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시조문학상 작품론>
단수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글은 짧아도 그 의미는 길다. 동양시학에서 말하는 언단의장(言短意長)을 잘 살려냈다.
초장은 상황의 제시다. 핵심 시어는 '댓돌'이다. '댓돌'은 무엇인가? 댓돌은 집채의 낙숫물이 떨어지는 곳 안쪽으로 돌려
가며 놓은 돌이란 뜻과 '섬돌'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섬돌의 의미다. 그 댓돌은 안과 밖의 경계가 되는 곳이며
방안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두는 곳이다.
중장은 그 댓돌 위에 무엇이 있는가를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흰 고무신을 신고 온 그 누군가가 그 방에 있다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암자의 방안에는 그 흰 고무신의 주인인 어느 스님이 앉아있을 것이다. 문맥으로야 흰 고무신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 고무신의 주인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도솔암에서 수행을 하는 스님이 그 흰
고무신의 주인이라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시의 화자가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스님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수행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암자는 적적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와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흰 고무신 한 켤레'가 그것이다. 그것이 적요다.
종장은 때를 가르킨다. '그리움/ 뒷짐지고서/ 눈만 내리 감은 날'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뒷짐'이란 시어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데 '뒷짐'은 사전적으로 '두 손을 등 뒤로 젖혀 마주 잡은 것'을 가리키는 데 매우 여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움'을 뒷짐진다는 것은 대단히 초연한 자세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것을 수사하는 '눈만 내리 감은 날'과 연결되면,
현실을 초월한 그 어느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구조를 분석한다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로 요약될 수 있다. 그것이 초장, 중장, 종장으로 연결되지 않고
종장, 초장, 중장의 순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는 도치법이 활용되었다. 만약 이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그 자리를
옮겨 놓는다면 "그리움 뒷짐지고서 눈만 내리 감은 날/ 마애석불 홀로 앉은 도솔암 댓돌 위에/
흰 고무신 한 켤레 누구를 기다리나"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수의 시조 속에 도솔암 적요를 다 담아내고 있으니 어찌 3장 6구 시조 한 수가 작거나 적다고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이 작품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감각하기 어려운 적요를 '댓돌 위에 놓인 흰 고무신 한 켤레'로 표현한 것이다.
초장과 중장을 거쳐 드러나는 이 이미지의 제시가 아니라면 이 작품은 독자의 가슴에 가닿지 못할 것이다. 댓돌 -고무신- 뒷짐
이라는 시어들이 초 중 종장에 배치되면서 도솔암의 적요를 우리 눈 앞에 그려주는 것이다. 그 절간의 적요가 우리를 사색의
숲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수작이 되는 것이다.
3
김민정의 '도솔암 적요'를 읽으면 이 작품과 어울릴 듯한 그의 '찻잔 속의 바다'가 떠온른다.
실선으로 뜨다가
점선으로 잠기다가
밀물이 되었다가
썰물이 되었다가
저 혼자
잠 드는 바다
수평선이 부시다
-「찻잔 속의 바다」 전문
시인의 위대함은 새로운 사유를 만드는 것이다. 일상의 논리로는 해석되지 않는 그 무엇이지만 그렇게 사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일상적 논리로 찻잔 속에 바다가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김민정의 이 작품에서
우리는 '아니야'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가 없다. 이른바 시적 논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찻잔을 유심히 바라본다면 실선으로 점선으로 뜨고 잠기고 밀물이 되고 썰물이 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수평선은 어쩌면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녹였을 테고 그쯤엔 수평선이 부실만도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찻잔 속에서 바다를 보아낸다면 이 시인은 그 무엇에서라도 시를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시인의 자세를 똑 바로 견지하겠다는 각오가 단단하고, 창작 외에 시조 이론의 탐구, 시조 알리기 등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는 그에게 투사라는 말을 어찌 아낄 수 있으랴. 그리고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작품 창작에서도 '적요'의 이미지를 흰
고무신 한 켤레 놓인 댓돌로 제시할 수 있으며, 찻잔 속에서 바다를 보아내는 시인이다. 짧음을 길게 활용하고, 좁음을
또한 넓게 활용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김민정 시인에게서 시조의 한 줄기 빛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함께 가는 길」을 읽으며 이 글을 맺는다.
긴 길이면 더 좋겠다
너와 함께 가는 길은
만남과 이별 잦은 우리들의 생애에서
아직도
익숙지 못해
숨 고르지 못한 나는
<『나래시조』 82호, 2007년 여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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