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선의 긴 봄날 11-15
宇玄 김민정
큰 가방 메고서
-영동선의 긴 봄날 11
일어 조금 할 줄 알아
우체국에 취직 되어
한과 꿈이 담겨 있을
몇십 통의 우편물로
빼곡히
채워진 가방
사랑 겹던 하룻길
깊은 골 외딴 집들
오솔길엔 산짐승들
가다가 비 만나고
돌아오다 눈도 만나
흔흔히
마음 적시며
산등성을 넘었네
산골 번지
-영동선의 긴 봄날 12
어느 골 산딸기가
먹음직해 보이는지
어느 골 산머루가
지금쯤 익었는지
헤아려
따 먹어가며
달래었던 시장기
어느 골엔 물이 맑아
발도 씻고 갈 수 있고
어느 골엔 동굴 있어
비 피할 수 있다는 걸
집 번지 산골골 번지
눈 감고도 훤했네
함께 웃고 울며
-영동선의 긴 봄날 13
징용 나간 아들 안부
만주이민 친척 소식
집집이 까막눈이라
소리 내어 읽어 주며
저마다
아픈 사연에
저려 오던 가슴, 가슴
전보 한 통 전해 주려
걸어가던 몇십 리
전사 통지 전해 주고
합격 통지 읽어 주며
가득한 삶의 무게 싣고
어둑한 길 돌아왔네
풋풋한 인정
-영동선의 긴 봄날 14
일 하러 모두 나가때때로 빈집일 때
우편물만 남겨 두고
차마 오기 어려워서
산과 밭
휘둘러보며
주인 찾아 전한 편지
어느 집선 툇마루에옥수수를 내어 놓고
어느 집선 제사 지낸
술 한 잔을 따라 주면
순박한
인정 속에서
잠깐 생이 환했네
산골 우체부
-영동선의 긴 봄날 15
산 너머 가기 힘든
외딴 먼 집 우편물들
땅 파고 묻기도 한
비양심도 있다지만
그럴 순
차마 없었네
눈비 속의 만행(萬行)길
답장 편지 받아 적고
밥풀 으깨 봉한 후에
우표삯 동전 몇 닙
받아들고 돌아서면
등 시린
어깨너머로
짧은 해가 기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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