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밀집보다 더 충만스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충만은 순치를 거부한다
너절한 문학적 치장을 단념하고 소박한 단순성을 승부수로 내걸며
서정적 시심의 그늘 아래를 가만가만 거니는
작법 또한 버릴 수 없는 현대시조의 한 부면이다.
그 점에 있어서 김민정이 눈에 띈다.
무심히 피었다 지는/ 풀꽃보다 더 무심히//
모두가 떠나버린/ 영동선 철로변에//
당신은/ 당신의 무덤/ 홀로 지켜 왔습니다//
살아서 못 떠나던/ 철로변의 인생이라 //
죽어서도 지키시는/ 당신의 자리인 걸//
진달래/ 그걸 알아서/ <서럽도록> 핀답니다//
시대가 변하고/ 강산도 변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당신의 무덤가엔//
봄이면/ 제비꽃, 할미꽃이/ 활짝활짝 핍니다//
세월이 좀더 가면/ 당신이 계신 자리//
우리들의 자리도/ 그 자리가 아닐까요//
우리들의 자리도/ 그 자리가 아닐까요//
열차가/ 사람만 바꿔 태워/ 같은 길을 달리듯이//
- 김민정, <철로변 인생-영동선의 긴 봄날 1> 전문
(시집 《영동선의 긴 봄날》(동학사, 2008)에서)
<정신과 표현, 2008년 11,12월호>
Clarinet : Acker B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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