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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6일 국방일보] | |
시의 향기- 성자(聖者)처럼 나무는<주원규> |
생존에 꼭 필요한 물기만 빨아올린다
나무는, 고요히 바람 잔 날이나
가지가 휘는 바람 불 때에도
더도 덜도 말고 생존에 꼭 필요한
공기만 호흡한다
노란꽃은 노란꽃 피울 만큼만
호두나무는 호두알 익힐 만큼만
햇빛을 좇아 몸을 내어 민다
눈을 들면 눈높이에서
내 혓바닥만한 나뭇잎들이
내 혓바닥보다 더 자유롭게
바람과 밀어를 나누고 있다
전신으로 삶에 순응하며
나무는 공기와 진정으로 악수한다
나무는 햇살과 진정으로 입 맞춘다
나무는 토양과 진정으로 포옹한다
겨울 동구에
성자처럼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나무는 그에게 필요한 양만큼의 물만 빨아들이고, 그의 생존에 필요한 양만큼의 공기만
받아들이고, 또 그가 꽃 피우고 열매 익힐 양만큼의 햇빛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 지나치
게 욕심을 부리며 더 많이 차지하고 싶어하고, 더 많이 사랑받고 싶어하고,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싶
어한다. 먹고 입고 살 만한데도 상대적 빈곤을 느끼고 좀더, 좀더 하고 욕심을 낸다.
그래서 늘 인간의 마음은 가난하고 허기가 진다. 물론 인간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이 없다면
생활에 권태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현실의 자아에게 만족도 할 줄 알고 자기자신의 현재를
사랑할 줄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만큼만 가지
고도 당당히 성자처럼 서 있는 한 그루 나무를 보며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우리의 삶을 한 번쯤 반성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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