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수 (시인, 강릉대강사, 태백문협회장)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진리가 탄광시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3연의 '긴 장화 /질척이던 갱도 /그 어둠을 사르고"라는 진술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2연의 "뜨거운 불꽃, 불꽃/ 가득 실은 화물차"에서 기인한다. 탄광노동자의 채탄 막장은
결코 우울하거나, 음침한 공간이 아니다. 광부들의 이마에 매달린 안전등 불빛은 "투사
의 눈빛"처럼 강렬하고, 광부들의 호흡은 "꽃보다 강인"하다.
인생막장으로까지 표현되는 채탄현실을 이처럼 건강하고 희망차게 노래할 수 있는 힘
은 결코 미화된 가상현실이 아니다. 이 힘은 막장인생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빛의 공간을
향해 막장을 뚫는 광부들의 막장정신에서 나온다. 김민정 시인은 이러한 막장정신을 불
꽃이 될 석탄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의 우렁찬 소리에서 찾아낸다. 이 시에 '탄광촌의 숨
소리'라고 부제를 붙인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시인은 인생막장, 막장인생의 현실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불꽃의 희망을 이뤄내는
강인한 광부의 존재를 선인장에 비유하고 있다. 척박한 사막의 땅에서도 끈질긴 생명력
을 보여주는 선인장의 존재는 열악한 삶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생명력을 잃지 않
는 광부를 상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탄광노동자들은 일제의 자원 수탈 정책에 의해, 해방기 이후의 탄광노동
자들은 국가의 산업발전을 위한 자원에너지 확보를 위해 맹목적인 노동을 강요당했다.
이 과정에서 저임금, 안전시설이 미비한 작업환경, 노동자에 대한 인권의 실종, 국가가
부여한 산업역군(혹은 산업전사)의 허울, 석탄의 이용가치가 떨어졌을 때 대체산업 없이
졸속으로 폐광정책을 유도한 국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등의 부조리한 현상이 자리한다.
하지만 김민정 시인의 「영동선의 긴 봄날 25」에 보면 온갖 부조리한 현상조차 건강한
노동의식에 의해 극복되고 있다. 마치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불꽃이 갱도의 어둠을 우렁
차게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순된 사회 구조 속에서도 현재보다는 미래를 향해 채
탄의 삽을 들고, 우리 산업사회의 가장 소외계층이면서도 결코 희망의 캡램프 불빛을 꺼
트리지 않던 탄광노동자의 건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척박한 세상에 희망의 불꽃을 심기
위해 우렁찬 소리를 내며 철로 위를 달리는 "꽃보다 강인한/ 광부들의 숨소리"를 통해 노
동의 건강성을 확인하게 된 것은 탄광시가 이룬 값진 성과라 하겠다.
(출전: 탄광문학강연, 2006. 12. 14(목) 오후 8시, 삼척시립박물관 시청각실)
'김민정 시조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민정 시조론 - 전복적 사고의 일탈 <정공량> (0) | 2009.01.23 |
---|---|
김민정 시조론 - 여성의 섬세한 마음 표출<정순량> (0) | 2009.01.09 |
김민정 시조론 - 서정서사의 아우름 <이강룡> (0) | 2009.01.09 |
김민정 시조론 - 여백이 밀집보다 더 충만스러울 때가 있다<정휘립> (0) | 2008.11.12 |
김민정 시조론 - 짧음을 길게, 좁음을 넓게 <문무학> (0) | 2008.09.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