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시조>
보릿고개 사랑
- 영동선의 긴 봄날 5
보릿고개 사랑
- 영동선의 긴 봄날 5
宇玄 김민정
철길가 아지랑이
속살처럼 눈부신 봄
흔들리는 잎새 위의
햇빛은 조각비단
파릇한
기적소리에
고향잔디 놀라 깬다
호랑나비 날갯짓에
봄빛은 화사해도
쌀 한 줌에 나물 몇 줌
묽은 죽을 끓이시며
애잔히
함께 끓이던 사랑
보릿고개 넘는다
[작품 설명]
김민정 시인이 보내 온 시집『영동선의 긴 봄날』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 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작품과 관련하여> 라고 쓴 작품해설을 통해서 영동선 철로 주변에서 오래 사시고 또 인연을 맺었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사건과 일상을 통하여 아버지의 일대기를 스케치하고 그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상을 곁들여 서사적 서정시로 발표했던 연작 시조를 정리하여 한 권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 한다.
‘기억과 회귀의 시학’을 시집의 부제로 삼았는데 시집 제목의‘긴 봄날’ 이 먼저 가슴을 때린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동일한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없이 감성적인 시간의 개념은 즐거울 때 짧게 느끼게 되고 힘들고 고달픈 시간은 길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책 제목 긴 봄날이 풍기는 뉴앙스만으로도 저자 아버지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암시해준다.
그런데 서시에 해당하는「보릿고개 사랑」은 그 제목에서 일깨워주는 것처럼‘보릿고개’의 어려움을‘사랑’으로 덧입혀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극한상황을 극복하는 지혜와 가족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나는 6.25 직후 곳간차였던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한 경험이 있는데, 수업이 일찍 마치는 날에는 집에 좀 더 빨리 가기위하여 통학차를 기다리지 않고 지름길인 10여킬로를 철로변으로 걸어서 귀가 했었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봄날의 정경이 바로 여기 펼쳐져 있다.‘ 철길가 아지랑이/속살처럼 눈부신 봄’은 달궈진 철길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로 이른 봄날의 정경을 가장 잘 표현하였다. 또한 봄바람에 흔들리는 연초록 새 이파리들이 봄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조각비단이라 표현한 것은 옷감의 질감을 잘 아는 여성의 섬세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첫수 종장을‘파릇한/기적 소리에/고향 잔디 놀라 깬다’는 표현은 계절적으로 봄날에 파릇한 잔디가 싹트는 정경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저자가 이제부터 풀어가려고 하는 아버지의 일대기인 『영동선의 긴 봄날』이 시작됨을 알리는 귀절이기도 한다.
둘째수에는 보릿고개에 대한 얘기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쌀 한 줌에 나물 몇 줌/묽은 죽을 끓이시며//애잔히/함께 끓이던 사랑/보릿고개 넘는다’요즘 젊은 세대는 보릿고개에 대한 절절한 기억도 없고 내재된 슬픔도 모를 것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가족이 단촐하지 않고 대가족이던 당시의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부모들의 눈물겨운 이야기이며 끈끈한 가족사랑 이야기가 잘 표현되었다.
‘보릿고개’의 사전적 의미로는‘음력 4,5 월쯤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아니하여 농가 생활이 가장 어려운 때’라 하여 한문으로는 맥령이라 하고 춘궁기 또는 춘황을 일컫는다. 보릿고개는 비단 이 가정만 힘든 시기가 아니었고 오늘날과 견줄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한국의 현실이었다. 내가 김민정 시인의「보릿고개 사랑」을‘다시 읽고 싶은 시조’로 뽑은 것은 이 작품을 읽으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우리민족의 터널과 같던 어려웠던 과거를 돌아보면서 오늘날 우리 현실과 환경에 감사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조문학 2008년 가을호, 정순량 / 시조시인, 우석대 교수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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