이 무척 푸르다. 뜨거운 하루가 시작될 것 같다. 서안까지는 2시간 정도가 남았지만 사람들은 벌써 짐을 챙긴다. 긴 여행이 지루해서 마음들이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서안에서 내리자마자 택시기사들이 모여들이 호텔을 소개해 준다며 야단이다. 서안에서 대만 호텔이라는 곳에 묵게 되었다. 이날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 대안탑, 소안탑, 비림박물관 등을 관람했다. 호텔에서는 관광지 5곳을 돌게 하고 150원을 달라고 했는데 비싸다고 판단하여 우리는 개인적으로 관광을 하다. 택시도 타고, 인력거(오토바이)도 타면서 돈을 아꼈지만, 개중에는 못된 택시 기사를 만나기도 하여 길도 돌아가고 14원이 나왔는데 20원을 주었더니 됐다면서 잔돈도 안 거슬러 주고 휑하니 간다. 어이가 없었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어 멍하니 쳐다보며 참을 수 밖에. 

그리고 박물관 뒷골목을 구경했다. 어디든 관광지엔 선물 가게들이 즐비하다. 비림박물관 옆 골목은 옥돌로 만든 도장 같은 것이 다른 곳에 비해 싼 편이었다. 옥이 많이 나는 지방이라 옥이 쌌다.     

    대안탑은 자은사라는 절 안에 있는 데 7층 64m의 탑이었다. 자은사는 648년 당고종이 태자로 있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만든 절로 현재의 모습은 청대에 재건축한 것이다. 652년 당나라의 고승 현장법사가 천축(인도)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상과 경전 등을 보존하고 번역하기 위해서 고종에게 요청하여 건립한 탑이다. 외부는 벽돌로 만들어졌지만 탑내에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서 걸어 올라갈 수가 있다. 매 층의 사방에는 각기 하나의 아치형 문이 있어서 먼 곳까지 내려다볼 수 있다. 밖에서 입장료를 받는데 7층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요금을 다시 내야 한다. 내국인은 1원인데 외국인은 10원을 받는다. 우리는 중국인과 같은 계통의 동양인이라 한 두 마디의 짧은 언어, 즉 2장이란 단어 '얼' 한 마디로 쉽게 중국인처럼 행동하고 싸게 표를 구할 수 있었지만, 서양인들은 정말 억울할 것 같았다.

    소안탑(小雁塔)이란 중국 당나라 때 장안성 내의 천복사 경내에 경용(707년~710년)년간에 건립된 벽돌탑이다. 소안탑은 13층의 탑인데 2층이 없어져 11층이 남아 있고, 보수가 없어 역사 그 자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어떤 인도를 다녀온 스님의 번역작업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서안

 

    비림박물관은 비석이 숲을 이루었다 하여 비림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수많은 비석을 모아 놓은 곳이다. 북송 철종년간(1087년)에 처음 지어져 현재까지 9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비림은 현재 7개의 대형 진열실과 8개의 회랑, 그리고 8개의 비정에 한대부터 청대까지 2,300여개의 비석을 수장하고 있으며, 그 중 1,000여개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전서、예서、초서、행서 등의 각종 서체를 비교할 수 있으며 유명한 서예가들의 필체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비림은 중국 고대 서예 예술의 보고이자 고대 문헌서적과 비석의 조각 도안 등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이다. 거북 받침이 밑에 있었고, 많은 명필 비문들이 모여 있었다. 특히 사서삼경의 내용들이 많았고, 목숨 ‘수(壽)’자도 더러 있어,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비석들의 규모가 크고 양이 아주 많아 중국의 땅덩이가 넓음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이곳 서안에서는 한국인들을 많이 만났다. 어떤 가게에서는 “이 옷은 물에 빨아도 물감이 빠지지 않습니다.”라고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문구가 한글로 써 있기도 하여 한국관광객이 많은 곳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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