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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병영

잠 덜 깬 물소리 / 권갑하 - 시가 있는 병영 55

by 시조시인 김민정 2009. 2. 21.

                                                                                                                    사진 출처: 코리아산하

 

2009년 02월 16일 국방일보
 
詩가 있는 병영 - 잠 덜 깬 물소리<권갑하>

상류로 오를수록 썩지 않을 뼈만 남아
저마다 빈 하늘 한 채씩 이고 선 봉우리들
건너 뛴 아찔한 벼랑 가부좌 튼 푸른 솔

희미한 옛 기억 같은 햇살도 햇살이지만
그 여름 곧고 푸른 노래 다 어디로 스미었나
산마저 굴릴 것 같던 포효보다 깊은 적막

하얗게 허기진 가슴 음각으로 달은 지고
그대 남긴 향기인 양 풀려나는 매운 눈발
헐리는 경계 앞에서 난 얼마나 흐릿한가

목에 걸린 음절 하나 돌탑 위에 올려놓고
길마저 길을 묻는 무금선원(無今禪院) 뜰에 서면
내설악 잠 덜 깬 물소리 퇴로를 열고 오네



작가는 1958년 문경 출생. 1992년 조선일보, 경향일보 신춘문예 당선.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작품상 수상. 시집 ‘세한의 저녁’ 외.

 


이 작품은 내설악 깊은 곳에 자리한 백담사를 노래한 시조로 표현법이 뛰어나다. 첫째 수에서는 내설악 깊은 곳의 산봉우리를 ‘상류로 오를수록 썩지 않을 뼈만 남’은 것으로, 벼랑 끝의 소나무는 ‘가부좌 튼 푸른 솔’이라 표현하고 있다.

푸르고 무성하던 여름의 기억은 어디로 스미었는지 ‘포효보다 깊은 적막’을 보이고 있는 겨울 백담사에서, ‘그대 남긴 향기인 양 풀려나는 매운 눈발’ 앞에서 내 존재의 흐릿함을 화자는 생각하고 있다.

백담사 앞 냇가에 수없이 많은 작은 돌탑들 위에 ‘목에 걸린 음절’ 하나를 올리고 화자는 아름다운 시가 되어 남기를 기원할 것이다. 그리고 ‘내설악 잠 덜 깬 물소리’가 마침내 막힌 길을 열고 환한 길이 되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풀이:김민정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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