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좋은 시조>
가난도 햇살인 양
- 영동선의 긴 봄날 4
가난도 햇살인 양
-영동선의 긴 봄날 4
宇玄 김민정
아버지가 웃으시며
영동선을 가고 있다
가난도 햇살인 양
눈부시게 받아 입고
물푸레
나뭇잎처럼
휘적휘적 가고 있다
눈 덮힌 산과 계곡
그 늠름한 능선들이
희미한 꿈결같이
뼈에 절은 아픔 같이
삶에다
만장 두르고
펄럭이며 가고 있다.
<2008년, 『나래시조』 여름호>
<작 품 평>
김민정 시인이 시집 『영동선의 긴 봄날』을 출간하였다. 이 시집은 시인의 선대인(先大人)의 일대기를 시로 엮은 서사시집이면서도 저변에는 짙은 서정이 깔려 있다. 김민정 시인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출신이다. 시인의 선대인 역시 그 땅에서 살다 가셨다. 어찌 보면 황량하면서도 골마다 청정한 전설이 들어 있는 무대, 그 산과 계곡을 잇고 이어서 경상도 영주까지 오고가는 영동선, 그 무대 위에 아버지라는 주인공의 허리 아픈 이야기들이 시인의 섬세한 시적 안목을 통하여 감동적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철로변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은 전쟁과 탄광촌의 이야기와 같은 억세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 작은 바람에도 한들거리는 풀꽃들의 이야기와 같은 애잔한 풍경들도 저마다 한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자기 목소리를 펼쳐내고 있다. 77편의 시편들은 한결같이 아버지라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이 펼치는 연기(연기)의 무대가 되는 '영동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전 편에 아버지와 영동선을 향하여 절절하게 표출된 애정이 독자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아버지의 쉰 일곱 해 삶의 이야기가 굽이굽이 흐르고 있는 영동선의 봄날은 시인에게는 긴긴 봄날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은 지금 고향을 찾아왔다. 시인의 눈에 비친 영동선 위에 아버지의 잔상이 오버랩되고 있다. 철로 위를 가고 있는 아버지의 웃음, 그 웃음 위에 쏟아지는 강원도의 청랑한 햇살, 그 햇살 같이 맑은 가난을 입고 한 생을 살다 가신 분, 시인은 지금 물푸레 나뭇잎을 닮은 모습으로 휘적휘적 가고 있는 그 분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시간적 배경은 겨울이다. 강원도의 겨울 산, 그 당당하고도 늠름한 능선들 위에 덮인 적설을 보며/희미한 꿈결 같이/뼈에 절은 아픔 같이//삶에다/만장 두르고/펄럭이며 가고 있//는 어쩌면 처절하기까지 한 모습을 읽고 있다. 시적 사물에 대하여 이러한 감정을 이입(移入)하게 되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하다. 시인은 영동선 주변에서 잔뼈가 굵어 왔고, 떠난 뒤에도 그 길을 수 없이 오고 갔을 것이며 가슴속에 항상 간직하고 다녔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애향심이며 나아가 조국애로 승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시인에게 있어 영동선은 육신의 고향이자 시의 고향인 셈이다. 두 수 모두 종장 처리가 휘적휘적 가고 있다/, 펄럭이며 가고 있다/처럼 /가고 있다/라는 동사로 처리함을 통하여 허전함, 쓸쓸함의 감정을 고조하고 있다.
현대 시조단에 서사시의 풍토는 아직 빈약하다. 거의 전부 서정시에 집중되어 있는 시점에 김민정 시인의 서사시집, 그것도 서사에만 치우치지 아니고 짙은 서정을 바탕으로 한 서사시집을 출간하게 된 것을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하는 바이다.
<리강룡, 지난 계절 좋은 시조 리뷰, 나래시조, 2008년 가을호>
'김민정 시조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민정 시조론 - 전복적 사고의 일탈 <정공량> (0) | 2009.01.23 |
---|---|
김민정 시조론 - 여성의 섬세한 마음 표출<정순량> (0) | 2009.01.09 |
김민정 시조론 - 노동의 건강성<정연수> (0) | 2008.11.20 |
김민정 시조론 - 여백이 밀집보다 더 충만스러울 때가 있다<정휘립> (0) | 2008.11.12 |
김민정 시조론 - 짧음을 길게, 좁음을 넓게 <문무학> (0) | 2008.09.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